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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조무래기별들 -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박일환 지음, 박해솔 그림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22
서로 곱게 반짝이는 별
―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
박일환 글,박해솔 그림
삶창 펴냄,2012..10.26.11000원
한 해가 지나가며 아이들 나이에 한 살을 더합니다. 다섯 살이던 큰아이는 여섯 살이요, 두 살이던 작은아이는 세 살입니다. 그런데, 다섯 살 큰아이는 “사름벼리는 다섯 살이야. 다섯 살만 할래.” 하고 말합니다. 네 살에서 다섯 살이 되었고, 세 살에서 네 살이 되었으나, 아직 다섯에서 여섯으로 넘어갈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렴. 그렇지만 넌 여섯 살 맞거든.
세 살이 된 작은아이는 제가 두 살이든 세 살이든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직 스스로 말문을 활짝 트지 않기도 했고, 나이가 무엇이건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고 맛나게 먹으며 코코 잠자면 넉넉한 하루입니다.
.. 그런 나의 생각과 아내의 입장은 또 달랐던가 보다. 내가 앞에 있는 시를 써서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어이구, 두 애를 씻겨 주느라고 내가 얼마나 힘든데 그래.” 하는 말이 돌아왔던 것이다 … 언젠가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하루는 둘째가 말하길, 자신은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밤늦게 다니는 줄 알았단다.. (45,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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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한테는 나이도 옷차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저희 어버이가 돈이 얼마나 많거나 적든, 저희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든 말든, 저희 어버이한테 땅이 있든 말든,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저희 어버이가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그예 어버이일 뿐입니다.
함께 먹으니 즐거운 밥입니다. 어느 이름난 맛집을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밥상에 반찬 한두 가지만 있어도 즐겁고, 국과 밥만 있어도 재미있어요.
함께 놀기에 즐거운 하루입니다. 어떤 놀잇감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떤 놀이공원으로 마실을 가야 하지 않아요. 함께 손 맞잡고 노니까 신납니다. 서로 노래부르고 같이 뛰고 구르니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놉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기운이 다하면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은 달게 자고 나면, 다시 기운을 씩씩하게 차려 새삼스레 뛰어놉니다.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궁둥걸음으로 밥상에서 멀어진 큰아이가 그림책 하나를 들고는 숫자를 읽습니다. “아버지, 사름벼리 여섯 살이야?” 하고 묻습니다. 한손으로는 손가락 다섯을 펼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첫째손가락을 펼칩니다. 어느새 그렇게 숫자를 셀 줄 알았니. 놀랍구나. “그래, 사름벼리는 이제 여섯 살이야. 동생은 세 살이야.” 큰아이는 그림책 숫자판을 돌리더니 “이거야? 이거야?” 하고 묻습니다. 숫자 셋을 잘 찍습니다. 용하네. 너희 어머니나 아버지는 너한테 숫자를 찬찬히 가르친 적은 없는데. 그저 지나가는 투로 가끔 숫자를 읽어 주기만 했는걸.
아침에는 다섯 살 나이를 안 받아들이던 큰아이가 낮이 되어 여섯 살 나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너, 저녁에 일곱 살이라 하면 일곱 살 나이도 받아들이겠니?
..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란 게 단조롭고 삭막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먹고사는 직장에 매이다 보면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아파트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연 속에 아이를 놓아 기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초상 속에 나 역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이와 함께 (텔레비전) 메리벨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일곤 했다 ..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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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린 나날 씩씩하게 뛰놀면서 자랐습니다. 나 또한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았어요. 날마다 개구지게 뛰고 구르고 달리고 하면서 자랐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합니다. 부딪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씩씩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튼튼하게 먹고 자고 입고 놉니다. 기운차게 놉니다. 온힘 바쳐서 놉니다.
잘 논 아이는 밥을 잘 먹습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밥을 잘 못 먹습니다. 잘 논 아이는 노래를 즐겁게 부릅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노래부를 마음이 샘솟지 않습니다.
나는 국민학교에 들 때까지 한글이나 숫자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알았을까 몰랐을까 아리송한데, 미리 알았다 한들 더 똑똑해질 일 없고, 늦게 익힌들 덜 똑똑해질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놀면서 ‘한글 안다고 도움될’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글놀이를 할 일이란 없어요. 흙바닥에 돌멩이로 금을 긋고 놉니다. 빈터나 찻길이나 주차장이나 풀숲에서 술래잡기를 합니다. 꼬리물기놀이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놉니다. 그저 맨땅을 땀 송송 돋도록 달릴 뿐이지만, 달리기도 즐거운 놀이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트랙이라 하는 운동장을 달려야 하지 않아요. 학교 운동장에서도 달리지만, 골목에서도 달립니다. 마당에서도 달리고, 방에서도 달리며, 마루에서도 달립니다. 학교 골마루에서도 달리고, 교실에서도 달립니다. 그러고 보면, 내 어린 나날은 늘 달리는 하루였어요. 학교 교사나 둘레 어른은 ‘교실에서 뛰면 못 써!’ 하고 윽박지른다든지, ‘그렇게 달리다가 넘어질라!’ 하고 걱정할 뿐이지만, 우리들은 쉬잖고 달립니다. 마치, 달리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기라도 한 듯, 달리며 땀 송송 솟지 않으면 아이가 될 수 없기라도 하는 듯.
.. 지금도 아침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나란히 밭둑길을 걸어서 출근하던 일과 그때마다 북녘땅에서 틀어놓은 대남 방송이 웅웅대며 들려오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 바쁘게 몰아치는 근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건, 그러한 체제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잠시 마주하는 자연의 풍경 같은 게 아닐까 싶다 .. (95,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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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올려다보면 시골마을에서는 뭇별 반짝반짝 빛납니다. 도시에서는 짙게 낀 먼지구름이랑 숱한 불빛 때문에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밤에는 별이 뜨지요. 밤에는 별빛이 환하지요. 어느 별은 더 크게 반짝이고, 어느 별은 좀 작게 반짝입니다.
그런데, 지구별에서 바라보니까 어느 별이 더 크거나 작게 보이지, 막상 그 별에 가고 보면 참말 클 수 있어요. 지구별이랑 가까운 달이니 크게 보이지, 달이나 지구보다 훨씬 크지만 지구별이랑 멀리 떨어졌기에 아주 작게 보이는 별이 많아요.
모두 빛나는 별이에요. 크든 작든 모두 환한 별이에요.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지구와 가깝든 멀든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박일환·박해솔 두 사람이 빚은 이야기책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삶창,201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버지 박일환도 아이 박해솔도 환하게 빛나는 별이에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빛나는 별이요,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빛나는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고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따사로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착한 별이에요.
..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다 보니 오후에 애들을 보살펴 줄 수가 없었다. 유치원 시절에는 종일반이 있으니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다가오면서 어찌해야 좋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고, 결국 초등학교 1학년짜리를 학원으로 내몰아야 했다. 그나마 학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 나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남편이었음을 고백한다. 밥 달라고 보채지는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밥을 지어서 상을 차려 준 적이 없고, 임신한 아내가 맛있어 할 만한 걸 미리 알아서 사다 준 기억도 별반 없다 .. (105, 137쪽)
지구별 어버이들 누구나 당신 아이들과 더 오래 더 가까이 더 살가이 지낼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을 보육시설이나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아이들이랑 손 맞잡고 하루를 더 즐거이 뛰놀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하고 놀이공원 안 가도 돼요. 아이들하고 집에서 힘차게 뛰놀면 돼요. 아이들을 자가용이나 시외버스 태우고 어디로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과 가까운 숲으로 찾아가 숲바람 쐬고 숲햇살 누리면 돼요. 나도 너는 저마다 맑게 빛나는 별이니, 저마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별빛을 느끼면서 즐거이 마주하면 돼요.
생각해 봐요. 두 어버이가 맞벌이를 해서 돈을 번 다음 어디에 어떻게 쓸 생각인가요. 맞벌이를 해서 돈을 더 번 다음, 아이들 맡길 보육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을 찾아야 하나요. 맞벌이를 안 하고 돈벌이를 줄이면서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한결 알콩달콩 누리는 삶일 때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지 않을까요.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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