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9] 동무읽기
― 내 동무는 누구인가
새해(2013년)를 맞이해 여섯 살 세 살 되는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갑니다. 한 해 더 지나 큰아이가 일곱 살 되면, 아마 ‘취학통보서’가 우리 집에 날아올 텐데,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들 모두 대학바라기로 이끌 뿐 아니라, 모두 시골 떠나 도시에서 살도록 길들이기만 합니다. 시골에서 아름다운 숲 누리면서 예쁘게 살아가고 싶어 시골에 보금자리를 튼 만큼, 어여쁜 시골살이 즐거이 누리도록 이끄는 배움터가 아니라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도 보내고 싶지 않아요.
둘레 어른들은 우리 아이를 만날 때 자꾸 “시골에 또래 동무가 없어서 어쩌니?” 하고 말합니다. 나이가 엇비슷한 또래가 없고, 시골 아이는 죄 도시로 떠났으니 동무가 없다는 뜻일 텐데, 또래가 없거나 동무가 없대서 그리 걱정스럽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서 또래를 만나거나 사귄다고 해서 아이들이 한결 즐거이 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 또래를 헤아려 보면 슬픕니다. 우리 아이 또래인 다른 집 아이들은 으레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노래를 배우고 영어만화를 봅니다. 어린이집부터 온통 비디오와 만화영화에 길들고, 따로 무슨무슨 학습이라면서 머리에 지식조각을 집어넣어야 해요. 집집마다 거의 다 있다는 자가용을 아주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탑니다. 두 다리로 개구지게 뛰노는 또래 아이들을 찾아보기 몹시 힘듭니다. 두 다리로 풀숲을 헤치고 들판을 누비거나 바다를 가르는 또래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마을이나 집이나 학교 둘레에 ‘풀숲 헤치’고 ‘들판 누비’며 ‘바다 가르’는 또래가 있다면, 곧장 이 아이한테 찾아가 서로 동무로 삼자고 할 생각입니다. 이 같은 또래가 아니라면, ㅃㄹㄹ이니 ㅌㅇ이니 하는 ‘텔레비전 캐릭터’에 마음을 빼앗긴 채, 흙이나 모래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하는 또래라 한다면, 이 아이들이 우리 집 아이들하고 나이가 엇비슷하대서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아이들끼리 두면, 집안 아닌 마당이나 바깥에서 아이들끼리 두면, 아이들은 어느새 ‘텔레비전 캐릭터’나 ‘영어노래’ 따위는 잊습니다. 온몸 굴리고 뜀박질하는 놀이에 흠뻑 젖어듭니다.
아이들은 뛰놀 마당과 숲과 들과 바다와 멧골이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놀이공원이나 보육시설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마음이 맞는 벗을 찾아야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또래를 만나지 않아도 돼요. 또래가 꼭 동무가 되지 않아요. 동무란, 서로 마음이 맞는 아름다운 사이로 지내는 이웃입니다. 동무란, 나와 네가 마음을 활짝 열며 아름다이 사랑을 일구는 삶지기입니다.
나이가 같대서 동무가 되지 않아요. 어른끼리도 그렇거든요. 어른끼리도 나이가 같아야 동무가 되지는 않아요. 마음이 맞아야 동무입니다. 마음이 사랑스럽고, 마음이 믿음직하며, 마음이 넉넉할 때에 비로소 동무예요.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