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쓰는 마음

 


  ‘동시’라는 낱말은 누가 먼저 썼을까 궁금하지 않지만, 또 이 낱말이 얼마나 알맞거나 좋거나 얄궂거나 나쁜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하고 먼저 나누고 싶은 마음에 동시를 씁니다. 꼭 동시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은 아니고, 두 아이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누리는 빛과 사랑을 내 나름대로 웃음으로 삭혀서 찬찬히 길어올리는 이야기입니다.


  큰아이를 무릎에 앉히면서 동시를 씁니다. 다만, 종이에 연필 놀려 글을 적바림할 틈은 없습니다. 큰아이는 쉴 틈을 안 주면서 종알종알 노래를 하고, 나는 아이 노래를 받아 대꾸해야 합니다.


  작은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동시를 씁니다. 다만, 빈책을 꺼내 연필 움직여 글을 남길 겨를은 없습니다. 졸린 작은아이는 이리저리 칭얼거리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살살 토닥이면서 자장노래 부르며 저녁을 마감합니다.


  두 아이 보살피고 집살림 건사하는 틈이나 겨를을 내어 글 한 줄 적는 일이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틈을 내고 겨를을 내는구나 싶어요. 두 아이를 안 쳐다보면서 살아간다면, 내가 이 아이들과 나누는 사랑을 이야기꽃으로 피울 수 있을까요. 두 아이와 복닥거리며 바빠맞은 하루가 없으면, 이 아이들이 나한테 속삭이는 숱한 노래꽃과 삶빛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 밥을 먹이고, 아이들 밑을 씻기고, 아이들 옷을 빨고, 아이들 새옷을 입히고, 아이들 놀이를 함께 하고, 아이들 잠을 재우면서 하루가 흐릅니다. 동시란, 아이들과 예쁘게 살아가는 어버이 마음을 살포시 담는 꿈과 같은 말그릇이요, 아이들은 이 말그릇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으며 저희 말을 살찌운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나는 날마다 조금씩 말미를 내어 동시를 씁니다. 내 말을 살리고 싶고, 아이들 말을 살찌우고 싶어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집

 


바람이 불어
풀을 살리고
나무를 키우며
집을 보듬는다.

 

햇살이 내려
흙이 숨쉬고
돌이 빛나며
물이 싱그럽다.

 

숲은 푸르고
들은 넓으며
하늘이 파라니,
사람은 사랑이네.

 


4345.11.24.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북녘 일상의 풍경
안해룡 지음, 리만근 사진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24

 


이웃을 찾는 사진찍기
― 북녘 일상의 풍경
 리만근(석임생) 사진,안해룡 글
 현실문화연구 펴냄,2005.6.26./28000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진실에서 일하면서 북녘에 머물 일이 있던 리만근 님은 《북녘 일상의 풍경》(현실문화연구,2005)이라는 사진책 하나 낸 적 있습니다. 2005년 6월에는 이녁 이름을 밝힐 수 없어 ‘리만근’이라고 이름을 숨겨 사진책을 내놓고, 이듬해 12월에는 이녁 이름을 ‘리만근(석임생)’으로 밝히며 두 번째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신문기자도 사진작가도 아니면서 북녘사람 여느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어 남녘에서 내놓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아니, 아직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고 느낍니다. 몇몇 신문사 사진기자가 북녘을 취재하며 찍은 사진으로 책을 엮으며 ‘북녘 정치 얼거리 헐뜯기’에서 홀가분하지 못합니다. 여러 사진작가가 북녘을 드나들며 찍은 사진으로 책을 엮으며 ‘북녘 여느 사람 삶자락 들여다보기’까지는 다가서지 못합니다. 사진기자이든 사진작가이든 여러 해 머물며 사진을 찍을 수 없었거든요. 적어도 여러 달 꾸준히 머물며 마을을 느끼고 사람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없기도 했어요. 먼저 ‘편견’이나 ‘선입관’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오래도록 남녘에서 받은 제도권 교육 지식 틀에서 홀가분하지 못해요.


  공공기관에 몸담은 ‘사진 직원’이 되어 북녘에서 일곱 해 지낸 리만근(석임생) 님은 당신이 맡은 일을 사진으로 담는 한편 “나는 지금의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우연히 오랫동안 북한에 머물 수 있는 기회가 행운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이 기적 같은 행운은 나를 들뜨게 했지만, 한편에는 왠지 모를 불안함도 있었다(7쪽).” 같은 말마따나, ‘회사(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일을 넘어서는 ‘사진삶(북녘 이웃 마주하기)’으로 나아갑니다. 굳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북녘 이웃 마주하기(사진삶)’을 하지 않아도 일삯은 꾸준히 받았을 테고, 당신 일자리(사진 직원)는 걱정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리만근(석임생) 님은 생각했어요. 남녘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북녘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생각했어요. 남녘하고 이웃한 나라요 한겨레이지만, 도무지 만날 수 없고 사귈 수 없는 높다란 울타리가 놓인 북녘땅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북한의 사람들도 사진 찍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백일이나 돌, 그리고 가족의 경사가 있다면 동네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나 김정일 장군의 생일 등이 되면 태양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필름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 중대 사진사 왔네〉라는 노래가 불리울 정도로 북한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8쪽).”와 같은 이야기처럼, 북녘사람은 ‘뿔 달린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책 《북녘 일상의 풍경》에 나오는 북녘사람 가운데 머리에 뿔 달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진책 《북녘 일상의 풍경》에 나오는 북녘이웃 가운데 얼굴이 시뻘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북녘이웃은 그예 한겨레일 뿐, 빨갱이도 파랭이도 노랭이도 아닙니다. 북녘동무는 그예 사람일 뿐, 적군도 아군도 괴뢰군도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북녘에서도 누군가는 권력을 누리며 탱자탱자 놀고먹기도 하겠지요. 남녘에서도 이와 같아요. 남녘에서도 누군가는 권력을 누리며 탱자탱자 놀고먹어요. 그리고, 북녘에서나 남녘에서나 가난한 사람은 똑같이 가난합니다. 힘겨운 사람은 똑같이 힘겨워요. 이와 함께, 북녘에서나 남녘에서나 웃는 사람은 늘 웃습니다. 까르르 웃고 하하호호 웃어요. 신나게 노래하고 즐겁게 노래합니다.

 

 

 


  리만근(석임생) 님은 “나의 사진 작업은 단순히 북한의 이미지만을 담은 것이 아니다. 나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와는 확연하게 달라져 버린 북한의 말을 이해하려고 북한의 국어사전을 놓고 단어 공부를 해 가며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세심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사진에 담긴 북한의 외양은 얼핏 보면 우리의 1960∼70년대 모습처럼 보이지만, 나는 사진 안에서 우리의 생활과는 너무도 달라져 버린 북한의 일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9쪽).” 하고 밝힙니다. 그래요. 남녘과 북녘은 기나긴 해에 걸쳐 서로 다른 삶이 되어요. 같은 말이라지만 남녘말과 북녘말은 달라요. 맞춤법도 다르지만 국어사전도 다르지요. 띄어쓰기도 다르지만 말느낌이랑 말높낮이도 달라요. 다만,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말로 이야기를 섞을 수 있어요. 저마다 달리 쓰는 낱말이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데 섞이지요. 누군가 부추라 말하고 누군가 정구지라 말한대서 서로 못 알아듣지 않아요. 이내 알아차리지요. 누군가 민들레라 하고 말똥굴레라 한대서 서로 못 알아채지 않아요. 곧 알아챕니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알려고 다가서면 돼요. 너는 나를 알려고 다가오면 돼요. 서로 손을 잡으면 돼요. 서로 어깨동무하면 되지요. 마음으로 사귀고 사랑으로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면 될 일입니다.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봅니다. 구경꾼 구경이 아니라, 이웃집 이웃마실로 함께 살아갈 길을 찾으면 돼요.


  리만근(석임생) 님은 힘주어 말해요. “사진에 담겨 있는 북한의 사람들은 비록 어렵게 살고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다정스럽게 다가오는 우리 고향의 이웃들이었다(9쪽).” 하고. 그렇지요. 이웃을 찾는 사진찍기를 누리는 우리들이지요. 머나먼 남남을 스쳐 지나가는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사진찍기가 아니에요. 살가운 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잔치 누리려는 사진찍기예요. 동떨어진 남남하고 등을 지려는 사진찍기일 수 없습니다. 따사로운 눈길로 따사로이 얼싸안으면서 따사로이 삶을 누릴 너와 내가 이루는 마을을 생각하는 사진찍기입니다.


  내 이웃을 찍을 때에는 값진 사진기를 써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어린 손길로 다룰 사진기라면 넉넉합니다. 내 이웃을 찍을 때에는 빼어난 솜씨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찍고 기쁘게 나눌 사진을 생각하면 됩니다. 내 이웃을 찍을 때에 이런 이론 저런 평론을 들먹여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는 품이요 함께 노래하는 넋이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에는 내 이야기를 담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웃 모습이라 하더라도, 이웃과 마주하는 내 이야기입니다. 사진에는 내 꿈을 담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웃 삶자락이라 하더라도,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내 삶에 어리는 꿈입니다. 사진에는 내 사랑을 담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웃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웃사람하고 알콩달콩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찬찬히 피어나는 꽃과 같은 사랑이에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만근 님 사진책 <북녘 일상의 풍경>을 2005년에 서울 혜화동 <이음책방>에서 사서 읽었는데, 일곱 해 지난 요즈음 이 사진책을 한 권 더 장만해서 사진책도서관에 꽂는다. 두 권 있어도 좋으리라 느꼈는데, 그동안 2006년에 리만금 님 이야기 담긴 책이 하나 새로 나왔구나. 미처 몰랐는데, 이렇게 사진책 하나 새로 사며 살펴보다 비로소 깨닫는다. 사진 찍는 마음과 몸가짐을 돌아보는 사랑스러운 길동무 같은 책이리라 믿는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30년 사진인생, 7년간 북한을 담다- KEDO 출신 사진작가의 사진 다큐멘터리
리만근 지음 / 시대정신 / 2006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01월 04일에 저장
품절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자 지는 대청마루

 


  대청마루에 앉아 그림책을 넘긴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히기도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는 혼자서 그림책을 읽기도 한다. 꼭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혀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조용히 그림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달라붙곤 한다. 그러면 함께 그림을 보기도 하고, 글을 읽히기도 하며, 내가 이야기를 새로 지어 들려주기도 한다.


  그림책을 즐거이 보고 나서 사진을 찍으려고 바닥에 펼친다. 겨울햇살 곱게 들어온다. 문득 작은아이가 아버지 앞으로 와서 밖을 바라본다. 요 녀석, 옆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면 안 되겠니? 왜 그림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나 작은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얼쩡거리며 놀고 싶다. 아버지는 사진을 찍고 싶다. 실랑이 아닌 실랑이처럼 기다리다가 ‘아버지 사진찍기’는 그만두기로 한다. 그래, 아버지 일보다 네 놀이가 먼저로구나.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