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92 : 한 줄에서 읽는 넋
우리는 굳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읽고 싶은 사람이 읽을 노릇이지만, 읽고 싶은 사람이 읽고 싶은 대로 읽되, 스스로 넋과 삶과 말을 아름답게 북돋우려는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즐거이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나 아무 책을 골라 아무렇게나 읽는대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아무나 아무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쓴대서 글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밥하기도, 빨래하기도, 아이돌보기도 늘 이와 같습니다. 아무나 아무 아이를 골라서 아무렇게나 돌본대서 아이돌보기라 하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깊이 우러나오는 따순 사랑으로 돌볼 때에 비로소 아이돌보기예요. 값진 먹을거리를 손질해서 차려야 멋스럽거나 맛난 밥하기라 하지 않아요. 값싼 먹을거리이든 아니든, 스스로 가장 너른 사랑과 꿈결을 담는 가장 따사로운 손길로 먹을거리를 다루며 밥 한 그릇 차릴 때에, 비로소 밥하기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이 말놀이 삼아 “너, 야구의 ‘야’가 무언지 아느냐?” 하고 묻곤 했습니다. 비슷한 말꼴로 “너, 공부의 ‘공’아 무언지 아느냐?” 하고도 물으며, “너, 학교의 ‘학’이 무언지 아느냐?” 하고 묻기도 했어요. 동무들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하다가, 시험을 앞두고 ‘아무 생각 없이’ 시험점수 따는 공부를 하다가,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다가 이 물음을 곰곰이 되뇝니다. 그래, 참말 야구란 뭐지? 참말 공부란 뭐지? 참말 학교란 뭐지?
이 물음은 가지를 뻗습니다. 삶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밥은 무엇일까? 흙은 무엇일까? 온누리는 무엇일까? 달과 별과 해는 무엇일까?
나는 어느 한 가지조차 대꾸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짓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어느 한 가지조차 풀이말을 달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한 가지를 느낍니다. 나 스스로 ‘아무 생각 없이’ 휩쓸리거나 이끌린다면, 나는 무엇 하나라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자장노래를 부를 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오랜 동무를 불러 이야기꽃 피울 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 수 없어요.
언제나 생각해야 해요. 언제나 내 삶을 돌아봐야 해요. 언제나 내 사랑이 얼마나 따뜻하거나 너른가 생각해야 해요. ‘반드시 무얼 해야 한다’라는 굴레가 아니라, ‘즐기는 삶은 어떤 빛일까’라는 꿈을 품는 길이로구나 싶어요.
야마오 산세이 님 이야기를 갈무리한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이라는 두툼한 책을 읽다가 “배운다고 하면 무슨 대단한 공부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감동을 받는다는 말입니다(225쪽).”라 나오는 한 줄에 밑줄을 반듯하게 긋습니다. 나는 시골마을 시골숲을 바라보며 예쁜 삶을 배웁니다. 나는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오면서 고운 삶을 누립니다. 나는 날마다 밥짓고 빨래하면서 멋진 삶을 나눕니다. 나는 아름다운 책 하나에 깃든 어여쁜 글 한 줄을 읽으며 환한 꿈을 꿉니다.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