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다짐으로, 이웃 서재에 댓글을 하루에 스무 꼭지쯤 남겨 보자 했는데, 막상 1월 지나고 5월 흘러 12월이 다가오니, 댓글 달 일이 차츰 줄어든다. 나로서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글이 아니고서야 댓글 달 일이 없다. 집에서 아이들과 복닥거리며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 꾸리느라 빠듯한 틈틈이 글을 써서 띄우니까, 이냥저냥 지식조각을 다루는 글일 때에는 차마 읽지도 못한다.

 

저마다 예쁘게 살아가는 나날이 아름답기에, 삶이야기를 쓸 때가 가장 재미난데, 이 재미를 다들 제대로 모를까.

 

서재 이웃님이, 당신이 단 댓글로 글 하나 쓰셨기에, 문득 떠올라, 나도 '내가 남긴 댓글' 가운데 요즈음 것만 갈무리해서 걸쳐 본다.

 

..

 


→ 언제나 즐거이 잘 하시리라 믿어요~  12-12-11

 

→ 연예인 되면... 참... 뜯어고칠 수밖에 없잖아요...  12-12-11

 

→ 음... 역사 이야기는 나중에 디브이디로 보여주고요... 아직 류는 아름다운 생각으로 사랑을 꽃피울 때이니까 아름다운 영화를 더 보여주시기를 빌어요. <요시노 이발관> <수영장> <안경>처럼 아름다운 영화도 많은걸요. 저희는 이런 영화는 디브이디로 사 놓고 아주 나중에 보여주려고 한답니다 ^^  12-12-11

 

→ 딸아이가 1000권이면 참 대단해요. 그래도, 요즈음은 아름답고 좋은 책이 퍽 많아 1000권 읽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구나 싶어요. 스무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1000권 가려내어 읽기가 만만하지 않았구나 싶고, 마흔 해쯤 앞서를 헤아리면 1000권을 읽는 일이란 퍽 어려운 일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무튼 예쁜 선물 해 주셔요~ 저는 한 해에 '느낌글' 1000 꼭지를 써 보고 싶은데 아직 뜻대로 안 되네요 ^^;;;  12-12-09

 

→ 사람들이 신문도 방송도 안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가면 되리라 느껴요..  12-12-09

 

→ 따스한 이야기 언제나 즐거이 누리시기를 빌어요 그러면 따스한 사진도 따스한 책도 늘 곱게 찾아들겠지요  12-12-08

 

→ 고요한 마음으로 고요한 하루 오래오래 누리시기를 빌어요  12-12-06

 

→ 이런 책도 읽으면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겠지만, '사랑스러운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책으로 더 살가운 하루를 느끼면서 아이들과 즐거이 하루 누리시기를 빌어요.  12-12-06

 

→ 아, 고흥 아주머니이시군요. 저는 고흥 아저씨입니다 ^^;;; 첫 걸음 힘내셔요  12-12-06

 

→ 눈이 내리면 천천히 걸어가면 돼요. 신도 바지도 치마도 다 젖겠지만, 즐겁게 빨면 되지요. 이렇게 내리는 눈을 누릴 수 있는 삶이기에 즐거워요. 다만... 전남 고흥에서는 눈을 못 본답니다 ^^;; 날씨도 영상인걸요 @,.@  12-12-06

 

→ 이것도 저것도 아닌 '즐거움'을 골라서 살아가면 되리라 믿어요  12-12-06

 

→ 저는 엠파스하고 네이버 두 가지만 써요. 엠파스는 오랫동안 써서 쓰는데, 네이버는... '아무래도 무너져 사라질 일'만큼 없을 듯해서요 ^^;;;;;  12-12-03
 
→ 아름다운 책이 새로 나왔군요. 울보 님 마음이 담겨 이 책이 한국말로 옮겨질 수 있었으리라 믿어요.  12-12-02

 

→ '심리학 책'에 기대어 '사람 마음' 읽기를 하기보다는 '내 삶 흐름'을 살피며 '내 마음' 읽기를 즐길 수 있기를 빌어요. '책'이란 '삶'인 줄 슬기롭게 깨우치면 환하고 가벼운 몸이 되리라 믿어요. (오늘로 닷새째 일산 구산동 처가에 머무는데 바로 이웃한 달여우 님은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군요 ㅋㅋ 아마 월요일까지는 일산에 머물고 화요일에 고흥으로 돌아가지 싶은데, 참 힘들게 온 만큼 얼굴이라도 뵙고 고흥으로 돌아가도 좋으리라 생각해요)  12-12-02

 

→ 마음속에서 사랑스레 숨쉬는 고운 결이 그분들한테 깃들리라 믿어요. 하늘바람 님 또한 사랑스레 숨쉬는 고운 결을 예쁘게 누리시기를 빌어요.  12-12-01

 

→ 저는 신문을 끊은 지 열 해가 넘었고, 방송을 끊은 지 스무 해가 넘었어요. 그저 들여다볼 적에는 저 스스로 길들여지지만, 숲을 바라보며 살아가니 늘 숲내음을 사랑할 말이 샘솟더라구요. 양철나무꾼 마음을 빛낼 좋은 모습을 들여다보시기를 빌어요. '책'에서도, 이런저런 자잘한 책보다는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만한' 알맹이들을 기쁘게 찾아서 마음을 빛내는 말을 누려 보셔요.  12-12-01
 
→ 모든 일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을 때에 할 수 있으니, 원두부터 갈고~ 이웃한테 커피 사서 들고 오라고 시킨 다음~ 즐거이 여러 보고서 쓰셔요  12-11-29
 
→ 하루에 똥을 몇 번 누는가를 헤아리면, 사람들은 으레 하루에 한 번 누니, 하루에 한 끼니 먹는 삶이 가장 알맞아요. 왜냐하면, 똥이란 먹은 대로 나오니까요. 세 끼니를 먹는데 똥을 한 번만 눈다면, 두 끼니치가 뱃속에서 더부룩하게 쌓이면서 묵은똥(숙변)이 된다는 소리예요.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누구나 두 끼니만 먹었어요. 아침과 저녁. 들일을 하는 사람은 샛참을 먹으며 기운을 북돋았지요. 그러니까, 들일을 하며 몸힘을 많이 쓰지 않는다면 하루 두 끼니가 누구한테나 가장 알맞고, 나이가 들면서 몸 쓰는 일이 줄어든다면, 차츰 한 끼니로 바꾸면서 몸을 더 튼튼히 지킨다는 뜻이 돼요. 다만, 사람마다 몸이 다르니, 스스로 몸을 잘 살펴야지요. 소화불량이 있다면, 끼니가 많거나, 밥을 많이 먹는다는 소리이니, 끼니를 셋으로 하면 밥부피를 줄이고, 끼니를 둘로 하고, 낮에 살짝 주전부리만 조금 해 주거나 물을 많이 마시면 되리라 느껴요.  12-11-27

 

→ 저마다 마음속에 '빛'이 있으면 이 빛으로 고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어느 아이도, 어느 어른도 저마다 마음속 빛을 잘 건사할 수 있기를 빌어요.  12-11-27

 

→ '생각하지 말라'라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기존 사고방식으로 내 머리에 깃든 지식으로 생각하지 말라'예요. 그러니까 '생각을 안 하는 삶'이 아니라, '지식으로 바라보는 짓'은 그만두라는 소리예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뜻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깊이 생각하고 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1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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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나물 달걀말이

 


  오랜만에 달걀말이를 한다. 반찬 삼아 달걀삶기는 곧잘 했어도 달걀부침은 거의 안 하며 지낸다. 아이들은 으레 삶은달걀만 먹다 보니, ‘달걀 = 삶은달걀’고만 알고, 달걀부침을 하면 달걀이 아니라고 여긴다.


  왜 퍽 오랫동안 달걀말이를 안 했나 돌아본다. 한 장 지지고 두 장째 지지는데, 달걀말이 하는 품이 그리 많이 들지 않을 뿐더러, 다른 반찬보다 일찍 마무리지을 수 있는데, 참 게을렀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나, 달걀 반찬보다는 풀 반찬을 애써 차리고 싶어 부러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안 했지 싶다. 달걀삶이조차 달걀이 좀 묵을까 싶을 때에 했으니까.


  아이들이 마루에서 놀다가 깨뜨린 달걀 다섯 알로 달걀부침을 한다. 깨지기는 했으나 바스라지지는 않아 그럭저럭 건사해서 달걀부침을 한다. 아이들이 놀며 달걀을 깨뜨리지 않았으면 이 달걀은 더 묵은 채 있다가는 삶은달걀이 되었으리라. 아이들은 참 대단하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들은 이런 몸짓 저런 말빛으로 내게 새 길을 일깨운다.


  달걀을 풀며 무얼 넣을까 생각하다가, 당근물 짜며 남은 건더기랑 세발나물을 넣는다. 세발나물은 처음 넣어 본다. 얼마쯤 넣을가 하다 반 움큼 넣는데, 다 지지고 나서 보니 두 움큼 넣어도 될 만하구나 싶다.


  맨 먼저 밥물을 끓이고, 이윽고 국을 끓이며, 천천히 나물을 다듬고 헹군다. 국 간을 다 보고 나서 두부와 곤약을 넣어 덥힌다. 밥상을 차릴 무렵 두부와 곤약을 꺼내어 접시에 담는다. 두부는 통째로 놓기도 하고 썰기도 한다. 곤약은 큰아이가 먹기 좋을 만한 크기로 썬다. 작은아이 밥이랑 국부터 푸고 뜨면서 밥상에 밥그릇 국그릇 놓이고, 수저까지 놓으면 끝. 얘들아, 밥 먹자. 추운 겨울날 몸 따뜻하게 덥힐 맛난 밥 먹자. 따뜻할 때 먹자. 4345.1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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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일꾼 2, 인천에서

 


  인천에 볼일 보러 찾아간 며칠 앞서, 송월동1가부터 주안역까지 천천히 걸어 네 시간 마실을 한 다음, 주안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 배다리로 달리는데, 그리 멀지 않은 이 길에 택시 일꾼이 따따따따 투덜거리는 말을 늘어놓는다. 인천에 있던 공장이 모두 인천 바깥으로 떠나 인천은 텅 비고, 거제에 한 번 가 보았더니 공장 언저리 술집과 밥집에 노동자로 바글바글거리는 한편, 울산은 넘치는 공장에 모자라는 사람으로 아우성이더라고, 이런 판에 서른여섯 먹은 당신 아들놈은 대학교 졸업은 했는데 집에서 아무것 안 하며 놀기만 한다고, 당신은 벌이가 힘든 택시 짓 하며 먹고산다고, 애들은 대학교까지 보낼 것 없이 고등학교만 마쳐서 공장을 보내든 회사를 보내든 해야 결혼을 시키고 애를 낳지, 대학교를 다니면 눈만 높아져서 아무 일 안 하고 속만 썩인다고 …… 택시 아저씨는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이토록 많았을까. 낯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 한 사람한테 이렇게 하소연을 늘어놓는구나.


  택시에서 내릴 즈음, 나는 전남 고흥 시골에 사는데 고향 인천에 모처럼 볼일 있어 찾아왔다는 말이 나오니, 시골서 살면 좋다고 농사도 짓고 조용하다고 손님은 몇 살에 시골에 갔느냐고 묻는다. 글쎄, 난 언제부터 시골서 살았을까. 아이 낳고 옆지기와 시골로 간 때는 서른여섯이지만, 스물아홉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혼자서 시골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부디 택시 아저씨가 인천에서 살림 접고 시골로 옮겨 마음도 생각도 삶도 차분하며 아름답게 거듭날 수 있기를 빈다. 손수 흙 만지며 몸소 밥 짓는 즐거움 가득 누리며 조곤조곤 사랑내음 물씬 나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기를 빈다. 4345.1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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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일꾼 1, 시골에서

 


  고흥 읍내에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장만하고는 택시를 부른다. 시골집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간다. 오늘은 스님 한 분 금탑사로 함께 타고 간다. 이른바 합승인데, 시골택시가 다른 마을 빙 돌아서 가는 일은 즐겁다. 나는 거저로 이웃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택시 일꾼은 스님이랑 나한테 두런두런 말을 건다. 스님과 나더러 이번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뽑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신고재산 오천만 원’인 5번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택시 일꾼은 ‘당선가능성으로 보면 1번과 2번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전라도에는 2번이 되어야 낫지 않겠습니까. 2번이 되어야 남북교류도 다시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얘기한다.


  아마 5번 후보는 당선가능성이 1퍼센트조차 안 될는지 모른다. 5번 후보를 말하는 사람은 김규항 님 빼고는 아직 못 보았다. 그런데, 나로서는 전라도뿐 아니라 한국을 아름답게 보듬을 만한 손길을 펼칠 후보로는 5번이 가장 알맞으리라 느낀다. 남북교류를 놓고 펼치는 생각도, 1번이나 2번 후보는 5번 후보한테 못 미친다.


  내가 경상도에서 택시를 탔으면 경상도 택시 일꾼은 ‘그래도 1번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을까. 그나마 2번 후보는 시골 읍내에 ‘80킬로그램 쌀 수매값을 17만 원에서 21만 원으로 올리겠다’와 같은 공약을 내붙인다. 1번 후보는 시골사람 귀에 와닿을 만한 공약을 하나도 안 밝힌다. 시골사람 생각하지 않기로는, 다른 후보도 어슷비슷하다. 그런데, 쌀 80킬로그램 수매값이 17만 원이나 했나? 완전유기농에다가 무농약인 쌀 수매값이 이만큼 아닌가? 도시사람은 유기농이고 무농약이고 그저 값만 싸야 쌀을 사다 먹는데, 도시사람 생각밭을 갈아엎을 만한 일꾼이 대통령이 될는지 어쩔는지. 4345.1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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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8
비네테 슈뢰더 지음, 엄혜숙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4

 


시골에서 함께 살고픈 벗님
―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
 비네테 슈뢰더 글·그림,엄혜숙 옮김
 시공사 펴냄,1996.12.23./7000원

 


  한겨울로 접어드는 시골마을 깊은 밤은 무척 조용합니다. 저녁 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두 아이를 데리고 마을 한 바퀴를 빙 도는 동안 바람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를 못 듣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도 밤을 울리는 소리로는 바람소리 빼고는 더 듣기 어렵습니다. 문득 두 가지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다니던 때 내 동무 하나는 ‘햇살에 지지 말고’ 살자 말했습니다. 뭔 소리인가 했는데, 햇살이 아무리 눈부셔도 이맛살이나 눈살을 찡그리지 말자고, 아무렇지 않게 빙긋 웃으며 살자 말했어요. 햇살은 저렇게 좋은데 왜 이맛살을 찡그리느냐고, 더 맑게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일본 하이쿠 시인은 빗물에 지지 말자고 했던가요. 그래, 이 겨울에는 바람에 지지 말고 따순 이웃으로 삼아 곱게 맞이할 수 있어야겠지요.


  바람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맡으며 바람빛을 헤아립니다. 쏟아지는 별을 누리는 이 시골마을 살포시 감도는 시골바람을 즐거이 맞이하면서, 밤도 낮도 아침도 저녁도 새벽도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자고 생각합니다.


  봄바람과 여름바람은 다릅니다. 여름바람과 가을바람은 다릅니다. 가을바람과 겨울바람은 또 달라요. 나는 십이월에 태어났기에 언제나 십이월을 ‘한 해 첫머리’로 여깁니다. 십이월이 되어야 비로소 한 해를 여는구나 싶어요. 다른 사람들은 으레 십이월 닥치면 한 해가 저무는구나 여기지만, 나는 십이월이 다가올수록 ‘새 한 해 여는 첫걸음’이 찾아온다고 느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두근거리는 십이월이요 설레는 십이월이며 기쁜 십이월입니다.


  십이월보다는 일월이 한결 춥다 할 만합니다. 십이월보다는 일월이 겨울 한복판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나는 십이월 보름쯤 지나면 ‘이제 이 겨울 추위도 견딜 만하겠는걸’ 하고 생각합니다. ‘한 해 마지막 날’까지 하루하루 산뜻하게 지내자고 생각합니다. 귀와 코와 손과 발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칼바람 불어대더라도, 이 칼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탑니다. 아버지도 아이들도 자전거를 탑니다. 드세거나 거센 바람이 불더라도 아이들이랑 마실을 다닙니다. 추우면 춥고, 더우면 더운걸요. 어떠한 날씨이든 나한테 어떤 이야기 한 자락 베풀려고 찾아와요. 고된 일도 가뿐한 일도 저마다 나한테 어떤 이야기 느끼도록 하려고 가만히 찾아들어요.

 

 

 

 

 

 

 


.. 플로리안은 히힝거리며 마치 젊은 말이라도 된 듯 우리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잠이 들었을 때에, 플로리안은 빨간 트랙터가 나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트랙터는 이름이 막스였는데, 덩치 크고 마음씨 좋은 친구 같았어요 ..  (3쪽)


  도시에서 살아가며 무언가 힘들다고 느끼는 벗님을 보면, ‘그래 그래 잘된 일이야요. 이참에 도시 좀 떠나요. 시골로 오셔요. 우리 시골 참 좋아요. 도시랑 아주아주 멀리 떨어진 두멧자락이라, 이곳에 한 번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 싫을 만큼 좋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는 옆사람과 살가운 이웃으로 못 지내고 자꾸 힘겨운 맞수처럼 지내야 하니, 도시사람 얼굴에서 환한 웃음을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참말 말이 ‘이웃’이지, 서로 이웃이라고 여기는 도시사람이 매우 드물어요. 학교에서는 나이가 같은 또래를 한 자리에 잔뜩 몰아넣고 ‘동무’처럼 사귀라 하지만, 막상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을 놓고 다투는 맞수일 뿐, 서로가 서로한테 동무 되지 못해요.


  그러니까,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 도시 학교는 어린이집이나 보육원부터 ‘점수따기 맞수’하고 만나는 나날입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동무 아닌 맞수’하고만 더 만나는 셈이요, 맞수끼리만 만나니 따돌림이든 괴롭힘이든 자꾸 불거집니다. 동무 아닌 맞수끼리만 마주하다 보니, 학교를 다 마치고 회사원이 되건 공장 일꾼이 되건 공무원이 되건 ‘이웃’을 사귀지 못해요. ‘민원인·접대인·판촉 대상’만 만나요. 그나마 ‘손님’조차 아닌 ‘고객’만 만납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한테 동무가 없어요. 도시에서는 어른들한테 이웃이 없어요. 너무도 그악스럽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들한테 동무를 보여주지 않는걸요. 더없이 쓸쓸하지만, 도시에서는 어른들한테 이웃을 가르치지 않는걸요.


  왜 이웃집 우체통에 광고종이를 잔뜩 쑤셔넣어야 할까요. 왜 내 동무 살림살이를 하나도 헤아리지 못할까요. 왜 내 이웃이랑 사이좋게 어깨동무하지 못할까요. 왜 내 동무랑 즐거이 놀이하며 얼크러지는 길을 못 걸을까요.


  대학입시가 얼마나 잘났습니까. 회사원 연봉이 얼마나 대수롭습니까.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안 되겠습니까. 내가 안 죽고 동무들이 죽으면 괜찮습니까. 더 높은 회사원 연봉을 붙잡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싫습니까. 내가 안 죽고 이웃들이 죽으면 기쁩니까.


.. 진흙덩이가 날리고, 모터가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막스는 여전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막스는 후진 기어로 바꾸었어요. 막스는 슬프게 울면서 덜커덩 덜커덩 이리저리 몸을 뒤흔들었지만, 바퀴도 더 이상 돌지 않았어요 ..  (15쪽)

 

 

 

 

 

 

 


  비네테 슈뢰더 님이 빚은 그림책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시공사,1996)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늙은 말 ‘플로리안’은 시골로 찾아온 트랙터 ‘막스’를 반가우며 살가운 벗님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트랙터 막스는 늙은 말 플로리안이 성가십니다. ‘늙어서 밭일 하나 못하는 주제’에 괜히 엉겨붙으려 한다며 싫어합니다. 트랙터 막스는 까만 연기 붕붕 뿜으면서 밭일 척척 해냅니다. 늙은 말 옆에서 잘난 척하면서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슬프며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는지 모릅니다. 트랙터 막스를 만든 공장사람은 트랙터가 ‘일만 더 잘 해내도록 만들’ 뿐, ‘동무와 이웃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사랑스러운 마을살이를 누리도록 빚’지는 않거든요.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분이나, 게다가 시장이나 군수가 되겠다는 분을 보셔요. 하나부터 열까지 ‘경제성장율’을 들먹여요. 사람들한테 일자리를 더 늘려 주겠다고 외쳐요. 그저 돈, 돈, 돈, 또 돈입니다. 서로 따사로운 이웃이 되도록 힘쓰려 하지 않아요. 당신들부터 반가운 동무 되어 어깨동무할 마음이 안 보여요.


  대학등록금을 반토막으로 자른대서 무엇이 달라질까 궁금해요. 대학졸업장 때문에 대학입시지옥이 터무니없이 또아리를 틀었는데, 대학등록금 ‘반토막 내기’ 아닌 대학졸업장 ‘없애기’를 해야지요. 대학졸업장 따지는 회사나 관공서는 모두 문을 닫게 해야지요. 회사원과 공무원 달삯을 줄여야지요. 회사원과 공무원 숫자를 줄여야지요. 장관 숫자도 줄이고, 청와대 크기도 줄여야지요. 외교관 숫자를 줄이고 군인 숫자와 경찰 숫자를 줄여야지요. 법관 숫자와 검사와 판사 숫자를 줄여야지요.


  그러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구요? 저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아요. 다 줄이고 줄여 ‘시골로 보내’면 돼요.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살도록 하면 돼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스스로 가장 맛나며 좋은 밥을 먹는 한편, 가장 맑은 바람을 들이켜고 가장 시원한 물을 마시도록 하면 돼요.


  왜 유기농 곡식을 비싼값에 사다 먹나요. 손수 지어서 먹으면 가장 싼걸요. 아니, 손수 지어서 먹으면 돈이 안 드는걸요. 게다가, 손수 지어 먹고 남는 곡식을 알맞춤한 값으로 팔면 돼요. 공무원과 회사원과 군인과 외교관과 경찰과 판·검사와 이런저런 사람들 300만쯤 도시에서 내보내 시골로 옮겨 살도록 하고, 오직 흙을 일구며 살도록 하면, 이들 300만은 이녁과 이녁 식구를 따사로이 돌볼 수 있는 한편, 300만 흙일꾼이 기른 유기농 곡식은 그야말로 ‘그리 안 비싸고 퍽 눅다 싶은 값’으로 남녘땅 골골샅샅 어디에서든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 여름은 더웠습니다. 곡식이 쑥쑥 잘 자랐어요. 이웃 사람들이 와서 추수를 도와주었습니다. 곡식을 베면, 타작하기 좋게 트랙터 막스가 곡식을 창고로 실어 왔습니다. 플로리안은 가끔 막스를 타고 같이 와서 구경하기도 했어요 ..  (27쪽)


  남들더러 시골에서 살라고만 말할 수 없기에, 나부터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살아가니 더없이 조용하며 한갓집니다.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햇살내음을 먹습니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멧새랑 노닐며, 들풀·들꽃하고 벗삼습니다. 내 마음은 나무 한 그루가 읽어 줍니다. 내 이야기는 구름 한 자락이 들어 줍니다. 내 사랑은 반짝이는 뭇별이 받아 줍니다.


  내 고운 벗님들한테 마음으로 글월 한 줄 띄웁니다. ‘이제 돈은 그만 벌어도 되지 않니? 이제부터 사랑을 심고 사랑을 거두며 사랑을 나누는 삶을 누릴 만하지 않니? 우리 다 함께 시골서 살자.’ 4345.1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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