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17] 감자피자

 


  읍내 저잣거리 마실을 나가는 길에 옆지기가 피자를 먹고 싶다 하기에, 피자집에 들러 치즈피자 한 판이랑 감자피자 한 판을 시킵니다. 피자집 일꾼은 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는지 “포테이토요? 고구마요?” 하고 묻습니다. “감자요, 그러니까 포테이포요.” 하고 다시 말하니 비로소 “포테이토피자요?” 하면서 알아듣습니다. 피자는 곧 익습니다. 피자집 일꾼은 상자에 뜨끈뜨끈한 피자를 담습니다. ‘감자알’ 송송 박힌 피자를 들고 피자집에서 나오다가 차림판을 들여다봅니다. 차림판 어디에도 ‘감자’라는 낱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구마피자’는 있습니다. 고구마피자는 왜 영어로 가리키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야채피자’가 보입니다. ‘야채(野菜)’는 일본 한자말이니 ‘채소(菜蔬)피자’라 해야 맞다 할 텐데, 한국말로 올바로 일컫자면 ‘푸성귀피자’입니다. 그러나, 감자를 ‘감자’라 일컫지 않는 이 나라에서 ‘푸성귀피자’를 구워서 팔 피자집이 있을는지 알쏭달쏭합니다. 4345.1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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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같은 하루 삶의 시선 25
최성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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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눈높이
[시를 말하는 시 7] 최성수, 《천 년 전 같은 하루》

 


- 책이름 : 천 년 전 같은 하루
- 글 : 최성수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7.9.18.)
- 책값 : 6000원

 


  졸린 아이는 품에 안아도 잠들지만, 가만히 무릎에 누이고 팔베개를 한 다음 이불로 살포시 덮고 나긋나긋 노래를 부르면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얼굴이 되어 포근하게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이때에 아이 낯빛에는 따사로운 그림 하나 빛나요.


  날마다 두 아이를 갈마들어 재우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어버이 되어 두 아이들 보살필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고맙고 놀라우며 즐거운 삶인가 하고. 내가 아버지 되어 두 아이들 돌볼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재미나며 신나고 멋진 삶인가 하고.


.. 별은 구름이 되고, 구름은 바람이 되고, / 바람은 풀이 되고, / 풀은 끝내 저 혼자 흘러 흔적이 된다 ..  (고비에서)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모두 알아듣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낯빛만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아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몸짓과 매무새 하나로도 무엇을 하려는가 미리 헤아립니다.


  아이와 마주한 어버이로서 생각을 기울여요. 내가 아이 자리에 서고, 아이가 내 자리에 선다면, 아이는 어떤 마음이 될까 하고 생각을 기울여요.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제 고운 짝꿍을 사귄 다음 제 고운 아이를 낳을 무렵, 이 아이가 저희 아이한테 물려줄 사랑이란 바로 오늘 내가 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로구나 하고 생각을 기울여요.


  서로 눈을 맞춥니다. 서로 마음을 맞춥니다. 서로 생각을 맞춥니다. 서로 사랑을 맞춥니다.


  아이가 먹을 밥이란 어버이가 함께 먹는 밥입니다. 아이가 지내는 집이란 어버이가 함께 지내는 집입니다. 아이가 마실 바람과 먹을 햇살이란 어버이가 함께 마실 바람이요 함게 먹을 햇살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떤 일과 놀이를 누려야 기쁠까요. 우리는 어떠한 꿈과 사랑으로 스스로 빛나야 아름다운 숨결일까요.


.. 파키스탄이 고향인 압둘아마드는 이슬라바마드보다 가리봉동이 낯익다며 웃는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흰 이가 환한 그의 웃음은 한국사람과 닮아 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카오티홍니는 시집올 때 가져온 모자 ‘논’을 쓰고 들일 나서고, 비닐하우스 파프리카 농장 바쁜 손 놀리는 네팔사람 크리슈나 라마 부부는 공장 다닐 때 떼인 월급보다 사장의 욕설에 더 가슴이 떨린다 ..  (제비꽃 나라)


  아이들 눈높이에 서 봅니다. 이웃들 눈높이에 서 봅니다. 동무들 눈높이에 서 봅니다. 아이들은 따숩게 건네는 말씨를 반깁니다. 겉으로만 웃는 말씨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스러운 말씨를 반깁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사랑스러운 말씨로 노래를 부릅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어른들 누구나 사랑스러운 말씨가 반갑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말씨로 말을 건네면 어느 어른이라 하더라도 달갑지 않아요. 어른도 아이도 누구나 사랑스러운 말씨가 반갑고 즐거우며 흐뭇합니다. 사랑스러운 말씨로 사랑을 꽃피우고, 사랑스러운 말씨로 꿈을 키우며, 사랑스러운 말씨로 삶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달콤한 과자나 사탕을 주기에 받아먹지 않습니다. 따순 마음으로 따순 손길 되어 건네는 과자나 사탕이기에 즐거이 받아먹습니다. 따숩지 않은 마음에 따숩지 않은 손길로 건네는 과자나 사탕일 적에는 아이들 마음밭에 ‘사랑’이 따스히 자리잡지 못해요. 그예 달달한 과자나 사탕만 바랄 뿐, 이 과자와 사탕 하나에 깃든 숨결을 읽지 못하고 말아요.


.. 며칠 햇살 좋더니 / 산수유 꽃눈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  (찌른다)


  어른들은 어떤 삶이 즐거울까요. 돈만 많이 주면 즐거울까요. 일삯을 한 푼이라도 더 쳐 주는 데에서 일해야 즐거울까요.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는 메마른 일터에서 일삯으로 돈만 더 쳐 준다면, 이러한 데에서 일할 뜻이나 보람이나 값어치가 있을는지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시험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시험공부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영어를 더 빨리 더 잘 배워야 하는 영어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른 숨결을 푸르게 쉬면서 아름답게 자라나는 고운 목숨입니다. 어른이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어린 나날을 푸르게 살아온 고운 목숨입니다. 곧, 아이와 어른은 같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같아요. 모두 사랑스러운 사람이요, 모두 고운 사람이에요.


.. 학교 옆, / 주택조합 결성 축하 / 현수막이 걸리더니 / 멀쩡한 집 때려부순다 / 쿵 쾅 쿵 쾅 / 몇 번 두들겨대니 / 벽돌빛도 선명한 집 무너져 내린다 / 저 집 짓고 / 마음 넉넉했을 / 누구의 행복도 흩어진다 ..  (폐허―수수꽃다리)


  살아가는 뜻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뜻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랑을 빛내는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뜻을 환하고 맑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 눈높이에 서 봐요. 나무 눈높이에 서 봐요. 바람과 햇살과 구름 눈높이에 서 봐요. 흙과 풀과 꽃 눈높이에 서 봐요.


  나는 어떤 눈높이로 내 이웃과 동무를 만나는 사람인가요. 나는 어떤 눈썰미로 내 이웃과 동무를 아끼는 사람인가요. 나는 어떤 눈결로 내 이웃과 동무랑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인가요.


  풀벌레와 멧새와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바람이 나뭇잎 흔드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풀잎에 앉은 이슬이 천천히 마르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제비가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다 주며 날갯짓하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자전거가 들길을 가르며 쏴아 일으키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나는 아이들과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우리 아이들 둘레에서 살아가는 동무는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 셋째 시간, 하늘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 눈발 퍼덕이기 시작한다 / 첫눈이다 / 아이들 모두 소리 지르며 창가로 몰려간다 / 나도 책 덮고 날리는 눈 바라본다 ..  (첫눈)


  교사 최성수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천 년 전 같은 하루》(삶이보이는창,2007)를 읽습니다. 최성수 님은 교사라는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서 이웃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자리에 서서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봅니다. “잎새들이 / 새봄을 만든다(여린 잎새들 자라나)”고 하는 노래를 헤아립니다. 참말 잎새들이 새봄을 만듭니다. 그러면, 잎새는 누가 만들까요. 잎새를 만나는 님은 누가 만들까요.


  나는 무엇을 만들까요. 나는 어떤 숨결을 지을까요. 나는 어떤 사랑을 빚으면서 하루를 일굴까요.
  나를 만든 손길을 그립니다. 나를 만든 손길은 어떤 기운이었을까요. 내가 무엇인가 만드는 손길을 그립니다. 내가 무엇인가 만들 적에 내 손길에는 어떤 기운이 묻어날까요.


.. 영월 법흥사 절터 앞에는 / 작은 개울 하나 있지요. // 발 시리게 찬 그 물에 / 버들치 마을 이루고 살지요 ..  (법흥사 버들치―어머니 6)


  삶을 그리기에 시를 씁니다. 삶을 꿈꾸기에 사랑을 나눕니다. 삶을 즐기기에 책을 읽습니다. 삶을 아끼기에 서로 어깨를 겯으며 씩씩하게 이 길을 걷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아끼고, 아이는 어머니를 아낍니다. 어머니는 풀 한 포기를 돌보고, 풀포기는 어머니 손등을 쓰다듬습니다. 어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땀을 훔치고, 하늘은 어머니 이마를 곱게 어루만집니다.


  시를 낳는 가슴은 포근합니다. 시를 읽는 마음은 넉넉합니다. 서로 포근한 가슴이 되어요. 다 함께 넉넉한 마음이 되어요. 시를 읽을 수 있을 때에 사랑을 읽을 수 있어요. 시를 쓸 수 있을 때에 꿈을 쓸 수 있어요. 4345.1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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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삶을 마치고 시골로 간다고 하는 분이 쓴 꽃시를 헤아려 본다. 시골로 가서 호젓하게 지내고 보면, 그때부터는 꽃뿐 아니라 흙과 하늘과 바람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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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꽃잎
최성수 지음 / 작은숲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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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이야기 글쓰기

 


  대통령이 바뀌면 ‘대통령이 바뀔’ 뿐입니다. 내 삶도 내 마을살이도 내 나라살이도 바뀌지 않아요. 내 삶이 바뀌기를 바라면, 내 삶이 앞으로 어떠한 길로 나아가면서 아름답게 바뀌면 즐거울까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기쁘게 몸으로 옮기면 돼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도록 즐겁게 힘쓰며 누릴 때에 내 삶이 바뀌어요. 내 삶이 바뀔 때에 내 마을살이가 바뀌며, 내 마을살이가 바뀌면서 내 나라살이가 함께 바뀌어요.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느냐 안 뽑느냐는 그닥 대수롭지 않아요. 가게에 가서 새우깡을 사든 감자깡을 사든 대수롭지 않아요. 저마다 입맛에 맞추어 달리 고를 뿐이지만, 가게에 놓는 과자는 모두 공산품이에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쓴 기름진 밭에서 거둔 푸성귀를 숲에서 나무를 한 장작으로 불을 지펴서 익히거나 굽거나 볶거나 데쳐서 거두는 먹을거리가 가게에 놓이는 일은 없어요. 그러니까, 내 몸을 살찌우는 가장 맛나며 좋은 먹을거리를 바란다면, 스스로 가장 기름지며 정갈한 밭을 일굴 노릇이에요. 스스로 삶을 바꾸어야 먹을거리를 맛나게 누리거든요.


  아이를 새로 낳아야 ‘예쁘며 똑똑한 아이’와 살아갈 수 있지 않아요. 어버이로서 예쁘고 똑똑하게 살아갈 적에 우리 아이 또한 예쁘며 똑똑한 사람살이가 무엇인가를 곁에서 늘 지켜보면서 차근차근 받아들여 살아갈 수 있어요.


  사람살이를 헤아릴 적에 내 삶을 다스릴 수 있어요. 내 삶을 다스리는 길에서 대통령이 누가 되든 대수롭지 않아요. 내 삶을 아끼는 길에서 시장이나 군수가 누가 되든 대단하지 않아요. 대통령 때문에 내 삶이 흔들린다면 내 삶은 뿌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시장이나 군수 때문에 내 삶이 무너진다면 내 삶은 기둥이 없다는 셈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랄 일은 아니라고 느껴요. 대통령은 ‘될 만한’ 사람이 됩니다. ‘될 만한’ 사람이라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눈높이와 깜냥에 걸맞는 ‘될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곧,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삶을 일구면서 사랑을 나눈다면,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은 이러한 그릇이에요. 나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고 사랑스럽지 못한 채 톱니바퀴나 쳇바퀴처럼 허덕이는 나날이라 한다면, 이러한 얼거리에서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은 이러한 굴레를 더 단단히 들씌우면서 사회를 억누르는 그릇이겠지요.


  ‘노동자 대통령’이나 ‘농사꾼 대통령’이 뽑히지 못하는 까닭은, 이 나라 사람들 스스로 ‘노동자 삶을 누리지 않거나 노동자 삶하고 등지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 스스로 ‘농사꾼 삶을 즐기지 않거나 농사꾼 삶하고 등돌리’는데, 농사꾼 대통령이 나올 턱이 없어요.

  이 나라에서는 ‘여성 대통령’도 나올 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옳고 바른 평등이 자리잡지 않아요.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운 평등이 싹트지 않아요. 사내와 가시내가 서로 사랑한대서 혼인을 한다지요? 그런데 혼인을 하는 예식장부터 ‘사내 쪽 집안’ 흐름대로 가요. 혼인잔치를 마치고는 혼인마실을 끝내서 집으로 돌아가면 ‘사내 쪽 아버지 집안’ 흐름을 좇아 제사이니 명절이니 인사이니 어쩌니 하면서 끝없이 휘둘리거나 끌려다니기만 해요. 우리 사회에 평등이 있을까요. 남녀평등을 넘어 계급평등이나 학력평등이나 재산평등이나 지식평등이 있을까요. 이런 사회에서는 ‘여성 대통령’이든 ‘장애인 대통령’이든 뽑힐 수 없어요. ‘성별만 여성’이라 해서 여성 대통령이 아니에요. 삶을 아름답게 누리고 펼치며 보듬는 ‘따사로운 어머니 손길’인 여성 대통령일 때에 비로소 올바른 ‘여성 대통령’이에요. 곧, 성별이 남성이라 하더라도 따사로운 어머니 손길로 평등을 이루려 한다면, 이이는 ‘여성 대통령’인 셈입니다.


  대통령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은 덧없습니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 됩니다. ‘내 삶 이야기’가 바로 ‘어떤 대통령을 바라는’가를 보여줍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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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이끄는 글쓰기

 


  나는 늘 글을 새로 쓰려고 생각합니다. 누가 ‘왜?’라고 묻는다면, ‘나는 늘 새롭게 살아가니까’ 하고 말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모레와 글피가 달라요. 오늘도 아침과 낮과 저녁이 다르며, 아침에서도 바로 이때와 바로 뒤가 달라요. 1분 1초가 다른 만큼,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며 연필을 쥐면 그때그때 새롭다 싶은 글을 씁니다.


  글쓰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윗몸일으키기는 힘들지 않습니다. 달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밥하기는 힘들지 않습니다. 숨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햇볕쬐기는 힘들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어떤 넋과 매무새 되어 마주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누구나 늘 하는 일이요, 누구라도 스스럼없이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야구선수라 할 적에, 나는 공을 잘 던질 수 있고 잘 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공을 잘 던진다 해서, 이른바 ‘방어율 0.1’이나 ‘방어율 2.0’이 될 만큼 던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던지고 싶은 만큼 즐겁게 던지면서 공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공을 잘 친다 해서, 이른바 ‘타율 3할’이나 ‘타율 2할8푼’이 될 만큼 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치고 싶은 만큼 실컷 치면서 공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기쁘게 글을 씁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대로 즐거이 삶을 누립니다. 삶 따라 글이 태어나고, 삶 따라 사랑이 싹틉니다. 삶 따라 말을 영글고, 삶 따라 꿈을 이룹니다. 4345.1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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