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9] 동무읽기
― 내 동무는 누구인가

 


  새해(2013년)를 맞이해 여섯 살 세 살 되는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갑니다. 한 해 더 지나 큰아이가 일곱 살 되면, 아마 ‘취학통보서’가 우리 집에 날아올 텐데,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들 모두 대학바라기로 이끌 뿐 아니라, 모두 시골 떠나 도시에서 살도록 길들이기만 합니다. 시골에서 아름다운 숲 누리면서 예쁘게 살아가고 싶어 시골에 보금자리를 튼 만큼, 어여쁜 시골살이 즐거이 누리도록 이끄는 배움터가 아니라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도 보내고 싶지 않아요.


  둘레 어른들은 우리 아이를 만날 때 자꾸 “시골에 또래 동무가 없어서 어쩌니?” 하고 말합니다. 나이가 엇비슷한 또래가 없고, 시골 아이는 죄 도시로 떠났으니 동무가 없다는 뜻일 텐데, 또래가 없거나 동무가 없대서 그리 걱정스럽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서 또래를 만나거나 사귄다고 해서 아이들이 한결 즐거이 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 또래를 헤아려 보면 슬픕니다. 우리 아이 또래인 다른 집 아이들은 으레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노래를 배우고 영어만화를 봅니다. 어린이집부터 온통 비디오와 만화영화에 길들고, 따로 무슨무슨 학습이라면서 머리에 지식조각을 집어넣어야 해요. 집집마다 거의 다 있다는 자가용을 아주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탑니다. 두 다리로 개구지게 뛰노는 또래 아이들을 찾아보기 몹시 힘듭니다. 두 다리로 풀숲을 헤치고 들판을 누비거나 바다를 가르는 또래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마을이나 집이나 학교 둘레에 ‘풀숲 헤치’고 ‘들판 누비’며 ‘바다 가르’는 또래가 있다면, 곧장 이 아이한테 찾아가 서로 동무로 삼자고 할 생각입니다. 이 같은 또래가 아니라면, ㅃㄹㄹ이니 ㅌㅇ이니 하는 ‘텔레비전 캐릭터’에 마음을 빼앗긴 채, 흙이나 모래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하는 또래라 한다면, 이 아이들이 우리 집 아이들하고 나이가 엇비슷하대서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아이들끼리 두면, 집안 아닌 마당이나 바깥에서 아이들끼리 두면, 아이들은 어느새 ‘텔레비전 캐릭터’나 ‘영어노래’ 따위는 잊습니다. 온몸 굴리고 뜀박질하는 놀이에 흠뻑 젖어듭니다.


  아이들은 뛰놀 마당과 숲과 들과 바다와 멧골이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놀이공원이나 보육시설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마음이 맞는 벗을 찾아야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또래를 만나지 않아도 돼요. 또래가 꼭 동무가 되지 않아요. 동무란, 서로 마음이 맞는 아름다운 사이로 지내는 이웃입니다. 동무란, 나와 네가 마음을 활짝 열며 아름다이 사랑을 일구는 삶지기입니다.


  나이가 같대서 동무가 되지 않아요. 어른끼리도 그렇거든요. 어른끼리도 나이가 같아야 동무가 되지는 않아요. 마음이 맞아야 동무입니다. 마음이 사랑스럽고, 마음이 믿음직하며, 마음이 넉넉할 때에 비로소 동무예요.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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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아이

 


  아침에 작은아이 쉬를 누이고 나서 얼마 안 지났는데, 작은아이가 이맛살 찡그리며 응응응응 한다. 응? 왜? 아하, 똥 마려? 응가 마렵구나. 응가 눌래? 응응응응. 그래, 그러면 응가 누러 가자. 응응응응. 자 앉아 봐. 응가 영차. 응가 영차. 응응응응.


  작은아이를 오줌그릇이자 똥그릇에 앉힌다. 아버지는 아침에 먹을 밥을 끓이려고 냄비에 불을 올린다. 국을 어떻게 끓일까 생각한다. 이러는 동안 대청마루 오줌그릇에 앉은 작은아이더러 “응가 영차!” 하는 노래를 불러 준다. 작은아이는 이제 다 누었는지, 다시 응응응응 한다.


  너 응응응응 하면서 찡그리는 이맛살 되게 귀엽거든. 다 누었다면서 또 응응응응 하는 볼때기도 귀엽거든. 작은아이는 오늘 아침 오줌바지 두 벌을 내놓았지만, 똥바지는 내놓지 않는다. 참 예쁘구나. 오줌바지에 척척 빨면 쉽고, 똥바지는 좀 품이 들잖니. 세 살 먹었다고, 새해 첫머리에 아주 귀엽고 착한 짓을 다하는구나. 똥 곱게 눈 너를 한팔로 안아 다른 한팔로 따순 물 틀어 네 밑을 닦는다. 세 살 아이는 참 가볍네. 넌 아직 참 가벼운 아이야. 여섯 살 너희 누나는 이렇게 한팔로 안아서 씻기지 못하거든.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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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조무래기별들 -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박일환 지음, 박해솔 그림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22

 


서로 곱게 반짝이는 별
―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
 박일환 글,박해솔 그림
 삶창 펴냄,2012..10.26.11000원

 


  한 해가 지나가며 아이들 나이에 한 살을 더합니다. 다섯 살이던 큰아이는 여섯 살이요, 두 살이던 작은아이는 세 살입니다. 그런데, 다섯 살 큰아이는 “사름벼리는 다섯 살이야. 다섯 살만 할래.” 하고 말합니다. 네 살에서 다섯 살이 되었고, 세 살에서 네 살이 되었으나, 아직 다섯에서 여섯으로 넘어갈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렴. 그렇지만 넌 여섯 살 맞거든.


  세 살이 된 작은아이는 제가 두 살이든 세 살이든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직 스스로 말문을 활짝 트지 않기도 했고, 나이가 무엇이건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고 맛나게 먹으며 코코 잠자면 넉넉한 하루입니다.


.. 그런 나의 생각과 아내의 입장은 또 달랐던가 보다. 내가 앞에 있는 시를 써서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어이구, 두 애를 씻겨 주느라고 내가 얼마나 힘든데 그래.” 하는 말이 돌아왔던 것이다 … 언젠가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하루는 둘째가 말하길, 자신은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밤늦게 다니는 줄 알았단다..  (45, 51쪽)

 

 


  아이들한테는 나이도 옷차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저희 어버이가 돈이 얼마나 많거나 적든, 저희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든 말든, 저희 어버이한테 땅이 있든 말든,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저희 어버이가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그예 어버이일 뿐입니다.


  함께 먹으니 즐거운 밥입니다. 어느 이름난 맛집을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밥상에 반찬 한두 가지만 있어도 즐겁고, 국과 밥만 있어도 재미있어요.


  함께 놀기에 즐거운 하루입니다. 어떤 놀잇감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떤 놀이공원으로 마실을 가야 하지 않아요. 함께 손 맞잡고 노니까 신납니다. 서로 노래부르고 같이 뛰고 구르니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놉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기운이 다하면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은 달게 자고 나면, 다시 기운을 씩씩하게 차려 새삼스레 뛰어놉니다.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궁둥걸음으로 밥상에서 멀어진 큰아이가 그림책 하나를 들고는 숫자를 읽습니다. “아버지, 사름벼리 여섯 살이야?” 하고 묻습니다. 한손으로는 손가락 다섯을 펼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첫째손가락을 펼칩니다. 어느새 그렇게 숫자를 셀 줄 알았니. 놀랍구나. “그래, 사름벼리는 이제 여섯 살이야. 동생은 세 살이야.” 큰아이는 그림책 숫자판을 돌리더니 “이거야? 이거야?” 하고 묻습니다. 숫자 셋을 잘 찍습니다. 용하네. 너희 어머니나 아버지는 너한테 숫자를 찬찬히 가르친 적은 없는데. 그저 지나가는 투로 가끔 숫자를 읽어 주기만 했는걸.


  아침에는 다섯 살 나이를 안 받아들이던 큰아이가 낮이 되어 여섯 살 나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너, 저녁에 일곱 살이라 하면 일곱 살 나이도 받아들이겠니?


..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란 게 단조롭고 삭막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먹고사는 직장에 매이다 보면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아파트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연 속에 아이를 놓아 기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초상 속에 나 역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이와 함께 (텔레비전) 메리벨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일곤 했다 ..  (81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린 나날 씩씩하게 뛰놀면서 자랐습니다. 나 또한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았어요. 날마다 개구지게 뛰고 구르고 달리고 하면서 자랐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합니다. 부딪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씩씩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튼튼하게 먹고 자고 입고 놉니다. 기운차게 놉니다. 온힘 바쳐서 놉니다.


  잘 논 아이는 밥을 잘 먹습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밥을 잘 못 먹습니다. 잘 논 아이는 노래를 즐겁게 부릅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노래부를 마음이 샘솟지 않습니다.


  나는 국민학교에 들 때까지 한글이나 숫자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알았을까 몰랐을까 아리송한데, 미리 알았다 한들 더 똑똑해질 일 없고, 늦게 익힌들 덜 똑똑해질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놀면서 ‘한글 안다고 도움될’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글놀이를 할 일이란 없어요. 흙바닥에 돌멩이로 금을 긋고 놉니다. 빈터나 찻길이나 주차장이나 풀숲에서 술래잡기를 합니다. 꼬리물기놀이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놉니다. 그저 맨땅을 땀 송송 돋도록 달릴 뿐이지만, 달리기도 즐거운 놀이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트랙이라 하는 운동장을 달려야 하지 않아요. 학교 운동장에서도 달리지만, 골목에서도 달립니다. 마당에서도 달리고, 방에서도 달리며, 마루에서도 달립니다. 학교 골마루에서도 달리고, 교실에서도 달립니다. 그러고 보면, 내 어린 나날은 늘 달리는 하루였어요. 학교 교사나 둘레 어른은 ‘교실에서 뛰면 못 써!’ 하고 윽박지른다든지, ‘그렇게 달리다가 넘어질라!’ 하고 걱정할 뿐이지만, 우리들은 쉬잖고 달립니다. 마치, 달리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기라도 한 듯, 달리며 땀 송송 솟지 않으면 아이가 될 수 없기라도 하는 듯.


.. 지금도 아침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나란히 밭둑길을 걸어서 출근하던 일과 그때마다 북녘땅에서 틀어놓은 대남 방송이 웅웅대며 들려오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 바쁘게 몰아치는 근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건, 그러한 체제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잠시 마주하는 자연의 풍경 같은 게 아닐까 싶다 ..  (95, 118쪽)

 


  밤하늘 올려다보면 시골마을에서는 뭇별 반짝반짝 빛납니다. 도시에서는 짙게 낀 먼지구름이랑 숱한 불빛 때문에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밤에는 별이 뜨지요. 밤에는 별빛이 환하지요. 어느 별은 더 크게 반짝이고, 어느 별은 좀 작게 반짝입니다.


  그런데, 지구별에서 바라보니까 어느 별이 더 크거나 작게 보이지, 막상 그 별에 가고 보면 참말 클 수 있어요. 지구별이랑 가까운 달이니 크게 보이지, 달이나 지구보다 훨씬 크지만 지구별이랑 멀리 떨어졌기에 아주 작게 보이는 별이 많아요.


  모두 빛나는 별이에요. 크든 작든 모두 환한 별이에요.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지구와 가깝든 멀든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박일환·박해솔 두 사람이 빚은 이야기책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삶창,201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버지 박일환도 아이 박해솔도 환하게 빛나는 별이에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빛나는 별이요,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빛나는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고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따사로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착한 별이에요.


..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다 보니 오후에 애들을 보살펴 줄 수가 없었다. 유치원 시절에는 종일반이 있으니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다가오면서 어찌해야 좋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고, 결국 초등학교 1학년짜리를 학원으로 내몰아야 했다. 그나마 학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 나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남편이었음을 고백한다. 밥 달라고 보채지는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밥을 지어서 상을 차려 준 적이 없고, 임신한 아내가 맛있어 할 만한 걸 미리 알아서 사다 준 기억도 별반 없다 ..  (105, 137쪽)


  지구별 어버이들 누구나 당신 아이들과 더 오래 더 가까이 더 살가이 지낼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을 보육시설이나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아이들이랑 손 맞잡고 하루를 더 즐거이 뛰놀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하고 놀이공원 안 가도 돼요. 아이들하고 집에서 힘차게 뛰놀면 돼요. 아이들을 자가용이나 시외버스 태우고 어디로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과 가까운 숲으로 찾아가 숲바람 쐬고 숲햇살 누리면 돼요. 나도 너는 저마다 맑게 빛나는 별이니, 저마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별빛을 느끼면서 즐거이 마주하면 돼요.


  생각해 봐요. 두 어버이가 맞벌이를 해서 돈을 번 다음 어디에 어떻게 쓸 생각인가요. 맞벌이를 해서 돈을 더 번 다음, 아이들 맡길 보육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을 찾아야 하나요. 맞벌이를 안 하고 돈벌이를 줄이면서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한결 알콩달콩 누리는 삶일 때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지 않을까요.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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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8] 씨앗읽기
― 씨앗회사와 정치권력 꿍꿍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며 생각합니다. 칼을 쥐어 감자나 양파나 무나 푸성귀를 써는 내 마음속에 흐리거나 어두운 빛이 흐르면, 내 손으로 짓는 먹을거리 또한 흐리거나 어두운 기운이 서리는구나 싶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리면, 아무리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놀며 밥알이나 국을 흘리더라도 따스하며 밝은 기운이 서리는구나 싶어요.


  빨래를 할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복복 비비고 헹구어야 옷가지마다 따스하며 밝은 기운이 서려요. 아이들을 씻길 적에도 내 마음이 환하고 기뻐야, 아이들 몸을 정갈히 씻길 수 있어요.


  마음이 어두움으로 꽉 찼을 적에는, 아무리 허울좋은 예쁜 말을 내놓으려 하더라도, 어두움이 잔뜩 낀 슬프거나 새된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마음이 밝게 빛날 적에는, 언제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고운 노랫소리가 솔솔 흘러나옵니다.


  씨앗 한 알 손에 쥐어 논과 밭에 심는 사람들 마음은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흙을 밟으며 흙을 만지는 마음이 어둡다면, 씨앗에도 어두운 기운이 서리면서 흙에까지 어두운 기운이 퍼질 테지요. 밝은 마음으로 흙을 밟고서 밝은 생각 길어올려 흙을 만지면, 씨앗뿐 아니라 흙에까지 밝은 기운이 이어질 테고요.


  사람들 누구나 먹는 밥은 쌀로 짓습니다. 쌀은 나락 껍질을 벗겨 얻습니다. 나락 껍질을 살짝 벗기면 누런쌀이요, 나락 껍질을 많이 벗겨 알맹이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하면 흰쌀입니다. 나락 껍질, 그러니까 겨를 살짝 벗긴 누런쌀에는 씨눈이 남고, 겨를 벗길 뿐 아니라 하얀 알맹이만 남기려 하면 씨눈이 잘립니다.


  나락이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볍씨입니다. ‘씨가 되는 벼’, 곧 ‘이듬해에 벼를 새로 얻을 씨앗’입니다. 감자알도 이듬해에 심어 새로 거두려 하면 ‘씨감자’를 갈무리합니다. 씨알이 있어야 다시 흙을 일구면서 우리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보리도 밀도 수수도 서숙도 모두 ‘먹을 알곡’에서 ‘씨앗으로 삼을 알곡’을 따로 갈무리합니다.


  밥을 먹는다 할 때에는 씨앗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곡식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씨앗을 먹습니다. 풀이 맺는 씨앗, 이른바 곡식은 풀한테 열매입니다. 능금이나 배나 살구처럼 알이 커다랗지 않으나, 풀열매는 곡식이면서 씨앗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풀열매요 곡식인 씨앗은 ‘거두고 심고 거두고 심고’를 되풀이합니다. 거둔 씨앗을 갈무리하고 다시 심어 먹을거리를 얻으며, 새로 심을 씨앗을 둡니다. 백 해 오백 해 천 해 오천 해 만 해를 잇는 씨앗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오늘 먹는 씨앗은, 천 해 앞서 살아가던 옛사람이 거두고 심던 씨앗입니다. 천 해 앞서 살아가던 옛사람이 거두고 심던 씨앗이란, 만 해 앞서 살아가던 옛사람이 거두고 심던 씨앗이에요.


  사람을 낳는 씨앗은 사람 몸에 깃듭니다. 곡식을 낳는 씨앗은 곡식 몸, 곧 줄기와 뿌리와 잎과 꽃에 깃듭니다. 곡식 유전자를 건드려 돈을 벌려고 하는 회사는, 곡식을 이듬해에 심으면 새로 돋지 않도록 가로막습니다. 사람들이 씨앗을 건사해서 심다가는 씨앗회사가 돈을 못 벌 테니까요. 자꾸자꾸 새로 사다 심도록 길들입니다. 처음에는 씨앗값을 눅게 파는 듯하지만, 곰곰이 따지면, 여태까지 어느 흙일꾼도 씨앗값을 돈으로 치른 적 없어요. 씨앗은 돈으로 사고팔 수 없거든요. 씨앗이란 밥이면서 목숨이기에, 스스로 제 땅을 일구어 제 삶을 일구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심고 거두며 밥을 먹었지, 돈으로 씨앗(곡식)을 내다 팔아 밥을 먹지 않았어요.


  도시가 커지고 시골을 잡아먹으면서, 흙일꾼더러 씨앗(곡식)을 도시로 내다 팔도록 부추깁니다. 흙일꾼 살림집에는 전기나 수도물이 없어도 되었으나, 흙일꾼이 전기와 수도물을 쓰도록 길들입니다. 흙일꾼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록 하면서, 땅을 팔고 씨앗(곡식)을 팔도록 내몹니다. 흙일꾼 집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도록 가르치자니, 흙일꾼은 자꾸자꾸 땅을 팔고 씨앗(곡식)을 팔아야 합니다. 스스로 지어서 먹던 씨앗은 조금 못생기거나 볼품이 없더라도, 집집마다 가장 맛나고 아름다웠지만, 내다 팔아야 하는 씨앗은 굵직하고 예뻐야 합니다.


  흙일꾼은 나날이 비료와 농약을 써야 합니다. 비료와 농약 없이 흙을 일구던 사람들이지만, 흙일꾼 집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니, 풀을 뽑거나 거름을 만들 일손이 모자랍니다. 시골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시골을 떠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노동자가 되고 보니, 이제 시골에는 늙은이만 남느라 비료와 농약 없이는 ‘씨앗(곡식) 내다 팔 길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시골 흙일꾼이 비료와 농약에 길들면서 ‘스스로 씨앗을 건사해 새로 심던 삶’이 무너집니다. 씨앗회사에서 씨앗을 돈 주고 삽니다. 더 굵고 더 예뻐 보이는 열매가 나는 씨앗을 사다 씁니다. 이제 ‘씨앗과 밥이 되는 목숨(씨앗)’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다 팔기 좋아 보이는 열매’만 바라봅니다.


  시나브로 씨앗회사가 씨앗을 홀로 차지하면서 흙을 망가뜨립니다. 흙이 망가지니 비료를 더 써야 하고, 일손이 모자라니 농약을 더 써야 합니다. 흙은 자꾸자꾸 더 망가지고, 비료와 농약 장사는 더 불티나게 되면서, 씨앗회사는 조금씩 씨앗값을 올리며 떼돈을 법니다. 이동안, 시골 떠나 도시에서 새 보금자리를 튼 아이들이 다시 시골로 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도시로 간 시골 아이들이 늙은 어버이 일손을 거들러 시골로 찾아오는 일조차 없습니다.


  처음에는 씨앗 한 알이지만, 바야흐로 흙과 시골과 숲과 사람 모두 뒤흔들며 무너뜨리는 사회·정치·경제·교육 얼거리요, 씨앗회사입니다.


  사회는 돈만 바라보도록 내몹니다. 정치는 시골을 살피지 않습니다. 경제는 무역과 투자와 수출을 외칩니다. 교육은 ‘씨앗 심는 아이’로 이끌지 않습니다. 씨앗회사는 돈을 벌어들여 기쁘고, 정치권력은 값싼 일꾼(회사원과 공장노동자)을 시골에서 끌여들여 도시를 이루고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니 기쁩니다.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교육을 받친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톱니바퀴나 쳇바퀴 구실을 합니다. 연봉이 제법 높다거나 연금과 노후를 지켜 준다는 공공기관이라는 이름은 허울입니다. 시골 떠난 아이들이 도시에서 돈을 버는 동안, 시골마을 늙은 어버이는 허리가 휠 뿐더러, 시골마을 흙과 숲은 모두 망가질 뿐 아니라, 시골이나 도시에서 ‘밥(씨앗)을 먹는 사람’들은 ‘아름답지도 좋지도 맛나지도 않은’ 유전자 건드린 곡식을 먹어야 합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닭고기는 ‘유전자 건드린 곡식’으로 만든 사료를 먹으며 화학약품으로 만든 항생제를 먹은 돼지와 소와 닭을 잡아서 공장에서 만듭니다.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도시와 시골에서는 몸을 망가뜨리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먹을거리로 넘칩니다.


  씨앗 한 알이 우주입니다. 씨앗 한 알이 우주인 줄 깨달은 슬기로운 사람은 숲에 깃들며 손으로 흙을 일굽니다. 씨앗 한 알이 우주인 줄 알아챈 장사꾼은, 씨앗 유전자를 건드려 돈과 권력을 거머쥐며 사람들을 바보로 길들이려고 합니다. 정치권력은 도시사람들이 ‘씨앗 한 알이 우주’인 줄 깨닫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학교에서는 씨앗하고 동떨어진 교과서만 가르칩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영어에 온마음 바치도록 등을 밉니다. 중·고등학교 푸름이한테는 대학바라기만 하도록 짓누르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일자리 찾는 데에 마음 사로잡히도록 울타리를 쌓습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흙을 잊고 씨앗을 잃습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대로 삶을 잊고 사랑을 잃습니다.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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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도 책 넘기고 싶어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누나 모두 책을 넘기면서 들여다보니, 가장 어린 산들보라도 책이 보이면 작은 손으로 살짝살짝 넘기고 싶다. 무언가 들여다보는 책일 수 있고, 얇은 종이를 하나하나 건사하며 넘기는 놀이일 수 있다. 아무튼, 산들보라도 아름다운 책에 깃든 아름다운 이야기를 조그맣고 어여쁜 손으로 느끼리라.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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