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 책읽기

 


  그러께에 단풍잎을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풀이나 잎은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다가 문득 ‘갓 돋은 단풍잎’은 어떤 맛일는지 몹시 궁금했다. 한창 자라며 싱그러이 빛나는 푸른 단풍잎이라든지, 빨갛게 빛나는 단풍잎은 먹기 쉽지 않으리라 느끼지만, 갓 돋은 단풍잎은 수많은 들풀처럼 맨들맨들 말랑말랑 맛나 보였다. 나뭇가지에 새로 돋은 잎을 톡 하고 따서 살그마니 입에 넣어 살살 씹으면, 단풍나무 단풍잎다운 단풍내음이 솔솔 퍼지면서 단풍맛은 이러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단풍잎이 내 몸이 되고, 내 몸은 단풍잎한테 스며든다. 내 삶은 단풍잎 조그마한 잎사귀 하나로 거듭나고, 내 숨결은 단풍잎 작디작은 잎사귀 하나와 함께 빛난다. 풀을 먹는 일이란 목숨을 먹는 일이다. 풀을 먹으며 목숨이 살아난다. 풀은 햇살을 머금으며 싱그러이 빛나고, 내 몸은 햇볕을 쬐며 흙빛이 된다. 따순 날씨에 단풍나무도 가을날 새잎을 틔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4345.1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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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초꽃 책읽기

 


  꽃마다 피고 지는 철이 있단다. 참 맞다. 꽃마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처음 피는’ 철이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풀은 철에 따라 피거나 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풀은 한 해에 여러 차례 피고 진다.


  쑥풀을 봄에만 뜯어서 먹지 않는다. 여름에도 뜯어서 먹고, 가을에도 뜯어서 먹는다. 미나리도 유채도 질경이도 이와 같다. 왜냐하면, 김을 맨다면서 이들 풀을 뽑아서 버리면, 머잖아 이들 풀은 새롭게 돋는다. 사람들이 다시 김을 맨다면서 이들 풀을 또 뽑아서 버리면, 이윽고 이들 풀은 새삼스레 돋는다.


  논둑이든 밭둑이든 망초라 일컫는 풀은 참 자주 쉽게 뽑힌다. 가을날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망초나 숱한 풀은 한숨을 돌리며 씩씩하게 돋는데, 이때에는 꽃이 피고 씨를 맺어 훨훨 저희 숨결을 퍼뜨릴 때까지 안 뽑히곤 한다. 왜냐하면, 곧 겨울이 다가와 이들 풀은 겨울 추위에 몽땅 얼어죽는다고 여기니까.


  겨울 앞둔 늦가을 들판에서 망초꽃을 본다. 너희 참 씩씩하게 잘 컸구나. 대견하네. 어여쁘네. 너희를 들여다보며 곱다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너희는 너희 숨결대로 이 땅에 힘차게 태어나 아름다이 삶을 누리는구나. 4345.1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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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

 


구름이 하늘을
더 파랗게
비질하면서
하얗게 하얗게
비질 자국 남긴다.

 


4345.10.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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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드리는 마음

 


  드리고 싶어 시를 쓴다. 서로 마음이 맞아 살가이 이야기를 도란도란 꽃송이처럼 피울 수 있는 사람하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싯말이 싯노래 되어 찬찬히 울린다. 나는 하얀 종이 하나 꺼내어 이 싯말을 싯노래로 흥얼거리며 옮겨적는다. 나는 시를 하나 적어서 내민다. 내 시를 받는 이는 나한테서 선물을 받는다 할 테지만, 알고 보면, 그이가 내 마음을 건드려 싯가락이 자라도록 도왔으니, 그이 스스로 그이가 받고픈 사랑말을 길어올린 셈이다.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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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놀이라고는

 


  한창 끄집어내어 놀기 좋아하는 두 살 작은아이가 옷장 옷을 죄 끄집어내기도 하는데, 머잖아 책꽂이 책을 죄 끄집어내기도 하리라 느낀다. 작은아이에 앞서 큰아이가 이런 책놀이를 가끔 했으니까.


  어쩜 이렇게 어지럽히며 놀 수 있을까 싶지만, 놀 적에는 어지럽히기 마련이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때에 온갖 놀잇감을 방바닥에 좍 펼치면 내 어머니도 ‘뭔 녀석이 이렇게 어지럽혀!’ 하고 느끼지 않았을까. 게다가, 내가 느끼기에는 놀잇감이지만, 어머니가 보기에는 하나도 놀잇감이라 할 수 없을 만한 것들을 잔뜩 펼쳤다면…….


 책꽂이에서 책을 죄 끄집어내어 방바닥에 깐다든지 펼치는 일은 아주 조그마한 놀이요, 귀여운 짓이 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큰아이더러 ‘네가 꺼내어 펼치고 놀았으니 네가 다시 예쁘게 꽂아 주렴.’ 하고 한 마디만 하면, 다 놀고 나서 참말 예쁘게 꽂아 놓는다.


  책놀이라고는 할 수 없을 놀이일는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책놀이라고 느낀다. 내가 안 보는 데에서 이렇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면서도, 내가 보는 데에서 이렇게 하며 놀기에 아이들 삶자락 하나를 사진으로 담기도 한다.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지난 2012년 1월 29일 저녁 무렵. 새삼스레 들여다본 예전 사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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