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손을 잡아 보셔요

 


  아이들 손을 잡아 보셔요. 내 아이 손도, 내 이웃 아이 손도, 마을 아이 손도, 가만히 잡아 보셔요. 어른인 내 손은 아이들 손을 살포시 덮어요. 어른은 한쪽 손으로 아이들 두 손을 감쌀 수 있어요.
  이 손으로 아이들을 더 보드랍게 어루만질 수 있어요. 이 손으로 아이들과 맛난 밥 일굴 흙을 돌볼 수 있어요. 이 손으로 그림책 하나 들어 나긋나긋 읽을 수 있어요. 이 손으로 아이들을 하늘로 붕 띄울 수 있어요. 이 손에 공을 들어 아이들과 주고받을 수 있어요.


  작은 손이 속삭입니다. 작은 손이 큰 손한테 속삭입니다. 작은 손이 방긋 웃습니다. 작은 손이 큰 손을 바라보며 조곤조곤 노래를 들려줍니다. (4345.10.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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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책

 


  잠이 오는 아이들 데리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별을 본다. 마을 곳곳에 켜진 등불 때문에 별빛이 가린다. 손을 들어 등불을 가리면 별빛이 새삼스레 반짝인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등불에서 홀가분한 논자락으로 올라선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을 노래한다. 이불에 싸여 품에 안긴 작은아이가 고개를 까딱까딱 들며 하늘을 함께 올려다본다. 큰아이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모두 함께 별을 바라본다. 비행기 한 대 빨간 점으로 지나간다. 빨간 점은 뭇별 사이에서 살짝살짝 반짝이며 지나는 또 다른 별처럼 보인다. 큰아이가 “비행기는 어디에서 자? 비행기는 힘들겠다.” 하고 말한다. 깜깜한 밤에 날아가니 잘 곳이 없는 셈일까. 이 밤에도 날아가니 쉬지 못하는 셈일까.


  겨울을 앞두고 해가 많이 짧다. 읍내에 볼일을 보러 낮에 나가면 으레 저녁에 돌아오는데, 읍내라 하더라도 가게가 얼마 안 많지만, 이 작은 가게들 사이에서 별을 보기는 만만하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읍내 고등학교이든 면내 고등학교이든, 기숙사에서 지내며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아이들은 별을 보며 지내지 못하겠구나 싶다. 나로섬이든 거금섬이든, 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집과 학교를 오가며 별을 한 번쯤 올려다볼까. 읍내 언저리나 면내 둘레 시골마을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집과 학교를 오가는 사이 별을 한두 번쯤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까.


  시골에서 살아간다고는 하나, 정작 별을 볼 틈조차 없는 아이와 어른이 무척 많을 수 있겠다고 느낀다. 날마다 별을 보는 시골사람은 몇쯤 될까. 한 달에 한 차례라도 별을 헤아리거나 그리는 도시사람은 얼마쯤 될까. 별들이 밤새 노래를 하고, 그믐을 지나 가늘게 뜬 초승달이 곁에서 나란히 춤을 추는데. (4345.10.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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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이불빨래

 


  고흥집을 떠나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고등학교로 강의를 하러 다녀오기로 한 오늘, 밤 한 시 무렵부터 잠을 깬다. 한 시에는 작은아이가 이불에 쉬를 누었대서 깨는데, 몸이 무거워 옆지기가 이불을 걷고 바지 갈아입히는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두 시를 넘고 세 시 언저리에 큰아이가 쉬 마렵다고 일어선다. 마루에 놓은 오줌그릇 앞으로 큰아이를 데리고 간다. 큰아이 쉬를 누이고 눕힌다. 이불을 여민다. 기지개를 켠다. 오늘 꾸릴 짐을 생각한다. 먼저, 마루에 있는 오줌이불을 빨래기계에 넣는다. 엊저녁 나온 아이들 옷가지에 비누를 바르고 빨래기계에 함께 넣는다. 밤에 손빨래를 할까 싶었으나, 오줌이불이 나온 김에 모처럼 빨래기계를 쓰기로 한다. 새벽 네 시에 빨래기계를 돌린다. 짐을 마저 꾸린다. 새벽 다섯 시 반에 다 된 빨래를 꺼내고, 식구들이 아침에 먹을 반찬 한 가지를 하고, 국 하나를 끓인다. 빨래는 옆지기가 아침에 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이런저런 빨래감이 더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아침부터 나오는 빨래감은 저녁까지 모아 이듬날 한꺼번에 빨래기계를 써도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집을 비우면 옆지기 혼자 두 아이 건사하며 손빨래를 할 수 없고, 그동안 얻은 아이들 옷이 제법 많아, 하루쯤 빨래를 안 하더라도 두 아이 입힐 옷은 넉넉하다.


  새벽 여섯 시를 지난다. 이제 뒷간에서 똥을 누고, 빨래를 마당에 널자. 그러고는 짐을 다 꾸렸나 다시금 살피자. 먼길이라 하룻밤은 밖에서 묵어야 한다. 자칫 이틀을 묵을는지 모르나, 되도록 하룻밤만 묵고 돌아오자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들 모두 새근새근 잠든 이른아침에 길을 조용히 나선다. 아이들아, 어머니하고 예쁘게 웃으면서 하루를 빛내고 맑은 넋으로 너희 사랑을 우리 보금자리에 흩뿌리렴. 아버지는 잘 다녀올게. (4345.10.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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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 - 취학전 그림책 1004 베틀북 그림책 5
베네딕트 게티에 지음, 조소정 옮김 / 베틀북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어버이로 살아가는 아버지 자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03] 베네딕트 게티에,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베틀북,2000)

 


  베네딕트 게티에 님이 빚은 그림책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베틀북,2000)을 아이들과 재미나게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내들은 어른이 되고 어버이가 되어도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삶보다 아이들하고 한동안 떨어져 혼자서 누리는 삶을 헤아리는가 하고. 집일과 집살림과 아이돌보기를 아버지가 도맡는다 하더라도, 아버지 자리에 서면 혼자 훌훌 지내고픈 마음이 드는가 하고.


  아버지 아닌 어머니 홀로 열 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때에 어머니는 열 아이 모두 무럭무럭 커서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곁에서 늘 지켜보겠지요. 어머니 홀로 훌훌 떠나는 일이란 없겠지요. 아이들 어머니가 아이들을 할머니한테 맡기고 홀로 어딘가를 오래도록 다녀오는 일이란 없겠지요.


  이 그림책이 아버지 아닌 어머니가 열 아이를 돌보는 흐름이었으면 어떠했을까 가만히 그립니다. 아이들 어머니는 열 아이를 어린이집에 척 하고 집어넣은 다음 느긋하게 일터로 갔을까요. 아이들 열을 돌보는 어머니는 이냥저냥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며 돈을 버는 삶을 꾸렸을까요.


  그림책 이야기를 떠나, 아이들을 맡아 돌보거나 집일을 알뜰히 건사하는 아버지 삶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오늘날 아이들 어버이 가운데 ‘아버지 자리’에 서면서 집일을 알뜰히 하는 사내는 참말 몇이나 있을까요. 아이를 기쁘게 돌보며 하루를 빛내는 사내는 참으로 얼마나 있을까요. 갓 태어난 아이를 보살피려고 한 해나 두 해쯤 회사나 공장을 쉬며 아이하고 부대끼는 사내는 그야말로 몇이나 있는가요. 아이와 함께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살림하며 집에서 사랑과 꿈을 꽃피우려 하는 사내가 있다면 얼마나 있는가요.


.. 아기를 열 명이나 키우는 아빠가 있었어요 ..  (2쪽)


  집일이란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요. 집일을 한대서 대단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곧, 어머니가 집일을 다 하든 아버지가 집일을 도맡든 그닥 대수롭지 않구나 싶어요.


  집일이란 집에서 하는 일입니다. 집에서 하는 일은 누가 이 일을 하든 즐겁게 해야 즐거워요. 집일을 맡는 사람이 활짝 웃고 떠들어야 집안에 웃음이 감돌며 밝은 기운 감돌아요. 집일을 하는 이가 낯을 찡그리거나 골을 부린다면 집안 바람이 무겁습니다. 아버지가 집일을 하건 어머니가 집일을 하건 같아요. 누가 집일을 더 맡느냐가 아니라, 누가 집일을 더없이 즐거우며 기쁘게 하느냐를 살펴야지 싶어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집일을 하나둘 바라보고 익혀야지 싶어요. 짐스럽거나 고된 집일이 아니라, 먹고 입고 자는 누구나 스스로 맡거나 건사하는 즐거우며 아름다운 집일인 줄 느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들이 천천히 자라면서 조그마한 손으로 젓가락을 쥐고 숟가락을 쥐듯, 아이들은 천천히 옷을 갤 줄 알며, 스스로 단추를 꿰거나 옷을 새로 갈아입을 줄 압니다. 다만, 때때로, 아니면 꽤 자주 옷을 아무 데나 널브러뜨릴는지 몰라요. 이것저것 갖고 놀다가 아무 데나 팽개칠는지 몰라요. 어지럽히거나 망가뜨리는 때도 있겠지요.


  그릇을 깬다든지 무언가를 부술 수 있어요. 낱낱이 돌이키면, 나는 이때에 자꾸 한숨을 쉬곤 하는데, 한숨을 쉴 일은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자꾸 한숨을 되풀이해요. 내가 어른인 까닭과 내가 어버이로 살아가는 즐거움이란, 아이들이 깜빡 잊거나 곧잘 그릇을 깰 적에 아이들을 따사로이 보듬으며 돌보는 데에 있어요. 아이들을 나무란대서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없어요.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꾸짖으면서 활짝 웃을 수 없어요. 깨진 그릇은 잘 치우면 돼요. 망가진 살림살이는 차근차근 손질하거나 새로 장만하면 돼요. 어버이로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을 살피고, 아버지이자, 또 서로 어여쁜 목숨으로서 오순도순 나눌 이야기꽃을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 팬티를 열 장 입히고, 셔츠를 열 장 입히고, 양말을 스무 짝 신기고, 바지를 열 장 입히고, 신발을 스무 짝 신겼어요 ..  (6∼7쪽)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씁니다. 글재주를 쓰지 않고 글솜씨를 쓰지 않습니다. 씨앗을 심고 풀을 뜯는 사람은 씨앗을 심고 풀을 뜯습니다. 흙을 만지는 재주나 솜씨를 부리지 않습니다. 쟁기로 땅을 갈고 호미로 풀을 캘 뿐이에요.


  어버이는 어버이로 살아갑니다. 어버이 재주나 솜씨를 보여줄 일이 없어요.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이 부리는 재주나 솜씨를 뽐낼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은 차근차근 글씨를 씁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차근차근 글씨를 익힙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빨래를 같이 널기도 하고 함께 걷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푸성귀를 뜯어 찬거리를 함께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나란히 풀밭에 앉아 가을노래 봄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나란히 드러누워 깊디깊이 밤잠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그런 다음에는, 이빨 스무 줄을 닦아 주고, 옛날이야기 열 개를 들려주고, 뽀뽀를 열 번 했어요 ..  (18쪽)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일 나누기(가사 분담)’를 굳이 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랑 나누기’를 즐겁게 하면 넉넉하리라 느껴요. 오늘날 이 누리에서는 으레 ‘성평등’을 내세우면서 집일을 이래저래 쪼개거나 나누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집일에 들이는 겨를을 사내가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해요.


  그러나 성평등이 ‘집일 나누기’일까 모르겠어요. 집일을 똑 금을 그어 서로 똑같이 한대서 성평등이 이루어질까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바깥에서 돈을 벌고 아버지가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면 성평등이 이루어지는 셈일까요. 아버지가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 다음, 집으로 데리고 오면 성평등을 이루는 셈일까요.


  성평등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은 어쩌면 꼭 한 가지 때문이 아닐까 궁금해요. 바로, 서로가 서로를 믿고 아끼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성평등을 찾자고 말하는 셈 아닌가 싶어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 아닌 겉발림 같은 숫자와 통계로는 성평등을 찾을 수 없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맞벌이를 하고 아이들은 보육시설이나 교육기관에 하루 내내 맡긴대서 성평등을 찾는 길이 되지 않아요. 어버이로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아이들과 부대끼며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고 뛰놀 때에 비로소 성평등, 아니 ‘삶’이 빛나면서 아름다운 나날을 누리는 셈이라고 느껴요.


  즐겁게 차리는 밥입니다. 즐겁게 먹는 밥입니다. 즐겁게 치우는 밥입니다. 옷 한 벌 즐겁게 입습니다. 옷 한 벌 즐겁게 빨래합니다. 옷가지가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보송보송 마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노래하는 하루는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빨래줄 사이에서 뛰놀며 웃습니다. 어른들은 곁에서 들일을 하건 책을 읽건 드러누워 쉬건 하면 됩니다. 아이들하고 흙땅을 같이 뒹굴며 놀아도 즐겁습니다.


  삶이란 웃음이고, 삶이란 사랑입니다.

 

 


.. 그릇도 열 개, 스푼도 열 개, 또 뭐가 열 개였더라 ..  (36쪽)


  아이들과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때때로 아버지 혼자 마실을 다녀와야 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민방위훈련에 간다든지, 읍내 학교에 강의를 간다든지, 서울이나 어디 먼 도시까지 어떤 볼일을 보러 다녀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이라면 하룻밤 묵고 돌아오는 길이라 힘겹다 하더라도 다 함께 길을 나서지만, 집살림 보태는 볼일을 보러 다닐 적에는 아이들을 어머니 곁에 맡기고 혼자 다녀와야 하곤 합니다. 어느 때에는 온식구가 함께 움직이지만, 어느 때에는 아버지만 따로, 또 어머니만 따로 움직여야 하는 날이 있어요.


  밤에 혼자 조용히 일어나 짐을 꾸리면서, 새벽이나 이른아침 아직 아이들 안 일어난 때에 살며시 집을 나서면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거나 자전거를 몰아 새벽길을 달리면서, 이처럼 홀몸으로 호젓하게 나서니까 한결 가뿐하거나 즐거운가 하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언뜻 보자면 혼자서 볼일을 더 많이 느긋하게 본다고 여길 수 있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며 이처럼 ‘아버지 혼자 볼일을 볼 때’면 어쩐지 서운하고 쓸쓸합니다. 왁자지껄 떠들고 뒹구는 아이들이 곁에 없으니 허전합니다. 아이들이 밥은 어떻게 먹고, 옷은 어떻게 입으며, 잠은 어떻게 자는가를 자꾸 생각합니다. 먼 데 떨어지건 가까운 데 붙건, 아침을 함께 맞고 저녁을 함께 갈무리할 때에 비로소 한식구요, 한사랑이로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로 살아가는 아버지 자리는 ‘가장’이나 ‘집안 기둥’은 아니라고 느껴요. 어버이로 살아가는 아버지 자리는, 또 어머니 자리는, 한결같이 따사로운 삶벗이자 옆지기요 사랑이일 테지요. (4345.10.19.쇠.ㅎㄲㅅㄱ)

 


―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 (베네딕트 게티에 글·그림,조소정 옮김,베틀북 펴냄,2000.8.14./1만 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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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선물하기 어렵다

 


  여태껏 나는 내가 내놓는 책을 출판사에서 글삯만큼 사서 둘레에 선물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우체국에 가서 내 새로운 책을 두 분한테 보내며 우표값 3240원을 치르고 보니, 앞으로는 글삯만큼 책을 사서 선물하기 어렵겠다고 느낀다. 13500원짜리 책을 글쓴이가 살 때에는 70%이기에 9450원이다. 내가 이 책을 출판사 아닌 인터넷책방에서 사서 곧바로 ‘선물받을 분’ 주소로 보내면 택배값이 안 들면서 10% 에누리에 10% 적립금이니까 10804원에 책을 사는 셈이 된다. 보통일반 우편으로 보냈기에 1권 부칠 때에 1620원이 들었지만, 택배로 부치면 2500원이나 3000원이 든다. 그러나 이 값이란, 면소재지 우체국에 내가 단골로 드나들기에 에누리해 주는 값이지, 읍내 우체국으로 가서 택배를 부치면 책 1권에도 에누리없이 4000원을 치러야 한다. 그야말로 ‘책값보다 더 돈을 쓰며 책을 선물해야 하는 모양새’가 나온다.


  아무리 이 나라 물건값이 치솟는다 하더라도, 글쓴이가 ‘책값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서 선물하는 모습’은 영 안 어울리지 않을까. 아니, 내가 우체국 좋은 일만 시키며 책을 선물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좋은 일을 시키자면, 내 책을 펴낸 출판사한테 좋은 일을 시킬 노릇 아니겠는가. 내가 출판사에서 책을 사서 따로 봉투에 주소를 손으로 글씨를 적고 글월 한 장 넣어 선물로 부치는 까닭은 ‘책 한 권 만드는 사랑을 더 깊이 함께 나누고 싶은 뜻’인데, 이 뜻이 좋거나 아름답다 하더라도, 이대로 하다가는 아직 책을 그리 많이 못 파는 가난한 살림살이가 쪼들릴 수 있겠다고 느낀다. 이제부터 책을 선물할 때에는 그냥 인터넷책방에서 주문해서 보내는 쪽으로 해야겠다. 글월은 따로 써서 따로 부칠 때가 훨씬 좋으리라 느낀다. 글월은 엽서 한 장으로 해도 되니까.

 

  ……

 

  글을 쓰고 보니 내가 스스로 너무 가엾이 살아가는 모양 아닌가 싶다. 내가 내놓는 책이 널리널리 많이 팔리면 우표값 걱정을 할 일이 없을 수 있고, 인터넷책방에서 책을 사서 선물로 부쳐야겠다는 생각을 안 하지 않았을까.


  가만히 보면, 인터넷책방에서 책 한 권을 주문해서 받을 때에 택배값을 들이지 않는 모습이 어딘가 얄궂거나 잘못된 일이지, 내가 책 한 권 선물하려고 봉투를 사고 사인펜을 사며 천천히 주소와 이름을 적고는 글월 한 장 써서 책 사이에 끼우고는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달리는데, 아이들을 수레에 태워 함께 달리는 이 삶이 얄궂거나 잘못될 까닭이 없다. 참말 인터넷책방 ‘한 권도 무료배송’이야말로 말썽이며 골머리라 할 ‘고객서비스’ 아니겠는가. 나는 씩씩하거나 꿋꿋하게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책을 주문’한 다음, 이 책을 받아 한 권 한 권 따로 봉투에 싸서 선물하는 삶을 이어야 할 노릇은 아닐까. 우표값 1000원이나 2000원 앞에서 너무 흔들리는 모습은 아닌가. (4345.10.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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