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 읽기모임 (도서관일기 2012.12.2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며 하고팠던 ‘사진책 읽기모임’을 아직 못 한다. 집살림과 아이돌보기를 나란히 하면서 사진책도서관까지 지키기란 만만하지 않다. 큰아이가 제법 자라 무언가 해 보려 할 즈음 작은아이가 태어났고, 작은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 고흥으로 살림살이와 책을 옮기느라, 책을 싸고 풀고 갈무리하는 데에 긴 나날을 보냈다. 이제 작은아이가 제법 씩씩하게 놀 수 있구나 싶으니, 그동안 미룬 ‘사진책 읽기모임’을 고흥에서 해 볼까 하고 생각한다. 한 달에 한 차례 주말을 잡아서 하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읽기모임’을 하는 자리에는 우리 두 아이는 도서관 골마루를 마음껏 뛰고 놀아도 된다. 어른들(또는 푸름이들)은 즐겁게 사진을 보며 놀고, 때로는 우리 아이들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고, 아이들은 널따란 골마루와 교실에서 저희끼리 뛰고 놀면 되리라 생각한다.


  다른 읽기모임은 저마다 책을 먼저 사서 읽은 다음 느낌을 나누는 자리라면, 사진책도서관 읽기모임은 이곳에 모여서 사진책 하나를 함께 펼쳐서 함께 읽고 함께 느끼는 자리라 하겠다. 왜냐하면, 한국 여느 새책방에서 장만할 수 있는 사진책도 있지만, 외국 새책방에서조차 장만하기 어려운 사진책이 많다. 또, 이런저런 이름난 사람들 작품만 따지기보다, 삶을 사랑스레 담은 사진책을 돌아본다면, 사진을 읽거나 느끼거나 찍는 길에 한결 이바지할 만하리라 본다. 새해 1월부터 할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새해에는 씩씩하게 읽기모임을 꾸리자고 생각한다. 도서관 들어오는 어귀에 나무푯말 하나 세우면 좋겠지.


  사진엽서를 만들어 사람들한테 띄워야지. 도서관 이야기책 《삶말》과 달리 ‘읽기모임 이야기책’을 엮을 수 있겠지. 이렇게 하자면 돈이 더 들 테고, 살림돈이 줄는지 모르지만, 뜻있는 이들이 함께하면서 넉넉히 서로 돕고 즐기며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들른다. 인천으로 부칠 책을 꾸리는 동안 두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이 도서관 곳곳을 뛰고 기면서 논다. 셋째 칸에 있는 사다리는 두 아이 담타기 놀이기구가 된다. 지난달까지, 작은아이는 이 사다리에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올 줄은 모르더니, 오늘은 혼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혼자 다부지게 내려온다. 대단한데. 너도 참 기운차게 크는구나. 앞으로 이 옛학교 운동장까지 우리가 쓸 수 있으면, 너희는 훨씬 기운차게 뛰놀 수 있겠지. 그때에는 너희뿐 아니라, 이곳 고흥 시골아이나 이웃 도시아이도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와서 가슴속에 묻은 ‘뛰놀고픈 생각’을 흐드러지게 풀어놓을 수 있겠지.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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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2.25.
 : 길죽음

 


- 작은아이가 낮잠을 건너뛰며 놀려고 한다. 낮잠 달게 자며 노는 버릇을 들여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 자전거마실을 하기로 한다. 꼭 낮잠을 자야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낮잠을 건너뛴 채 개구지게 놀려 하면, 자꾸 칭얼거리거나 떼쓰는 일이 생긴다. 한두 시간쯤 달게 자고 일어나면 찌뿌둥한 기운이 사라지며 한결 즐거이 놀 텐데,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까지 낮잠 없이 놀려 하니,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퍽 힘들다.

 

- 어제오늘 바람이 퍽 차갑기에 아이들 낄 장갑을 챙긴다. 서재도서관에 갈 때에는 그냥 가고, 도서관에서 나와 면내에 갈 적에는 장갑을 끼우기로 한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대문을 나서는데, 어제처럼 바람 많이 불고 바람이 퍽 차다. 그래도, 우리 식구가 충북 음성에 살 적에는 눈밭을 헤치며 자전거를 탄 적 있는걸. 훨씬 추운 날씨에도 큰아이는 씩씩하게 자전거수레에서 추위와 찬바람 맞으며 달린 적 있는걸.

 

- 서재도서관에 짐을 갖다 놓으면서 책 두 권 챙긴다. 예전에 읽은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 1권과 《우리 문장 쓰기》를 살핀다. 새해에 새롭게 마무리할 ‘우리 말글 이야기’ 글꾸러미에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 이야기를 한 꼭지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곰곰이 돌아본다. 나는 이 책들이 어렵다 생각한 적 없고, 이 책들을 읽으며 머리가 맑게 트인다고 느꼈는데, 뜻밖에 퍽 많은 이들은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좀처럼 못 알아채는구나 싶다. 왜 그럴까. 찬찬히 읽고, 거듭 읽으며, 생각하며 읽는다면, 못 알아챌 이야기는 없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이웃이랑 나눌 한국말을 생각하며 읽으면, 내 말과 글을 어떻게 건사할 때에 스스로 아름다이 빛나는가를 또렷하게 깨닫도록 즐거이 이끌어 준다. 이를테면 “우리 말의 특성을 없이보고 남의 나라 말에 따라가려고 할 때 우리 말은 죽는다. 더구나 입으로 하는 말이 그렇다(131쪽).” 같은 이야기는 꾸밈없이 생각하면 아주 쉽다. 나도 옆지기도 내 이웃도, 학교에서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배운 적이 없다. 우리 둘레에서 어른이라 하는 이들 또한 아이들 앞에서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들려주는 일이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은 제도권교육이면서 입시교육에 얽매이니까,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고 입시문제만 가르친다. 한편, 표준말과 띄어쓰기에 얽매이면서, 삶말과 고장말을 북돋우거나 살찌우지 않는다. “흔히 쓰는 쉬운 입말이나, 좀 논리를 세워서 쓰는 글이라도 입말체로 쉽게 써도 될 것을 공연히 남의 나라 말 번역한 글같이 함부로 ‘의’를 넣어 쓰는 버릇은 우리 말을 죽이는 글쓰기라 아니할 수 없다(132쪽).” 같은 이야기도 매우 쉽다. 수수하게 읽으며 수수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쓰는 글이랑 내가 하는 말이 어떠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할 수 있으면, 이 말뜻을 환하게 짚을 수 있다.

 

- 큰아이는 어느새 제 장갑을 낀다. 큰아이는 노란 벙어리장갑인데 장갑이 예쁘다고 한눈에 느낀 듯하다. 아버지가 끼워 주지 않아도 스스로 끼고 논다. 작은아이는 혼자 장갑을 끼지 못하니, 아버지가 한 짝씩 꾹꾹 눌러 끼운다.

 

- 바람이 차다. 큰아이가 면내 가는 길에 노래를 두 가락 뽑다가는 이내 입을 다문다. 노래를 부르며 입구멍으로 찬바람 들어가는 줄 느꼈겠지. 아뭇소리 않고 이불과 내 두꺼운 겉옷을 뒤집어쓴다.

 

-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맞바람. 추운 겨울 맞바람은 자전거가 삐걱거리게까지 한다. 체인이 한 번 풀려 넘어질 뻔하다. 가까스로 자전거를 세우는데, 내 오른정강이가 발판에 찍힌다. 겨울이라 긴바지 입었기에 덜 다쳤는데, 정강이에서 피가 흐르는구나 하고 느낀다. 수레에 앉은 큰아이가 몹시 추워 한다. 수레 덮개를 내린다. 이러면 한결 낫지? 배추밭 옆을 달리고, 빈논 옆을 달린다. 등판에 땀이 흥건히 고일 무렵 마을 어귀에 닿는다. 온몸이 꽁꽁 얼면서 땀이 흐른다. 집으로 꺾는 고샅길 한쪽에 마을고양이 한 마리 길게 뻗은 모습 본다. 아, 죽었구나. 차에 치여 죽었네. 내가 마실 나올 적에는 못 봤는데, 그새 차에 치여 죽었구나. 이 마을에 차 있는 집은 이장님 댁뿐인데. 그러나, 이장님은 이쪽 길로 안 다니잖아. 다른 마을 사람이 우리 마을로 차를 몰고 와서는 들이받고 그냥 갔나 보다. 고양이는 차바퀴에 한 차례 밟히며 꽥 하고 외마디소리를 냈을 텐데, 어쩌면 그냥 갈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닌 짐승이니까 그냥 가도 될까.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아닌 들에서 홀로 살아가는 고양이라서 치여 죽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 누구네 차가 쳤을까. 마을마다 돌며 물건 파는 짐차가 쳤을까. 성탄절 맞이해서 시골마을 사는 어버이 찾아온 도시 딸아들이 몰고 온 자가용이 쳤을까.

 

-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들었는데, 이불을 걷고 내리려 할 무렵 깬다. 뭐니. 더 자고 일어나야 하는데, 고작 십 분 자고 깨니. 두 아이를 방으로 들인다. 자전거를 한쪽에 세운다. 실장갑 끼고 나온다. 죽은 고양이를 안는다. 벌써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랫배는 아직 따스하다. 치여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새삼 느낀다. 논둑이 넓따란 풀섶에 누인다. 너는 다시 태어날 때에는 저 숲속 나무로 태어나렴. 사람도 자동차도 공장도 전쟁도 모든 아픔과 슬픔도 없는 호젓한 숲속에서 사랑과 꿈을 키우는 아름드리 나무로 살아가렴.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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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무인도)에 가져갈 책

 


  벌써 열 해는 지난 일 같은데, 어느 방송사에서 나를 취재하러 왔을 때에 “무인도에 가시면 어떤 책을 가져가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이때 나는 참 어이없는 이야기를 묻는구나 싶었다. 취재를 나온다면, 취재를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조금이나마 살펴야 할 노릇 아닌가. 내가 쓴 글이나 내가 낸 책을 읽었으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며 삶을 일구려 하는가를 살짝이나마 짚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물음을 들으면서 곧바로 떠오른 생각은, 취재를 하기 앞서 어느 한 사람을 알아보려고 그이가 쓴 글이나 낸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면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지식이나 정보는 얻을는지라도, 넋이나 얼은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고는 대꾸한다. “저는 아무 책도 안 가져갈 생각이에요. 그 섬이 바로 나한테는 책이 될 테니까요. 섬에서 살아가며 누릴 이야기로 이 지구별에 꼭 하나만 있으면서, 내가 새롭게 누릴 책을 몸으로 쓰고 마음으로 새겨야지요.” 연필은 가져가겠느냐, 공책은 가져가겠느냐 하고도 물었던가 모르겠다. 글쎄,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겠지. 그런데, 텅 빈 종이꾸러미와 연필을 가져간달지라도, 몇 쪽을 쓰고는 더 쓸이 없으리라고 느낀다. 하루하루 새롭게 누리는 삶을 적기에는 두툼한 공책 수백 권으로도 모자랄 뿐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쓰느라 막상 외딴섬 사랑스러운 삶을 덜 누릴 수밖에 없다. 외딴섬에 간다는 뜻은, 외롭게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홀로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뜻이니까, 종이에 삶을 적바림해서 이야기를 남길 까닭 없이, 내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겨서, 내 입과 눈과 몸과 손으로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 넉넉하다. 그러니까, 여느 섬으로 마실을 간다든지, 여느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간다면, 이때에는 공책이랑 연필을 꼭 챙긴다. 이웃마을 둘러보며 누린 아름다움을 글로 정갈히 건사해서 내 ‘글동무’랑 ‘글이웃’하고 알콩달콩 웃음으로 나누면 즐거우니까.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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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살아가는 사랑을 차분하며 맑게 그리는 만화 하나 즐겁다.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나 그림으로나 사진으로나 누구나 수수하면서 곱게 그릴 줄 안다면, 지구별은 따사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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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Girl 마이걸 5- 완결
사하라 미즈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2년 6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12년 12월 2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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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3
박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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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샘에서 길어올린 꽃말
[시를 노래하는 시 51] 박지웅,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 책이름 :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 글 : 박지웅
- 펴낸곳 : 문학동네 (2012.12.10.)
- 책값 : 8000원

 


  해는 지고 달이 뜨며 밤이 깊은데, 아이들은 잘 낌새가 없습니다. 얼마나 더 놀면 너희들은 스르르 곯아떨어지겠니, 하고 마음으로 묻습니다. 두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이리저리 뛰고 구를 뿐입니다. 작은 아이들은 작은 다리로 작은 집 작은 방에서 이리저리 뛰기만 해도 웃음보가 터집니다. 까르르 꺄하하.


  시골마을 작은 보금자리에 무슨 웃음샘이 있다고 웃음꽃이 피어날까 싶지만, 아이들은 저희 마음샘에서 웃음꽃을 길어올리겠지요.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읍내에서도, 기차에서도, 이웃 도시에서도, 어디에서도 아이들은 저희 깜냥껏 웃음꽃을 터뜨려요.


  하아, 길게 한숨을 쉬다가 혼자 옆방으로 건너갑니다. 옆방이라 하지만 문이 트인 방이요, 이부자리만 깐 곳입니다. 내 조그마한 빈책을 꺼내고 볼펜을 손에 쥡니다. 끝없이 뛰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마음을 글 몇 줄로 적바림합니다. “달은 / 꽃내음 먹으며 살아요 / 꽃빛 닮고 / 꽃무늬 아로새기며 / 까맣고 까만 / 깊은 밤하늘에서 / 맑게 빛나요. // 별은 / 풀내음 마시며 자라요 / 풀빛 물려받고 / 풀무늬 콕콕 새기며 / 캄캄하고 캄캄한 / 너른 밤하늘에서 / 밝게 웃지요.”


  고개를 들어 옆방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뜁니다. 쉬지 않고 구릅니다. 두 아이가 서로 부딪히고 서로 넘어지며 웃습니다. 놀이가 따로 없습니다. 일어서도 놀이요, 앉아도 놀이입니다. 누워도 놀이요, 기어도 놀이입니다.


.. 나비는 꽃이 쓴 글씨 ..  (나비를 읽는 법)


  내 어린 날, 나도 이 아이들처럼 낮 없고 밤 없이 놀았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도 나를 바라보면서 어쩜 너는 잠 없이 이렇게 놀 수 있니, 하고 바라보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내 어린 날은 우리 두 아이하고 사뭇 다릅니다. 나는 우리 두 아이처럼 더 깊게 더 늦게 더 오래 놀지 못했어요. 어른이 불을 끄면 우리도 누워야 하고, 어른이 잠자리에 들면 우리도 목소리를 죽여야 하며, 어른이 조용히 하라면 참말 조용히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큰소리와 함께 꾸지람, 또는 회초리가 날아오지요.


  우리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신나게 밤까지 잊으며 놀까 하고 생각하다가는, 아무래도 이 아이들 어버이인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어린 나날, 그야말로 까무라칠 만큼 실컷 개구지게 놀지 못한 탓 아닌가 하고 돌아봅니다. 어버이 내 가슴에 어떤 아쉬움이 씨앗으로 남아 아이들한테 이어질 수 있으며, 이 아이들은 아쉬움 하나 없이 홀가분하게 뛰어노는구나 싶어요.


.. 체육 선생은 밀대자루를 휘두를 때마다 외쳤다 / 새끼들, 그게, 질문, 이 새끼, 말이면, 다, 말 / 세상에는, 물으면, 안 되는, / 숨이 차자 조사를 빼고 때렸다 / 엉덩이에 뜨끈하게 붙어 있는 책을 깔고 앉아 / 아이들은 숨죽여 침묵을 자습했다 / 물으면 안 되는 것들을 조용히 뒤적였다 / 그림자들만 천장에 술렁이고 있었다 ..  (물으면 안 되는 것들)


  고흥 시골마을은 조용합니다. 고흥 시골마을은 따스합니다. 12월 들어 동짓날 지날 무렵 처음으로 마당에 얼음이 업니다. 그래도 물꼭지까지 얼지는 않습니다. 겨울비 내려 마당 한쪽에 물이 고인 뒤 살짝 얼었을 뿐입니다. 아침 되어 햇볕 비추면 얼음은 녹고, 밤이 되어 서늘해지면 이 물이 다시 얼 수 있고 그냥 안 얼 수 있어요.


  두 아이는 얼음조각 슬며시 집어서 우걱우걱 먹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이 꼴을 보면, 두 아이는 헤헤헤 웃으며 나머지 얼음조각을 입에 쑤셔넣습니다. 얼음이 그리 좋니. 얼음이 그리 맛나니. 먹고프면 먹어. 너희 마음이지.


  자전거를 타고 면내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들판을 바라봅니다. 빈들에는 유채씨를 뿌렸다 하는데, 유채씨 뿌리며 낸 고랑에 고인 겨울빗물이 살짝 얼었습니다. 고흥 웃쪽 구례나 임실쯤 되면, 겨울에 꽁꽁 얼어붙을 테니, 논자락에 물을 대기만 해도 얼음판이 될 테지요. 오늘날 시골에는 아이들이 거의 사라져 논자락에 얼음판을 만든달지라도 얼음을 지치며 놀 아이들이 없다 하겠지만, 참말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모두 논자락 얼음판에서 뒹굴며 놀았지 싶어요.


  얼음판에서는 쇳날 박은 신을 안 신어도 됩니다. 그냥 신을 신어도 얼음을 지치며 놀 수 있습니다. 신으로 얼음을 지치지 못하겠으면 궁둥이로 얼음을 지쳐도 됩니다. 궁둥이가 젖어 시리다면, 나무판이나 나무막대기를 주워 구르면 돼요.


  논자락 얼음판에서는 넘어져도 무릎이 깨지지 않습니다. 논자락 얼음판에서 고꾸라진들 머리가 터지지 않습니다. 쿵 소리 나며 머리가 좀 아플 뿐입니다. 살얼음이 언 데가 폭 빠지더라도 걱정할 일 없어요. 논물은 얕으니까요.


.. 골목 속에 햇빛의 골목이 따로 생기던 아침도 / 골목 속에 달빛의 골목이 따로 생기던 / 자녁도 발길을 끊은 저 골목 ..  (북아현동 후기시대)


  우리 집 작은아이가 칭얼거릴라치면 어깻죽지에 두 손을 폭 집어넣고는, 자, 날아 볼까, 하면서 하늘로 붕 던지면, 칭얼거리며 울먹이던 아이가 어느새 울음을 똑 그쳐요. 하늘을 날다가 다시 아버지 품으로 내려오며 꺄르르 웃습니다. 또, 한 번 날까, 하면서 붕 던지면, 아주 함박웃음 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아이가, 나도 하늘 날래, 하며 달라붙습니다. 음, 너는 이제 좀 힘든걸. 몇 밤 자면 여섯 살 될 큰아이를 집안에서 천장까지 붕 던지기에는 좀 버거워요. 그래, 큰아이는 어깻죽지에 손을 끼워 척 들어서 한 바퀴 돕니다. 자, 너는 이만큼만 즐겨, 괜찮지?


  이동안 작은아이는 응, 응, 하면서 다시 저를 날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습니다. 몇 차례 하늘날기를 시키다가는, 아이구 힘드네, 하고 드러눕습니다. 그러면 두 아이는 서로 콧소리 내며, 더, 더, 하고 외칩니다. 슬쩍 엎드립니다. 엎드려서 책 하나 집습니다. 두 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버지 등을 타려고 합니다. 작은아이는 키가 작아 등판을 잘 못 기어오르고, 큰아이는 썩썩 올라탑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말이 되어 책을 읽습니다. 아이는 말을 타며 놀고, 나는 아이들이 저희 몸무게로 내 허리를 눌러 주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책을 읽습니다.


  무릎걸음으로 옆방으로 건너갑니다. 이부자리에서 옆으로 픽 쓰러집니다. 말타기를 하던 큰아이는 이부자리로 폭 엎어집니다. 엎어지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웃음소리를 들은 작은아이가 뭔가 하고 달려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곁에서 부러 폭 엎어지면서 따라 웃습니다. 서로 이부자리에서 쓰러졌다가 섰다가 되풀이하면서 웃고 떠듭니다.


.. 한때 누구보다 이 골목을 잘 알던 개와 고양이 / 그림자도 얼씬하지 못한다 다리 달린 것들은 모두 쫓겨났다 / 까치와 라일락과 천 개의 구름, 날개 있는 것들은 모두 쫓겨났다 ..  (천 개의 빈집)

 

  우리들 보금자리는 시골이기에, 웃층 아래층 따로 없습니다. 집안에서 아이들이 떠든들 이웃집까지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도 되고, 방바닥을 쿵쿵 굴러도 됩니다. 한밤에 피아노를 두들기든 북을 두들기든 피리를 불든 하모니카를 불든 다 좋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겨레는 층집은 안 짓고 살았어요.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도, 달동네 작은 집이라 하더라도 모두 ‘마당집’이었지, ‘땅밑집’이나 ‘옥탑집’이 아니었어요. 일제강점기 언저리에 일본사람이 지은 나무집이 아니라면, 2층짜리 집이 없었어요. 도시에서 제법 살 만한 이들이 지은 새마을주택이 아니라면, 2층이나 다락방이 따로 없었어요.


  다닥다닥 붙은 도시 골목집에서는 아이들이 밤늦도록 놀 적에, 얇은 흙벽이나 나무벽을 타고 이웃집 사람이 좀 시끄럽다 느낄 만한 소리가 퍼졌겠지요. 그러나 이웃집에도 으레 아이들이 있으니, 이쪽에서 떠들든 저쪽에서 떠들든, 어느 집에서나 왁자지껄한 노랫소리가 울렸어요. 누구나 방바닥을 쿵쿵 울리는 놀이를 즐기고, 언제나 방바닥 콩콩 뛰고 구르며 살았어요.


  이제 5층 10층 20층 30층 층층층층 올라서는 집들이 수없이 들어섭니다. 시골 읍내에도 층층집이 들어섭니다. 마당집 아닌 층층집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들은 집안으로 들어오면 홀가분하게 뛰지 못합니다. 달리지 못합니다. 노래하지 못하고 구르지 못해요.


  아이들은 낮이고 밤이고 놀고파요.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슬그머니 밥상 앞에서 엉덩걸음으로 뒤로 빼다가는 까르르 웃으며 놀고파요.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우리 어버이들은 어떤 집에서 어떤 사랑을 꽃피울 때에 서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없다면, 아이들이 실컷 노래하거나 구를 수 없다면, 이런 곳을 ‘아이와 함께 살 보금자리’로 삼아도 될까 궁금합니다.


.. 직장만 바라보고 살던 이들은 모두 눈이 어두워졌다 ..  (합성사진)


  박지웅 님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박지웅 님은 시집 첫머리에 “라일락을 쏟았다 / 올겨울, 눈과 나비가 뒤섞여 내리겠다” 하고 노래합니다. 노래하는 이야기는 조그마한 책에 조그마한 사랑으로 담깁니다.


  어쩌다 라일락을 쏟았을까요. 무슨 일이 있기에 라일락을 쏟고 말았을까요. 그러나 라일락을 쏟았으니 눈도 내리고 나비도 내리겠지요. 라일락을 쏟고 보니 눈이랑 나비가 서로 얼크러지며 어여쁜 빛을 베풀겠지요.


.. 웅아, 아버지 돌아가셨다 / 기차가 고향역 들어설 때 누이는 연하고 붉은 말을 전했네 ..  (홍시)


  마음샘에서 꽃말을 길어올립니다. 마음에 깃든 샘이요, 꽃다운 말입니다. 마음을 싱그러이 밝히는 샘이며, 꽃처럼 곱고 환한 말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가장 이쁜 소리를 뽑아 한 마디 두 마디 또박또박 말합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가장 고운 소리를 뽑아 한 마디 두 마디 웅얼웅얼 말합니다.


  햇살이 드리우는 시골집 마당은 밝습니다. 마당에 넌 빨래가 천천히 마릅니다. 햇살 머금는 겨울바람이 보드랍게 마을을 감돕니다. 멧새가 먹이를 찾아 우리 집 후박나무와 초피나무에 앉았다 갑니다. 작은 멧새는 작은 초피나무 가지에 살포시 앉아 초피나무 열매를 몇 알 따서 먹습니다. 겨울 가고 봄이 와서 후박꽃이 피고 나면, 멧새는 후박꽃 따먹으러 오겠지요. 후박꽃 지면서 후박열매 검붉게 맺히면 멧새는 또 후박열매 따먹으러 오겠지요.


  내 살가운 이웃 누구나 마당집에서 나무 한 그루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나날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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