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미즘이라는 희망 - 삼라만상에게 길을 묻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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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누리는 삶이 ‘희망’
[시골사람 책읽기 007] 야마오 산세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쳐다보면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쳐다봅니다. 어른들이 들판에 서면 아이들도 들판에 섭니다. 어른들이 집안일을 어머니한테만 시키면 아이들도 집안일은 으레 어머니가 해야 하는 줄 압니다. 어른들이 서로 살가우며 따사로운 말마디로 이야기꽃 피우면, 아이들도 서로 살가우며 따사로운 말마디를 배우고 나누면서 즐겁게 얼크러져 놉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학교에 넣어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여느 때 여느 삶자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어른들 살아가는 매무새가 바로 ‘교과서’이고 ‘책’입니다. 돈을 벌러 새벽부터 밤까지 바쁘게 몰아치는 어른들 삶이 바로 아이들한테 ‘교과서’ 구실을 하고 ‘책’ 노릇을 합니다. 어른들이 돈벌이 때문에 집에 발 들일 겨를 없을 뿐 아니라, 아이하고 말 한두 마디 섞을 틈 없이 보내는 삶을 늘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돈벌이를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고 가를 수 없습니다. 돈을 더 벌어야 좋다거나 돈을 적게 벌기에 나쁘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면서 어떻게 쓸 돈을 어떻게 어디에서 벌려고 하는가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아이들과 즐거이 살아가고 싶은가요? 그러면 아이들과 즐거이 살아갈 만큼 넉넉히 겨를을 내면서 돈을 벌 만한 일자리를 다니는가요? 아이들하고는 ‘나중에 돈을 좀 많이 번 다음’ 어울려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이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제 어버이 따순 손길을 받고 싶다 말하는데, 이런 목소리에는 귀를 안 기울이면서 회사 사장님이나 웃사람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나날은 아닌가요?


.. 달밤에 달을 보면 그 옆으로 구름도 흘러가고 구름은 또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듭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긴 시간이 아니더라도 5분, 10분 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달을 바라보세요. 숲속에서 달을, 그리고 모양을 바꿔 가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노라면, 그 5분 10분 하는 짧은 시간 안에 달과 구름이라는 위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  (37∼38쪽)


  즐겁게 누리는 삶이 희망입니다. 즐겁게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 하면 괴로움입니다. 희망이란 먼 데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돈 많이 버는 데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마흔 평 아파트나 쉰 평 아파트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새까만 자가용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서울이나 도시에 없습니다.


  희망은 언제나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나 스스로 가슴속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이 바로 희망입니다. 이웃들과 따숩게 주고받는 말마디가 희망입니다. 대통령으로 아무개를 뽑는 일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저 대통령 뽑기입니다.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는대서 내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다스린다는 정치판이 조금 움직일 뿐입니다. 내 삶이 아름답게 달라지도록 일구고 싶다면, 내 삶이 어떤 모습인가를 참답게 바라보면서 슬기롭게 돌보아야 합니다.


  달걀 한 알로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돌멩이 하나로 아이들과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뛰놀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 아이들과 차분히 가라앉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햇볕 한 줌으로 아이들과 나란히 해바라기 하면서 하루를 실컷 누릴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로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샘솟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란 즐겁게 누리는 삶입니다. 즐겁게 누리는 사람은 스스로 희망을 일굽니다. 남들이 선물처럼 갖다 안기는 희망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일구고 돌보며 가꾸면서 자라나는 희망입니다.


.. 숲이나 산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나무를 심고 자르는 것은 기분 좋은 작업 중 하나입니다 … 오키나와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없기 때문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전체 문명의 향유자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플루토늄에 책임이 있습니다 ..  (120, 203쪽)


  가난이란 무엇일까요. 돈이 없으면 가난일까요. 돈이 많으면 가난이 아닐까요. 아마, 돈이 많고 적음으로 나누는 가난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가난은 돈셈으로만 헤아리지 않아요. 가난 또한 희망처럼 ‘내 마음자리’에 따라 헤아려요.
 

 한손에 일억 원을 쥔 사람도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한손에 십억 원을 쥔 사람도 돈을 더 그러모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스스로 아직 가난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백억 원을 거느리거나 천억 원을 주무르는 사람조차 돈을 악착같이 더 붙잡으려고 합니다. 백억 원이 있으면서 백 원 한 닢 살가이 나누지 못하기 일쑤예요. 천억 원이 있으면서 동냥하는 거지한테 천 원 한 장 기쁘게 나누지 못하기 일쑤예요.


  돈있는 사람이 외려 더 노랭이 같다고 하는 까닭을 잘 생각해 봐요. 얼핏 보기에는 돈이 많다 싶지만, 그이한테는 그 돈조차 가난하다고 여겨요. 그러니까 이이는 돈 백억 원을 손에 쥐었든 돈 천억 원을 손에 주었든 가난뱅이입니다.


  돈없다는 사람끼리 되레 더 밥술을 나누는 까닭을 잘 돌이켜봐요. 밥 한 술씩 나누며 어깨동무하는 이웃은 누구일까요. 어려울수록 서로 어깨동무한다면서 빙그레 웃는 동무는 누구인가요.


  희망은 대통령이 만들어 주지 않아요. 희망은 국회의원이 선물보따리로 안겨 주지 않아요. 희망은 시장님이나 군수님이 짠 하고 내놓지 않아요. 희망은 늘 내 조그마한 마을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내 자그마한 아이들하고 알콩달콩 보듬는 자그마한 살림살이에서 피어납니다.


  텃밭에 심은 시금치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쑥쑥 자라나는 쑥이랑 부추랑 냉이랑 씀바귀가 희망입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으며 꽃을 피우는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매화나무랑 감나무가 희망입니다.


.. 살면서 새로운 말 하나를 배운다는 건 그만큼 내 영혼의 재산이 늘어나는 일입니다. 좋은 말은 보물과 같거든요 ..  (210쪽)


  우리 마을 할머니들이 서로 품을 팔아 마늘밭을 한 군데씩 천천히 돌며 마늘을 심습니다. 마늘을 심으며 노래를 부르고, 바지런히 심고는 참을 먹으며, 실컷 심다가 막걸리 한 잔 마십니다. 햇살은 따사롭게 마늘밭을 비춥니다. 찬바람 솔솔 부는 겨우내 마늘은 씩씩하게 푸른 잎 냅니다. 한겨울에도 눈바람 거의 없는 고흥이지만, 어쩌다 눈발 살포시 내려앉아 마늘밭을 덮더라도, 마늘잎은 눈송이 고이 짊어지고도 푸른 빛을 감추지 않습니다.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마늘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줄기를 올립니다. 마늘은 저희 희망이 저기 먼 데가 아닌 바로 저희 가슴에 있는 줄 알거든요.


  아이들도 희망이 저희 가슴에 있는 줄 알아요. 스스로 희망인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개구지게 뛰어놉니다. 호호 입김을 만들면서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며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아이들입니다. 우리 어른들도 스스로 희망인 줄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바로 이곳에서 오늘부터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영글 수 있기를 빌어요. 일본 깊은 시골숲에서 살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 야마오 산세이라 하는 분은 당신 한몸을 곱게 누인 시골숲이 얼마나 아름다운 희망이었던가를 느끼며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과 같은 책을 우리한테 예쁘게 남겨 줍니다. 4345.12.4.불.ㅎㄲㅅㄱ

 


―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야마오 산세이 글,김경인 옮김,달팽이 펴냄,2012.9.21./1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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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04 15:15   좋아요 0 | URL
애니미즘을 배워 갑니다.

"텃밭에 심은 시금치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쑥쑥 자라나는 쑥이랑 부추랑 냉이랑 씀바귀가 희망입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으며 꽃을 피우는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매화나무랑 감나무가 희망입니다."
- 이 글에 마음이 가닿네요.

파란놀 2012-12-04 15:23   좋아요 0 | URL
'애니미즘'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한데,
나중에 이 책은 더 꼼꼼히 살핀 느낌글로 다룰 생각이에요.

아무튼, '애니미즘'이란 '땅사랑'이나 '흙사랑',
또는 '숲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른바 '지구별사랑'이나 '온누리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다른 출판사'에서는 야마오 산세이 님 책을
자꾸 절판시키지만...
달팽이 출판사는 외려 새책을 번역해 주니
참으로 고맙다고 느껴요
 


사진놀이 2

 


  다섯 살 사름벼리가 이모 시집잔치에 놀러온 열일곱 살 외삼촌 친구들이 “너 예쁘다.” 하면서 손전화 기계로 사진을 찍으니, 아버지더러 “내 사진기 주세요.” 하고 말하고는 외삼촌 친구들을 제 작은 사진기로 찍어 준다. 외삼촌 친구들은 “그거 진짜 사진기야?” 하고 묻고, 다섯 살 사름벼리는 제가 찍은 사진을 외삼촌 친구들한테 즐겁게 보여준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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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우체국, 서울 우체국

 


  시골마을 우체국은 널찍하면서 손님이 뜸하다. 시골마을 우체국은 면소재지에서는 눈에 아주 잘 뜨이고, 읍내에서는 군청 건너편에 있다. 시골마을 우체국은 일꾼이 손님 얼굴을 모두 안다. 시골마을 우체국은 늘 아는 얼굴을 마주하니까, 서로 상냥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주고받으며, 폭신한 걸상에 느긋하게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수다를 나누기도 한다.


  서울은 우체국이 작으면서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서울에서 우체국 한번 찾아가려면 한참 헤매거나 돌아다녀야 한다. 아니, 서울에서는 우체국이 어디 붙었는지 찾아보기 참 어렵다.


  사람으로 넘치니 서로를 알 수 없는 서울이고, 조용한 숲 사이사이 사람이 몇몇 있으니 서로를 훤히 알 만한 시골이다. 시골에서는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몰며 천천히 찾아간다.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로 논둑길을 시원스레 달린다. 서울에서는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 사이에서 콜록거려야 한다.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운 서울에서는 조금만 마음을 딴데에 두어도 아이들 잃을까 걱정스러운 나머지 아이들이 손을 놓고 이리 달리거나 저리 뛰면 빽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아, 집에서도 밖에서도 마을에서도, 시골 아닌 데에서 하루 이틀 머물기란 참 고단하고 답답하구나.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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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프리카
김중만 사진, 황학주 시 / 생각의나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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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21

 


한국을 찾아온 아프리카
― 아프리카 아프리카
 김중만 사진,황학주 글
 생각의나무 펴냄,2005.11.1./9500원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사진쟁이 한 사람이 한국이라는 나라로 찾아온다면, 이녁은 어떤 모습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 나누는 사진을 찍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사람이 바라보기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베트남과 라오스와 스리랑카는, 네팔과 티벳과 인도네시아는, 저마다 어떻게 다르거나 비슷한 겨레이거나 나라로 받아들일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프리카는 ‘어느 한 나라’가 아닙니다. 아프리카는 ‘아시아’라는 이름처럼 큰 땅덩이를 가리킵니다. 콩고이든 수단이든 가나이든 짐바브웨이든 따로 나라를 하나하나 살피지 않고 크게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콩고 사진쟁이는 “아시아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과 중국 겨레를 크게 묶어서 보여줄 만하겠지요.


  그런데, 아프리카라 하는 넓은 땅덩이 가운데 어느 한 나라, 또 어느 한 마을, 또 어느 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던 사람은 ‘아시아’라 하는 넓은 땅덩이 가운데 어느 한 나라, 또 어느 한 마을, 또 어느 한 보금자리를 얼마나 깊거나 넓게 살필 만할까요. 수단사람이 담을 “아시아 아시아”는 아시아 빛깔을 얼마나 또렷하거나 환하게 보여준다고 할 만할까요.


  “아메리카 아메리카”라면, 또 “유럽 유럽”이라면, 이때에는 또 얼마나 다르거나 비슷한 삶자락과 삶자리를 사진으로 담아 보여줄 만할까요.


  한국사람은 아프리카를 모릅니다. 한국사람은 콩고도 수단도 나미비아도 마다가스카르도 모릅니다. 몇 차례 이들 나라로 찾아간 적은 있을 테지만, 이들 나라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찾아간’ 몇 도시나 몇 마을은 있을 테지만, 이들 나라를 알 수 없습니다.


  더 돌이켜보면, 한국사람은 한국을 모릅니다. 한국사람은 서울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서울땅 골골샅샅 누벼 보았을까요. 이 골목 저 골목뿐 아니라, 이 마을 저 마을, 이 보금자리 저 보금자리 두루 누비거나 누리면서 삶과 사랑과 꿈을 살포시 어깨동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을 둘러싼 인천, 부천, 수원, 안양, 의왕, 구리, 포천, 가평, 동두천, 파주, 문산, 강화, 김포, 광명 들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구, 부산, 대전, 광주, 울산 같은 큰도시는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통영, 고성, 간성, 울진, 강릉, 원주, 홍성, 당진, 영광, 화순, 장흥, 보성, 상주 들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느낍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고 느낍니다. 김중만 님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생각의나무,200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쟁이 김중만 님뿐 아니라 한겨레 어느 누구도 아프리카라는 넓은 땅덩이를 알려고 사랑을 쏟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알려고 애쓴들 알 수 없습니다. 알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모를 뿐이기에, 이런 지식과 저런 정보를 더 갖추거나 건사할수록 더욱더 모르는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나는 대통령을 모릅니다. 대통령은 나를 모릅니다. 나는 부자나 유명인사를 모릅니다. 부자나 유명인사는 나를 모릅니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굳이 알려고 마음을 조금도 안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서로서로 삶자리가 달라 얼굴 한 번이라도 스칠 일조차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정치 이야기를 들먹입니다. 여느 사람, 이른바 서민을 모르는 대통령이나 정치꾼이 자꾸 서민 이야기를 들먹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알 수는 없지만, 서로 ‘함께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살아갈 수 있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살아가면서 시나브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다큐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사진기 쥔 사람’과 ‘사진기 바라보는 사람’이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기에 사진을 빚습니다.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지 못한다면 사진을 못 빚습니다. 이를테면, ‘사고파는 물건’은 만들 수 있어도, 사진은 못 빚습니다. ‘어떤 작품을 바라는 이’한테 작품을 만들어 건넬 수 있어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일 뿐, 사진은 작품이 아니요, 사진은 물건이 아닙니다. ‘사진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양새’를 한대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람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양새를 한대서 사람이 되지 않아요. 사람과 같은 모양새라 하지만 마네킹이나 인형이 있어요. 사람처럼 말도 하고 움직이지만 꼭둑각시나 허수아비가 있어요. 꼭둑각시는 꼭둑각시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허수아비는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톱니바퀴는 톱니바퀴이지 사람이 아니에요. 쳇바퀴는 그예 쳇바퀴로 구를 뿐, 사람으로 흐르는 숨결이 아니에요.


  나는 고흥 시골숲에서 살아가지만 이웃 장흥숲을 모릅니다. 나는 고흥 시골바다에서 살아가지만 이웃 여수바다를 모릅니다. 나는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지만 이웃 해남 시골마을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고흥 시골숲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노는 고흥 시골바다를 보듬고 좋아합니다. 옆지기랑 오순도순 보금자리 일구는 고흥 시골마을이 살가우며 어여쁩니다.


  한국사람은 아프리카를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아프리카사람도 아프리카를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이들이 아프리카를 사진으로 담는다고 하면서 내놓는 것은 ‘작품’이나 ‘예술’이 될는지 모르나 ‘사진’은 못 됩니다.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도 아프리카를 찍은 사진책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아프리카라는 땅덩이를 두 다리로 밟으면서 찍기는 찍었되, 사진을 찍어서 빚은 책이 아니에요. ‘아프리카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담은 작품’일 뿐입니다. 김중만 님 모습을 ‘아프리카’라는 이름에 담아 보여줄 뿐입니다. 김중만 님 생각과 마음과 사랑과 삶을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붙여 드러낼 뿐입니다.


  무엇이 아프리카일까요. 기린이나 들짐승이 아프리카일까요. 몸에 무언가를 바르거나 바늘로 생채기를 내고는 맨발로 흙땅을 방방 뛰는 모습이 아프리카일까요. 새까만 살결이 아프리카일까요. 드넓은 모래밭이 아프리카일까요. 가난과 굶주림과 전쟁이 아프리카일까요.


  꽃송이가 아프리카일까요. 나무가 아프리카일까요. 흙땅이 아프리카일까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 아프리카일까요. 까맣게 별이 빛나는 밤이 아프리카일까요.


  한국은 무엇입니까. 끔찍하도록 넘치는 자가용 물결이 한국인가요. 지치지 않고 새로 짓는 골프장이 한국인가요. 골골샅샅 구멍을 파서 먹는샘물 뽑아대어 팔아치우는 공장이 한국인가요. 대기업 몇 군데와 공공기관 몇 군데가 한국인가요. 몇몇 돈 잘 버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한국인가요.


  사진으로 담기는 한국은 없습니다. 글로 담기는 한국은 없습니다. 그림으로 담기는 한국 또한 없습니다. 모두들 ‘없는 모습’에 휘둘리기만 합니다. 모두들 허울을 만들거나 세우기만 합니다. 내 삶을 들여다볼 때에 비로소 나를 깨닫고, 나를 깨달으면서 이웃과 동무를 사귈 수 있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귀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귀어야 비로소 밥을 짓고, 논밭에 씨를 뿌리며, 냇가에서 빨래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면서 바야흐로 사랑을 꽃피우고 꿈을 나누며 이야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이웃이요, 내가 당신한테 이웃입니다. 당신이 내 동무요, 내가 당신한테 동무입니다. 한국을 찾아온 아프리카라 하는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을 찾아온 아프리카인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사람한테 어떤 빛과 그림이 되어 어떤 슬기와 마음을 북돋울까 궁금합니다.


  얼굴사진은 얼굴사진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찍기에 얼굴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프리카사진이라 한다면 아프리카사진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찾아가 사진을 찍기에 아프리카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라도 한국을 말한다는 사진을 찍는다 할 수 있고, 누구라도 한국사람을 밝힌다는 사진을 찍는다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건 저렇게 밝히건, 어느 것도 사진이지는 않아요. 아무쪼록, 나 스스로 고운 이웃으로 웃음꽃 터뜨리고, 나부터 예쁜 동무 되어 눈물나무 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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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0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글의 저자들이 맘에 들어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사진도 좋아하고 시도 좋아해서 담는 것인지도...
아, 님의 리뷰가 맘에 들어 담는 것인지도... ^^

파란놀 2012-12-04 15:19   좋아요 0 | URL
그런데 품절 책이라 중고책이 있어야 사실 수 있어요.
'생각의나무'가 부스러기처럼 사라졌잖아요.
아시지요?

그나저나... 김중만 님 사진이나 황학주 님 시나...
'사람이 살아가는 밑넋'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은
그리 알뜰히 짚지는 못하는구나 하고 새삼 느꼈어요.

'아프리카'를 다루는 사진책이라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레니 리펜슈탈 : 아프리카>를 사 보셔요.

http://blog.aladin.co.kr/hbooks/5450631

이 글로 들어가시면, 이 책을 사는 길로 이어져요.
54000원밖에 안 하는 책인데,
이 책은 두고두고
눈이 '호강'하면서
평생 누리다가 아이들한테 대물림해 줄 수 있기까지 하답니다.

어떤 이는 레니 리펜슈탈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이녁이 102살까지 살며 이룬 '빛'을 들여다본다면,
이토록 '아프리카'를 싱그럽고 아름다이 사진으로 담은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아직 없다고 할 만해요.

페크pek0501 2012-12-06 14:47   좋아요 0 | URL
참고하겠습니다.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아
너희가 별이니까
하늘로 올라가
깜깜한 이 땅을
환하게
비추어 주렴.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도 별이니까
하늘로 함께 올라가
껌껌한 이 터를
맑게
같이 비추어요.

 


4345.10.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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