- 2011.4.16. 

맑은 날 웃통 벗고 우산 쓰며 뭐 하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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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8 : 새책방


 1961년에 한국말로 처음 옮겨진 《인간의 벽》(이시카와 다쓰조 씀)이 2011년에 자그마치 쉰 해 만에 다시 옮겨집니다. 1980년대에도 옮겨졌지만, 이때에는 간추린 판이 나왔습니다. 2011년에 새옷을 입은 《인간의 벽》(양철북) 세 권은 ‘그동안 쉰 해가 흘렀다지만, 쉰 해에 걸쳐 그다지 달라지거나 나아지거나 거듭나지 못했다’고 할 만한 교육 터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점수를 매기는 것 따위는 교육이 아니다. 58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구별하는 것은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187쪽).” 같은 글월에 밑줄을 죽 긋고는 한참 되읽습니다.

 1961년에 처음 옮겨진 책은 오만 원이고 십만 원이고 삼십만 원이고를 준다 하더라도 장만할 길이 없습니다. 1980년대에 간추린 판으로 나온 책 또한 헌책방을 샅샅이 누비더라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오직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던 책을,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에 안은 책을, 이제는 언제라도 새책방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둘레에 널리 알리며 읽으라고 외치거나 선물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는 묻힌 책을 찾아 읽습니다. 오래도록 예쁜 빛줄기를 베풀지만 팔림새는 안 좋아 안타까이 스러진 책을 살핍니다. 같은 책을 조금 더 값싸게 장만할 수 있고, 때로는 나라밖 책을 고맙게 마주하는 헌책방이에요.

 새책방에서는 언제라도 널리 나누고픈 책을 만납니다.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사람들이 새롭게 읽을 책을 찾으려고 할 때에 걱정없이 손에 쥘 만한 책을 갖추는 새책방입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어여쁜 이야기책이 새책방 책꽂이에 꽂힙니다. 예전에 나왔다가 스러지고 만 책을 되살릴 때에 새책방 책꽂이에 꽂힙니다. 새책방이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꾸준하게 새책을 빚습니다.

 그렇지만, 새책방 가운데 자그마한 동네책방을 마주하기는 힘듭니다. 저마다 다른 크고작은 도시나 시골에 걸맞게 고이 꾸리던 작은책방은 더 뿌리내리지 못해요.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책을 갖출 새책방은 책팔이로는 살림을 꾸리기 벅찹니다.

 작은 동네책방은 거의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작은 동네책방이 사라졌더라도 사람들이 책을 안 읽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작은 동네책방이 아닌 큰도시 큰책방에서 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져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합니다.

 요즈음 누리책방은 ‘미리보기’가 잘 짜였습니다. 셈틀을 켜고 들여다보면, 머리말과 차례와 열 몇 쪽 남짓 얼마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여느 새책방에서는 눈치를 보며 ‘미리읽기’를 했지만, 누리책방에서는 ‘책 다칠 일이나 책에 손때 묻힐 걱정’ 없이 미리읽기를 합니다. 다만, 여느 새책방에서는 사이사이 아무 데나 뒤적일 수 있습니다. 책내음과 책결을 손으로 느낍니다. 누리책방은 책을 만지거나 골고루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고기집이 늘고 술집이 늘며 옷집이 늡니다. 여느 사람들 눈길과 마음길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퍽 옅으니까 작은책방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곧, 작은책방뿐 아니라 작은 삶을 다룬 작은 책 또한 살아남기 빠듯합니다. 누구나 작은 사람인데, 작은책방 작은 새책은 어디로 가야 좋을까요. (4344.4.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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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7 : 헌책방


 서울 혜화동에서 1978∼79년부터 자리잡으며 사람들하고 책을 나누던 헌책방 한 곳이 2011년 4월 1일로 문을 닫았습니다. 헌책방 일꾼 전인순 님은 당신이 샛장수(중간상인 또는 나까마)로 처음 일하던 때가 1960년대 첫무렵이라고 떠올립니다. 샛장수로 열 몇 해, 또는 스무 해쯤 일한 끝에 아주 작은 가게를 얻은 때가 1978년이나 1979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샛장수를 처음 한 해도 또렷이 몇 해인지 떠올리지 못하고, 가게를 처음 차린 해도 제대로 돌이키지 못하지만, 헌책방 문을 닫아야 하는 때는 날짜까지 똑똑히 아로새겨집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는 자리에 함께합니다. 헌책방 한 곳에 깃들던 책을 다른 헌책방으로 옮기는 일을 거들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책을 빼서 열한 시 무렵에 책꽂이까지 모두 들어냅니다. 고작 너덧 시간 만에 모든 책과 책꽂이가 텅텅 빠집니다. 부스러기를 치우고 남은 짐조각을 건사하는 헌책방은 간판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이 간판도 며칠 지나지 않아 이 터에 새로 들어올 떡볶이집이 얼른 떼어내어 새 간판을 올리겠지요. 어디에선가 헌책방 박물관을 짓는다고도 하지만, 조용히 문을 닫는 헌책방 간판 하나 살뜰히 돌보려 하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헌책방 한 곳이 문을 닫느라 책을 빼는 동안, 동네사람이 지나가며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침 일곱 시 반 즈음부터 가게 문을 여는, 건너편 보성문구사 할아버지가 “이 봐, 혜성(책방 이름)! 어디 가? 이사 가? 그러면 나는 어떡해?” 하고 외칩니다. 가게 문을 열고는 헌책방 앞으로 찾아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문 닫아요? 미리 말 좀 해 주시지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진작 찾아와서 책을 보고 샀으면 될 일입니다. 늙수그레하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여기를 떠나요? 아이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서운해서 어쩌나.” 하고 인사를 하며 손을 잡습니다. 일흔넷 헌책방 일꾼은 그냥 일꾼이 아닌 ‘할아버지 일꾼’이고, 할아버지 일꾼이 떠나는 길을 안쓰럽게 여기며 마지막말을 남기는 이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인 ‘동네사람’입니다.

 서울 혜화동 작은 헌책방에 있던 책은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으로 옮깁니다. 서울 혜화동이며 삼선동이며 명륜동에는 이제 헌책방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지난날 이 둘레에는 헌책방이 꽤 많았으나, 이제 이 둘레에서 헌책방이라는 씨는 깡그리 말라비틀어집니다. 강북구청 둘레에 헌책방 한 곳 튼튼히 살아숨쉽니다만.

 그러나, 문을 닫는 헌책방만큼 튼튼하며 굳세게 문을 여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강북구청 둘레에는 〈신광헌책〉이 있고, 혜화동 마지막 헌책방 〈혜성서점〉 책은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이 넘겨받습니다. 일흔네 해 책을 만지며 늙은 할아버지 한 사람은 쉰 해 즈음 한길을 걸었고, 앞으로 숱한 헌책방 일꾼은 쉰 해나 예순 해 안팎을 헌책을 만지는 삶을 일구다가 조용히 마무리짓겠지요.

 여태껏 한 번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난 적이 없는 헌책방 책터입니다. 앞으로도 도드라지거나 돋보이거나 빛날 일은 좀처럼 없겠지요. 그런데, 헌책방이란 늘 그랬어요. 낮은 자리에서 예쁘며 해맑게 책을 어루만지며 이어왔어요. (4344.4.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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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28 10:4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강북쪽의 헌책방이 많이 문을 닫았네요.제 기억에 태능역의 상수서점,마아역 부근의 헌책방,수유역쪽의 헌책방등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몇년 사이에 다 닫았다군요.

파란놀 2011-04-28 12:10   좋아요 0 | URL
수유역에서 화계사 가는 길목에 있는 <신일서점>은 잘 있어요. 많은 곳들이 문을 닫고, 이러한 자리에는 분식집이나 닭집이나 옷집이나 찻집이 들어서곤 하더군요..

카스피 2011-04-28 15:05   좋아요 0 | URL
신일 서점은 아직 있군요.제가 갈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장사를 안하는 줄 알았지요^^

파란놀 2011-04-29 05:23   좋아요 0 | URL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해 보셔야 해요. 책을 사러 바깥으로 돌아다닐 때에는 가게문을 닫고 나가시니까요~
 

자전거쪽지 2011.4.25.
 : 자전거수레에서 잠든 아이


- 거의 새벽부터 일어나서 낮잠 없이 놀던 아이하고 하루 내내 부대끼자니 기운이 다 빠진다. 아이 또한 기운이 다 빠졌겠지. 그래도 아이는 졸음을 꾹꾹 참으면서 논다. 마치 오늘이 제 마지막날이라도 되는 듯 논다. 눈이 벌개서 졸린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가 참 안쓰럽다. 어쩌면, 아이는 ‘나를 더 신나게 놀게 해서 아예 곯아떨어지도록 해야 하지 않아?’ 하고 묻는 듯하다. 아이를 안고 자전거마실을 하자고 생각한다. 봄날이지만 바람이 꽤 불어 쌀쌀하기 때문에 멀리까지는 못 간다. 그저 마을 어귀 보리밥집까지만 달리기로 한다.

-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본 아이는 어느새 콩콩 뛰면서 “아버지, 나도 같이 가요!” 하고 소리친다. 아이가 서두른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한테 서두르지 말라고, 옷 챙겨 입고 양말 신으라고 이른다. 아이는 혼자서 잘 신는 양말을 영 못 신는다. 졸린데다가 마음이 바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이 양말을 한 짝씩 천천히 신긴다. 웃옷을 단단히 입힌다. 볼을 토닥토닥 하면서 “자, 이제 가 볼까.” 하고 말한다.

- 도서관에서 수레와 자전거를 꺼낸다. 마당에서 뚜껑을 연다. 아이를 번쩍 안아 자리를 잡고 안전띠를 맨다. 이불을 잘 덮고 여민다. 아이는 싱글벙글 웃지만, 웃음에는 졸음 기운이 고스란히 묻는다.

- 이제 자전거를 몬다. 이웃 논둑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길에서 아이는 소리소리 높이며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 달려요?” “응, 자전거 타고 달리지.” 삐삐 노래를 부르고 이 노래 저 노래를 마음껏 부른다. 시골자락에서 노래하는 아이를 수레에 태운 자전거가 논둑길을 지나고 마을길을 지나 큰길로 접어든다.

- 보리밥집에 닿아 반찬을 조금 얻고 아이 과자를 두어 점 산다. 보리밥집 아주머니가 아이한테 바나나를 하나 떼어 준다. 아이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좋아한다. 인사를 꾸벅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는 한손에 바나나를 쥔 채 수레에 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퍽 조용하다. 슬금슬금 뒤를 본다. 아이 눈이 살며시 감길락 말락 한다. 이제 드디어 주무시는구나. 자전거를 천천히 달린다. 봄바람을 살랑살랑 맞으면서 천천히 달린다. 집 앞에 이를 무렵에는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끈다. 이제 막 잠들었으니까 조금 깊이 잠들 때까지 지켜볼까.

- 집에 다 왔다. 아이를 살며시 안아 방으로 들어가도 아이는 안 깬다. 바나나 쥔 손에서 힘이 풀려 바나나가 톡 떨어진다. 아이를 바닥에 눕힌다. 이불을 덮는다. 깨지 않는다. 한두 시간 자면 일어나겠지 하고 생각하며 저녁에 아이가 일어나면 무엇을 먹일까 생각하며 국을 끓인다. 그렇지만 아이는 깨지 않는다. 저녁 내내 그저 곯아떨어진다. 이러다가 새벽 한 시에 깬다. 오줌이 마렵다며 새벽 한 시에 깨어난 아이는 다시 잠들지 않는다. 새벽 두 시 무렵, 아이 어머니가 일어나서 아이한테 밥을 차려 준다. 새벽 한 시에 깨어 새벽 두 시에 밥을 먹는 아이라니, 참. 아이도 아이 어머니도 아이 아버지도 밤새 잠을 거의 못 자거나 제대로 못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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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넨과 거즈 1
아이자와 하루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빈틈이 많아도 사랑스러운 삶
 [만화책 즐겨읽기 35] 아이자와 하루카, 《리넨과 거즈 (1)》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예쁜 사람은 예쁘게 살아가고, 미운 사람은 밉게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사랑합니다. 예쁜 사람은 예쁘게 사랑하고, 미운 사람은 밉게 사랑합니다.

 새로 맞이한 봄날, 논둑을 거닐거나 숲속을 걷거나 멧길을 오르면, 날마다 새로운 봄내를 맡습니다. 집안에 들어앉았어도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날이 새로워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집안에서도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듣지만, 집밖으로 나가면 훨씬 드넓은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듣습니다. 비가 퍼부을 때에는 빗소리가 얼마나 온 마을을 휩싸는지를 새삼스레 느끼면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지난겨울, 눈이 펑펑 퍼붓던 때에는 온 마을이 고요하게 잠듭니다. 눈은 소리를 잠재웁니다. 눈은 소리를 먹으면서 마을을 조용히 하얗게 묻습니다. 봄날부터 가을날까지는 비가 마을을 씻습니다. 모든 소리를 부딪치게 하면서 비가 내립니다. 눈은 모두를 감싸듯이 덮으며 조용하게 하고, 비는 모두를 깨우면서 시끄럽게 합니다.

 눈이 그치고 나면 이제 이 눈을 쓸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눈을 쓸기 앞서 아이를 불러 아이와 함께 눈밭을 바라보곤 합니다. 비가 쏟아지면 집에서 조용히 옹크리지만, 집에서 옹크리더라도 텃밭을 내다보며 이 빗결에 씨앗이 잘 자라 주려나 하고 헤아립니다. 엊그제 바람이 참 모질게 불었는데, 모진 바람을 맞은 토마토 모는 뽑힐 듯 말 듯하면서 안 뽑혔습니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흙바닥에 머리를 콩콩 박습니다만, 이렇게 머리를 콩콩 박으면서도 뽑히거나 꺾이지 않아요.

 김수영 시인은 풀이 눕지만 다시 일어선다고 노래했는데, 김수영 시인이 노래한 풀을 아주 새롭게 다시 보며 느꼈습니다.


- 하늘은 푸르고, 밥은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몸은 건강하고, 난 정말 행복한 사람. (4쪽)
- 바느질하는 시간이 좋아. 아무 생각도 않고 몰두할 수 있거든. 슬픈 일도 까맣게 잊을 수 있지. (22쪽)



 멧길을 거닐면 다람쥐를 곧잘 만납니다. 다람쥐가 저를 아직 알아채지 않았으면 먹이를 찾으며 부산을 떨거나 바위에 앉아 해바라기를 합니다. 이러다가 저를 알아채면 화들짝 놀라며 부리나케 멧골 깊이 내뺍니다.

 논둑길을 거닐면 왜가리나 해오라기를 더러 만납니다. 왜가리나 해오라기가 개구리를 잡아먹느라 바쁘면 가까이에서 지나가도 못 알아채지만, 사람 낌새가 난다 싶으면 제가 손에 아무것도 안 들었어도 깜짝 놀라면서 큰 날개를 펼쳐 탁탁 소리를 내며 멀리멀리 날아갑니다.

 서울에서 찾아온 손님이 타고 온 자동차를 살짝 얻어타고 마을 어귀 밥집에 함께 다녀오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늘 걷거나 자전거로 오가던 이 길을 자동차에 느긋하게 앉아 달리니 아주 빨리 오갈 뿐 아니라 다리힘이 든다든지 등판에 땀이 흐른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바깥 바람이나 소리는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재빨리 지나가는 자동차에서는 길가 나무나 풀이나 꽃을 하나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휙휙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눈을 밝히고 쳐다본다 한들 제대로 즐기거나 느낄 수 없어요.


- “여전히 혼자 신선놀음이네. 독신은 속 편해서 좋겠다.” “그런 소리 마. 코코미가 카와노를 어찌나 따르는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바람에 그 애, 아무것도 못했어.” (17쪽)
- “코코미가 많이 외로운가 봐. 언니, 코코미와 좀더 함께 있어 주는 게.” “뭐야! 난 말이지! 나도, 코코미와 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너처럼 태평하게 너 좋아하는 일이나 하며 사는 사람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28쪽)



 집에서 집식구 옷가지를 늘 손빨래로 건사합니다. 손으로 빨래해서 널고 말리며 갭니다. 네 살을 먹은 아이는 제 아버지가 빨래를 하거나 옷을 갤 때면 옆에 꼭 달라붙습니다. 아이는 빨래하는 모습이나 옷 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저도 하고 싶다며 엉겨붙습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손으로 빨래하다 보면, 어디가 얼마만큼 더러워지거나 헤졌는가를 금세 알아챕니다. 손으로 만지고 손으로 비비며 손으로 헹구니까 한결 잘 깨닫습니다. 빨래기계에 넣는다 하더라도 다 손으로 넣고 손으로 꺼내니,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요. 어느 집이든 일거리가 많을 텐데, 빨래를 손으로 한다면 다른 집일이나 집살림을 건사할 겨를이 크게 줄어든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네 살쯤 자라고 보니 아이 옷가지 빨래가 확 줄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아이 몸크기만큼 옷가지 빨래가 는다’고 할 테지만, 오줌기저귀랑 똥기저귀 빨래하는 품보다는 적지 않겠느냐 하고 어림해 봅니다. 뭐, 빨래거리가 더 많을 수 있겠지요. 더 많아지면 더 많아지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고, 더 줄면 더 준 대로 맞아들이면 돼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내 사랑하는 살붙이 옷가지이거든요.

 사랑스러운 옆지기 아프거나 쑤신 허리와 팔다리를 조물조물 주무르듯이 옆지기 옷가지를 조물조물 비비거나 헹굽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안거나 어르거나 달래듯이 아이 옷가지를 살며시 비비거나 헹굽니다. 내 옷은 좀 막 빨고 막 입습니다.


- “즐거운 일을 떠올리며 난 행복하다고 생각하려 하는데, 그래도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 건, 참 쓸쓸해.” (37쪽)
- “앞으로는 아동복도 시작해 볼까 하고요. 뭘 만들까 하는 생각에 오랜만에 막 설레고 그래요.” (42쪽)


 만화책 《리넨과 거즈》를 봅니다. 손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옷이나 여러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부대끼는 이웃하고 얽힌 삶을 다루는 만화입니다. 손으로 하는 일이든 기계로 하는 일이든 언제나 품이 듭니다. 프레스공장에서 같은 물건을 수없이 빠르게 찍어내듯, 옷가지를 빠르게 똑같이 수없이 뜨거나 짜거나 깁지 못합니다. 한 땀씩 바느질을 하거나 재봉틀을 돌리면서 ‘이 옷을 입을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를 생각합니다. 천을 고르고 실을 살피면서 ‘어떤 빛깔 어떤 무늬로 예쁘고 쓸모있게 옷 한 벌을 지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 밥을 하고 새로 청소를 하며 새로 설거지를 합니다. 아이하고 날마다 새로 사랑을 나누고 새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새로 손을 잡고 뛰어놉니다.

 새 끼니에 새로 밥을 차리면서 오늘 이 밥을 함께 먹을 살붙이들이 어떠한 느낌과 맛과 사랑으로 곱고 즐거이 냠냠짭짭 하려나 헤아립니다. 눈 비비고 일어난 아이한테 새로 옷을 입히면서 오늘은 어떤 모습 어떤 얼굴 어떤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려 할까를 떠올립니다.

 “뭘 만들까 하는 생각에 오랜만에 막 설레”는 사람처럼 ‘무얼 마련할까 하는 생각으로 늘 설레’는 집일꾼이거나 집살림꾼입니다. 아이하고 날마다 같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어제는 어제 느낌이고 오늘은 오늘 느낌이에요. 아이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더라도 어제는 어제 모습이고 오늘은 오늘 모습입니다.

 꼭 비싼 바깥밥을 사다 먹여야 사랑스레 크는 아이가 아닙니다. 자가용을 태우거나 놀이동산에 데리고 다녀야 즐거워 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무등을 태워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그저 손을 잡고 숲속을 누벼도 좋아하는 아이예요. 아침에 일어난 아이를 불러, 옆에서 아버지가 당근을 갈아 ‘자, 이제 거의 다 됐네. 조금만 기다려. 숟가락 챙기고.’ 하고 말하면서 당근 한 뿌리 다 갈아 그릇에 소복하게 담아서 내밀 때에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 “코코미 덧옷이 아주 인기예요. 다들 예쁘다고.” “맞아! 친구들이 다 부럽다, 부럽다 했어.” (55쪽)
- “마침 잘 만났다. 그 덧옷 말이에요. 반 엄마들한테 얘기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만들어 줬으면 하던데! 그리고 바자회 수제품은 몇 개나 만들 수 있겠어요? 10개 정도는 문제 없죠?” (68쪽)


 만화책 《리넨과 거즈》는 남다를 구석이 없는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냥저냥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손뜨개를 하건 발뜨개를 하건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옷뜨개를 하건 마음뜨개를 하건, 저마다 제 삶을 어여삐 뜰 수 있으면 기쁩니다.

 돈이 많아도 넉넉하면서 즐거운 삶이 될 수 있고, 돈이 없거나 모자라도 넉넉하면서 즐거운 삶이 될 수 있어요. 값있는 물건을 쓰거나 값진 사진기를 갖출 때에도 즐거운 삶이 될 테지만, 값었다는 싸구려 물건을 쓰거나 사진기라곤 아예 없더라도 즐거운 삶이 돼요. 사진은 기계가 아닌 마음으로 찍거든요. 사랑은 돈이 아닌 마음으로 나누거든요.

 만화책 《리넨과 거즈》는 바로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을 차근차근 펼쳐 보입니다. 빈틈이 많아도 사랑스러운 삶을 일구는 사람들 모습을 조곤조곤 내보입니다. 어쩌면, 빈틈이 많아서 사랑스러운 삶이요 사랑이며 꿈과 보람일는지 모릅니다. (4344.4.27.물.ㅎㄲㅅㄱ)


― 리넨과 거즈 1 (아이자와 하루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3.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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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4-2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서 바느질하는 시간이 좋아요.
아무 생각도 않고 몰두할 수 있거든요, 슬픈 일도 까맣게 잊을 수 있고요~

리뷰가 참 사랑스럽습니다.

파란놀 2011-04-27 10:09   좋아요 0 | URL
저는 뜨개질은 못해도 바느질을 할 때라든지, 빨래를 하거나 밥을 하거나 아이를 씻기거나 할 때에 여러모로 즐거워요 ~ ^^

염소자리랩소디 2011-06-17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좋아서 관심 가지고 있던 만화인데 리뷰를 보니 역시 재밌을 것 같네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파란놀 2011-06-17 10:37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둘째 권이 안 나오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