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2.25.
 : 길죽음

 


- 작은아이가 낮잠을 건너뛰며 놀려고 한다. 낮잠 달게 자며 노는 버릇을 들여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 자전거마실을 하기로 한다. 꼭 낮잠을 자야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낮잠을 건너뛴 채 개구지게 놀려 하면, 자꾸 칭얼거리거나 떼쓰는 일이 생긴다. 한두 시간쯤 달게 자고 일어나면 찌뿌둥한 기운이 사라지며 한결 즐거이 놀 텐데,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까지 낮잠 없이 놀려 하니,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퍽 힘들다.

 

- 어제오늘 바람이 퍽 차갑기에 아이들 낄 장갑을 챙긴다. 서재도서관에 갈 때에는 그냥 가고, 도서관에서 나와 면내에 갈 적에는 장갑을 끼우기로 한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대문을 나서는데, 어제처럼 바람 많이 불고 바람이 퍽 차다. 그래도, 우리 식구가 충북 음성에 살 적에는 눈밭을 헤치며 자전거를 탄 적 있는걸. 훨씬 추운 날씨에도 큰아이는 씩씩하게 자전거수레에서 추위와 찬바람 맞으며 달린 적 있는걸.

 

- 서재도서관에 짐을 갖다 놓으면서 책 두 권 챙긴다. 예전에 읽은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 1권과 《우리 문장 쓰기》를 살핀다. 새해에 새롭게 마무리할 ‘우리 말글 이야기’ 글꾸러미에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 이야기를 한 꼭지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곰곰이 돌아본다. 나는 이 책들이 어렵다 생각한 적 없고, 이 책들을 읽으며 머리가 맑게 트인다고 느꼈는데, 뜻밖에 퍽 많은 이들은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좀처럼 못 알아채는구나 싶다. 왜 그럴까. 찬찬히 읽고, 거듭 읽으며, 생각하며 읽는다면, 못 알아챌 이야기는 없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이웃이랑 나눌 한국말을 생각하며 읽으면, 내 말과 글을 어떻게 건사할 때에 스스로 아름다이 빛나는가를 또렷하게 깨닫도록 즐거이 이끌어 준다. 이를테면 “우리 말의 특성을 없이보고 남의 나라 말에 따라가려고 할 때 우리 말은 죽는다. 더구나 입으로 하는 말이 그렇다(131쪽).” 같은 이야기는 꾸밈없이 생각하면 아주 쉽다. 나도 옆지기도 내 이웃도, 학교에서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배운 적이 없다. 우리 둘레에서 어른이라 하는 이들 또한 아이들 앞에서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들려주는 일이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은 제도권교육이면서 입시교육에 얽매이니까,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고 입시문제만 가르친다. 한편, 표준말과 띄어쓰기에 얽매이면서, 삶말과 고장말을 북돋우거나 살찌우지 않는다. “흔히 쓰는 쉬운 입말이나, 좀 논리를 세워서 쓰는 글이라도 입말체로 쉽게 써도 될 것을 공연히 남의 나라 말 번역한 글같이 함부로 ‘의’를 넣어 쓰는 버릇은 우리 말을 죽이는 글쓰기라 아니할 수 없다(132쪽).” 같은 이야기도 매우 쉽다. 수수하게 읽으며 수수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쓰는 글이랑 내가 하는 말이 어떠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할 수 있으면, 이 말뜻을 환하게 짚을 수 있다.

 

- 큰아이는 어느새 제 장갑을 낀다. 큰아이는 노란 벙어리장갑인데 장갑이 예쁘다고 한눈에 느낀 듯하다. 아버지가 끼워 주지 않아도 스스로 끼고 논다. 작은아이는 혼자 장갑을 끼지 못하니, 아버지가 한 짝씩 꾹꾹 눌러 끼운다.

 

- 바람이 차다. 큰아이가 면내 가는 길에 노래를 두 가락 뽑다가는 이내 입을 다문다. 노래를 부르며 입구멍으로 찬바람 들어가는 줄 느꼈겠지. 아뭇소리 않고 이불과 내 두꺼운 겉옷을 뒤집어쓴다.

 

-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맞바람. 추운 겨울 맞바람은 자전거가 삐걱거리게까지 한다. 체인이 한 번 풀려 넘어질 뻔하다. 가까스로 자전거를 세우는데, 내 오른정강이가 발판에 찍힌다. 겨울이라 긴바지 입었기에 덜 다쳤는데, 정강이에서 피가 흐르는구나 하고 느낀다. 수레에 앉은 큰아이가 몹시 추워 한다. 수레 덮개를 내린다. 이러면 한결 낫지? 배추밭 옆을 달리고, 빈논 옆을 달린다. 등판에 땀이 흥건히 고일 무렵 마을 어귀에 닿는다. 온몸이 꽁꽁 얼면서 땀이 흐른다. 집으로 꺾는 고샅길 한쪽에 마을고양이 한 마리 길게 뻗은 모습 본다. 아, 죽었구나. 차에 치여 죽었네. 내가 마실 나올 적에는 못 봤는데, 그새 차에 치여 죽었구나. 이 마을에 차 있는 집은 이장님 댁뿐인데. 그러나, 이장님은 이쪽 길로 안 다니잖아. 다른 마을 사람이 우리 마을로 차를 몰고 와서는 들이받고 그냥 갔나 보다. 고양이는 차바퀴에 한 차례 밟히며 꽥 하고 외마디소리를 냈을 텐데, 어쩌면 그냥 갈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닌 짐승이니까 그냥 가도 될까.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아닌 들에서 홀로 살아가는 고양이라서 치여 죽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 누구네 차가 쳤을까. 마을마다 돌며 물건 파는 짐차가 쳤을까. 성탄절 맞이해서 시골마을 사는 어버이 찾아온 도시 딸아들이 몰고 온 자가용이 쳤을까.

 

-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들었는데, 이불을 걷고 내리려 할 무렵 깬다. 뭐니. 더 자고 일어나야 하는데, 고작 십 분 자고 깨니. 두 아이를 방으로 들인다. 자전거를 한쪽에 세운다. 실장갑 끼고 나온다. 죽은 고양이를 안는다. 벌써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랫배는 아직 따스하다. 치여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새삼 느낀다. 논둑이 넓따란 풀섶에 누인다. 너는 다시 태어날 때에는 저 숲속 나무로 태어나렴. 사람도 자동차도 공장도 전쟁도 모든 아픔과 슬픔도 없는 호젓한 숲속에서 사랑과 꿈을 키우는 아름드리 나무로 살아가렴.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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