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노래

 


귀뚜라미뿐 아니라
온갖 풀벌레
밤새도록 노래 한가득.

 

가만히 들으면,
밤을 샐 뿐 아니라
낮에도 씩씩하게 노래잔치.

 

비오는 날에
작은아이 안고 자장노래 부르며
빗소리 듣는데,
이 빗소리 사이에도
결 고운 풀벌레 노래.

 

하루 내내,
한여름부터 한가을에 이르기까지
밤노래는 낮노래 되고
삶노래 되며
사랑노래 된다.

 


4345.9.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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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새삼스레 새벽빨래

 


  작은아이가 저녁부터 밤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하며 칭얼거린다. 아이 어머니가 고단하다. 새벽 두 시 십 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작은아이가 쉬를 누었다. 바지와 기저귀를 벗긴다. 새 바지를 입히고 새 기저귀를 댄다. 졸음이 가득하면서도 자꾸 개구지게 더 놀려 하는 작은아이를 이불로 똘똘 말아서 안는다. 밤비이면서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마당으로 나온다. 오늘은 어쩐지 기운이 나지 않아 자장노래를 곱게 부르지 못한다. 내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내 얼굴은 어떤 빛깔일까. 내 사랑은 어떤 무늬일까. 작은아이하고 빗소리를 함께 들으며 조용히 생각에 젖는다. 찬찬히 어르지 못하고 마냥 안기만 한다. 가만히 달래지 못하고 그저 무릎에 누이기만 한다. 이래서야 아이들이 사랑을 받아먹겠나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마음속으로 사랑을 길어올리지 못한다. 좀 쉬어야 하나. 무엇을 하며 쉬어야 하나.


  가슴으로 안고 무릎에 누이며 삼십 분쯤 지나니 작은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잠든 아이를 이십 분쯤 그대로 둔 채 가슴과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이제 작은아이는 깊이 잠든다. 천천히 일어나 작은아이를 잠자리로 옮긴다. 이불을 덮는다. 이러고 나서 오줌바지와 오줌기저귀를 들고 씻는방으로 간다. 저녁부터 나온 옷가지 몇 벌을 빨래한다. 천천히 비비고 천천히 헹군다. 빨래하는 동안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빨래를 마치고 부엌과 방에 옷걸이로 꿰어 거는 동안에도 빗소리는 안 들린다. 이제 날이 추워지면 낮빨래만으로는 옷을 말리기 어렵겠지. 밤과 새벽에 조금씩 빨래를 나누어 하면서 차근차근 말려야겠지. 겨울에는 밤빨래를 해서 밤에 방바닥에 불을 넣을 때에 방바닥에 죽 펼쳐서 말리기도 하겠지.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아침에 내다 널면 한두 시간만에 보송보송 빨래가 마르던 여름은 아주 끝났네. (4345.1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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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맞이 (도서관일기 2012.10.2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인천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여섯 살 아이랑 네 살 아이를 이끈 어머니 한 분 찾아와서 여러 날 우리 집에서 함께 묵는다. 바다에도 마실을 가고 마을 한 바퀴도 돈 다음 서재도서관에도 함께 나들이를 간다. 그런데 여러 날 함께 지내면서 서재도서관에는 꼭 한 번 나들이를 한다. 바쁠 일이 없다고 할 테지만, 코앞에 있는 곳까지 드나들지 못한다. 새삼스럽다 할 일은 아니다. 서재도서관과 집이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나부터 하루에 한 차례 들르기도 만만하지 않다. 돌이켜보면, 인천에서 서재도서관을 꾸릴 적에도 3층이 도서관이고 4층이 살림집이어도 큰아이 하나 돌보고 집살림 도맡느라 하루에 한 차례도 3층으로 못 내려온 적이 잦았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두 아이와 복닥이면서 책 한 줄 못 읽는 날이 있다. 두 아이와 부대끼면서 종이책 건드릴 엄두를 못 낼 뿐 아니라, 두 아이한테 그림책 한 번 느긋하게 못 읽어 주는 날도 잦다.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왔기에 아이 넷이 복닥복닥 떠드는 서재도서관이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인 터라 다른 책보다 그림책 둘레에 모인다. 어른들이 찾아왔으면 어른들 나름대로 다른 책 둘레에 모이겠지. 사진기를 어깨에 멘 어른들이 찾아왔다면 이분들은 이분들 나름대로 다른 책 둘레에 모이겠지.


  어느 어른은 우리 서재도서관 책을 살피며 ‘값진’ 책이 많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우리 서재도서관으로 마실을 하면서 ‘넓어 뛰어놀기 좋다’고 말한다. 아마 아이들로서는 ‘도시에 있는 다른 도서관’에서는 뛰지 말라느니 시끄럽게 굴지 말라느니 하는 소리를 신나게 들었으리라.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골마루를 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걸상에 앉아 책을 읽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흙운동장을 달리며 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나무그늘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이야기꽃 피울 수 있으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빈터에서 텃밭을 일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예쁘며 아름다운 도서관살림이 되리라 느낀다. 꿈을 꾸자.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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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61) 씨앗돈

 

  돈을 쓰고 돈을 벌기는 하지만, 돈을 그닥 생각하지 않으며 살다 보니, 돈과 얽힌 낱말이 낯설거나 새롭곤 합니다. ‘씨앗돈’이라는 낱말을 처음 들은 엊그제, 무슨 돈을 말하는가 하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렇지만, 말짜임이 쉽기에 “씨앗과 같은 돈”이라는 뜻이로구나 하고 짚었어요. 시골에서는 이듬해 흙을 일굴 적에 쓸 씨앗을 갈무리해요. 이를테면 ‘씨나락’이라든지 ‘씨감자’라든지 ‘씨콩’이라든지 ‘씨마늘’을 건사합니다. 이처럼, 나중에 쓰리라 생각하며 건사하는 돈이 된다면 ‘씨돈’이나 ‘씨앗돈’이 될 테지요.


  낱말책을 뒤적여 봅니다. 낱말책에는 ‘씨앗’을 한자말로 옮겨적는 ‘種子’를 넣어 지은 ‘종잣돈(種子-)’ 한 가지가 실립니다. 낱말책에는 ‘씨돈’도 없고 ‘씨앗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씨벼’라는 낱말은 싣습니다. 다만, ‘씨벼 = 볍씨’라고 다룰 뿐, 이듬해에 다시 심으려고 갈무리하는 벼라는 말풀이는 안 달립니다.


  그러고 보니 ‘밑돈’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씨앗돈(씨돈)’ 같은 낱말은 거의 못 들었지만, 둘레 어른들은 으레 ‘밑돈’을 이야기했어요. 장사를 하려 하거나 제금나서 살아가려 할 적에 ‘밑돈’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셨어요. 그러나, 지식인이나 기자나 글쟁이는 이 낱말을 그리 사랑하지 않습니다. 신문이나 잡지나 책에는 ‘기금(基金)’ 같은 낱말만 도드라져요. 한국말을 옹글게 쓰는 분이 참 드뭅니다. (4345.1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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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57) 맑음돌이

 

일기예보는 맑을 거라고 했지만, 맑음돌이를 잔뜩 만들어서 처마 밑에 걸어 놓고, 주머니에도 가득 넣고 왔는데
《우에야마 토치/설은미 옮김-아빠는 요리사 (112)》(학산문화사,2011) 18쪽

 

  일본사람은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테루테루보즈(てるてる-ぼうず,照る照る坊主)’를 창가에 건다고 합니다. 일본사람이 쓴 문학책이나 만화책을 보면 ‘테루테루보즈’ 얘기가 참 자주 나와요. 일본은 한국보다 비가 잦기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비가 잦으니 비가 잦은 만큼 궂은 일도 잦을 수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가 새삼스레 있을 테지요.


  한국에서는 무엇이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글쎄.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무언가 거는 일이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하늘에 대고 절을 하는 일은 있어도, 무언가를 붙이거나 거는 일은 드물지 싶어요. 아니, 나도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모를 수 있어요. 먼먼 옛날 시골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걸거나 붙이거나 하면서 비멎기를 바랐을는지 몰라요. 이제 도시 사회가 되고 보니, 어느 도시에서도 비멎기 바라는 무언가를 잊었다든지, 시골에서도 못물이 넉넉히 있기에 비멎기를 바라는 몸짓이 사라지거나 잊혔을 수 있어요.

 

 맑음돌이 ↔ 테루테루보즈

 

  한국말로 옮긴 어느 만화책을 읽다가 ‘맑음돌이’라는 이름을 봅니다. 내가 이제껏 본 일본책에서는 으레 일본말 ‘테루테루보즈’만 나왔는데, 이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겨적은 이름을 처음으로 봅니다.


  테루테루보즈는 ‘테루테루보즈’라 적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렇게 옮겨적은 이름이 참 앙증맞고 잘 어울리며 쓸 만하다고 느낍니다. 일본사람이 즐기는 삶은 일본사람 나름대로 일본말로 붙여서 즐기면 되고, 한국사람은 이들 일본살이를 한국말로 예쁘고 슬기롭게 붙여서 가리켜도 될 만하구나 싶습니다. 때로는 한국사람도 ‘비멎기 놀이’를 해 볼 수 있겠지요. 한국사람이 ‘비멎기 놀이’를 할 적에는 ‘맑음돌이’나 ‘맑음순이’를 내걸 수 있어요. ‘맑음아이’라든지 ‘맑음고양이’를 만들어 걸어도 돼요. ‘맑음냐옹’이라든지 ‘맑음멍멍’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생각에 따라 말이 태어납니다. 생각에 따라 태어나는 말은 알뜰살뜰 아끼면 씩씩하게 자랍니다. ‘맑음-’을 붙여 어떤 새말을 지으면 재미나며 어여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거꾸로 ‘-맑음’을 달아 새롭게 새말을 지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음맑음’이라든지 ‘사랑맑음’을 비롯해서 ‘하늘맑음’이나 ‘꿈맑음’을 쓸 수 있어요. ‘생각맑음’이나 ‘얼굴맑음’을 써도 잘 어울려요. (4345.1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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