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나락 말리기

 


  나락을 말린다. 자동차 뜸하게 다니는 시골마을이기에 길가에 나락을 말린다. 예부터 나락은 햇살이 키우고 햇볕이 말려 주었다. 사람들은 나락을 먹는다기보다 해를 먹고 살았다. 해님이 아이들한테 방긋 웃어 주고, 어른들한테 빙긋 웃어 준다. 온 식구 힘을 모아 나락을 길가에 널고, 다시금 온 식구 기운을 내어 나락을 푸대에 담는다. 몇 천 해 몇 만 해를 이렇게 살아왔을까. 다 함께 먹는 밥을 다 함께 거두고 돌보며 갈무리하던 삶이 참말 얼마나 오래 이어졌을까. 이제, 한 살이라도 젊거나 어린 사람은 몽땅 도시로 나아가는 판이라지만, 한 살 어리든 두 살 많든, 누구라도 밥을 먹고 해를 바라보며 물이랑 바람을 마셔야 숨결을 잇는다.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 따라 하지 마! - 언어 능력이 쑥쑥 크는 즐거운 그림책
차오쥔옌 글.그림, 유엔제이 옮김 / 거북이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즐거운 삶을 배우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04] 차오쥔옌, 《나 따라 하지 마!》(거북이북스,2012)

 


  따라 하지 말라고 해도 동생은 누나나 오빠나 형이나 언니를 따라 합니다. 따라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들은 어버이나 둘레 어른을 따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따라쟁이’일까요. ‘따라놀이’를 즐기는 셈일까요.


  돌이켜보면, 오늘 이곳에서는 어버이나 어른이라는 모습으로 서서 살아가지만, 나 또한 나어린 아이로 살아왔고, 나 또한 갓난쟁이로 으앙 울음을 터뜨렸으며, 어머니젖을 신나게 먹으며 무럭무럭 컸습니다. 나 또한 내 형이나 둘레 누나와 다른 형을 바라보며 ‘따라놀이’를 하는 동안 몸이랑 마음이 자랐어요.


  아이들은 개구진 짓이건 못난 짓이건 따로 가리지 않습니다.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않으니, 그저 따라 합니다. 마음으로 살포시 와닿으니 따라 합니다. 재미나거나 기쁜 웃음 터뜨릴 만하기에 따라 합니다.


  웃는 사람들 둘레에서 아기가 웃고 아이들이 웃습니다. 찡그린 사람들 둘레에서 아기가 울고 아이들이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활짝 열린 시원스런 들판과 마당에서 어른이고 아이이고 신나게 뛰어놉니다. 꽁꽁 닫힌 시멘트 교실에서 꽉 짓눌리거나 억눌린 채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아이들 얼굴이 파리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대학바라기에 얽매이고 말아 핏기 가시고 웃음기 없는 낯빛입니다.


  무엇을 할 때에 즐거운 삶일까요. 어디에 있을 때에 기쁜 하루일까요. 누구와 어깨동무하면서 해맑게 웃는 나날일까요.


.. 내가 뭐 하게? 뭐든지 따라 하는 내 동생. 내 동생은 따라 하기 대장 ..  (2쪽)

 


  놀이하는 언니 누나 오빠 형 곁에서 놀이를 구경하며 끼어드는 퍽 어린 아이들입니다. 처음에는 군동무처럼 붙지만, 차츰 몸놀림이 거듭나며 깍뚜기가 됩니다. 깍뚜기로 이렁저렁 흐르던 어느 날, 이제 어엿하게 놀이동무로 거듭납니다. 놀이동무로 까르르 웃음보따리 터뜨리며 놀더니, 바야흐로 저보다 어린 동생을 아끼거나 보살피는 언니 누나 오빠 형 자리에 섭니다.


  아이들은 서로 얼크러져 놀 때에 삶을 배웁니다. 똑같은 나이에 맞추어 줄세우기를 하듯 유치원·어린이집·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보내면, 다 다른 아이들 다 다른 삶과 몸과 마음이 예쁘게 어울리지 못해요. 서로 돕고 서로 가꾸며 서로 이끄는 아이들로 나아가지 못해요. 게다가, 이 나라 학교는 온통 대학바라기로 흐를 뿐, 삶바라기나 사랑바라기하고는 동떨어져요. 언니는 씩씩하게 앞장서고, 동생은 기운내어 뒤따르는 흐름을 학교에서 찾을 수 없어요. 오빠는 힘으로 우악스레 내리누르고, 동생은 어서 커서 나이를 먹자는 생각에 사로잡혀요.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어른들 누구나 나이를 따져요. 밥그릇을 재요. 나이 한 살 더 먹었다며 함부로 ‘말을 까’잖아요. 나이 한 살 더 먹었기에 더 너그러운 마음그릇이 되지 못해요. 나이 한 살 더 먹은 만큼 더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보드라운 눈길이 되지 못해요.


.. 나 책 볼 거야. 나 따라 하지 마! 누나는 쫑알쫑알 작은 책. 나는 와글와글 큰 책. 나 따라 하는 거 아니야 ..  (4∼5쪽)

 


  비가 옵니다. 바람이 붑니다. 달이 뜹니다. 햇살이 비칩니다. 멧새가 새벽을 새롭게 열며 노래를 부릅니다. 나뭇잎이 한들거리다가 똑 떨어져 가랑잎이 됩니다. 철 따라 새로운 꽃이 피고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형아는 동생보다 한두 해쯤 또는 서너 해쯤 때로는 너덧 해쯤 먼저 이 땅에 나왔습니다. 형아는 동생보다 여러 해쯤 봄꽃과 여름풀과 가을나무와 겨울들을 누렸습니다. 형아는 동생한테 철철이 숲을 보여줍니다. 철마다 어떤 숲 어떤 빛 어떤 내음인가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이끌고 바람을 쐽니다. 철 따라 조금씩 다른 바람을 함께 쐽니다. 바람결에 실리는 햇내음을 맡습니다. 봄해는 봄내음 겨울해는 겨울내음입니다. 어른들은 더 커다란 몸이니 더 크게 쓰는 힘이요, 더 기운차게 빨래를 해서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옷가지를 빨래줄에 줄줄이 넙니다. 아이들은 빨래 사이를 뛰어다니며 놉니다. 햇볕에 말리는 이불 사이로 숨어서 숨바꼭질을 합니다. 맨발로 마당을 달리고, 맨발로 고샅을 뛰며, 맨발로 집안으로 들어와 온갖 곳에 발자국을 남깁니다.


  놀이하는 삶이자, 놀이하는 하루입니다. 놀이로 맞이한 다음, 놀이로 마무리짓는 나날입니다. 놀면서 크는 아이들은 서로 뒤죽박죽입니다. 누나는 동생을 이끌고, 오빠는 동생을 업습니다. 동생은 누나를 바라보고, 동생은 오빠한테 기댑니다. 한 살씩 더 먹으며 아이들은 스스로 씩씩하고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거듭납니다. 머리속에 이런 지식 저런 영어 집어넣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아니, 머리속에 이런 지식 저런 영어를 안 집어넣으니 개구지게 뛰놀고 신나게 뒹굴 수 있습니다.

 


.. 나 연날리기 할 거야. 나 따라 하지 마! 누나는 네모 네모 네모 연. 나는 세모 세모 세모 연. 나 따라 하는 거 아니야 ..  (18∼19쪽)


  차오쥔옌 님이 빚은 그림책 《나 따라 하지 마!》(거북이북스,2012)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동생은 제 누나를 따라 하며 놉니다. 누나는 동생더러 나 좀 따라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동생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따라쟁이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는 동생이 안 밉습니다. 따라쟁이 동생이 귀찮거나 번거롭거나 성가시지 않습니다. 외려, 누나 저를 따르는 동생이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예쁘다고 여길 테지요. 요 귀여운 것, 요 사랑스러운 것, 요 예쁜 것, 참 앙증맞게 노는구나 하고 생각할 테지요.


  어느 어버이라도 이 같은 마음이리라 느껴요. 어머니나 아버지 몸짓을 따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활짝 웃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말투를 배우며 따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대견하구나 여깁니다.


  그런데 참말 동생이 누나를 따라 했을까요. 참말 아이들이 제 어버이를 따라 할까요. 여러모로 닮거나 비슷하다 하니까 ‘따라쟁이’나 ‘따라놀이’라 할 텐데, 더 깊이 헤아리며 들여다보면 ‘꼭 같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저희 나름대로 저희 몸과 마음에 맞추어 살짝살짝 바꾸며 저희 가락에 맞추는 놀이를 즐겨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빛나는 숨결이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빛나는 숨결이에요.

 


.. 요 녀석, 잡았다! 난 동생을 좋아하는데, 그럼 이것도 따라 할 거야? 킥! 킥! 킥! 내 말 들어 봐 ..  (24∼25쪽)


  가을비 지나간 시골마을 밤하늘은 매우 까맣습니다. 반달이 빛나는 곁으로 수많은 별이 반짝반짝 해맑게 빛납니다. 바람은 자고 둘레는 조용합니다. 밤에 노래하는 밤새마저 아무런 소리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모두 잠든 아주 깊은 밤이로구나 싶습니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저 별은 저처럼 빛날 텐데, 저 멀디먼 별에서 지구 쪽을 바라보면 지구 둘레 다른 별과 똑같이 조그마한 빛으로, 숱한 별 가운데 하나로 보이리라 생각해요. 지구는 지구라는 별대로 반짝이고, 온누리 뭇별은 이녁 별대로 반짝이겠지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즐거운 삶을 배웁니다. 둘째는 첫째한테서 즐거운 삶을 배웁니다. 셋째는 둘째한테서 배울 테고, 넷째는 셋째한테서 배울 테지요.


  아이들을 줄세우지 않는 이 겨레 이 나라 이 마을이라면 더없이 예쁘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저마다 즐거이 배우고 어울리며 어깨동무하도록 어른들 모두 기쁘게 새로 배우고 함께 어울리며 나란히 어깨동무한다면 그지없이 어여쁘리라 생각해요. 자, 이제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해맑게 빛나는 눈망울로 활짝 웃어 봐요. (4345.11.5.달.ㅎㄲㅅㄱ)

 


― 나 따라 하지 마! (차오쥔옌 글·그림,유엔제이 옮김,거북이북스 펴냄,2012.8.28./9800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책 <원예가의 열두 달>을 읽으며 카렐 차페크 이름을 처음으로 되새긴다. 알고 보니, 이런저런 다른 작품을 드문드문 읽은 적 있구나 싶다. 예쁘게 쓴 책이 널리 사랑받으며, 이 이야기에 깃든 깊은 생각이 사람들 삶으로 찬찬히 스며들 수 있기를 빈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12월 22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2년 11월 05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삶에 한 줄, 살며시 읽는 책

 


  책은 마음으로 읽습니다. 지식으로 읽는 책이란 없습니다. 누군가 지식을 가득 담아 책을 쓴다 하더라도, 읽는 우리들은 마음으로 읽습니다. 왜냐하면, 책 하나를 손에 쥐어 읽는 우리들은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북돋우거나 살찌울 때에 스스로 즐겁거든요.


  대학교 졸업장이 내 이름을 높이지 않습니다. 값진 옷차림이 내 얼굴을 드높이지 않습니다. 새까만 자가용이 내 눈빛을 밝히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으로 내 이름을 빛냅니다. 오로지 내 마음으로 내 얼굴을 곱게 가꾸고 내 눈빛을 싱그러이 추스릅니다. 김원숙 님이 빚은 이야기책 《그림 선물》(아트북스,2011) 33쪽을 읽으면 “그러고 보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사랑이다.” 하는 말마디가 나옵니다. 그림쟁이가 그림을 그리든,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든, 글쟁이가 글을 쓰든, 저마다 언제나 ‘사랑’ 하나 있어 삶을 일굽니다.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흙을 만지며 숲과 들과 바다를 지킬 수 있는 힘이라면 그예 한 가지 ‘사랑’입니다. 딸아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 보내지만 정작 당신은 시골마을에 남아요. 딸아들이 도시로 당신을 부르려 해도 손사래를 칠 뿐, 시골마을을 떠나지 않아요. 허리가 아프네 눈이 어둡네 하지만,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 사람들 배부르게 먹을 온갖 곡식과 열매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두어요.


  편해문 님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2012)라는 책 53쪽에서 “대한민국은 작은 골목을 없애 도로를 만들고 동네 마당을 메꾸어 큰 건물을 지어, 이제는 아기자기한 골목도 마당도 보기 쉽지 않다. 골목과 마당이 사라지니 아이들도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하고 말합니다. 도시라는 곳은 돈을 더 만들고 돈을 더 벌며 돈을 더 쓰도록 나아가니까, 골목도 마당도 없애기 마련입니다. 나중에서야 겨우 나무 몇 그루 심고 공원 흉내를 내는데, 공원 흉내를 낸 그 자리는 지난날 숲이었어요. 처음부터 숲을 고스란히 살리면 될 노릇이지만, 도시에서는 숲을 되살리거나 지키지 않아요. 언제나 돈을 들여 무언가 뚝딱거립니다.


  깊은 가을날, 아이들 이끌고 바다로 마실을 갑니다. 사람들은 여름바다에서만 물놀이를 하는데, 봄바다에서도 가을바다에서도 물놀이를 즐길 만합니다. 겨울바다라고 물놀이를 못 즐길 까닭이 없습니다. 바다에서는 물을 밟고 만지며 튕길 수 있어 좋아요. 숲에서는 풀을 밟고 만지며 뜯어먹을 수 있어 즐거워요. 들에서는 바람을 쐬고 햇살을 누리며 풀내음 짙게 맡아요.


  돌이켜보면, 책이란 곧 삶이지 싶어요. 삶이 바로 책이지 싶어요. 바다에서 책을 읽어요. 논배미와 유자밭에서 책을 읽어요. 나락을 말리는 할머니 손길에서 책을 읽어요. 풀개구리 한 마리한테서 책을 읽어요.


  카렐 차페크 님은 《원예가의 열두 달》(맑은소리,2002)이라는 책을 쓰며 138쪽에서 “관청의 창가에는 아무것도 피어 있지 않거나 빨강과 흰색의 제라늄만이 피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관청에서 자라는 식물에 대해서는 공무원 또는 장관의 의지와 호의와 일정한 전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철도청 관리 아래서 식물은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며, 우체국과 전화국에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피지 않는다.” 하고 노래합니다. 참말, 시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조차 ‘꽃’도 ‘풀’도 ‘나무’도 보기 힘들어요. 자동차 세우는 터만 널따랗습니다. 잔디밭조차 구경하기 어려워요. 건물은 커지기만 할 뿐, 숲이 늘어나는 일이 없어요. 사람들은 애써 수목원으로 나무내음 풀내음 즐기려 간다고 하지만, 정작 이녁 삶자리에 숲이 우거지고 나무가 푸른 잎사귀 흔들며 바람노래 들려주도록 하지 않아요.


  이선관 님 시집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실천문학사,2000)를 읽습니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라는 짤막한 시를 찬찬히 곱새깁니다. “여보야 / 이불 같이 덮자 / 춥다 /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 따뜻한 솜이불처럼 / 왔으면 좋겠다” 겨울날 솜이불 함께 덮는 ‘통일’이로군요. 겨울날 고구마 쪄서 나누어 먹는 ‘통일’도 되겠지요. 따순 봄을 함께 꿈꾸는 ‘통일’도 될 테고, 찬바람 싱싱 불어도 노랗고 하얀 꽃송이 뽐내는 가을 들꽃 어깨동무하며 바라보는 ‘통일’도 될 테지요. 삶을 살며시 읽으며 책을 마음 깊이 녹입니다.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9) -의 비행 1 : 브라질까지의 비행

 

하기야 브라질까지의 비행이 4시간으로 단축됐으니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거다
《조혜련-조혜련의 미래일기》(위즈덤하우스,2009) 184쪽

 

  ‘단축(短縮)됐으니’는 ‘줄었으니’나 ‘줄어들었으니’나 ‘짧아졌으니’로 손보고, ‘정(正)말’은 ‘참말’로 손봅니다. “살기 좋은 세상(世上)이 된 거다”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나 “살기 좋은 누리가 되었다”나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나 “살기 좋아졌다”로 손볼 수 있어요.


  한자말 ‘비행(飛行)’은 “공중으로 날아가거나 날아다님”을 뜻한다 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한국말로는 ‘날아가다’나 ‘날아다니다’요, 이를 한자말로 옮겨적어 ‘飛行’이 되는 셈입니다.

 

 브라질까지의 비행이 4시간으로 단축됐으니
→ 브라질까지 날아가는 데 4시간으로 줄었으니
→ 브라질까지 날아갈 때에 4시간이면 되니
→ 브라질까지 4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으니
→ 브라질까지 날아가자면 4시간이면 넉넉하니
 …

 

  예나 이제나 아이들은 ‘날다’라 말합니다. 새가 날고 벌레가 납니다. 나비가 날고 잠자리가 날아요. 아이들은 새나 벌레나 나비나 잠자리가 ‘비행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날기에 ‘난다’고 말합니다. 날아가는 모습을 가리켜 굳이 ‘비행한다’고 적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재주를 부리건 글솜씨를 뽐내건 괜히 ‘비행한다’고 써야 하지 않아요.


  날아가는 탈거리를 한자로 적어 ‘비행기’가 됩니다. 굴러가는 탈거리를 한자로 적어 ‘자동차’가 됩니다. 이러한 한자말은 여러모로 쓸 만하니 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기울인다면 ‘비행기’와 ‘자동차’도 얼마든지 한결 쉽고 뜻이 또렷하다 싶은 새말을 짓겠지요. 그러니까,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지 않기에 “브라질까지의 비행”처럼 토씨 ‘-의’까지 곁들여 ‘비행’을 말하는구나 싶어요.

 

 야간 비행 → 밤에 날기 / 밤 날기
 저공 비행 → 낮게 날기
 태평양 상공을 비행하는 동안 → 태평양 하늘을 나는 동안
 그 새는 공중을 향해 수직 비행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 그 새는 하늘로 곧장 꺾어 날아오른다
 그는 일 만 시간의 무사고 비행 기록을 가지고 있다
→ 그는 일 만 시간 동안 사고 없이 난 기록이 있다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늘을 납니다. 하늘에서 날아다닙니다. 훨훨 날고 한들한들 납니다. 가볍게 날갯짓을 하고 홀가분히 날개춤을 춥니다. 나는 모습을 가만히 그리면서 내 말맛을 산뜻하게 돌볼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1.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하기야 브라질까지 날아가는 데 4시간으로 줄었으니 참 살기 좋아졌다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