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갖춰서 즐길 책

 


  언제나 웃음짓는 꿈 솟아오르는 이야기 느끼도록 이끄는 책일 때에 즐겁게 갖춰서 읽는 책이 된다고 느낀다. 웃음짓는 꿈이 언제나 샘솟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다루지 못하거나 건드리지 못한다면, 굳이 돈을 들여 살 까닭이 없는데다가, 애써 펼쳐서 살피거나 훑을 값어치조차 없다고 느낀다.


  이 책 저 책 몽땅 읽어야 하지 않는다. 온누리에 새로 쏟아지는 숱한 책을 낱낱이 훑어야 하지 않는다. 새로 나오는 책을 널리 알려야 하지 않는다. 서로 즐겁게 나누면서 다 함께 아름다운 꿈 길어올릴 만한 책을 골고루 살펴서 ‘알맞다 싶은 때’에 두루 나누면 즐거우리라 느낀다.


  때로는 책 하나를 여러 차례 이야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나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는 삶이 되도록 이끄는 살가운 길벗 같은 책이라 한다면, 이러한 책을 열 차례 읽고는 느낌글을 열 꼭지 다 다르게 쓸 만하다. 아름다운 이야기 물씬 흐르니까. 아름답지 못하고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다문 한 쪽조차 읽을 까닭이 없다. 어여쁘지 못하고 살갑지 못하다면, 애써 쳐다보아야 할 까닭조차 없다.


  책값을 살펴 책을 사지 않는다. 책을 살펴 책을 산다. 읽을 만한 책을 살필 뿐, 주머니를 살피지 않는다. 즐거이 누릴 삶으로 이끄는 아리따운 책을 돌아볼 뿐, 살림돈이 얼마쯤 되기에 책 몇 권 살 만한가를 따지지 않는다.


  내가 갖춰서 즐기는 책은 내 삶을 빛내는 책이 된다. 이 책들은 먼 뒷날 우리 아이들 삶을 빛내는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요, 나는 나인 만큼, 나는 내 삶을 북돋울 책을 장만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녁 어버이인 나와 옆지기가 장만해서 읽은 책을 찬찬히 살피다가 저희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 있으면 기쁘게 뽑아서 읽을 테고, 우리 두 사람 책시렁에서 저희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책을 찾지 못하면 기쁜 넋으로 새롭게 책방마실을 다니며 아름다운 책을 찾아나서겠지.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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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바나나

 


  어디를 가더라도 바나나값이 매우 싸다. 한국에서는 바나나나무를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는데, 나라밖에서 사들이는 바나나값이 몹시 싸다.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감알 하나 값이 무척 싼데, 감알 싼 값을 헤아리고 보면, 바나나값이 훨씬 싼 셈 아닌가 싶다.


  한국사람은 바나나를 얼마나 많이 자주 사다가 먹을까. 한국사람이 먹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바나나는 참으로 어느 나라에서 얼마나 커다란 바나나밭을 일구어서 거두어야 할까. 바나나 한 송이 값이 천 원짜리 종이돈 한두 닢으로도 넉넉하다면, 이 바나나를 사들이는 회사와 이 바나나를 파는 과일집과 이 바나나를 내다 파는 이웃나라 회사는 ‘돈을 얼마나 버는’ 셈일까. 이리하여, 바나나밭을 일구는 나라에서 바나나를 돌보고 따며 갈무리하는 ‘시골 흙일꾼’은 일삯을 얼마나 받을까.


  아이들과 읍내 저잣거리 나오는 길에 이웃마을 할배가 시금치 잔뜩 담은 큼지막한 꾸러미 셋을 낑낑 짊어지고 군내버스에 실어 읍내에 내다 파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읍내 나물집에서는 큼지막한 시금치보따리 하나를 고작 7000원에 사들인다. 그나마 두 꾸러미만 사 주었기에 시골 할배는 버스삯 4000원을 들여 1만 원을 버는 셈인데, 나물집이든 하나로마트이든 면소재지 가게이든 시금치를 참 싸게 파는 까닭을 알 만하다. 시골 흙일꾼이 씨앗을 뿌려 돌보아 거둔 시금치를 잘 손질하기까지 해서 도매상이나 읍내 가게에 내다 팔아도 아주 푼돈을 쥐어 주니, 여느 사람들은 시금치를 더없이 싼값에 사다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시금치 한 묶음 제값을 치르려면 얼마쯤 되어야 할까. 배추 한 포기 제값을 치르려면 얼마쯤 되어야 할까. 100만 원짜리 손전화 기계나 1000만 원짜리 사진 기계나 1억 원짜리 자가용은 얼마나 제값을 한달 수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제몫을 찾아 주려고 힘쓰는 사람들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시골로 와서 시골 흙일꾼하고 어깨동무할 날은 언제쯤 될까.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다며 떠드는 지식인과 평론가와 교수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시골로 와서 시골 흙일꾼 삶자락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눈여겨 바라보는 이가 있을 날은 언제쯤 될까.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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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2 : 한 줄에서 읽는 넋

 


  우리는 굳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읽고 싶은 사람이 읽을 노릇이지만, 읽고 싶은 사람이 읽고 싶은 대로 읽되, 스스로 넋과 삶과 말을 아름답게 북돋우려는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즐거이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나 아무 책을 골라 아무렇게나 읽는대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아무나 아무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쓴대서 글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밥하기도, 빨래하기도, 아이돌보기도 늘 이와 같습니다. 아무나 아무 아이를 골라서 아무렇게나 돌본대서 아이돌보기라 하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깊이 우러나오는 따순 사랑으로 돌볼 때에 비로소 아이돌보기예요. 값진 먹을거리를 손질해서 차려야 멋스럽거나 맛난 밥하기라 하지 않아요. 값싼 먹을거리이든 아니든, 스스로 가장 너른 사랑과 꿈결을 담는 가장 따사로운 손길로 먹을거리를 다루며 밥 한 그릇 차릴 때에, 비로소 밥하기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이 말놀이 삼아 “너, 야구의 ‘야’가 무언지 아느냐?” 하고 묻곤 했습니다. 비슷한 말꼴로 “너, 공부의 ‘공’아 무언지 아느냐?” 하고도 물으며, “너, 학교의 ‘학’이 무언지 아느냐?” 하고 묻기도 했어요. 동무들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하다가, 시험을 앞두고 ‘아무 생각 없이’ 시험점수 따는 공부를 하다가,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다가 이 물음을 곰곰이 되뇝니다. 그래, 참말 야구란 뭐지? 참말 공부란 뭐지? 참말 학교란 뭐지?

 

  이 물음은 가지를 뻗습니다. 삶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밥은 무엇일까? 흙은 무엇일까? 온누리는 무엇일까? 달과 별과 해는 무엇일까?


  나는 어느 한 가지조차 대꾸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짓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어느 한 가지조차 풀이말을 달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한 가지를 느낍니다. 나 스스로 ‘아무 생각 없이’ 휩쓸리거나 이끌린다면, 나는 무엇 하나라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자장노래를 부를 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오랜 동무를 불러 이야기꽃 피울 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 수 없어요.


  언제나 생각해야 해요. 언제나 내 삶을 돌아봐야 해요. 언제나 내 사랑이 얼마나 따뜻하거나 너른가 생각해야 해요. ‘반드시 무얼 해야 한다’라는 굴레가 아니라, ‘즐기는 삶은 어떤 빛일까’라는 꿈을 품는 길이로구나 싶어요.


  야마오 산세이 님 이야기를 갈무리한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이라는 두툼한 책을 읽다가 “배운다고 하면 무슨 대단한 공부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감동을 받는다는 말입니다(225쪽).”라 나오는 한 줄에 밑줄을 반듯하게 긋습니다. 나는 시골마을 시골숲을 바라보며 예쁜 삶을 배웁니다. 나는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오면서 고운 삶을 누립니다. 나는 날마다 밥짓고 빨래하면서 멋진 삶을 나눕니다. 나는 아름다운 책 하나에 깃든 어여쁜 글 한 줄을 읽으며 환한 꿈을 꿉니다.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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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보고 싶은 사진이란

 


  내가 보고 싶은 사진이란, 내가 찍고 싶은 사진입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좋거나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기쁘거나 신나거나 보람차거나 멋지다고 느낄 적에 비로소 ‘사진으로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진이 없던 지난날에는 어떠했을까요. 사진이 있는 오늘날에는 기계를 빌려 종이에 앉히거나 파일에 담아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서 들여다봅니다. 사진을 누구나 흔히 즐기는 오늘날 흐름에서는 ‘사진이 없던 때’를 떠올리기 쉽지 않을는지 모릅니다만, 1980년대를 살거나 1950년대를 살거나 1910년대를 살거나 1700년대를 살아갈 내 모습을 헤아려 보셔요. 500년대나 기원전 어느 한때를 그려 보셔요. 그 옛날 내 삶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느낄 적, 나는 어떻게 할까요.


  사진이 태어나기 앞서 그림이 있었겠지요. 그림을 빌어 내가 느낀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담았겠지요. 그러면 글은? 말은? 글이나 말은 언제 왜 태어났을까요. 서로 생각을 나누거나 이야기를 꽃피우려고 글이나 말이 태어났달 수 있습니다만, 글도 말도 없을지라도 생각을 나눌 수 있고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우리한테는 마음이 있거든요. 마음으로 얼마든지 생각을 나눌 수 있어요.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이야기꽃은 언제라도 흐드러지게 누릴 수 있어요.


  깊고 깊은 바다에서 고래들이 서로 이야기 주고받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고래들은 바닷속에서 ‘고래끼리 주고받는 결’을 빌어 수백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도 생각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요. 사람은 이 결을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때때로 ‘고래 노랫소리’를 듣기도 한대요. 바닷속에서 ‘고래 노랫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는 이 지구별에 없다고까지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타내기에 ‘고래 노랫소리’이지, 고래는 소리가 아닌 어떤 ‘결’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해야 옳지 싶어요. 이른바 ‘텔레파시’이든 무엇이든 말예요.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코난과 라나는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아요. 가장 맑고 밝은 마음을 열면 아무리 멀리 떨어진 데에 있더라도 마음읽기를 해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이 아이들은 어버이인 나한테 늘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넨다고 생각합니다. 참말 언제나 ‘마음말’을 느껴요. 입술을 달싹여 낱말을 내뱉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눈빛으로 어깻짓으로 몸빛으로 손짓으로 저희 느낌과 생각을 드러내요. 이러한 ‘마음말’을 어버이인 내가 읽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일 때가 있으나, 못 읽거나 안 느끼거나 미처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어요.


  먼먼 옛날, 사진도 그림도 글도 말까지도 없던 옛날을 그려 봅니다. 아마 그무렵에는 어느 사람한테도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이나 말은 부질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구태여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남기고 싶은 모습’을 얼마든지 마음밭에 남길 테니까요. ‘아로새기고 싶은 이야기’라면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마음밭에 아로새길 테니까요.


  나는 가끔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사진기이건 그림종이이건 하나도 없지만, 동무들과 신나게 뛰놀던 모습을 아주 환하게 마음속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 내 마음을 읽는다면 ‘아하, 그러게요. 그때 당신은 이렇게 웃으며 뛰놀았네요.’ 하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고마웠던 일 반갑던 일 괴롭던 일 모두 하나하나 환하게 떠올릴 수 있어요. 따로 사진을 안 보더라도 떠올릴 수 있어요. 사진을 찍었기에 ‘그래, 그렇지. 그때에는 그랬어.’ 하고 되새길 때가 있습니다. 사진을 안 찍더라도 지난 한때 내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기는 고운 이야기를 되새기곤 해요.


  보고 싶은 사진이란, 참말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이 되겠지요. 그리고, 보고 싶은 사진이라 한다면 굳이 사진기를 들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보고 싶은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아로새겨졌으니까요. 내가 떠올리려고만 하면 그 예쁘고 멋지며 신나는 모습을 실컷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사진을 즐겁게 찍으려 하는 분들은 이 마음결을 잘 건사하기를 빌어요. 사진은 없어도 되며, 사진이 있기에 한결 즐거운 삶인 줄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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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묻이

 


  고흥집에서는 마당에 빨래를 널다가 집안으로 들여 옷걸이에 꿰어 널면 어느새 보송보송 마르는 겨울빨래인데, 옆지기 어버이 지내는 일산집에서는 방바닥 이불 밑에 어느 만큼 마른 빨래를 판판하게 깔아야 비로소 보송보송 마른다. 이레째 일산집에 머물며 한밤에 틈틈이 깨어 이불 밑 빨래를 뒤집는다. 빨래 때문에 일부러 깨지는 않는다. 옆에 누운 아이들이 자다가 자꾸 이불을 걷어차니까 이불을 다시 여미느라 부시시 깨어 이불을 덮어 주고는 빨래를 뒤집는다. 바깥마실 하느라 아이들 옷가지는 몇 벌 안 챙겼기에, 아이들 모두 잠들고 나서 아이들 이듬날 입을 옷을 바지런히 빨아서 말린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기 앞서 아이들이 새 아침에 입을 옷이 모두 마른다. 잘 되었다. 잘 되었어.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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