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 바닷마을 다이어리 4 바닷마을 다이어리 4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운 맛
 [만화책 즐겨읽기 166] 요시다 아키미,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날마다 식구들 먹을 밥을 차리지만, 그날그날 어떤 밥을 차려서 함께 먹었는지를 오래도록 되새기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되새길 겨를이 없다 할 만합니다. 집식구 밥을 손수 마련해서 차리고 치우는 살림꾼 노릇을 늘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알 테지만, 집일이 고되기 때문에 오래도록 못 되새기지 않아요. 배부르게 잘 먹었다 싶으면 금세 배가 꺼지고, 곧 새로 밥을 차릴 때가 찾아듭니다. 하루에 두 끼니만 먹어도 밥때는 금세 찾아오고, 하루에 세 끼니를 먹는다면 밥때는 참말 더 빨리 찾아옵니다. 내가 차린 밥을 나 스스로 틈틈이 사진으로 찍지 않으면 엊그제 무얼 먹었는지 모르겠지요.


  그런데, 밥을 차리는 사람 말고, 밥상 앞에 앉아서 먹는 사람이라면, 늘 밥상을 가만히 앉아서 받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 새로 맞아들이는 밥차림을 얼마나 잘 헤아리거나 되새길까요. 밥을 다 차렸으니 와서 먹으라고 부를 때에 비로소 밥상 앞에 앉는 사람은 ‘또 이거야?’ 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까요. ‘못마땅하면 손수 차려서 먹어!’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참말 스스로 밥을 차려서 식구들 앞에 내놓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예나 이제나 한국이든 일본이든 서양이든, 밥은 으레 가시내가 차리고, 사내는 그저 밥상 앞에 앉아서 수저만 놀리지 않느냐 싶어요. 게다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설거지라도 기쁘게 나서며 살뜰히 마무리짓는 사내란 매우 드문 일 아닌가 싶어요.


- “어? 하지만 그냥 딴 얘기 하다가 우연히 들은 거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들은 건 들은 거잖아. 근데 아무 선물도 안 하면 서운해 하지 않겠니?” (11쪽)
- “두루미가 날아갈 때는 좋은 날씨가 계속되는데, 반대로 날지 않을 때는 설령 화창한 날이라도 오래가지 않고, 금방 날씨가 나빠진다는 거야. 말도 안 된다 싶었지. 일기예보에서도 화창한 날씨가 계속될 거라 했고, 무엇보다 두루미 얘기를 믿을 수가 없었어. 솔직히 허무맹랑한 미신으로만 들려서, 난 예정대로 등반 파트너랑 마지막 캠프를 향해 떠났어.” (96쪽)

 

 


  나는 학교를 안 좋아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못 배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닌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통틀어 학교에서 집일을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 국민학교에서는 실과 수업에서 밥하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학교에서 한 달에 한 차례쯤 아이들 모두 밥을 하고 반찬을 하도록 이끌기는 했으나, ‘가시내이건 사내이건 제 밥은 저 스스로 차리고 치울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나는 집에서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웠고, 어머니와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웠어요.


  요즈음 학교에서는 어디에서나 급식을 합니다. 학생도 교사도 도시락을 싸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밥판을 들고는 줄을 서서 기다리면 영양과 부피를 알아서 척척 헤아리는 밥을 손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밥찌꺼기 갈무리할 일이 없고, 설거지를 할 일도 없습니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청소도 학생이 스스로 하는 일이 드물다 하는 만큼, 학교를 다니면서 몸으로 ‘집에서 늘 하는 일’을 겪을 틈이 없다고도 할 만합니다.


  밥은 엄마가 해 주면 될까요. 밥은 요리사나 영양사나 급식사나 조리사가 해 주면 될까요. 밥은 밥집 아줌마가 해 주면 될까요. 밥은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도시락을 사다 먹으면 될까요.

  나는 학교를 안 좋아하지만, 열두 해 동안 학교를 다니며 좋았던 적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첫째, 쉬는 때와 체육 시간이 좋습니다. 50분 수업 하고 10분 쉴 적에, 바로 이 10분 동안 개구지게 뛰어놀든 책을 읽든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체육 시간에 넓은 운동장을 마음껏 차지하며 놀 수 있어 좋습니다. 다음으로, 청소 시간이 좋습니다. 나는 낮밥 먹는 때보다 하루 수업 마치고 청소하는 때가 훨씬 좋았습니다. 집 청소부터 썩 잘 하지 못하는 깜냥이지만, 땡땡이치는 아이들이 있건 말건 비질하고 걸레질하면서 교실을 말끔히 건사하는 일이 좋았어요. 학교 다닌 열두 해를 통틀어 헤아리면, 나 혼자 넓은 교실을 청소한 적도 꽤 잦았고, 나와 다른 동무 둘이서 교실 청소를 한 적도 퍽 잦았습니다. 몸이 그리 안 튼튼해서 개근상을 못 받은 적이 많지만, 청소를 빼먹은 적은 없어요. 빗자루와 걸레를 드는 동안 시나브로 마음이 맑아진달까요. 빗자루와 걸레를 들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나를 참다이 사랑하는 길을 살핀달까요.


- “나 센다이에 있을 때 아빠는 택시 운전 일하느라 바빴고, 엄마도 일을 하고 있어서 축제 같은 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어.” (18쪽)
- “유야가 좋아하는 장소 어디일까?” “어?” “난 아빠가 입원했을 때 신사 뒷산에 자주 가곤 했어. 아빠도 거길 좋아해서 건강했을 때는 자주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거든.” (78쪽)

 

 

 


  내 마음에서 내 중학교 세 해는 거의 자취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참 엉터리였구나 싶어, 천 날이나 되는 삶을 나 스스로 마음속에서 거의 지웠습니다. 국민학교를 갓 마친 아이들이 ‘마치 어른이 다 되었다’는 듯이 꼴값을 떠는 짓이 싫었어요. 철부지 사내들이 끼리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날이면 날마다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때리는 짓을 일삼는 모습이 끔찍했어요. 교실 한쪽에서는 늘 싸움판이고, 교실 다른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대입시험을 생각한다며 눈과 귀를 닫은 채 그저 공부만 팝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학교에 오면 마냥 담배를 피우고 학교 바깥에서는 술을 먹느라 바쁜 넋이 책상에 엎어져 잡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온 교실이 북적거리도록 뛰노는 바보들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않고 혼자 지냅니다. 중학교에서는 나 스스로 누구하고도 동무를 삼고 싶지 않습니다. 동무를 얼간이로 여기면, 나 또한 스스로를 얼간이로 굴리는 셈이지만, 서로 얼간이가 되더라도 이곳에서는 내 동무가 하나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겨우 마음을 열어 동무를 사귑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중학교 때처럼 담배놀이와 바보짓을 하는 녀석이 꽤 있었지만, 대입시험과 사회라는 울타리를 코앞에 둔 탓인지, 중학교 때처럼 어리석게 굴지는 않아요. 나도 스스로 얼간이가 되었던 허물을 벗고, 내 동무들을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애씁니다. 착한 마음이 되고 참다운 생각이 되어 즐거이 살아갈 길을 헤아립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 적 도시락을 늘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중학생 적 도시락은 한 가지도 못 떠올립니다. 고등학생 세 해를 지내는 동안 첫 해에는 김밥으로만 도시락을 쌌고, 다음 두 해에는 볶음밥으로만 도시락을 쌌어요. 날마다 같은 도시락이요, 언제나 같은 도시락입니다. 어머니가 ‘집안 사내 세 사람 도시락’을 날마다 다섯 그릇이나 싸자니 너무 힘들다고 하셔서, 다른 반찬은 하지 말고 날마다 똑같은 도시락으로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참말 내 딴에, 어머니 짐을 덜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참말 어머니 짐을 덜려 했다면 내가 도시락을 싸면 되는데, 그무렵에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도시락 싸기 힘들면 반찬이 없이 김밥으로만 하거나 볶음밥으로 하면 되겠지’ 하고만 여겼어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이 되어 곰곰이 되새깁니다. 내가 사내 아닌 가시내로 태어났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내가 가시내였다면 도시락을 손수 쌌겠지요. 내가 가시내였으면 어머니는 나하고 함께 도시락을 싸셨겠지요. 나는 나도 미처 모르고 내가 스스로 옳게 살피지 못하는 사이, ‘사내로 태어난 어떤 특권이나 권력’을 누렸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을 바보스레 이끄는 ‘사내 특권’과 ‘사내 권력’을 나 스스로 참 오래도록 누렸어요.


- “우리 엄마가 언니들한테서 아빠를 빼앗아 버렸던 거야. 언니들은 그건 어른들끼리의 일이니까 나랑은 상관없다고 했지만, 난 계속 언니들한테 미안해 하고 있었어. 부인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 우리 엄마가 나쁜 거라고.” (32쪽)
- ‘진짜로 우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울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사랑해선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돼 버려서, 여러 사람을 상처 입히고 언니 자신도 상처받으면서, 그런데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던 거야?’ (38쪽)

 

 

 


  네 식구 먹을 밥을 날마다 차리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아니, 밥차리기는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즐겁게 맞아들이는 삶입니다. 그러나 아직 밥차리기가 얼마나 좋은 삶인지 더 깊이 느끼거나 맞아들이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날마다 새로 익히고 나날이 새삼스레 배우는구나 싶어요.


  칼질을 하면서, 밀반죽을 하면서, 국을 끓이면서, 밥물을 맞추면서, 접시에 반찬을 담고 밥상을 닦으면서, 수저를 놓고 식구들을 부르면서, 밥을 하고 차리는 사이 틈틈이 끝없는 설거지를 하면서, 개수대에 튀긴 물기를 닦고 또 닦으며 행주를 하루에도 열 차례는 빨래하면서, 누런쌀을 미리 불리고 국거리 간을 소금이나 간장으로 맞추면서, 밥을 하는 사람은 손에 물이 마르지 않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손에 물이 마르지 않으니, 내가 그토록 손에 붙이는 책을 쥘 수 없을 뿐 아니라, 손에 연필을 들고 글을 쓰지도 못한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살며 네 식구 밥을 하루 세 끼니 차리던 어머니가 날마다 가게나 저잣거리로 마실하면서 먹을거리를 장만할밖에 없던 일을 도마질을 하며 떠올립니다. 어머니가 가게나 저잣거리에서 ‘파 한 묶음 호박 하나 두부 한 모’ 사는 데에 뭘 그리 오래도록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살피며 힘들게 장만하나 하던 일을 국자로 국을 뜨며 되돌아봅니다.


  내 어머니는 나와 형이 과자 노래를 부를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내 어머니는 나와 형한테 핫케익 굽는 법을 가르쳐 주어 스스로 주전부리를 마련해 먹으라고 가르칠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나는 어릴 적에 김치를 못 먹는 몸이었는데, 아버지 등골에 김치를 먹이라 하는 눈치와 으름장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요. 늙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직도 당신 둘째 아들이 김치나 동치미나 찬국수를 못 먹는 줄 못 깨달으시는데, 그러면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좋아하거나 잘 드시는 먹을거리를 얼마나 잘 깨닫는 아이일까요.


-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에서 제일 맛있었던 것 기억해요?” “제일 맛있었던 거요?” “예. 꼭 맛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되게 인상에 남았던 거라든지 뭐 그런.” “글쎄요, 바로 떠오르는 건 없는데.” (172쪽)
- “지금은 제 취향대로 카레를 만들지만, 가끔 그 치쿠와 카레는 대체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대로 우리를 위해서 정성껏 만들어 주셨던 거죠. 맛이 없어도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177쪽)
- ‘엄마 아빠는 아마도 이 가게에 왔었을 것이다. 건강하던 시절 엄마는 생각을 넣은 과자를 자주 만들었다. 생강을 넣은 밀크티는 별로 안 좋아했지만, 생강 향이 살포시 나는 그 과자는 아빠도 나도 참 좋아했다. 더 이상 카마쿠라에 갈 수 없게 된 엄마 아빠에게, 저 카페의 메뉴는 카마쿠라를 생각나게 하는 그리운 맛이었겠지.’ (191쪽)

 


  요시다 아키미 님이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그리는 만화책 넷째 권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애니북스,2012)을 읽습니다. 넷째 권에 붙은 이름은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이요, 만화책을 찬찬히 읽으며, 이와 같은 이름이 붙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마음은 다른 데로 갑니다. 그래요, 서로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어요. 언제나 ‘새로운 길로 나아가’요. 그런데, 서로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길을 돌아보면, 모두들 ‘그리운 이야기’가 있어요.


  딱히 무어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애써 어찌저찌 말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으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중학생도 사랑을 하겠지요. 어른도 사랑을 하겠지요. 열네 살 아이도 예쁘게 사랑을 하겠지요. 서른네 살 어른도 예쁘게 사랑을 하겠지요. 그러면, 열네 살 아이와 서른네 살 어른, 또 스물네 살 어른이랑 마흔네 살 어른은 저마다 어떤 사랑을 꽃피울까요. 사랑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가 태어날 적에, 이 사랑씨앗은 어떠한 그림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이을까요.


  내 옆지기는 잔뜩 차려져 잔뜩 남을 수밖에 없는 밥을 어릴 적 먹을거리로 떠올립니다. 나는 밥이랑 간장을 달랑 놓고 간장에 밥을 비벼서 먹던 어릴 적 작은 밥상을 떠올립니다. 우리 집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어린 나날을 누리면서 어떤 밥을 마음과 생각과 몸과 가슴에 고이 아로새길까요. 그리운 사랑은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사랑으로 태어나고, 그리운 밥은 오늘 이 작은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밥으로 거듭납니다. (4345.7.15.해.ㅎㄲㅅㄱ)

 


― 바닷마을 다이어리 4 :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요시다 아키미 글·그림,조은하 옮김,애니북스 펴냄,2012.7.6./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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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1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1권을 사서 보았는데 기대만큼 아니어서 그 다음 권 읽기를 그만두었어요. 저는 별로 재미있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ㅠㅠ
학교 다니실 때 이야기는 저도 참 안타깝네요. 지금도 그럴까요?

파란놀 2012-07-16 09:42   좋아요 0 | URL
오늘날도 학교는 거의 똑같다고 느껴요.
아주 바보스러워서
아이들을 이런 데에 밀어넣을 수 없다고 느끼고요...

그래도 1권과 2권은 그럭저럭 볼 만했는데,
이 만화를 그린 분은 어인 일인지
'길게 이어지는 작품'을 알뜰히 엮지 못하는 듯하더라고요...
 


 동생 신 신기는 어린이

 


  동생은 아직 혼자 신을 꿰지 못한다. 누군가 곁에서 예쁘게 신겨야 한다. 누나가 곧잘 동생 신을 신겨 보려 애를 쓴다. 아직 동생한테 신을 예쁘게 신기지는 못하지만, 동생은 누나가 신을 신기려 할 적에 퍽 오래 가만히 지켜본다. 이러다가 끝내 신기지 못하니 골을 부린다. 어쩌겠니. 누나가 아직 힘이 드는걸. 골을 부리고 싶으면 네가 얼른 커서 너 스스로 신으렴.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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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머리띠 쓰기

 


  곁에서 누나가 으레 머리띠를 쓰니, 동생 산들보라도 가끔 저한테도 머리띠를 씌워 달라 조른다. 머리카락 얼마 안 난 아기가 머리에 누나 머리띠를 쓰고 논다. 머리띠 말고 네 바지를 머리에 쓰고 놀면 어떻겠니.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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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15 09:36   좋아요 0 | URL
사진을 볼때마다 세분(!)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동생들은 형이나 언니, 누나가 하는 것을 꼭 따라 해보고 싶어하나봐요. 된장님도 어릴 때 그러셨는지...^^

파란놀 2012-07-16 09:43   좋아요 0 | URL
음... 글쎄... 그건 모르겠네요 @.@
 


 글씨 ㄹ 빚는 어린이

 


  글씨를 익히는 아이가 연필을 방바닥에 죽 늘어놓는다. 연필을 이모저모 엮어 ㄱ을 빚고 ㄴ을 빚는다. 이내 ㅁ을 빚은 다음 ㄹ을 빚는다. 동생은 누나가 빚은 연필 글씨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무어라무어라 옹알거린다.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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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 - 고영일 사진평론집
고영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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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읽는 마음
 [찾아 읽는 사진책 101] 고영일,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한울,2011)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쓴 글을 읽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그린 그림을 읽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찍은 사진을 읽습니다.


  지구별에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살아갑니다. 곧, ‘글읽기·그림읽기·사진읽기’는 다 다른 빛깔과 무늬로 나타납니다. 똑같은 비평이나 평론은 나올 수 없습니다. 같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바라보면서도 다 다른 생각과 느낌과 이야기가 나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학비평이든 사회비평이든 예술비평이든 엇비슷한 비평이 참 많아요. 참말 사람들은 제대로 ‘읽기’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읽기를 제대로 못 하는 일을 나무라거나 꾸짖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읽기에 앞서 ‘쓰기’부터 제대로 못 합니다(‘쓰기’에 앞서 ‘생각하기’와 ‘살아가기’조차 제대로 못한다 할 테지만). 스스로 이녁 삶을 글로나 그림으로나 사진으로나 스스럼없이 쓰지 못 합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앞서 스스로 누리는 삶이기에, 스스로 즐겁게 쓰는 글이요 스스로 기쁘게 그리는 그림이요 스스로 신나게 찍는 사진이에요. 작품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는 글·그림·사진입니다. 애써 작품이나 예술이나 문화로 일구어야 할 글·그림·사진이 아니에요. 문화재단에서 돈을 받아야 글을 쓰나요. 문화부에서 돈을 받아야 그림을 그리나요. 공모전에서 1등으로 뽑히려고 사진을 찍나요.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스스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춤이나 노래로 담습니다. 내 삶을 내 이야기로 빚습니다. 내 이야기는 글로도 태어나고 그림으로도 태어나며 사진으로도 태어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도 사진밭을 일군 고영일 님이 남긴 글을 그러모은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한울,2011)를 읽습니다. 고영일 님은 “무엇을 찍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현실에 몸을 내던져서 어떻게 관계 짓고 있느냐 하는 데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14쪽).” 하고 말합니다. 마땅한 말씀입니다. 역사에 다큐멘터리를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눈부신 패션문화를 이끌거나 돈을 잘 벌려고(상업사진)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스스로 좋아서 찍습니다. 글은 스스로 좋아서 씁니다. 그림은 스스로 좋아서 그립니다.


  반 고흐도, 벨라스케스도, 렘브란트도, 무슨무슨 역사나 문화나 예술을 이루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스스로 좋아하기에 그림을 그렸어요. 스스로 삶을 불태우는 꿈을 꾸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박경리나 황순원이나 신동엽이 역사나 문학이나 예술을 뽐내려고 글을 썼을까요. 스스로 사랑하기에 글을 썼어요. 스스로 삶을 일구는 꿈을 빛내면서 글을 썼어요.


  사진찍기란 내 삶을 찍는 일입니다. 사진읽기란 내 삶을 읽는 일입니다. 나는 내 삶을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사진으로 한 장씩 찍습니다. 나는 내 삶을 기쁘게 누리면서 ‘내가 찍은 사진’을 한 장씩 읽습니다.


  고영일 님은 사진모임에서 오래도록 일했습니다. 한국땅 사진모임이 여러모로 말썽거리가 많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점수로 예술가가 되는 제도가 신봉되고 있느냐를 짚어 보아야 할 것이 아니냐(17쪽).” 하고 꾸짖습니다. “‘잘 찍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한 작품활동만이 권장되는 분위기에서는 장차의 위상은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27쪽).” 하고 나무랍니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바로 사진작가가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107쪽).” 하고 외칩니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점수를 쌓아야 시인이 되거나 소설가가 되지 않습니다. 점수를 쌓았기에 화가가 되거나 사진가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시를 좋아하면서 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스스로 그림을 아끼면서 그림하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화가입니다. 스스로 사진을 사랑하면서 사진을 삶으로 녹여내는 사람이 사진가입니다.


  나한테 예쁘며 반가운 짝꿍을 사랑스럽게 찍는 사람도 사진가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귀여운 모습을 즐겁게 찍는 교사도 사진가입니다. 동무들과 즐겁게 한때를 보내며 손전화 기계로 신나게 사진을 찍는 아이들도 사진가예요.


  손에 사진기를 들었으면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스스로 예쁘게 보살피면서 손에 사진기를 들고는 활짝 웃음꽃 터뜨리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진가입니다.


  “작품을 발표할 때는 촬영 당시의 상황적 변명은 있을 수 없으며, 최선을 다한 후 작가가 책임질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65쪽).” 같은 말은 ‘전문 직업 사진가’한테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좀 어려운 말이라 할 만하지만, ‘더 잘 찍을 수 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더 잘 못 찍었다’ 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까닭은,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사랑스러운 짝꿍을 참 사랑스럽게 찍을 때는 언제일까요? 내 사랑스러운 짝꿍을 그리 사랑스럽게 찍지 못했을 때는 언제일까요? 내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아이들이 참 곱고 환하게 나온 때는 언제인가요? 내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내가 사진으로 담는데, 막상 그리 볼 만하게 나오지 못한 때는 언제인가요?


  스스로 까닭을 알면 됩니다. 스스로 까닭을 느끼면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때를 잘 깨달으면 됩니다. 내 아이들을 더없이 예쁘게 바라보며 예쁜 모습이 담기도록 하는 사진은 언제 찍을 수 있는가를 잘 느끼면 됩니다.


  어떤 마음일 때에 밥을 맛있게 지어 식구들하고 나눌까요. 어떤 마음일 때에 까르르 웃으며 식구들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까요. 어떤 마음일 때에 맑은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부를까요.


  마음을 알 때에 마음껏 살아갑니다. 생각을 할 때에 슬기롭게 생각합니다.


  고영일 님은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소재에 맡겨질 자기의 마음, 즉 그 소재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고 보면,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그런 마음을 얹을 소재가 항상 모색되는 사진생활을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126쪽).” 하고 말씀합니다. 다큐사진을 찍거나 패션사진을 찍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생활사진이건 상업사진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어느 곳에서 어떤 사진을 누리든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마음이 있어야 밥을 맛있게 지어요. 마음이 있어야 빨래를 즐겁게 해요. 마음이 있어야 내 사랑을 이녁한테 보내요. 마음이 있어야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마음이 있어야 내 작은 밥그릇을 이웃하고 나눌 수 있어요.


  이리하여, 고영일 님은 “나는 ‘잘 찍은 사진’이라는 말은 삼가 해야 하고, 오직 ‘좋은 사진’이기를 바라고 또 들추어져야 될 것이라고 마음먹기에, 그런 표현을 권장하고 싶은 것이다. ‘좋은 사진’에는 반드시 ‘좋은’ 까닭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321쪽).” 하고 당신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아주 마땅한 말씀입니다. 사진은 오직 ‘좋은’ 사진 한 가지여야 합니다. 글은 오직 ‘좋은’ 글 하나여야 합니다. 그림은 오직 ‘좋은’ 그림 하나여야 해요. 삶은 오직 ‘좋은’ 삶 하나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오직 ‘좋은’ 사랑 하나일 뿐이에요. 내가 날마다 먹는 밥 또한 늘 ‘좋은’ 밥이어야 해요. 굳이 나쁜 밥을 먹을 까닭이 없어요. 굳이 ‘조금 안 좋은’ 밥을 먹을 일이 없어요.


  좋은 햇살을 누립니다. 좋은 바람을 쐽니다. 좋은 물을 마십니다. 좋은 집(비싼 집이 아닌 좋은 집)에서 살아갑니다. 좋은 책(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닌 좋은 책)을 읽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람이 됩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말을 읊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빛을 밝히고,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썰미를 북돋우며,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망울로 사진을 찍습니다.


  오로지 좋은 삶을 누리면서 좋은 사진을 찍습니다. 오로지 좋은 사랑을 빛내면서 좋은 사진을 읽습니다. 처음도 끝도 하나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결같습니다. 나한테 가장 좋은 사진기(가장 비싸거나 값진 사진기가 아니라, 내 삶에 가장 걸맞는 즐거운 꿈을 찍을 만한 좋은 사진기) 하나를 곁에 두고, 나한테 가장 좋은 옆지기하고 좋은 보금자리를 돌보면서, 나한테 가장 좋은 이야기를 내 가장 좋은 손길로 살며시 어루만지면,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사진 하나 태어나요.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삶을 읽는 마음입니다.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사랑을 읽는 마음입니다.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사람을 읽는 마음입니다. (4345.7.14.흙.ㅎㄲㅅㄱ)

 


―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 (고영일 글,한울 펴냄,2011.3.30./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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