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바나나

 


  어디를 가더라도 바나나값이 매우 싸다. 한국에서는 바나나나무를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는데, 나라밖에서 사들이는 바나나값이 몹시 싸다.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감알 하나 값이 무척 싼데, 감알 싼 값을 헤아리고 보면, 바나나값이 훨씬 싼 셈 아닌가 싶다.


  한국사람은 바나나를 얼마나 많이 자주 사다가 먹을까. 한국사람이 먹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바나나는 참으로 어느 나라에서 얼마나 커다란 바나나밭을 일구어서 거두어야 할까. 바나나 한 송이 값이 천 원짜리 종이돈 한두 닢으로도 넉넉하다면, 이 바나나를 사들이는 회사와 이 바나나를 파는 과일집과 이 바나나를 내다 파는 이웃나라 회사는 ‘돈을 얼마나 버는’ 셈일까. 이리하여, 바나나밭을 일구는 나라에서 바나나를 돌보고 따며 갈무리하는 ‘시골 흙일꾼’은 일삯을 얼마나 받을까.


  아이들과 읍내 저잣거리 나오는 길에 이웃마을 할배가 시금치 잔뜩 담은 큼지막한 꾸러미 셋을 낑낑 짊어지고 군내버스에 실어 읍내에 내다 파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읍내 나물집에서는 큼지막한 시금치보따리 하나를 고작 7000원에 사들인다. 그나마 두 꾸러미만 사 주었기에 시골 할배는 버스삯 4000원을 들여 1만 원을 버는 셈인데, 나물집이든 하나로마트이든 면소재지 가게이든 시금치를 참 싸게 파는 까닭을 알 만하다. 시골 흙일꾼이 씨앗을 뿌려 돌보아 거둔 시금치를 잘 손질하기까지 해서 도매상이나 읍내 가게에 내다 팔아도 아주 푼돈을 쥐어 주니, 여느 사람들은 시금치를 더없이 싼값에 사다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시금치 한 묶음 제값을 치르려면 얼마쯤 되어야 할까. 배추 한 포기 제값을 치르려면 얼마쯤 되어야 할까. 100만 원짜리 손전화 기계나 1000만 원짜리 사진 기계나 1억 원짜리 자가용은 얼마나 제값을 한달 수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제몫을 찾아 주려고 힘쓰는 사람들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시골로 와서 시골 흙일꾼하고 어깨동무할 날은 언제쯤 될까.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다며 떠드는 지식인과 평론가와 교수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시골로 와서 시골 흙일꾼 삶자락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눈여겨 바라보는 이가 있을 날은 언제쯤 될까.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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