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컬러판)
강우방 외 지음, 강운구 사진 / 열화당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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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담긴 사람들 말
 [찾아 읽는 사진책 110] 강운구, 《경주 남산》(열화당,1987)

 


  사람들이 사진을 찍은 지 백 해 남짓 흐릅니다. 이동안 사진은 사람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립니다. 이제 서로서로 얼굴이나 몸을 살필 때에 사진은 아주 알뜰히 쓰입니다.


  사진이 없던 지난날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던 지난날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그림을 그리거나 건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붓과 종이는 아무나 손에 쥘 수 없었거든요. 사람 삶터를 계급과 신분과 돈으로 나누던 슬픈 지난날에는 계급과 신분과 돈을 손에 쥔 사람만 붓과 종이를 놀려 그림을 누릴 수 있었어요.


  오늘날은 종이가 넘칩니다. 붓도 연필도 볼펜도 넘칩니다. 게다가, 사진도 넘칩니다. 너무 가난한 나머지 손전화 기계조차 없다면 사진을 누리지 못할 테지만, 손전화 기계 하나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손전화 기계로 사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계급과 신분과 돈이 얼마 없거나 아예 없다 하더라도 사진이든 그림이든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사진이 넘치는 오늘날, 이 땅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얼마나 어떻게 누릴까 궁금합니다. 사진도 그림도 가까이할 수 없던 지난날 여느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바라보고 마음으로 아로새겼을까 궁금합니다.


  아주 마땅하지만, 붓과 종이를 마음껏 누리던 이들은 ‘얼굴그림’쯤이야 쉽게 그리고 쉽게 건사했겠지요. 집식구도 그리고 살림집 모습도 그리며 아름답다 하는 멧자락이나 냇물이나 바다를 그림으로 담았겠지요.


  지난날 여느 사람들은 붓과 종이를 손에 쥐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흙을 일구고 물을 만지던 여느 사람들은 이녁 삶을 붓과 종이로 담지 못했어요. 이른바, 씨앗이라든지 물고기라든지 고기잡이배라든지 길쌈이라든지 부엌이라든지 솥이라든지 나물캐기라든지 밥그릇이랑 수저라든지, 기저귀 빨래라든지 팥·수수·콩·서숙 같은 곡식이 그림으로 담기는 일이란 없어요. 어쩌다 한두 차례 이런저런 모습이 그림으로 곁들여지기는 하더라도 옳고 바르며 알맞게 그림으로 담기지는 않아요. 그저 먼발치 구경거리로만 담을 뿐이에요. 삶으로, 눈물로, 웃음으로, 기쁨으로, 이야기로 담는 ‘지난날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 그림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여기지만, 콩꽃이나 팥꽃이나 수수꽃이나 장다리꽃이나 부추꽃을 그림으로 그리던 ‘옛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니, 오늘날에도 오이꽃이나 박꽃이나 찔레꽃이나 감꽃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눈부시거나 아름답다 하는 꽃을 사진으로 찍는 오늘날 사람이에요. 멋들어지거나 훌륭하다는 멧자락이나 냇물이나 들판이나 바다를 사진으로 찍는 오늘날 사람이에요. 그런데, 콩꽃이나 마삭줄꽃이나 마늘꽃이나 호두꽃을 사진으로 찍는 오늘날 사람은 어디에 얼마쯤 있을까 궁금해요. 사진을 찍는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사진으로 아로새기고 싶을까요.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어떤 삶을 그림으로 옮기고 싶을까요. 글을 쓰는 이들은 어떤 사랑을 글에 나타내고 싶을까요.

 


  ‘신라정토의 불상’을 보여준다는 사진책 《경주 남산》(열화당,1987)을 읽습니다. 강운구 님이 사진을 찍고, 김원룡·강우방 두 분이 글을 붙입니다. 신라 불교, 신라 불상, 신라 문화를 보여준다고 하는 “경주 남산”이라고 해요. 강운구 님은 해가 뜨고 지는 흐름을 잘 살피고 맞추며 어여쁜 빛깔로 “경주 남산”과 “불교 문화재”를 잘 보여줍니다. 아마 한국에서 “경주 남산”을 《경주 남산》처럼 잘 보여주고 아름답게 갈무리한 사진책은 더 없지 싶어요. 차근차근 바라보고 햇살 흐름에 따라 결과 무늬를 돌아봅니다. 가까이에서 지긋이 바라보고, 멀리서 가만히 바라봅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고운 비바람이 오래도록 스치며 천천히 닳은 보드라운 돌무늬와 돌결을 사진 하나로 예쁘게 살립니다. 사진책 《경주 남산》은 나라밖으로 얼마든지 뽐낼 만한 훌륭한 ‘한국 문화’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한 가지 궁금합니다. 천 년이 지난 오늘날이 아닌, 오늘날부터 다시 천 년이 지난 3000년대쯤 되면 이 돌무늬와 돌결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앞으로 천 년이 더 지나면 이 사진 몇 장으로만 돌무늬와 돌결이 남을까요. 천 년이 더 지나 4000년대쯤 되면 이 돌결과 돌무늬를 건사하려고 “경주 남산” 곳곳에 기와집을 지어 지붕을 덮어야 할까요. 아니면, 돌에 새긴 빛인 만큼 돌이 천 년 만 년 흐름에 따라 닳고 낡고 쪼개지고 바스라지듯, 이 돌결과 돌무늬도 천천히 스러지도록 살포시 놓아 두려나요.


  그나저나, 천 년 앞서 신라 적에도 ‘돌에 불상을 새기’는 일은 했으나, ‘여느 사람들 삶을 아로새기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안 했습니다. 신라가 사라진 천 년 뒤 오늘날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삶을 아로새기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좀처럼 안 보입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까요. 문화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삶이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까요. 역사로 남길 만한 삶과 문화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까요. 사진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바라볼까요. 사진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을 마주할까요. 2000년대 오늘날에는 ‘개신교 문화’나 ‘천주교 문화’를 사진으로 아로새기거나 갈무리해서 앞으로 천 년 뒤가 될 3000년대 뒷사람한테 사진책 하나 남겨야 옳을 노릇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2000년대 오늘날부터 천 년을 버텨 3000년대까지 이어지는 ‘개신교 문화’나 ‘천주교 문화’가 된다면, 천 년 뒤 사진쟁이들도 비로소 사진으로 찍겠지요. 오늘 이곳에서 사진기 손에 쥐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나눌 이야기, 남길 이야기, 즐길 이야기, 누릴 이야기는 어디에서 어떻게 빚고 빛낼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 말을 읽습니다. 문화재 한 점이든 열 점이든, 이 문화재를 정과 망치로 깎고 새긴 사람들 말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화재를 만들라고 위에서 시키고, 누군가는 이 문화재를 만들려고 아래에서 땀흘립니다. 누군가는 이 문화재를 만들도록 시키며 손에 붓과 종이를 쥐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화재가 만들어지도록 들판과 바다에서 땀흘리며 곡식을 거두거나 고기를 낚았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 삶에 얽힌 말이 고즈넉하게 깃드는 사진을 읽습니다. (4345.9.6.나무.ㅎㄲㅅㄱ)

 


― 경주 남산 (강운구 사진,김원룡·강우방 글,열화당 펴냄,1987.7.20./1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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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7] 창문바람

 

  네 식구 함께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 가까이 달리면서 옛날 일을 떠올립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기차에도 ‘열고 닫는 창문’이 있었어요. 따로 에어컨이 없었고, 누구나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며 여름날 더위를 식혔어요. 인천에서 떠나 서울로 가는 전철도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도록 했습니다. 시내버스는 아주 마땅히 창문을 열어 여름날 더위를 식히도록 했어요. 시외버스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도록 했습니다. 어느 버스이든 찬바람이 휭휭 나오지 않았어요. 이때에는 택시나 자가용에서 나오는 에어컨 찬바람이 퍽 놀랍다 싶기도 하면서, 창문바람 아닌 기계바람이라 그리 내키지 않았어요. 차를 타면 기차이든 버스이든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시원하구나 하고 느꼈어요. 도시에서는 창문바람이 시원하기는 하더라도 상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시원스러운 바람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버스나 기차에 바람이 고이지 않도록 합니다. 봄에는 봄 기운을 느끼고 가을에는 가을 기운을 느껴요. 시외버스가 도시 바깥을 달릴라치면 ‘아, 바람맛이 달라졌네?’ 하고 느낍니다. 기차가 시골 논밭 사이를 달릴라치면 ‘이야, 바람맛이 푸르구나!’ 하고 느껴요. 꽁꽁 닫혀 열 수 없는 기찻간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창문바람을 쐬지 못한다면, 곡성을 달리건 구례를 달리건 임실을 달리건, 아이들은 시골마을 푸른 숲을 느낄 수 없습니다. 눈으로는 바라볼는지 모르나, 바람을 쐬지 못하니 이내 고개를 돌려 손전화나 다른 것에 눈길마저 휩쓸립니다. (4345.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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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에서 사진놀이 어린이

 


  기찻길에서 동무를 만난 다섯 살 어린이는 서로 마주보기만 해도 즐겁다. 나란히 손을 잡고 기찻간을 돌아다니기도 하더니, 이내 작은 사진기를 들고 동무를 찍어 준다. 동무는 예쁘게 찍으라며 온갖 얼굴을 짓는다. (4345.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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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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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글쓰기
[시를 말하는 시 3]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책이름 :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글 : 허수경
- 펴낸곳 : 문학동네 (2011.1.20.)
- 책값 : 8000원

 


  어떻게 살아가는 재미로 시를 쓸까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는 사랑으로 시를 쓸까 헤아려 봅니다.


  누군가는 시를 머리로 쓰겠지요. 누군가는 시를 이리저리 글과 지식을 엮어서 쓰겠지요. 누군가는 살아가는 하루가 고스란히 시로 태어나겠지요. 누군가는 꿈꾸는 삶이 하나둘 시로 거듭나겠지요.


  시 아닌 다른 글이라 해서 이러쿵저러쿵 찧고 빻듯 쓰지 못합니다. 시험문제를 만들면서 문제 글을 쓸 적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글을 만들거나 쓰지 못합니다. 아이들마다 따분하다고 일컫는 ‘교장선생님 아침모임 말씀’이라 한들 아무렇게나 만들거나 써서 읽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내놓는 글이나 경찰총장이 내놓는 글이나 대법원 판결글이라 해서 아무렇게나 만들거나 쓰지 못해요.


  그리운 벗한테 띄우는 글월을 아무렇게나 꾸미거나 쓰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어버이한테 띄우는 글월을 아무렇게나 짜깁기하거나 쓰지 못합니다. 반가운 옆지기한테 띄우는 글월을 아무렇게나 때우거나 쓰지 못합니다.


  어떤 글이라 하더라도 내 모든 삶을 기울여서 씁니다. 어떤 글이라 하더라도 내 모든 마음이 찬찬히 스며듭니다.


.. 유전인자 관리하던 실험실도 잠기고 그 안에서 태어나던 늑대들도 잠기고 / 나의 도시 나의 도시 울고 그 안에서 그렇게 많은 전병이나 만두를 빚어내던 이 방의 식당도 젖고 ..  (나의 도시)


  밤과 새벽에 빗줄기가 들었습니다. 밤에는 잠결에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마당에 뭐 내놓아서 비에 젖을 만한 무언가 있나, 하고. 없지? 하고 생각하며 다시 차분히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새벽에는 잠결에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새벽에 비가 와서 마당이 젖으면 빨래를 해서 널기 나쁜데.


  하늘에 낀 먼지를 씻고, 나무들 잘 자라라며, 비가 내려요. 하늘을 덮은 때를 벗기고, 풀들 잘 크라며, 비가 찾아와요.


  사람들은 나무와 이웃하면서 비를 즐깁니다. 사람들은 풀과 벗삼으며 비를 누립니다.


.. 차비 있어? / 차비는 없었지 / 이별은? / 이별만 있었네 ..  (수수께끼)


  오늘은 모처럼 빨래기계를 씁니다. 여러 날 바깥마실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빨래감이 많습니다. 내 어버이와 옆지기 어버이, 곧 아이들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만나러 멀디먼 길을 버스와 기차에서 시달리느라 모두들 고단하고 지칩니다. 손빨래를 하며 몸을 풀고 마음을 가다듬을 만합니다만, 오늘은 늦잠을 자고 싶어요.


  늦잠을 자더라도 새벽에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게으름을 부리더라도 아침에 마른표고버섯 냄비에 넣고 물에 불립니다. 음성 할머니가 표고버섯을 손수 길러 따고는 예쁘게 말려서 봉지에 담아 주셨습니다. 마른표고버섯을 한손으로 움켜쥐어 냄비에 넣으며 내 할머니 손길을 떠올립니다. 내 할머니는 어떤 마음을 이 표고버섯에 담아서 기르고 따서 갈무리했을까요. 어떤 꿈을 지으면서 이 표고버섯을 예쁘게 말리셨을까요. 내 할머니가 품은 마음과 빚은 꿈은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솔솔 스며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별도 구워 먹으리라 했어요 / 70년대 초반 / 가장 어린 나 가운데 하나가 별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 뒤에서 내려다보면 먹다 만 고구마 형상이었어요 /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곰별자리였어요 ..  (고구마별)


  먼 바깥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택시길에 참으로 홀가분합니다. 기차길을 끝내고 버스길을 끝낸 우리 식구는 읍내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옵니다. 짐이 무겁고 몸이 무거우며 군내버스가 끊기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택시를 타는 사람은 으레 할머니랑 할아버지라 하지만,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굴리지 않으니 즐겁게 택시를 탑니다. 굳이 우리가 자가용을 몰 까닭은 없으니까요. 애써 우리가 자가용을 굴리느라 이쪽에 마음을 기울일 까닭은 없으니까요.


  택시에서는 에어컨 아닌 창문바람을 쐽니다. 오랜만이로구나 싶습니다. 여러 날 기차와 시외버스에서 에어컨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창문바람이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택시는 고흥읍을 벗어나 포두면을 달립니다. 포두면을 벗어나 도화면으로 접어듭니다. 포두면을 달릴 적까지도 창밖 풀숲에서 풀벌레 노랫소리를 못 듣습니다만, 도화면으로 접어드니 바야흐로 풀벌레 노래잔치입니다. 달리는 택시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가 온몸과 온마음으로 훌훌 스며듭니다.


  눈을 틉니다. 귀를 틉니다. 마음을 트고 몸을 틉니다. 그동안 갇히거나 막히거나 닫힌 구멍을 틉니다.


.. 석유를 찾기 위해 피곤한 사내들이 바닷속으로 철의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구멍을 뚫어야 지속되던 문명이 있었다고, 우주의 먼 곳에서 우주의 역사를 기록하던 빛이 있었다 // 콩나물시루도그곳에두었어요어떤콩은썩어서뿌리조차아기처럼젖을보채다잠이들었지만 ..  (오후)


  옆지기는 아이들을 씻깁니다. 나는 배앓이를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차리기 힘들 듯해 읍내 중국집에 들렀는데, 옆지기가 건넨 찬콩국수 가락이 속에서 부글거리며 괴롭힙니다. 찬국수도 동치미도 안 받는 내 배는 여러 날 바깥밥·바깥바람에 휘둘리다가 마지막에 찬기운 머금은 국숫가락을 만나니 펑 하고 터진 듯합니다.


  아이고 배야 하며 똥을 누다가 문득, 이렇게 뱃속을 시원스레 털면 한결 느긋하게 잠들면서 새 하루를 반가이 누리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배앓이는 나를 보살피려고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은 몸을 씻고 나서도 뛰어놉니다. 아이들도 고단한 몸일 텐데, 새롭게 땀이 돋을 만큼 뛰어놉니다. 참 놀라운 아이들이네, 하고 생각하다가, 나도 아이들 나이였을 적에는 그야말로 놀라운 아이들답게 끝없이 놀고 뛰고 날고 기며 살았잖니, 하고 떠오릅니다.


  놀 수 있을 때까지 놉니다. 놀다가 까무룩 잠들 때까지 놉니다. 놀 수 있는 모든 힘을 씁니다. 놀다가 까무룩 잠들도록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놉니다.


.. 무리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무리에 속할 이들의 안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살아남기 위한 미덕. 흩어지면 육식동물의 표적이 되므로 우리라는 종이 이 지상에서 태어나던 처음부터 배려라는 미덕을 우리는 본능처럼 갖는다. 그 본능은 인간이 우리를 사육화했던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  (카라쿨양의 에세이)


  시를 쓰는 마음을 헤아립니다. 아이들과 같은 넋이 되어 시를 쓰는 이라면, 아이들이 온힘을 다 내어 놀듯, 온힘을 다 내어 시 한 줄을 쓰겠지요. 아이들 보살피는 어버이와 같은 넋이 되어 시를 쓰는 이라면, 아이들 노는 양을 말끄러미 지켜보며 하루를 더 기운내어 열고 누리듯, 씩씩하고 다부지게 시 한 줄을 쓰겠지요.


  어느 넋이 좋고 어느 넋이 나쁘다고 따질 수 없습니다. 그저 저마다 스스로 즐기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가난을 즐기고 재산을 즐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쳇바퀴를 즐기고 한갓짐을 즐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바쁜 톱니바퀴를 즐기고 따사로운 사랑을 즐깁니다. 즐기는 결이 고스란히 시로 태어납니다. 즐기는 꿈이 하나하나 시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즐기는 넋이 시나브로 시라는 옷을 입고 환하게 빛납니다.


.. 아마도 내가 당신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잠 속에 든 당신 옆에 내가 누워 있겠는가. 이제 당신을 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  (여기는 그림자 속)


  허수경 님은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문학동네,2011)이라는 시집 하나 내놓습니다. 책이름에 ‘빌어먹을’이라니, 스스로 무엇을 ‘빌어먹을’이기에 이렇게 시를 내놓을까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참말 허수경 님으로서는 ‘빌어먹을’밖에 없어 이렇게 시를 쓰고 시집을 내겠지요. 스스로 ‘차가운 심장’이라 느끼며 삶을 맞아들여 누리니까 ‘차가운 심장’ 이야기를 시로 쓰고 책으로 내겠지요.


.. 저녁에 흙을 돋우다가 나비를 보았네 / 저녁에 흙을 부드럽게 만져 / 막 나오는 달리아를 편하게 하려다가 / 나비를 보았네 ..  (저녁에 흙을 돋우다가)


  허수경 님 스스로 흙을 만질 때에는 ‘흙을 만지는’ 시를 씁니다. 허수경 님 스스로 누군가와 헤어질 때에는 ‘헤어지는’ 시를 씁니다. 눈물을 흘리는 날에는 ‘눈물 흘리는’ 시를 씁니다. 공항에 머물 적에는 ‘공항에 머물던’ 시를 써요.


  더 좋은 삶이란 없고 더 나쁜 삶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일 뿐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이 스스로 즐기는 시로 태어납니다.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기에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는 시를 쓰겠지요. 그리운 누군가를 잊기에 ‘그리운 누군가’를 잊는 시를 쓰겠지요.


  나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랑 복닥이면서 요모조모 살림을 꾸립니다. 곧, 내가 시를 쓸 적에는 고즈넉한 시골마을 삶을 드러내고, 두 아이랑 복닥이는 사랑을 드러내며, 요모조모 꾸리는 살림을 빛냅니다. 그래요, 나는 이 삶을 좋아하기에 이렇게 살아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마음껏 누리면서 내 웃음꽃을 이곳에서 길어올려요. 내가 바라는 꿈은 내가 좋아하는 삶터에서 누리는 이야기 그대로 이루어져요. 시를 쓰는 사람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4345.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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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사진기로 전화 하기

 


  사진기를 귀에 대고 전화를 하는 듯 논다. 그래, 이 사진기는 전화기하고 크기가 비슷해. 생김새도 비슷한가? 아무튼 네가 전화기라 여기면 전화기가 되겠지. 네 마음껏 하고픈 이야기를 종알종알 늘어놓아 보렴. (4345.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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