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18] 가득 넣어요

 


  장인어른 짐차를 얻어타고 돌아다니다가 기름집에 들릅니다. 창문을 열고 기름집 일꾼한테 이야기합니다. “가득 넣어 주셔요.” “네.” 기름집 일꾼을 바라보며 ‘가득’이라 말하면서 아직 내 마음 한켠 조마조마합니다. 설마 이곳 일꾼은 ‘가득’이라는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웬만한 기름집마다 ‘만땅’이나 ‘엥꼬’ 같은 일본말을 쓰는 일이 거의 없지 싶지만, 틀림없이 어느 곳에서는 이런 일본말 아니면 듣지 않을 수 있고, 어느 분은 이런 일본말 아니고는 말을 못할 수 있어요. 장인어른은 기름집 일꾼한테 “가득 넣어요.” 하고 말씀하시지만, 차를 댈 적에는 “오라이! 오라이!” 하고만 말해요. “괜찮아요. 됐어요.” 하고 말하면 못 알아들으셔요. 아주 천천히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 자취를 감추기는 하는데, 이러는 동안 영어가 슬금슬금 기어들어요. 내 동무 가운데 어느 녀석은 기름집에서 “풀!”이라고 말해요. 뭔 소리인가 했더니, 영어 ‘full’이에요. 나랑 내 식구들은 시골에서 지내고 자가용이 없으니, 온 나라 기름집마다 어떤 말이 오가고, 자가용 모는 분들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는지 잘 몰라요. 아마 참 엉터리 같구나 싶은 말마디를 내뱉는 분이 있을 수 있어요. 왜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말로 따사로이 말을 나눌 생각을 못할까요. 왜 우리들은 슬픈 사람이 되면서 슬픈 줄조차 못 느낄까요. 4345.1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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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요가 중
수지 아네트 지음, 김덕 사진, 고진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내 마음속 하느님을 찍는 사진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5 : 김덕, 《아기는 요가 중》(바다출판사,2006)

 


  어른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어른들이 사진잔치를 엽니다. 어른들이 사진책을 내놓고, 사진비평을 하며, 사진강의를 합니다.


  어른들은 사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찍을까요. 어른들은 사진으로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기에 사진잔치를 열까요. 어른들은 스스로 어떤 꿈을 누리는 삶이기에 사진책을 엮을까요. 어른들은 이웃이랑 어떤 넋으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비평을 할까요. 어른들은 어떤 삶말을 아끼면서 사진강의를 펼치거나 듣는가요.


  아이들 사진을 담은 《아기는 요가 중》(바다출판사,2006)이라는 사진책을 읽으며 오래오래 생각에 잠깁니다. 사진책 《아기는 요가 중》을 읽다 보면, “나마스테, 내 안에 있는 신이 그대 안에 있는 신을 알아봅니다.” 하는 대목이 슬며시 나옵니다. 그래요. 아이들 모습이 하느님을 닮아 아이들 모습을 사랑스럽게 사진으로 담지는 않아요.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참말 너희는 하느님을 닮았구나’ 하고 느끼는 ‘사진기 손에 쥔 어른’ 또한 스스로 하느님이기에, 아이들 눈빛을 맑게 들여다보며 ‘하느님 모습을 사진으로 옮길’ 수 있어요.


  믿기 힘들다고요? 그러면 생각을 기울이셔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어른인 당신도 스무 해 앞서, 또는 마흔 해 앞서, 또는 예순 해 앞서, 더없이 사랑스러우며 해맑은 어린이였어요. 비록 오늘 당신은 ‘어른이 되면서’ 맑은 눈빛과 고운 손길과 환한 말빛을 잃거나 잊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코앞에서 마주하는 동안 시나브로 ‘어린이마음’으로 돌아가요. 어른인 당신 스스로 어린이마음으로 돌아가면서, 비로소 당신 또한 하느님인 줄 새삼스레 깨닫고는, 아이들 가슴속에 깃든 하느님을 사진으로 드러낼 수 있어요.


  마음을 읽으며 사진을 찍어요. 마음을 나누며 사진을 나눠요. 마음을 아끼며 ‘내 사진에 담기는 이웃사람 삶’을 나란히 아껴요.


  이웃을 사랑할 때에 이웃을 사진으로 담는다지만, 이웃사랑에 앞서 무엇보다 ‘참다운 나를 사랑하는 넋과 눈길과 손길’이어야, 이웃 앞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어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느 이웃을 사랑하겠어요.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어느 동무한테 너 좋아해 하고 말하겠어요. 내가 나를 즐기거나 누리지 않는데, 어찌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즐기겠어요.


  스스로 고운 손길 북돋아 주셔요. 사진기를 쥘 적에는 언제나 고운 손길 되어 주셔요. 그리고, 사진기를 내려놓고 연필을 쥐거나 부엌칼을 쥐거나 걸레를 쥐거나 빨래집게를 쥘 적에도 고운 손길로 이어지도록 북돋아 주셔요. 회사에 나가 일을 하든, 가게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든, 언제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고운 손길 아름다운 한 사람 되어 주셔요. 이때에 시나브로 사진빛 환하게 온누리를 따사로이 적시리라 믿어요.


  아이들은 내 앞에서 요가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내 앞에서 하느님 몸짓을 해요. 자, 아이들 앞에 선 어른인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당신도 아이들 앞에 서서 하느님다운 몸짓으로 웃나요. 그저 사진기 단추만 눌러대나요. 아이들과 같은 하느님 되어 서로 맑게 뛰놀고 까르르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리는가요. 4345.12.11.불.ㅎㄲㅅㄱ

 


― 아기는 요가 중 (김덕 사진,수지 아네트 글,고진하 옮김,바다출판사 펴냄,2006.11.20./8500원)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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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선물하는 책읽기

 


  고흥을 나서면서 감 한 꾸러미를 장만한다. 지난해를 헤아리면 올해 감값은 살짝 올랐다 할 텐데, 서울에서 사람들이 사다 먹을 감값을 헤아리면 아주 싸다. 게다가 마을 감나무에서 딴 감이니,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길러서 딴’ 감인지 또렷하게 알 수 있기도 하다. 흔한 말로 ‘그냥 국내산’이 아니라 ‘우리 마을 예쁜 감’이다. 지난해에는 유자나 석류나 참다래를 들고 나와서 다른 고을 이웃한테 선물해 보곤 했는데, 유자나 석류나 참다래를 받은 분들 낯빛이 그닥 ‘반갑다’고 느끼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차를 달여 마시도록 잘게 썰어 말려서 달게 재운 유자가 아닌, 돌멩이처럼 단단한 울퉁불퉁 유자 열매일 때에는, ‘나더러 이를 어쩌라구?’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면, 참다래쯤은 사람들이 가끔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석류를 애써 사다 먹는 사람은 드물다. 가게에서 ‘석류 이름을 갖다 붙인 어설픈 음료수’를 사다 마시는 사람은 있지만, 정작 ‘참 석류’를 사다가 손수 짜서 ‘참 석류맛’을 느끼려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고흥을 나서는 길에 감 한 꾸러미를 낑낑 짊어지면서 생각에 잠긴다. 내가 고흥으로 들어와 살기 앞서, 아직 인천에서 살던 때, 또 충북 음성에서 살던 때, 따로 ‘감을 사다 먹은’ 일은 드물다. 음성에서는 집 언저리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 먹기는 했지만, 굳이 감을 틈틈이 한 꾸러미씩 사다가 섬돌에 올려놓고는 하루에 몇 알씩 우걱우걱 껍질째 씹어먹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인천에서든 음성에서든 바나나를 꽤 자주 사다 먹었고, 능금이라든지 배라든지 귤을 곧잘 사다 먹었구나 싶다.


  문득 돌아보면, 도시사람은 감을 잘 안 사다 먹는다. 마당을 두어 감나무를 키워 먹는 이도 아주 적다. 도시사람 가운데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프다 생각하는 사람이 가끔 있기는 있되, ‘마당 있는 집’을 장만해서 살자면 어떻게 해야 즐거울는지 찬찬히 살피며 이 삶길을 씩씩하게 걷는 사람은 참으로 적다. 그러니까, 집에 열매나무 한두 그루 심어서, 열매나무를 손수 거두는 사랑과 꿈을 키우지 못한다. 언제나 열매를 가게나 길거리에서 사다가 먹을 뿐이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일군 열매나무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시골에서 어떤 햇살과 바람과 빗물을 먹으면서 자란 열매나무에 맺힌 꽃이 지면서 돋는 열매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얘기부터 하자면, 나는 인천에서 살던 때, 석류꽃이든 감꽃이든 배꽃이든 능금꽃이든 거의 못 보았다. 골목마실을 하면서 이웃집 마당 한켠에서 자라나며 피는 석류꽃이랑 감꽃이랑 배꽃이랑 능금꽃이랑 호두꽃이랑 밤꽃이랑 탱자꽃이랑 대추꽃이랑 …… 애써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찍기는 했지만, 내 삶으로 살포시 스며들기는 못했다. 옆지기가 꿈꾸는 결을 살펴서 시골로 삶터를 옮겨 아이들과 시골살이를 누리는 동안 천천히 깨닫는다. 나 또한 마음속 깊이 시골살이를 바랐고, 시골에서 살아가며 내 넋이랑 눈이랑 빛이 차츰 환하게 트는구나 싶다. 이러면서 들꽃과 나무꽃을 예쁘게 들여다보는 눈썰미를 키운다. 들꽃과 나무꽃을 예쁘게 들여다보는 아버지 곁에서 아이들도 들꽃이랑 나무꽃을 예쁘게 들여다본다. 그래, 그렇구나, 아버지부터 스스로 예쁘게 살면, 아이들은 스스로 야물딱지게 예쁜 손길을 북돋우는구나. 예쁜 어버이와 예쁜 아이이지, 어버이는 못난 길을 거닐면서 아이들만 예쁘라 바랄 수 없구나.


  인천에서 지내는 이웃들을 한 사람씩 만나며 감을 열 알씩 선물한다. 감알 열을 찬찬히 내려놓으며 내 가방은 가벼워진다. 헌책방 일꾼들한테, 마을사진관 지기한테, 옛 단골 튀김닭집 아저씨한테, 우리 형한테, 감 열 알씩 선물한다. 우리 형은 감을 무척 좋아하고 잘 먹는단다. 그랬나? 그렇구나. 형과 동생 사이인데, 어쩜 처음 알았네. 고흥으로 돌아가면 형네 집에 감 한 꾸러미를 부쳐야겠네. 이제 스무 알 남은 감을 몇 사람한테 더 선물할 수 있을까. 그래, 화평동 그림할머니한테 찾아가 열 알을 드려야지. 그리고 열 알은? 음, 열 알은 고흥으로 돌아가기까지 마주칠 분들한테 한 알씩 나누어 줄까. 달콤한 감맛과 상큼한 감내음과 맑은 감빛을 두루 즐길 수 있기를 빈다. 4345.1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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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지리산

 


  겨울이 되어도 영 도 밑으로 내려갈 일이 아주 드문 고흥땅에서는, 눈발이 날린다 하더라도 내리자마자 녹는다. 다른 곳에서는 펑펑 쏟아지는 눈 때문에 길이 막힌다느니 어쩐다느니 하지만, 참말 고흥에서는 눈 구경조차 힘들고, 쌓인 눈마저 볼 수 없다. 그런 고흥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고흥을 벗어나 인천으로 오는 길에 다른 시골을 바라보는데, 구례를 지나면서 지리산을 보고는, 아, 소리가 절로 터져나온다. 그렇구나, 눈이 소복히 쌓여 하얀 산이 되는구나. 지리산이 저렇게 새하얀 겨울산이구나. 참 예쁘네. 구례나 하동이나 곡성이나 남원 사람들은 춥다고, 겨울에 덜덜 떨린다고 할 테지만, 이 어여쁜 새하얀 멧자락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새하얀 사랑이 찬찬히 피어나겠지. 4345.12.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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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2-11 00:28   좋아요 0 | URL
추워서 그렇지 겨울산이 참 멋있지요^^

파란놀 2012-12-11 07:26   좋아요 0 | URL
네, 산은
겨울에도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참 아름다운 숨결을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인천으로 온 글쓰기

 


  갑작스레 고흥에서 인천까지 날 듯 찾아온다. 옆지기 여동생 시집잔치에 찾아가려고 일산으로 마실을 하며 이레를 보낸 뒤, 장인어른이 우리 식구를 일산부터 고흥까지 눈길을 열 시간 달려 데려다주었는데, 장인어른이 고흥에서 닷새를 묵고 일산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길이라, 먼길 홀로 가시면 힘드리라 여긴 옆지기가 나더러 서울이나 인천에 볼일을 만들라 해서 바지런히 머리를 굴려 ‘그래 맞아, 내 사진기가 망가졌지? 사진가 맡기러 가자! 게다가 형을 본 지 오래되었잖아. 형 얼굴도 보러 가자!’ 하고 볼일을 만든다. 그러고는 바삐 짐을 꾸려 장인어른과 짐차에 타고 고흥부터 인천까지 여섯 시간을 달린다.


  눈이 걷힌 길이기에 여섯 시간만에 고흥서 인천까지 닿는다. 장인어른은 인천서 일산으로 삼십 분만 달리면 된다. 나는 인천에 닿아 여러 어른들한테 들러 인사를 하고, 신포동 닭집 어른한테는 튀김닭 한 마리를 선물로 얻어 송월동 형네 집으로 찾아온다. 형은 오븐을 집에 들여 빵을 굽는다. 빵이 될는지 과자가 될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븐을 장만해서 무언가 굽는다는 생각까지 해 보지 못했는데, 우리 형은 혼자 살림을 꾸리면서 이것저것 재미나게 즐기는구나.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해 보았을까. 아이들은 옆지기랑 시골집에서 알콩달콩 복닥이면서 재미난 하루를 누리다가 새근새근 잠들려나.


  모두들 사랑스러운 저녁을 맞이하면서 어여쁜 밤을 고요히 잠들 수 있기를 빈다. 나도 형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인천 이웃님들도, 또 시골과 서울서 살아가는 이 땅 모든 사람들도. 4345.12.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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