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아프리카
김중만 사진, 황학주 시 / 생각의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21

 


한국을 찾아온 아프리카
― 아프리카 아프리카
 김중만 사진,황학주 글
 생각의나무 펴냄,2005.11.1./9500원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사진쟁이 한 사람이 한국이라는 나라로 찾아온다면, 이녁은 어떤 모습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 나누는 사진을 찍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사람이 바라보기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베트남과 라오스와 스리랑카는, 네팔과 티벳과 인도네시아는, 저마다 어떻게 다르거나 비슷한 겨레이거나 나라로 받아들일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프리카는 ‘어느 한 나라’가 아닙니다. 아프리카는 ‘아시아’라는 이름처럼 큰 땅덩이를 가리킵니다. 콩고이든 수단이든 가나이든 짐바브웨이든 따로 나라를 하나하나 살피지 않고 크게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콩고 사진쟁이는 “아시아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과 중국 겨레를 크게 묶어서 보여줄 만하겠지요.


  그런데, 아프리카라 하는 넓은 땅덩이 가운데 어느 한 나라, 또 어느 한 마을, 또 어느 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던 사람은 ‘아시아’라 하는 넓은 땅덩이 가운데 어느 한 나라, 또 어느 한 마을, 또 어느 한 보금자리를 얼마나 깊거나 넓게 살필 만할까요. 수단사람이 담을 “아시아 아시아”는 아시아 빛깔을 얼마나 또렷하거나 환하게 보여준다고 할 만할까요.


  “아메리카 아메리카”라면, 또 “유럽 유럽”이라면, 이때에는 또 얼마나 다르거나 비슷한 삶자락과 삶자리를 사진으로 담아 보여줄 만할까요.


  한국사람은 아프리카를 모릅니다. 한국사람은 콩고도 수단도 나미비아도 마다가스카르도 모릅니다. 몇 차례 이들 나라로 찾아간 적은 있을 테지만, 이들 나라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찾아간’ 몇 도시나 몇 마을은 있을 테지만, 이들 나라를 알 수 없습니다.


  더 돌이켜보면, 한국사람은 한국을 모릅니다. 한국사람은 서울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서울땅 골골샅샅 누벼 보았을까요. 이 골목 저 골목뿐 아니라, 이 마을 저 마을, 이 보금자리 저 보금자리 두루 누비거나 누리면서 삶과 사랑과 꿈을 살포시 어깨동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을 둘러싼 인천, 부천, 수원, 안양, 의왕, 구리, 포천, 가평, 동두천, 파주, 문산, 강화, 김포, 광명 들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구, 부산, 대전, 광주, 울산 같은 큰도시는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통영, 고성, 간성, 울진, 강릉, 원주, 홍성, 당진, 영광, 화순, 장흥, 보성, 상주 들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느낍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고 느낍니다. 김중만 님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생각의나무,200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쟁이 김중만 님뿐 아니라 한겨레 어느 누구도 아프리카라는 넓은 땅덩이를 알려고 사랑을 쏟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알려고 애쓴들 알 수 없습니다. 알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모를 뿐이기에, 이런 지식과 저런 정보를 더 갖추거나 건사할수록 더욱더 모르는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나는 대통령을 모릅니다. 대통령은 나를 모릅니다. 나는 부자나 유명인사를 모릅니다. 부자나 유명인사는 나를 모릅니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굳이 알려고 마음을 조금도 안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서로서로 삶자리가 달라 얼굴 한 번이라도 스칠 일조차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정치 이야기를 들먹입니다. 여느 사람, 이른바 서민을 모르는 대통령이나 정치꾼이 자꾸 서민 이야기를 들먹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알 수는 없지만, 서로 ‘함께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살아갈 수 있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살아가면서 시나브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다큐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사진기 쥔 사람’과 ‘사진기 바라보는 사람’이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기에 사진을 빚습니다.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지 못한다면 사진을 못 빚습니다. 이를테면, ‘사고파는 물건’은 만들 수 있어도, 사진은 못 빚습니다. ‘어떤 작품을 바라는 이’한테 작품을 만들어 건넬 수 있어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일 뿐, 사진은 작품이 아니요, 사진은 물건이 아닙니다. ‘사진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양새’를 한대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람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양새를 한대서 사람이 되지 않아요. 사람과 같은 모양새라 하지만 마네킹이나 인형이 있어요. 사람처럼 말도 하고 움직이지만 꼭둑각시나 허수아비가 있어요. 꼭둑각시는 꼭둑각시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허수아비는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톱니바퀴는 톱니바퀴이지 사람이 아니에요. 쳇바퀴는 그예 쳇바퀴로 구를 뿐, 사람으로 흐르는 숨결이 아니에요.


  나는 고흥 시골숲에서 살아가지만 이웃 장흥숲을 모릅니다. 나는 고흥 시골바다에서 살아가지만 이웃 여수바다를 모릅니다. 나는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지만 이웃 해남 시골마을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고흥 시골숲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노는 고흥 시골바다를 보듬고 좋아합니다. 옆지기랑 오순도순 보금자리 일구는 고흥 시골마을이 살가우며 어여쁩니다.


  한국사람은 아프리카를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아프리카사람도 아프리카를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이들이 아프리카를 사진으로 담는다고 하면서 내놓는 것은 ‘작품’이나 ‘예술’이 될는지 모르나 ‘사진’은 못 됩니다.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도 아프리카를 찍은 사진책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아프리카라는 땅덩이를 두 다리로 밟으면서 찍기는 찍었되, 사진을 찍어서 빚은 책이 아니에요. ‘아프리카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담은 작품’일 뿐입니다. 김중만 님 모습을 ‘아프리카’라는 이름에 담아 보여줄 뿐입니다. 김중만 님 생각과 마음과 사랑과 삶을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붙여 드러낼 뿐입니다.


  무엇이 아프리카일까요. 기린이나 들짐승이 아프리카일까요. 몸에 무언가를 바르거나 바늘로 생채기를 내고는 맨발로 흙땅을 방방 뛰는 모습이 아프리카일까요. 새까만 살결이 아프리카일까요. 드넓은 모래밭이 아프리카일까요. 가난과 굶주림과 전쟁이 아프리카일까요.


  꽃송이가 아프리카일까요. 나무가 아프리카일까요. 흙땅이 아프리카일까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 아프리카일까요. 까맣게 별이 빛나는 밤이 아프리카일까요.


  한국은 무엇입니까. 끔찍하도록 넘치는 자가용 물결이 한국인가요. 지치지 않고 새로 짓는 골프장이 한국인가요. 골골샅샅 구멍을 파서 먹는샘물 뽑아대어 팔아치우는 공장이 한국인가요. 대기업 몇 군데와 공공기관 몇 군데가 한국인가요. 몇몇 돈 잘 버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한국인가요.


  사진으로 담기는 한국은 없습니다. 글로 담기는 한국은 없습니다. 그림으로 담기는 한국 또한 없습니다. 모두들 ‘없는 모습’에 휘둘리기만 합니다. 모두들 허울을 만들거나 세우기만 합니다. 내 삶을 들여다볼 때에 비로소 나를 깨닫고, 나를 깨달으면서 이웃과 동무를 사귈 수 있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귀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귀어야 비로소 밥을 짓고, 논밭에 씨를 뿌리며, 냇가에서 빨래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면서 바야흐로 사랑을 꽃피우고 꿈을 나누며 이야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이웃이요, 내가 당신한테 이웃입니다. 당신이 내 동무요, 내가 당신한테 동무입니다. 한국을 찾아온 아프리카라 하는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을 찾아온 아프리카인 사진책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사람한테 어떤 빛과 그림이 되어 어떤 슬기와 마음을 북돋울까 궁금합니다.


  얼굴사진은 얼굴사진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찍기에 얼굴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프리카사진이라 한다면 아프리카사진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찾아가 사진을 찍기에 아프리카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라도 한국을 말한다는 사진을 찍는다 할 수 있고, 누구라도 한국사람을 밝힌다는 사진을 찍는다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건 저렇게 밝히건, 어느 것도 사진이지는 않아요. 아무쪼록, 나 스스로 고운 이웃으로 웃음꽃 터뜨리고, 나부터 예쁜 동무 되어 눈물나무 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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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0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글의 저자들이 맘에 들어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사진도 좋아하고 시도 좋아해서 담는 것인지도...
아, 님의 리뷰가 맘에 들어 담는 것인지도... ^^

숲노래 2012-12-04 15:19   좋아요 0 | URL
그런데 품절 책이라 중고책이 있어야 사실 수 있어요.
'생각의나무'가 부스러기처럼 사라졌잖아요.
아시지요?

그나저나... 김중만 님 사진이나 황학주 님 시나...
'사람이 살아가는 밑넋'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은
그리 알뜰히 짚지는 못하는구나 하고 새삼 느꼈어요.

'아프리카'를 다루는 사진책이라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레니 리펜슈탈 : 아프리카>를 사 보셔요.

http://blog.aladin.co.kr/hbooks/5450631

이 글로 들어가시면, 이 책을 사는 길로 이어져요.
54000원밖에 안 하는 책인데,
이 책은 두고두고
눈이 '호강'하면서
평생 누리다가 아이들한테 대물림해 줄 수 있기까지 하답니다.

어떤 이는 레니 리펜슈탈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이녁이 102살까지 살며 이룬 '빛'을 들여다본다면,
이토록 '아프리카'를 싱그럽고 아름다이 사진으로 담은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아직 없다고 할 만해요.

페크pek0501 2012-12-06 14:47   좋아요 0 | URL
참고하겠습니다.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