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다

 


후끈후끈 달아올라
눈물까지 줄줄 흘리는
큰아이
작은아이
곁에서 밤새
다독이고 쓰다듬고
이불 여미면서
마음속으로 되뇐다.

 

다 나아 다 나아 다 나아,
씩씩하게 튼튼하게 말끔하게 일어나자,
곱고 새롭고 당차게 놀자,
느긋이 넉넉히 달콤하게 자자,
아침이 밝으면,
네 몸도 마음도 밝을 테니까.

 


4345.1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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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 건강한 성과 행복한 사랑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8
노을이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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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1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
―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노을이 글,돌 스튜디오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2012.12.14/12000원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면서도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 한 사람 목숨 받아 찬찬히 살아오는 동안 ‘성교육’은 굳이 없어도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베풀 가르침이라면, 또 나 스스로 배울 가르침이라 한다면, 꼭 하나 ‘사랑교육’이면 넉넉하지 싶어요. 성관계·성문제·성평등 같은 대목은 굳이 이야기할 까닭이 없으리라 느껴요.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삶’을 이야기하면 모든 실타래가 솔솔 풀릴 수 있으리라 느껴요.


.. 많은 기업과 방송 매체들이 성으로 돈을 벌기 위해 쾌락을 소비하도록 부추기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만들어 내요. 그런데 이들이 부르짖는 성의 자유 이면에는 성 소비를 위한 도구가 되어 자신의 성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성매매 여성들이나 포르노 배우들이죠. 이들은 대부분 성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 그렇게 살아요.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소외당하죠 … 대중매체들은 ‘원하는 대로 누릴 권리가 있다’는 핑계로 자극적이고 왜곡된 성 문화가 담긴 정보를 만들어 내고, 파괴적인 연애관을 담은 작품들을 쏟아 냅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네가 선택할 자유가 있다’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매체가 주는 자극에 익숙해지고 그 메시지를 믿도록 해요 ..  (16, 19쪽)


  내 어린 날과 내 푸른 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성교육도 받은 적 없지만, 사랑교육 또한 받은 적 없어요. 학교에서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에서야 비로소 성교육이랍시고 비디오 한 번 보여주고 끝이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성교육조차 없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오직 대학입시 교육만, 아니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문제풀이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사랑을 배운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교사도 어버이도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다루거나 밝히지 않았어요. 교과서에서는 사랑을 들려주지 않고, 여느 책에서도 사랑을 말하지 않아요. 인문책은 인문사회과학 지식에만 파묻힌 채, 사람이 누릴 사랑을 깨우치도록 이끌지 않아요.


  사랑이 없는 삶이란, 슬프며 어둡고 퀴퀴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란, 차갑고 매몰차며 어리석습니다. 사랑이 없는 나라란, 경제성장율이나 전쟁무기나 물질문명으로 치닫습니다.


  사랑 없는 채 돈만 밝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가요. 사랑 없는 채 전문가라 우쭐거리는 사람은 얼마나 건방지고 무시무시한가요. 사랑 없는 채 지식을 앞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번드르르하면서 속은 텅 비는가요.


  꽃 한 송이도 사랑으로 핍니다. 풀 한 포기도 사랑으로 푸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사랑으로 우람합니다.


  힘이 없으면 힘이 있는 놈한테 잡아먹힌다고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엉터리입니다. 사랑은 없이 오직 껍데기로만 살겠다는 뜻인데, 사랑이 없으면서 어떤 삶을 누리겠어요. 사랑은 없으면서 힘으로만 누르겠다면, 차츰 늙어 힘이 빠지면 당신 또한 다른 힘센 놈한테 잡아먹혀야 한다는 소리일밖에 없어요. 힘을 앞세우거나 돈을 앞세우거나 이름을 앞세우는 짓은, 나 스스로 갉아먹는 바보놀음이에요.


.. 야동의 힘은 대단해요. ‘보기만 하는 건데 뭐 어떄?’라고 십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머리는 분명히 영향을 받고 있어요. 야동에서 강간을 하면 강간을 해도 되는 것 같고, 야동에서 여성이 성관계를 좋아하면 모든 여성은 성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 보기에는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은 배우들은 사실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는 우리의 이웃이에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죠. 야동은 결코 진실을 보여주지 않아요. 연출된 환상에 불과합니다 … 야동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진짜 성관계가 어떤 건지 말하지 않아요. 여러분 부모님은 야동에서처럼 성관계를 해서 여러분을 낳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나눈 성관계는 쾌락과 욕구 충족만을 위해 나눈 관계가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따듯하고 부드럽게 공유한 관계예요 ..  (63, 76, 84쪽)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이 좋은 아이들입니다. 짓궂게 더듬는 손길은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얼싸안는 품이 반가운 아이들입니다. 거칠게 다루는 품은 어느 누구라도 달갑지 않아요.


  따사로운 손길로 씨앗을 건사해서 흙을 살찌웁니다. 기름진 흙은 씨앗을 곱게 보듬어 튼튼히 뿌리를 내리도록 돕습니다. 밝은 햇볕은 여린 새싹이 싱그러운 풀포기로 자라도록 이끕니다. 맑은 바람은 풀줄기에 싯푸른 빛이 감돌도록 거듭니다. 시원한 빗물은 풀잎에 드리우며 고운 숨결 피워냅니다.


  사람도 짐승도 새도 풀을 먹습니다. 풀은 사람과 짐승과 새한테 먹이를 내어주며 스스로 한결 푸르게 빛납니다. 풀은 잎사귀를 내주어도 다시 새 잎사귀가 돋습니다. 풀은 뿌리째 내주어도 다시 새 뿌리를 내어 자랍니다.


  풀은 꽃도 잎도 열매도 씨앗도 모두 내줍니다. 그러고도 넉넉히 우거져서 풀숲을 이루고 나무숲을 이뤄요.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무엇을 만드는데, 이렇게 나무를 쓰고 또 써도 숲은 그예 우거집니다. 왜냐하면, 풀과 나무는 사람들하고 사랑을 주고받거든요. 사람들한테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받으며 저희 몸통을 모두 내줍니다. 사람들은 풀과 나무를 고맙게 받아 쓰면서, 이녁이 늘 찬찬히 일구며 북돋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사랑스레 건넵니다.


  어느 과학자는 따로 실험을 해서 ‘풀도 나무도 클래식 노래를 들으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밝혀요.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고운 말로 얘기하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라지만,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거친 말을 마구 일삼으면 제대로 못 자라거나 시든다’고 밝혀요.


  굳이 과학을 빌지 않아도 어린이도 아는 일이에요. 어린이들은 ‘과학이라는 낱말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살살 예쁘게 풀잎 어루만질 때에 더 푸르게 빛나는 줄 몸으로 알아요. 어린이들은 ‘과학실험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가만가만 곱게 나무줄기 얼싸안을 때에 더 튼튼히 자라는 줄 마음으로 알아요.


.. 사랑은 정직하게 나의 마음을 보여주고, 또 상대의 진실한 마음도 수용할 줄 아는 가장 친밀하고 소중한 만남, 바로 ‘관계’예요 ’ 남성에게 스킨십이 중요하다면 여성에게는 정서적 관계가 중요해요. 여성은 임신과 양육을 하도록 성장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훨씬 신중해요. 이 사람이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 채로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있죠.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지지 못해도 소녀들의 마음에는 이런 본능적인 경계선이 있어서 훨씬 고민도 많고 조심스러운 거예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스킨십을 거부하는 게 아니랍니다. 지금도 계속 사귀고 있는 이유는 도리어 많이 좋아하고 관계를 잘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 연애를 하는 데 진도가 왜 중요한가요 …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원한다고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 남자 친구는 지금 날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날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해 보고 싶은 거죠 ..  (86, 104, 105, 114쪽)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가르칠 나와 너입니다.


  다만, 학문으로 가르칠 사랑이 아닙니다. 삶으로 가르칠 사랑입니다. 삶으로 가르쳐, 삶으로 배울 사랑이에요.


  밥짓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밥을 차려서 함께 나누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빈 밥그릇을 치우며 설거지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짓거나 깁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입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빨고 널고 개고 건사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짓고 손질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돌보며 즐거운 보금자리 되도록 꾸리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이리하여, 나를 사랑할 짝꿍을 찾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내가 사랑할 짝꿍을 만나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즐거이 가르치며 기쁘게 배웁니다.


  졸업장을 따려고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요. 졸업장으로 일자리를 얻어야 하니까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으로 뭔가 자랑하려고 가르치지 않아요.


..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연애를 할 때도 그 가치를 지키세요 …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도 잘 가꾸는 사랑의 실력을 키워 가세요. 그러다 이별을 경험한다 해도 괜찮아요. 헤어진 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어요. 우린 성장하는 중이니까요 … 두 사람을 위해서 지금 당장 피임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임신이라는 엄청난 문제가 닥쳤을 때 정말 책임질 것 같나요? 이 순간의 분위기와 흥분된 감정은 성행위가 끝나면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  (117, 121, 135쪽)


  도덕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도덕은 삶으로 받아들여 누리는 하루입니다. 철학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철학은 하루하루 알차게 누리는 삶입니다. 그러면, 사랑도 못 가르친다고 하겠지요. 맞는 말이에요. 사랑도, 하나하나 따지면,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지 못해요. 그러나, 사랑을 가르치고 배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랑스레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집을 돌봅니다. 사랑스레 말을 하고 꿈을 꾸며 일을 합니다.


  사랑스레 놀이를 즐깁니다. 사랑스레 심부름을 합니다. 사랑스레 글을 씁니다. 사랑스레 사진을 찍고, 밭에서 김을 매며, 등짐을 져 나릅니다.


  성교육 아닌 사랑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어떤 지식이나 정보로 ‘사랑은 바로 이렇지! 이걸 알라구!’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누리는 삶은 어떠한가를 몸소 빛내면서 즐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교육입니다. 이를테면, 볕 잘 드는 숲속 풀밭에 앉아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해요. 밭뙈기에 씨앗 한 알 심고는 흙을 잘 도닥여 봐요. 아이를 품에 안고 가장 고운 목소리를 뽑아 노래를 불러요. 들길을 함께 걸어요. 바람을 함께 들이켜요. 신을 벗고 흙땅을 맨발로 달려요. 냇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마셔요. 풀밭에 앉았으면 풀내음을 맡고,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풀벌레 속삭이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요.


.. 임신하면 원치 않아도 아기가 삶의 중심이 된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던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 취미 생활, 미래에 대한 꿈도 송두리째 바뀌죠. 나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사람(아기)이 내 인생에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 서로가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세요 …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서는 안 돼요. 그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버리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까지 상처 입히는 일이 돼요 … 아시다시피, 부모님께서 건강한 성 인식을 갖지 못하면 아이에게도 건강한 성을 가르쳐 주기 어렵습니다 ..  (138, 144, 152, 211쪽)


  ‘노을이’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철수와영희,201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참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이러한 ‘사랑책’을 읽히면서, 우리 어른과 어버이도 이 같은 사랑책을 슬기롭게 읽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사랑이 샘솟는 자리를 헤아리고, 사랑이 흐드러지는 길을 살피며, 사랑이 빛나는 꿈을 돌아볼 때에, 사람들은 저마다 활짝 웃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대학교에 붙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며 살아갈 아이들입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일하고 사랑스레 살림을 꾸릴 아이들입니다. 유명인사가 되거나 이름을 드날릴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웃고 사랑스레 노래할 아이들입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네가 너를 아끼면서, 서로가 서로를 아낍니다. 내가 나를 슬기롭게 보살피고, 네가 너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서로가 서로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어깨동무합니다.


  별빛이 곱게 흐릅니다. 햇빛이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바닷바람은 들바람이 되고, 들바람은 숲바람이 됩니다. 냇물은 빗물이 되고, 빗물은 다시 냇물이 됩니다. 구름은 무지개가 되고, 무지개는 어느새 안개가 되며, 안개는 새삼스레 아지랭이가 됩니다. 달팽이가 풀잎을 먹습니다. 풀잎에 풀벌레 알이 붙습니다. 풀꽃에 나비가 앉습니다. 애벌레가 풀잎을 먹습니다. 사람이 풀을 뜯습니다. 사람들 옷에 풀씨가 붙습니다. 바람이 휭 불더니 풀잎노래 흐드드 퍼뜨리며 지나갑니다.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달빛이 흘러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참새는 도시에서도 고운 이야기꽃을 나누어 줍니다. 지렁이는 똥을 고운 거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잠자리가 날고, 제비가 집을 짓습니다. 개구리가 논에 알을 낳고, 가재가 도랑에서 새끼를 칩니다. 도룡뇽이 지나가고, 다람쥐가 나무열매를 갉습니다.


  저마다 삶을 빚어 이야기를 빚습니다. 모두들 삶을 일구며 사랑을 일굽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너무 오래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을 학원에 자꾸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지낼 수 있도록 자리를 넓혀 주셔요.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하는 넋으로 지낼 수 있게끔 숨통을 터 주셔요. 다 다른 아이들한테 모두 똑같은 옷을 입히지 마셔요. 다 다른 아이들이 마을마다 집마다 저마다 고운 사랑으로 거듭나는 길을 맑은 눈빛으로 지켜보아 주셔요.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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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도맡는 아버지

 


  집살림과 아이돌보기를 도맡는 아버지는 이 나라에 얼마나 될까.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아주 적으리라 느낀다. 틀림없이 이 나라 어느 마을 어느 보금자리에서는 씩씩하고 착하며 아름다운 아버지가 집살림이랑 아이돌보기를 도맡으리라 느낀다. 이들은 집살림 꾸리랴 아이들 돌보랴 또 밥벌이 하랴 몸이 쉴 겨를 없이 하루를 몰아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쉴 겨를 없이 몰아치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싫거나 괴롭거나 슬프다고는 안 느끼리라 생각한다. 살짝 숨을 돌릴 적마다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는지 모른다’고 여기면서도 혼자 그저 좋아 빙그레 웃으리라 생각한다.


  집안 살림살이가 좀, 또는 꽤 많이, 너저분하더라도 괜찮다. 아이들을 더 살갑거나 따스히 보듬지 못해도, 때로는 골을 부리더라도, 다 괜찮다. 밥을 살짝 태운다든지, 국이 좀 싱거우면 어떤가. 반찬 가짓수 몇 안 되거나 아이들 여러 날 못 씻기면 또 어떠랴. 어느 것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어떠하든 다 좋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몸에 아기씨를 건사하기는 하지만, 이 아기씨가 어떻게 크면서 아기가 되고, 이 아기를 받아 어떻게 젖을 물린 다음, 젖먹이가 어떻게 이가 돋아 야무지게 밥을 씹어먹는가 하는 흐름을 좀처럼 못 느끼니까. 홀로 이것저것 건사하면서 아주 천천히 이 모두를 헤아리거나 읽거나 받아들이는 마음밭이 되니까.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이래저래 손을 쓰고 마음을 쓸 일이 늘다 보니, 두 아이 새근새근 잠들고 나서 일손을 붙잡으며 돌아보면, 이 아이들 하루살이를 담은 사진이 몇 안 되곤 한다. 참말 아이들이랑 복닥이느라 아이들 어여쁜 낯빛 눈빛 몸빛 말빛을 사진으로나 글로나 거의 못 담고 만다.


  좀 서운하네, 하고 생각하다가는, 사진이나 글에 이 아이들 하루살이를 갈무리하지 못한다지만, 내 마음이랑 몸에는 이 아이들 살내음과 말내음 하나하나 깊이깊이 아로새기는걸, 하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아니, 이렇게 느낀다. 아이들아, 오늘도 새 아침에 새 아침노을 누리며 기운차게 일어나서 놀고 밥먹고 또 놀고 또 밥먹고 똥오줌 잘 누면서 지내자.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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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늦잠 자네


 

  산들보라야, 엊저녁 그렇게 늦게 잠들은데다가 새벽에 깨어 부산스레 굴었으니, 늦잠 잘 만하지? 일찍 잔 날은 일찍 일어날 만하지만, 늦게 잔 날은 그냥 늦잠을 자렴. 너도 좋고, 네 어버이도 느긋해서 좋단다. 게다가 늦잠 자는 날은 너 자는 어여쁜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을 수 있다구.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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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이야기 한겨레 낮은학년동화 1
이현주 지음, 이태수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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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26

 


너랑 서로 무엇을 누리면 즐거울까
― 옹달샘 이야기
 이현주 글,이태수 그림,
 한겨레아이들 펴냄,2001.11.7./7000원

 


  내 어릴 적 우리 집에 냉장고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헤아려 봅니다. 내 어버이가 형이랑 나를 낳으면서 냉장고를 집에 들이셨을까요. 두 분이 사실 적에는 냉장고가 있었을까요. 셋방살이를 할 적에는 냉장고 없었을 테고, 내 어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지내던 예전에는 냉장고라는 기계가 있을 턱 없었겠지요.


  이제 어느 집에나 냉장고가 있어요. 냉장고 없는 살림은 생각할 수 없는 오늘날이라 할 만해요. 그런데 나는 ‘우리한테 냉장고 없던 때’ 모습을 자꾸자꾸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집집마다 따로 전기를 쓰지 않고 살던 때 모습을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집에서 꼭지를 돌려 물을 쓰지 않던 때 살림살이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냉장고 없어도 누구나 밥을 잘 지어 먹고 살았어요. 냉장고 없어도 누구나 먹을거리를 잘 건사해서 살았어요. 전기 없대서 더 힘들거나 어렵게 살지 않았어요.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나 순간온수기 없대서 더 고되거나 빠듯하게 살지 않았어요.


  그런데 냉장고 있고, 물꼭지 있고, 보일러 있고, 자가용 있고, 전기 있고, 또 무엇무엇 끝없이 있고 또 있고 또 있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활짝 웃거나 까르르 웃음노래 나누면서 살아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것저것 잔뜩 누리지만, 막상 오늘날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꽃이나 웃음빛을 찾기는 매우 힘들어요.


.. 여름에는 얼음보다도 차게, 겨울에는 숭늉처럼 더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옹달샘은 솟구쳐 흘러내리다가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었지 ..  (8쪽)


  시골에서 시골 어린이하고 눈이 마주치면, 시골 어린이는 으레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합니다. 나도 아이들한테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마을 아이들 인사를 받다가, 나도 인천에서 자라며 ‘낯 모르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눈이 마주치면 꾸뻑 인사를 했다고 떠올립니다. 요즈음 서울이나 도시는 어떠한지 모르겠는데, 도시에서는 ‘낯 모르는 어른’하고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홱 돌린다든지 그저 멀거니 쳐다본다든지, 아니면 어딘가 나쁜 사람은 아닌가 하고 여기지 않겠느냐 싶어요. 도시에서는 낯선 어른하고 말을 섞지 말라고 가르치잖아요.


  지난날에는 우리가 어떤 삶을 누렸을까 곱씹어 봅니다. 참말 언제부터 ‘낯선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합니다. 지난날에는 ‘낯선 사람’이라는 이름에 앞서, ‘길손’이나 ‘나그네’ 같은 이름을 붙였으리라 싶은데, 이제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북적거리면서, 서로서로 낯선 사람이 되어 서로서로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는 삶이 되어요. 스스로 내 옆사람한테 낯선 사람이 되고, 스스로 이웃집을 낯선 사람으로 여기며, 스스로 마을에서 낯선 사람으로 지내요.


  낯설다 해서 무뚝뚝하게 지낼 까닭은 없지만, 낯설다는 생각으로 울타리를 차츰차츰 높게 세우는구나 싶습니다. 낯선 사람 앞이니 굳이 웃을 일이 없어요. 장사를 해야 한다면 억지로 웃습니다. 장사할 일이 아니면 눈길이건 손길이건 마주할 까닭이 없습니다. 물건을 팔려는 뜻으로 겉치레 같은 상냥한 말씨가 됩니다. 마음을 나누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생각을 나누어 어여쁜 삶을 함께 일구지는 않아요.


.. 숲 속에 소문이 퍼졌어. 누구든지 옹달샘에 가면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다는 소문이었지 ..  (18쪽)


  이현주 님 글과 이태수 님 그림이 어우러진 《옹달샘 이야기》(한겨레아이들,200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샘물을 마셨습니다. 냇물이나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빗물을 마시고 골짝물을 마셨습니다. 이제 한겨레는 두멧자락 시골마을에서조차 샘물 마실 일이 아주 드뭅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시골마을에까지 땅을 파고 물관 묻어 수도물을 넣으려고 해요. 댐을 더 지으려고 해요. 댐을 더 지으려고 시골마을을 더 없애고, 숲을 더 없애요. 사람들 스스로 숲에 깃들어 ‘숲물’ 마시던 삶이 사라져요. 도시를 떠나 시골숲에 깃들며 숲물을 마시려는 사람들한테까지 억지로 수도물을 먹이려 하는 문명이에요. 이래서야 어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어요. “누구든지 옹달샘에 가면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다(19쪽)”고 하는데, 이 땅 곳곳에 자그맣게 있던 수많은 옹달샘이 말라서 사라지고, 삽질로 사라지거든요.


  지난날에는 거울이 없어도 시냇물에 가만히 고개를 디밀어 맑게 비치는 내 모습을 보았다고 했어요. 이제 오늘날 살림집에는 집집마다 거울이 있어 겉모양 뽐내거나 꾸미기에 바빠요. 서로가 서로를 맑게 비쳐 보여주는 시냇물이 되지 못해요.


.. “백합아, 난 너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  (24쪽)


  나와 네가 서로 무엇을 누리면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 어떤 꿈으로 하루를 빚을 때에 즐거울까요. 사랑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 어느 아이가 붙는 일이 즐거움일까요. 무슨 고시에 붙는 일이 즐거움일까요. 회사에서 신분이나 계급이 올라가면 즐거움일까요. 어떤 상을 받아야 즐거움일까요. 어떤 운동경기 대회에서 등수에 들어야 즐거움일까요.


  나를 오늘까지 이끈 즐거움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 한 그릇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불 덮고 따숩게 자던 저녁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며 어머니가 이불자락 여미는 손길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유리창에 낀 성에를 바라보며 어쩜 넌 날마다 다른 모양으로 빛나니, 하고 말을 걸며 즐거웠습니다. 빗소리를 듣고 빗방울에 온몸이 젖으면서 동무들과 신나게 뛰놀던 나날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손발 꽁꽁 얼어붙지만 눈밭에서 뒹굴며 눈놀이 할 적에 즐거웠습니다. 어머니 심부름을 하며 즐거웠습니다. 온갖 구름이 즐거움이었습니다. 무지개를 본 날, 헐레벌떡 동무한테 찾아가 저기 무지개 보라고 소리지르며 즐거웠습니다. 동네 할머니 짐을 들어 댁까지 갈 적에 즐거웠습니다. 나무를 타면서 나뭇잎이 볼을 스칠 때 즐거웠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몰랐고, 돈도 잘 몰랐어요. 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나는 신문도 방송도 책조차도 몰랐어요. 나는 연예인도 가수도 뭐도 몰랐어요.

  우리 아이도 나하고 같겠지요. 우리 아이도 스스로 즐거울 삶을 찾을 뿐, 스스로 즐거울 놀이를 할 뿐, 스스로 즐거울 밥을 먹을 뿐, 달리 어떤 겉치레나 겉껍데기가 있을 턱이 없겠지요.


.. “맞았어, 아름다운 것은 뻐꾸기도 상수리나무도 할미꽃도 옹달샘도 아니야.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아름다운 거지. 살아 있다는 건 서로 나눈다는 거야. 너희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느냐?” ..  (56∼57쪽)


  조그마한 과자 한 점이든 떡 한 점이든, 곁에 있는 누군가와 나누어 먹으면 한결 맛나고 배부릅니다. 옆사람은 모르는 척 혼자 먹을 적에는 참말 맛없고 배 안 불러요. 그렇잖아요. 우리는 영양소를 먹지 않아요. 목숨을 먹어요. 마음이 깃든 목숨을 먹어요.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모두 목숨이에요. 풀은 풀목숨이고, 고기는 고기목숨이에요.


  언제나 목숨이 내 몸으로 들어와요. 물을 마시거나 바람을 마실 적에도 그냥 물이나 바람이 아니라, 물이라 하는 목숨이요 바람이라 하는 목숨이에요.


  서울에서는 서울바람을 마셔요. 시골에서는 시골바람을 마셔요. 공장 곁에서는 공장바람을 마셔요. 숲에서는 숲바람을 마셔요. 자동차 지나가는 자동차바람을 마셔요. 바다에서는 바닷바람을 마셔요.


  그래서, 아이들은 늘 목숨을 먹어요. 어버이가 차리는 밥에 깃든 목숨도 먹고, 어버이가 일구는 보금자리 있는 마을을 흐르는 바람도 먹으며, 어버이가 늘 들려주는 이야기가 서린 말빛도 먹어요.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겠지요. 밥에, 집에, 말에. 바람에, 숨에, 물에.


  집 바깥은 찬바람이 흐르지만, 집 안쪽에는 따순바람 감돌아요. 보일러를 돌리기 때문일까요? 아니에요. 보일러보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있어, 서로가 서로를 따사로이 보듬는 마음이 얼크러지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어버이가 살포시 쓰다듬거나 품는 손길이 좋아 새근새근 잠듭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살포시 쓰다듬거나 품으며 내 손이 스스로 좋아 달콤하게 잠듭니다.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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