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옆 책읽기

 


  밥상을 차린다. 밥을 먹자고 부른다. 아이가 밥상 옆에서 책을 펼친다. 아이들이 나오는 사진책이다. 밥보다 아이들 사진이 더 마음에 끌릴는지 모른다. 애써 밥상을 차린 사람으로서는 기운이 빠진다. 밥도 책도 아닌 꼴이 되니까. 그런데 나는 이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사진을 찍는다. 어느 모로 보면 얄밉지만, 어느 모로 보면 귀엽거든. 내 마음속에 깃든 얄미움이 아이한테 옮을 테고, 내 가슴속에 스민 귀여움 또한 아이한테 이어질 테지. 아이가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넋을 추스르기를 꿈꾼다면, 어버이 또한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넋을 추스를 노릇이리라. 서로서로 좋은 길을 찾아 좋은 사랑을 빛낼 때에 가장 기쁘리라. (4345.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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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두 달에 한 번 내는 <경기문화나루>에 싣는 글입니다. 7-8월호치에 실리는 글이기에, 이제 이곳에 함께 걸칩니다.

 

..


 내 삶에 한 줄, 즐거이 읽는 책

 


  나카야마 세이코 님 청소년문학 《산촌유학》(문원,2012)을 금세 다 읽습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가슴에 얹혀 재우면서 이 책 하나 훌러덩 읽습니다. ‘산촌유학’이란 도시에 사는 아이를 시골로 보내 배우게 한다는 일로,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살림집 가운데 한 곳으로 ‘도시 아이가 들어가서’ 그 집 아이와 똑같이 살아가도록 합니다. 26쪽을 보면,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든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소리, 냄새, 색깔, 빛, 바람 …… 여기는 내가 사는 곳(도쿄)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참말, 시골 밤하늘 별은 밝습니다. 도시 밤하늘에는 별이 밝지도 않으나, 별이 뜰 수조차 없습니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고, 밤하늘을 생각할 일마저 없곤 합니다.


  경기 파주 책도시 한켠에서 5월 한 달, 제 사진잔치를 마련했습니다. 사진잔치를 나 스스로 기리며 식구들하고 먼 마실을 떠납니다. 들새 소리와 바람 냄새와 햇살 빛깔과 들풀 빛무늬 어여쁜 시골집을 떠나 여러 날 파주에서 머물렀습니다. 시골집 날씨와 여러 날 묵을 일을 헤아리며 두 아이 옷가지를 챙겼는데, 막상 파주 책도시에 닿으니 복사열이 대단해 두 아이 모두 더위에 시달립니다. 더욱이, 걸을 만한 들길이라든지 오를 만한 멧자락이라든지 쉴 만한 나무그늘이라든지 마실 만한 냇물이라든지 먹을 만한 들풀이라든지 하나도 없습니다.


  청소년문학 《산촌유학》에 나오는 도쿄 청소년들은 ‘시골에 편의점이 없어 과자나 청량음료를 사 마실 수 없겠다고 걱정’합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볼일 보러 아이들 이끌고 찾아간 우리 식구는 ‘도시에 쉬고 걸으며 먹을 너른 들판과 숲이 없다고 새삼스레 깨달으며 걱정’합니다.


  복사열과 아스팔트와 시멘트집에 시달린 끝에 시외버스와 여러 차를 갈아타고 예닐곱 시간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짐을 풀고 벌렁 드러누워 달게 잔 이듬날 아침, 아이와 함께 그림책 《루비의 소원》(비룡소,2003)을 읽습니다. 1900년대 첫무렵 중국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책으로 빚었다 합니다. 사내로 태어난 사람만 글을 가르치고, 가시내로 태어난 사람은 집일과 살림을 배우느라 글을 배울 수 없다던 지난날,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이녁 할아버지를 깨우칩니다. 루비네 할아버지는 루비한테 “아가, 네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정말로 알고 싶구나. 남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더 잘 해 준다는 거니?” 하고 물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던 루비는 할아버지가 알아들을 만한 가장 쉬운 보기를 찾습니다. 이를테면, 전병을 줄 때에 사내한테는 더 달콤한 자리를 떼어 주고, 가시내한테는 퍽퍽한 데를 떼어 준다는 말을 들려줍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곁에서 누군가 깨우쳐 주지 않으면 참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곁에서 쉽고 살가우며 따스한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나 말길로 깨우쳐 주더라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림책 할아버지는 당신 손녀가 넌지시 깨우쳐 주는 말마디를 잘 삭힙니다. 가시내를 대학교까지 보내는 일이 아주 없다던 때에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화책 《사원 시마, 주임 편》(서울문화사,2008)을 읽습니다. 첫째 권 70쪽에 ‘평사원 시마’가 “우직해도 좋다. 출세 못해도 좋다. 난 이런 자세를 관철하고 싶다.”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평사원 시마 주임은 이처럼 혼잣말을 하지만, 만화책 흐름을 보면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며 전무와 이사를 거쳐 사장에 이릅니다.


  마음을 쉬고 싶어 《어머니전》(호미,2012)이라는 책을 펼칩니다. 섬마을에서 ‘스스로 고향이 된’ 할머니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섬할매 한 분은 “자식들 있어도 다 객지 가 사요. 큰아들은 서울서 살고, 나는 이라고 삽니다. 이게 편합니다. 시골 사람은 시골 사는 게 좋습니다(111쪽).”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할 만한 곳에서 가장 좋아할 만한 삶을 일구며 사랑을 합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들길을 거닐며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꿈을 읽다가, 우리 집 처마 밑 제비들 노랫소리 들으며 삶을 읽습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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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책으로도 여러 권 갖춘 그림책을 빚은 마츠오카 다츠히데 님 작품은 한국말로도 제법 나왔다고 느낀다. 다만, 그다지 널리 사랑받지는 못하는구나 싶다. 한국땅 어버이들이 아이들한테 과학지식과 자연지식을 보여주려고는 하지만, 막상 과학과 자연을 엮어 삶과 사랑을 느끼도록 하려는 그림쟁이 넋까지는 헤아리지 않기 때문일까.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풀꽃 친구들
마쓰오카 다쓰히데 구성, 시모다 도모미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3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2012년 06월 2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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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열매 친구들
마쓰오카 다쓰히데 구성, 시모다 도모미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7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2012년 06월 26일에 저장
품절

- 아기의 첫 모험 1
마츠오카 다츠히데 지음, 이진용 옮김 / 큰북작은북 / 2007년 9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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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26일에 저장

하늘을 난 공벌레
마츠오카 다츠히데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4년 6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12년 06월 2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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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고 싶은 느낌글

 


  오늘 새벽 드디어 《아나스타시아》 다섯째 권 느낌글을 마무리짓는다. 고작 한 시간이 안 되어 한달음에 적어 내린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내 마음이 맑을 때에는 느낌글 한 꼭지이든 두 꼭지이든 아주 빠르게 쓸 수 있다. 원고지로 치면 스무 장쯤 될 글을 삼십 분 사이에 쓸 수 있고, 원고지로 칠 때에 쉰 장쯤 될 글을 고작 한 시간 동안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음이 맑으면 생각이 열리고, 생각이 열리면 사랑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니까.


  쓰고 싶은 느낌글이 있을 때에는 무엇보다 내 삶을 착하면서 곱게 돌보아야 한다. 읽고 싶은 책이 있을 적에는 언제나 내 삶을 참다우면서 즐겁게 보살펴야 한다. 참답고 즐겁게 읽은 책을 착하면서 곱게 느낌글로 담는다.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밥을 내 땅뙈기에서 짓는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가장 좋은 사랑과 꿈을 내 땅뙈기에 실어 가장 슬기로운 땀을 흘려야 할 노릇이다. 아무렇게나 읽을 책은 없다. 서평단이 된다거나 거저로 보내 온 책을 읽는대서 느낌글을 척척 써 주지 않는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즐겁게 읽은 다음, 내 사랑이 샘솟으며 기쁘게 쓸 때에라야 비로소 느낌글이 된다. (4345.6.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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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 아나스타시아 5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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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사랑을 일구는 사람인가
 [환경책 읽기 37] 블라지미르 메그레, 《아나스타시아 (5) 우리는 누구?》

 


- 책이름 : 아나스타시아 (5) 우리는 누구?
- 글 : 블라지미르 메그레
- 옮긴이 : 한병석
- 펴낸곳 : 한글샘 (2010.4.20.)
- 책값 : 12000원

 


 (1) 흙에 깃든 목숨


  사람이 돌보지 않는 흙땅에서는 사람이 심지 않은 풀이 뿌리를 내려 자랍니다. 사람이 돌아보지 않는 흙땅에서는 사람이 뿌리지 않은 나무씨가 뿌리를 내려 자랍니다.

  풀은 마구 자라지 않습니다. 풀은 아주 조그마한 땅뙈기에 뿌리를 내립니다. 풀포기 하나는 혼자만 자라지 않습니다. 같은 자리에 나란히 뿌리를 내리기도 해서, 여러 풀이 뿌리가 엉긴 채 자라기도 합니다. 뿌리가 엉긴 여러 풀이 쑥쑥 자라서 흙땅을 뒤덮곤 해요.


  한 가지 풀만 자라는 흙땅은 없습니다.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들여다보면 온갖 들풀이 저마다 가장 빛나는 새싹을 틔우고 새 줄기를 올립니다. 온갖 들풀은 저마다 가장 튼튼한 줄기를 올리며, 저마다 가장 고운 꽃을 피웁니다.


  사람은 이 풀을 바라보며 망초라고도 하고, 저 풀을 바라보며 조릿대라고도 하며, 그 풀을 바라보며 괭이밥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풀과 저 풀과 그 풀은 모두 저마다 누리는 삶에 따라 태어나서 자라고 시들다가 씨앗을 남기고는 흙으로 돌아가서 고요히 잠듭니다. 이듬해 봄에 잠에서 깨어나 다시 태어나고, 이듬해 겨울에 다시 잠들며, 다음해 봄에 거듭 잠에서 깨어나기를 되풀이합니다.


.. 땅에 자라는 모든 것은 물화한 하느님의 생각이며, 하느님이 원래 짓기를, 사람은 음식을 얻는 문제로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조물주의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와 함께 짓기만 하면 된다 … 우리 아들도 무슨 열매 하나 풀 하나를 살짝 먹어 볼 수 있어. 해롭고 쓰다면 그리고 그 애한테 안 맞으면 그냥 뱉어 버릴 거야. 조금 먹어서 위장에 탈이 생기면 토할 거야. 대신 그걸 기억해서 앞으로는 먹지 않겠지. 결국, 온 세상을 누군가의 얘기가 아니라 맛으로 알게 될 거야. 우리 아들이 온 삼라만상을 맛보라지 …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스스로 잘 사는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면, 학교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서로서로를 보충하며 아이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  (9, 18, 169쪽)


  흙땅 수풀 곁에서 아기가 태어나든, 늙은 어버이가 죽든, 수풀은 한결같습니다. 흙땅 수풀 곁에서 사람들이 아파트를 짓든, 시멘트를 냇물에 퍼붓든, 수풀은 한결같습니다. 흙땅 수풀 곁에서 사람들이 비행기를 날리든 자가용을 굴리든, 수풀은 한결같습니다. 기름값이 오르건 말건 수풀은 한결같습니다. 대학입시 굴레가 더 깊어지든, 사람들이 영어 자격증 시험이나 은행계좌 숫자 늘리는 데에 마음을 쓰든, 수풀은 한결같습니다.


  흙땅 풀을 낫으로 벱니다. 흙땅 풀을 손으로 뽑습니다. 한 시간쯤 땀을 흘리면 갖은 풀로 뒤덮이던 작은 수풀은 맨흙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맨흙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키 높이 자란 수풀만 베이거나 뽑힐 뿐, 이 밑에서 새로 싹을 틔우는 또다른 다른 풀이 천천히 뿌리를 내리려 합니다.


  나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먹을 푸성귀를 생각하며 흙땅을 일구고는 씨앗을 심거나 뿌립니다. 어느 씨앗은 골을 내고 고랑을 만든 다음 구멍을 작게 내어 심습니다. 어느 씨앗은 고랑에 길게 줄을 낸 다음 씨앗을 솔솔 뿌립니다.


  꽃집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푸성귀 씨앗’은 ‘푸성귀 씨앗 만드는 공장’에서 거두어들여 봉지에 담아서 팔까요. 깨알보다 작고, 모래알보다 작은 푸성귀 씨앗을 ‘푸성귀 씨앗 만드는 공장’ 일꾼은 어떻게 갈무리하고 어떻게 건사했을까요.


  배추와 무와 상추만 사람들이 먹을 푸성귀이지는 않을 테지요. 이 풀만 먹고 저 풀은 안 먹어도 되지는 않을 테지요. 토끼풀은 토끼가 잘 먹기에 붙은 이름일까요. 괭이밥은 고양이가 잘 먹는대서 붙은 이름일까요. 사람은 토끼풀잎을 따서 먹으면 어떠할까요. 사람들이 괭이밥잎을 따서 냠냠하면 어떤 맛을 느낄까요.


.. 수백만의 사람 손이 사랑으로 땅을 만진 것이지. 기계가 아닌 바로 사람의 손으로 자기 토지의 흙을 다정하게 만져 주었지. 땅은 느꼈어. 지구는 모든 사람 손길을 하나하나 다 느꼈어 … 우리가 같이 있을 땐 좋은 시간이야. 우리가 함께 있을 땐 분·시간·날이 아주 좋아. 그러면 주위의 모든 것이 기뻐해 … 아빠는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아무하고도 얘기도 하지 않고, 재미있는 것도 아무것도 안 해. 그런데 지금은 아빠가 항상 곁에 있지. 아빠는 아주 좋은 사람이 됐어. 이제 난 폭발을 할 수 없어 … “왜 아빠는 차갑기만 하고, 아무 에너지도 주지 않는 컴퓨터 주변에서 걱정스레 서성일까? 나무가 꽃을 피우고 새가 지저귀고 온갖 풀과 나뭇가지가 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온몸을 다정하게 감싸주는 동산으로 나가지 않을까?” ..  (27, 70∼71, 81∼82쪽)


  뒤꼍 빈땅 한쪽 귀퉁이를 갈아엎어 당근을 조금 심으면서, 곁에 자라는 까마중풀은 그대로 둡니다. 까마중 하얀 꽃이 지면서 푸른 알맹이가 까만 열매로 익을 테니까, 까맣게 잘 익기를 기다려 아이들하고 먹을 생각을 합니다. 나는 까마중 씨앗을 뿌린 적이 없고, 까마중이 이곳에 나리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까마중은 뒤꼍 빈땅에서 마음껏 자랍니다. 내가 들여다보든 안 들여다보든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면서 작고 맑은 꽃잎을 내놓습니다. 예쁜 열매를 맺고 씩씩하게 자랍니다.


  어쩌면, 내 마음이 까마중풀을 이곳으로 불렀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내 생각이 까마중풀더러 이곳에도 함께 자라 주기를 빌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느끼지 못할 수 있으나, 먼먼 옛날부터 내 오늘 삶을 찬찬히 그렸는지 모릅니다. 망초를 비롯한 다른 풀은 썩썩 뽑아서 한쪽에 쌓고, 까마중풀은 그대로 두며, 노랗게 꽃을 피운 자그마한 괭이밥은 밭둑에 살짝 옮겨심자고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몰라요.


.. 행복한 여인이 선한 손으로 손수 짠 의복이 컨베이어 기계에서 제작된 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값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제품들을 기꺼이 산다고, 아나스타시아가 설명을 곁들였다 … 화폭 대신에 1헥타르의 땅에 그림과 똑같이 혹은 그보다 더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경을 지은 사람을 당신은 왜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지? … “당신이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고 진리를 품는다면,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  (104∼105, 106, 131쪽)


  하루 내내 내린 빗물이 들판 모든 잎사귀에 대롱대롱 붙습니다. 논자락에 갓 심은 벼포기에도 빗물이 달리고, 논둑 뭇풀 잎사귀에도 빗물이 달립니다. 돌로 쌓은 울타리 담쟁이 잎사귀에도 빗물이 달리며, 유월 끝무렵에 한창 꽃내음 날리는 밤꽃송이에도 빗물이 달립니다.


  빗속을 가르는 제비 날개에도 빗물이 달릴까요. 제비나 까마귀나 직박구리나 노랑할미새나 종달새가 빗속에서도 먹이를 찾아 날아다닐 적에, 두 눈망울에 빗물이 톡 하고 떨어지기도 할까요. 하늘을 날며 비를 맞는 들새와 멧새는 어떤 마음일까요. 사람과 달리 긴옷도 비옷도 이불도 없이 살아가는 새들은, 벌레들은, 짐승들은, 풀과 나무는, 비가 듣는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누릴까요.


  흙에 깃든 목숨은 흙이 보금자리입니다. 개미는 흙땅을 뚫고 들어가서 집을 짓습니다. 크고작은 뭇벌레 또한 흙땅을 파고 들어가서 집을 짓습니다. 사람 눈에는 자그맣겠지만, 사람 눈으로는 작게 보이는 벌레한테는 몸뚱이보다 훨씬 큰 들풀 잎사귀가 보금자리 구실을 하기도 합니다. 높은 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가서는 나뭇잎 하나를 골라 뒤쪽에 착 달라붙으며 밤을 나는 벌레가 있습니다. 내 종아리가 나무줄기라도 되는 양 여기며 볼볼 기어오르는 나비 애벌레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한테 흙은 어떤 품이 될까요.


  고속도로를 낸다며, 아파트를 짓는다며, 새 철길을 낸다며, 새 굴을 판다며, 냇물 흐름을 곧게 펴며 시멘트를 붓는다 하면서, 크고작은 수풀을 하루아침에 갈아엎는 커다란 기계를 모는 일꾼은 수풀 사이에 깃든 뭇목숨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요. 이라크로 쳐들어간 미국 폭격기 모는 사람이 높디높은 하늘에서 단추 하나 눌러 폭탄을 떨구면, 낮디낮은 땅에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꽥 소리 없이 사라지듯 죽습니다. 삽차나 밀차는 흙땅에 뿌리내리던 온갖 풀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온갖 풀에 깃들던 온갖 벌레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 “걱정 마, 블라지미르, 여기가 좋아. 공기는 신선하고 별들이 보여. 봐, 와, 오늘 별이 참 밝다. 다정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데, 춥지 않아.” (269쪽)


  낫과 호미를 쥔 손으로 딱정벌레가 타고 오릅니다. 딱정벌레는 갑작스레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나는 조그마한 밭을 얻고, 딱정벌레는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나는 푸성귀 심을 흙땅을 얻고, 내가 푸성귀로 삼지 않는 풀은 목숨을 잃습니다. 그런데, 이 풀들은 내가 베거나 뽑는다 하더라도 제 넋을 일찌감치 숱한 씨앗에 남겼어요. 어느 한곳에서 모조리 베이거나 뽑히더라도, 사람 손길을 타지 않는 흙땅에는 어느덧 이 풀들이 새로 돋아요. 아니, 사람 손길을 타는 흙땅이라 하더라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고개를 내밀어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벗이에요. 지구별에서 숨을 나누어 쉬는 동무예요. 지구별에서 서로를 보듬는 이웃이에요.


  딱정벌레는 나를 탓할 수 있으나, 애써 나를 안 탓할 수 있습니다. 그예 없어진 보금자리를 그리지 않고, 새 보금자리를 찾을 테니까요. 누구를 탓하느라 애먼 하루를 흘리지는 않을 딱정벌레이리라 느껴요. 개미들도 그래요. 내가 밭을 일군다며 개미집을 몽땅 허물더라도, 이 개미들은 금세 다른 빈 흙땅을 찾아들어 새 집을 짓습니다. 애써 지은 집을 모조리 날린다지만, 새삼스럽게 씩씩한 기운을 차려 개미 스스로한테 좋은 보금자리를 일굽니다.

 


 (2) 바람에 실린 목숨


  새벽 두 시를 지나 세 시로 접어들면, 다시 네 시 무렵이 되면, 시골마을 들판은 무척 고요합니다. 모든 소리가 잠을 자는 듯합니다. 저녁부터 노래하던 개구리도 조용합니다. 밤에 노래하는 새도 조용합니다.


  나는 모든 목숨들이 고요히 잠든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기를 좋아합니다. 딱히 좋아한다고 할 수 없을는지 모르나, 이무렵에 아이들 쉬를 누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하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내내 내 몸을 고이 쉬게 해 주던 소리들이 한꺼번에 뚝 끊기는 이무렵 눈이 번쩍 뜨이곤 합니다.


.. 비석은 죽음의 기념비이다. 장례는 검은 힘의 고안이며, 그 목적은 잠시나마 사람의 영혼을 가두어 두기 위함이다. 우리 아버지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어떤 고난도 심지어는 슬픔도 생산하지 않았다 … 조화로운 전체의 하나이며 영원하다 … 정보의 홍수, 아니 홍수처럼 보이는 정보 속에서 우리가 혼동하는 건 아닐까? 사실은 우리가 고립되었고 진정한 정보의 원천에서 단절되었다 … “당신은 그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왜 점점 더 새로운 종류의 질병이 생겨나는지 생각 안 해 봤어?” … “사람이 돌연변이 열매를 먹기 시작하면, 그 자신도 점차 변종이 되고 말아.” … “사람은 사람 고유의 능력을 잃고, 조종하기 쉬운 바이오 로봇이 되고 있고, 자유와 독립을 상실하고 있어.” ..  (10, 21, 107, 108쪽)


  내가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시골로 삶터를 옮긴 햇수를 세면 얼마 안 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내 삶터는 이곳 시골인 터라, 도시살이 도시물결은 도무지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때때로 생각나기도 하는데, 왜 생각나느냐 하면, 날마다 좋은 소리 바람결에 실린 채 나한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겨울날 매서운 바람이든, 봄날 산들거리는 바람이든, 여름날 상큼한 바람이든, 가을날 시원스러운 바람이든, 갖가지 냄새와 이야기와 소리를 실어 나한테 찾아옵니다. 나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바람이 속삭이는 꿈을 듣습니다. 이때에 가끔 문득 생각납니다. 내가 도시에서 첫째 아이를 낳고 살던 지난날, 밤이면 밤마다, 또 낮에도 으레 전철 소리와 자동차 소리에 귀가 쟁쟁거렸습니다. 나는 전철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자동차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가게마다 트는 시끄러운 대중노래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며 쩡쩡 울리듯 손전화로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내 생각은 내 몸을 살가이 건사하면서 내 마음을 따사로이 보듬는 삶터를 바랐습니다. 내 몸이 힘들어 할 적마다, 내 마음이 지칠 때마다, 내 생각은 바람 한 점 나한테 찾아들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랐습니다.


.. 왜 우리의 의식 속에는, 인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무기 생산이 우리 인류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사고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일까요 …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오물들을 우리가 모두 함께 청소해야 합니다 … “지금 당신이 사는 곳에, 아파트에, 흙이 담긴 조그마한 화분에 씨앗을 심으면, 거기서 가문의 나무가 솟아날 것이고, 미래의 가원에서 높게 솟아오를 거야.” … 사람은 몇 층에 살던 흙에서 자라는 모든 것을 매일 음식으로 취합니다. 흙에서 자라는 것들을 공급하려면 도로·자동차·창고·가게가 필요하고, 이것들 모두가 땅을 차지합니다 ..  (93, 100, 130, 151쪽)


  모든 동무 개구리가 잠든 새벽 네 시 이십사 분에 홀로 우는 개구리가 꼭 있습니다. 왜 이 개구리는 너른 들판에서 홀로 잠들지 못하며 울까요. 왜 이 개구리는 다른 동무 개구리는 색색 잠들었는데 홀로 안 잠들면서 노래하고 싶을까요.


  이제 삼십 분이 더 지나 새벽 네 시 오십 분이 되면, 우리 집 처마 밑에 깃들어 함께 사는 제비 식구들이 하루를 엽니다. 어미 제비 두 마리와 새끼 제비 네 마리는 모두들 싱그럽고 밝은 날갯짓을 뽐내며 하루를 엽니다. 마당을 두루 날아다니며 어디로 마실을 갈는지 서로 얘기하는 듯합니다. 삼십 분 또는 한 시간쯤 서로 짹짹빽빽 얘기하다가 어느 때부터 조용합니다. 모두들 어딘가 날아갑니다. 이때부터 휑뎅그렁 조용한 집이 됩니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납니다. 먼동이 천천히 틀 무렵 몸을 옴쭉달싹합니다. 어제 하루 고단하게 놀았으면 조금 더 자지만, 어제 하루 개구지게 놀았어도 일찍 일어납니다.


  시골마을 이웃 어른들은 봄철부터 새벽 네 시에 하루를 엽니다. 아니, 겨울철에도 새벽 네 시에 하루를 엽니다. 한창 바쁜 일철이든, 한갓진 겨울철이든, 새벽밥을 짓고 새벽녘을 맞이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그리고, 일찍 하루를 닫아요.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에 하루를 닫아요. 지친 몸을 쉬고, 흙 묻은 몸을 씻으며, 서로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으로 하루를 접습니다.


.. 국가는 대규모 혹은 중소기업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정은 국가의 근본을 이루는 한 부분입니다 …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근로자 가족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가족은 급여를 주는 고용자, 혹은 난방·상수·전기를 공급하는 공공서비스 기관에 의지해야 하며, 식품 및 서비스의 공급 또한 그 가격에 의존해야 합니다. 가족은 이 모든 것들의 노예이며, 이런 가정에서 어린아이는 노예 근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 과학기술 세상이 아무리 노력해도 첨단기기를 갖춘 현대식 공장에서는 우리 할머니들이 만드는 토마토·오이·양배추 절임의 맛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합니다 ..  (146, 161쪽)


  시골마을마다 다 다를 텐데,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이곳 시골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온 지도, 집집마다 물꼭지를 달아서 쓴 지도, 제법 너르다 싶은(그래 봤자 두찻길이지만) 아스팔트길이 놓인 지도, 그리 오랜 옛일이 아닙니다. 어느 집에나 텔레비전은 없었고, 어느 집에나 등불을 밝혔습니다. 어느 집이나 나무를 땠고, 어느 집이나 솥을 걸었어요.


  우리 식구 깃든 좋은 보금자리에서 예전에 살던 식구들은 1980년대에 접어들고 나서야 집에서 전기를 썼다고 합니다. 아마 이웃집도 어슷비슷하겠지요.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마을 샘터에서 물을 길었겠지요. 아이들은 물을 동이에 담고 나르느라 부산했겠지요. 아이들은 샘가 또는 빨래터에서 씻고 논다며 부산을 떨었겠지요.


  1980년대에 인천에서 어린 나날을 보내던 일을 되새깁니다. 그무렵 나는 도시에서 전기를 걱정없이 누렸습니다. 전기가 픽 나간 다음 몇 시간이나 며칠이고 안 들어오는 때도 잦았지만, 전기를 참 쉽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전기 안 들어오는 집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무렵에도 한국땅 다른 시골에는 틀림없이 전기 없이 살아가던 집이 꽤 있었으리라 봅니다. 한 사람이 살아갈 때에 전기가 꼭 있어야 하지는 않거든요. 한 사람이 살아갈 때에는, 늘 누릴 만한 흙이랑 물이랑 햇볕이랑 바람이랑 풀이랑 나무가 있으면 되거든요.


  다만, 어린 나한테 ‘한 사람이 살아갈 때에 갖출 여러 가지’를 옳게 들려줄 어른은 없었습니다. 내 둘레 어른들 누구나 도시살이에 젖어들었기에, 아주 마땅히 전기를 쓸 뿐이요, 아주 마땅히 돈을 벌 뿐이고, 아주 마땅히 도시에서 집 사들여 아이들 낳고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삶을 짓는 사랑, 삶을 빚는 꿈, 삶을 이루는 생각을 들려주는 어른을 마주하지 못했어요. 삶을 빛내는 넋, 삶을 나누는 얼, 삶을 어깨동무하는 가슴을 알려주는 어른을 찾아보지 못했어요.


.. “하느님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동등해. 서로서로를 숭배하면 안 돼. 난 그냥 여자야. 난 사람이야!” … “숭배가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아. 숭배는 오직 사람한테만 있는 생각의 힘을 앗아갈 뿐이야.” ..  (277, 278쪽)


  날마다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루 날씨가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기를 바람한테서 듣고, 멧자락 새들과 짐승들 하루는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를 바람한테서 듣습니다. 바람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흔들면서 노래와 소리와 꿈이 무엇인가 하고 살짝 들려줍니다. 바람은 풀잎과 머리카락과 빨래를 살며시 힌들면서 빛깔과 내음과 사랑이 무엇인가 하고 살짝 알려줍니다.


  해님은 지구별에 따숩게 볕을 나누어 주고, 바람은 볕이 골고루 퍼지도록 실어 나릅니다. 흙은 볕을 고이 담습니다. 풀과 나무는 흙이 담은 볕을 받아먹으면서 푸른 잎사귀를 틔웁니다. 푸른 잎사귀는 꽃을 피우고, 꽃은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는 씨앗을 품으며, 씨앗은 내 목숨을 보살핍니다.

 


 (3) 아나스타시아 다섯째 권, 《우리는 누구?》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옮겨적은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다섯째 권인 《우리는 누구?》(한글샘,2010)를 읽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목숨이요 어떤 겨레인가 하고 찬찬히 생각합니다.


  나는 꿈을 아끼는 사람인지 생각합니다. 나는 사랑을 보살피는 사람인지 생각합니다. 나는 이야기를 빚는 사람인지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를 둘러싼 동무와 이웃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 이 숲이, 지금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걷고 있는 이 숲이 생산하는 산소로 숨을 쉰다 … 누가 우리로 하여금 나를 닮은 남에게 피해를 주며 자신의 복을 얻도록 강요하는 것이오? … “모스크바처럼 큰 도시에서 강물을 어떻게 깨끗하게 만들었을까?” “더럽히지 않고, 유해 폐기물을 방치하지 않고, 강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돼.” … “넓은 들, 그리고 동일한 종류의 작물들 속에서 자라는 풀은 사람한테 이로운 모든 것을 땅과 하늘에서 취하지 못해.” … “선생님의 아드님 혹은 따님이 어디에 살길 원하시는지요? 돌무덤 같은 아파트입니까? 아니면 훌륭한 동산에 에워싸인 집입니까? 딸, 아들, 자손들에게 무얼 먹이고 싶습니까? 통조림 식품입니까? 아니면, 신선하고 청정한 식품입니까? ..  (14, 42, 48, 58, 164쪽)


  우리 두 아이뿐 아니라 나와 옆지기 두 어버이가 살아갈 나날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맑은 넋을 곱게 빛내는 한삶을 누릴 때에 아름답습니다. 한삶을 마음껏 누리면서 하늘나라 품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때에 어여쁩니다. 몇 살에 무엇을 배우고, 몇 살에 어느 학교를 마치며, 몇 살에 어떤 돈벌이를 거머쥐어, 몇 살에 시집장가를 간다 하는 굴레에 두 아이가 매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두 아이 모두 가장 싱그러이 빛나는 넋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두 아이와 나와 옆지기 모두 싱그러이 빛나는 넋으로 하루를 누릴 때에 가장 좋은 삶이 된다고 느껴요.


  책은 종이책도 책이지만, 사람책도 책이요, 꽃책도 책입니다. 흙을 만질 때에는 흙책을 읽어요. 땀을 흘릴 때에는 땀책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책을 읽고, 길을 걸어갈 때에는 다리책과 길책을 읽어요. 버스를 얻어 타고 마실을 다니면 버스책을 읽습니다. 어쩌다가 도시로 나들이를 간다면 도시책을 읽겠지요.


  온누리 모든 목숨이 책입니다. 온누리 모든 님이 책입니다. 그러니까, 온누리 모든 목숨이 이웃이면서 넋이고 사랑입니다. 온누리 모든 님이 동무이면서 꿈이고 이야기예요.


.. 낡은 쓰레기는 자식들에게 필요없다 … “석유·가스·그리고 무기 수출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 게 도대체 뭔데?” “많아, 블라지미르. 예를 들면, 공기·물·좋은 냄새·창조의 에너지를 체험하기·좋은 것 바라보기 … 온실에서 재배한 토마토나 오이보다 밭에서 햇빛을 직접 받고 자란 열매가 훨씬 맛있다는 거 당신은 알지. 해로운 화학물질을 투입하지 않은 흙에서 자란 야채나 과일은 더 맛있고 몸에 좋아. 그 주위에 여러 가지 풀과 나무가 자란다면 더 몸에 이롭지. 열매를 재배하는 사람의 감정, 그리고 태도도 중요해. 열매에 들어 있는 향은 사람에게 매우 이로워 ..  (44, 56, 57쪽)


  오늘날은 ‘햇볕 없이 물만 먹이며 푸성귀를 기른다’는 ‘수경 재배’도 있습니다. 햇볕은 없어도 비닐집에서 비료와 풀약을 먹이며 푸성귀를 기르기도 합니다. 아직 이월이나 삼월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딸기가 나오잖아요. 고작 사월이나 오월에도 수박이 나와요.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말이 안 되는 줄 오늘날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아요. 느끼지 못하니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니 다시금 느끼지 못해요. 곧, 몸으로 겪지 않을 뿐더러 마음으로 살피지 않기 때문에 삶을 모릅니다. 몸으로 겪으면서 마음으로 살필 때에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몸도 마음도 꽁꽁 닫아건 채 껍데기와 이름값과 돈에 시달리니까, 오늘날 어디에서도 사랑을 찾지 못해요. 참사랑을 만나지 못해요.


  쌀밥 한 그릇도 사랑이어야 해요. 콩나물국 한 그릇이랑 두부 한 접시도 사랑이어야 해요. 시금치나물이든 오이 하나이든 사랑일 때에 내 몸이 즐겁게 받아들여요.


  내 몸은 화학첨가물을 좋아하지 않아요. 화학첨가물 꾸러미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면, 내 몸속은 아주 괴롭다고 소리쳐요. 똥을 눌 때마다 똥구멍이 아파요. 똥을 누고 난 다음 냄새가 고약해요.


  자연을 먹을 때에는 내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여요. 자연을 먹고 똥을 누면 내 똥내음은 자연내음이에요. 아주 마땅하겠지요? 비료를 먹은 능금나무는 굵직하고 바알간 알맹이에 비료를 품어요. 항생제를 먹고 풀약을 먹은 배나무는 굵직하고 누우런 알맹이에 항생제와 풀약을 품어요.


  햇살을 먹은 포도나무는 햇살을 포도알에 담아요. 빗물을 먹은 매화나무는 매실 한 알에 빗물을 담아요. 바람을 마신 배추 한 포기는 바람 한 닢을 잎사귀에 담아요.


.. “사람은 자기의 꿈과 생각으로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짓는 거야.” ..  (290쪽)


  나는 어떤 사랑을 일구는 사람일까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짓는 사람일까요. 나는 어떤 사랑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 넋이나 손길이 깃든 밥을 먹으면서 사랑을 말하거나 꿈을 들려주려 하나요.


.. 아나스타시아는 좋은 것만 믿고 짓기 때문에 항상 미소를 짓는다 ..  (292쪽)


  몸이 아프기 때문에 이맛살을 찡그리지 않아요. 내 몸속에 나쁜 밥이 들어왔으니 이맛살을 찡그려요. 내 마음속에 짓궂은 지식조각이랑 정보덩이가 스며들었으니 이맛살을 찡그려요.


  몸이 아프건 안 아프건, 내 몸속에 사랑스러운 목숨이 깃들 때에는 환하게 웃어요. 몸이 튼튼하건 몸이 여리건, 내 마음속에 사랑스러운 꿈과 이야기가 감돌 때에는 해맑게 웃어요. 삶이니까요. 사람이니까요. 사랑이니까요. (4345.6.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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