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안 배우는 어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잘 살펴야 잘 쓴 글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어야 잘 쓴 글이라 할 만합니다. 읽을 만한 맛이나 멋은 이야기에 있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있지 않아요. 매끄럽게 쓰거나 정갈하게 쓴대서 글이라 하지 않아요. 글은 겉껍데기나 겉차림이 아닙니다. 글은 알맹이가 있어야 비로소 글입니다. 맞춤법을 틀린다든지 띄어쓰기를 못 맞춘다 하더라도, 삶이 사랑스레 깃든 이야기를 담으면 서로서로 즐겁게 나누는 글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나라에서 글을 쓰는 어른 가운데 ‘말을 늘 꾸준히 가다듬으며 새로 배우는’ 분은 참으로 드물구나 싶어요.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한국말을 한다지만, 정작 한국말은 무엇이요 한국은 어떤 터전이며 내 이웃이나 동무인 한국사람은 어떠한 빛인가를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알아보려는 분은 몹시 적은 듯해요.


  사람은 누구나 갓 태어나서 숨을 거둘 때까지 배운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안 늘 배운다고 했습니다. 배우지 못할 때에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지식을 배우거나 정보를 배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꿈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배우고 생각을 배우며 슬기를 배우는 사람이에요. ‘말을 배운다’고 할 때에는,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는 내 삶을 나타내는 ‘새로운 말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제비가 노래하는 소리를 배웁니다. 바람이 풀잎 건드리는 소리를 배웁니다.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배웁니다. 무지개 드리우는 무늬를 배웁니다. 햇살이 마루로 스미는 결을 배웁니다. 살결에 닿는 꽃내음을 배웁니다. 아이들 웃음과 왁자지껄 뛰노는 발자국을 배웁니다. ‘말을 배운다’는 소리는, 이러한 새 삶 새 사랑 새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어떤 말로 나타내거나 밝힐 때에 즐거운가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어설프거나 어리숙하게 길든 일본 말투를 털어내는 길을 스스로 배울 노릇입니다. 아리땁거나 고운 한국 말투 빛내는 길을 스스로 배울 노릇입니다. 바보스럽거나 어처구니없는 서양 말투를 털어내는 길을 스스로 익힐 노릇입니다. 새로운 한국말을 스스로 슬기롭게 짓는 길을 익힐 노릇입니다.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서양 영어에 휘둘리지 않는 길을 스스로 찾을 노릇입니다. 먼먼 한겨레 누구나 풀이름·꽃이름·짐승이름·마을이름·길이름·사람이름 들을 알맞고 밝게 붙일 수 있었듯, 오늘날에도 누구나 우리 둘레 온갖 이름을 알맞고 밝게 붙이는 길을 스스로 찾을 노릇이에요.


  말을 배우지 못하면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말을 배우지 못하면 생각을 배우지 못합니다. 말을 배우지 못하면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말을 배우지 못하면, 책도 글도 배우지 못할 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조차 배우지 못하고야 맙니다.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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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바다 곁을 걷는 어린이

 


  한여름에는 논이 풀바다를 이룬다. 오늘날에는 빽빽하게 심어 빽빽한 풀바다를 이루지만, 지난날에는 이처럼 빽빽한 풀바다는 아니었으리라 느낀다. 게다가 오늘날 벼포기는 씨알을 건드려 키가 작도록 만든다. 예전 벼포기는 키가 훤칠했다. 지난날에는 씨알뿐 아니라 볏짚도 알뜰히 건사해서 지붕을 잇거나 짚신을 삼거나 새끼를 꼬아서 써야 했으니, 볏짚 하나 버릴 일 없었다. 오늘날은 볏짚을 소먹이 사료로 삼거나 그냥 버리니, 굳이 벼포기가 길거나 굵어야 하지 않다.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논 사이에 숨으면 아예 안 보였겠지. 아마, 어른도 논에서 피사리 하는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겠지. 큰아이와 함께 여름논 곁을 걷는다.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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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양말

 


  큰아이는 곧잘 짝양말을 신는다. 한 짝을 맞추어 신는 양말 아닌, 짝짝이로 신는 양말이다. 틀림없에 제 짝이 한 켤레로 있는 양말인데, 짝짝이로 신으면서 어느새 한 켤레로 맞는 양말 한 짝이 사라지기도 하고, 제 짝이 사라지니 어쩔 수 없이 짝양말을 신기도 한다. 이 양말도 예쁘고 저 양말도 예쁘다면서 이리저리 신고 벗고 놀다가, 한 짝이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숨는 바람에 짝양말을 신기도 한다. 제 짝 한 켤레로 안 신고 짝양말 신은 모습을 아버지한테 들키면, 치마를 확 내리며 짝양말을 숨기고는 까르르르 웃는다. 쳇. 너 참 잘났어. 네가 빨래를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자꾸 새 양말 꺼내 신고 또 벗고 또 신고 하면서 방바닥에 네 양말을 잔뜩 늘어놓으려니. 네 마음껏 짝양말 신고 싶으면 네가 손수 빨아서 말리고 개서 건사하라구. 요 여섯 살 말괄량이야.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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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바다

 


  벼포기는 무럭무럭 자라 아이들 키보다 웃자랍니다. 옥수수포기도 씩씩하게 자라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키보다 웃자랍니다. 수수도 해바라기도 모시도 모두 튼튼하게 자라며 높이높이 키를 뻗칩니다.


  여름날 들판에 서면, 이야 풀밭이네 하는 소리 아닌, 이야 풀바다로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풀은 어느새 우리 키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풀숲에 깃들며 풀내음 물씬 받아먹습니다. 풀밭에 깃들며 풀소리 담뿍 받아들입니다. 바람이 불어 서걱서걱 노래를 짓습니다. 풀잎이 서로 몸뚱이 비비며 내는 싱그러운 노래를 짓습니다. 푸르게 빛나는 풀잎은 푸르게 속삭이는 노래입니다. 푸르게 싱그러운 풀잎은 푸르게 웃음짓는 노래입니다.


  풀바다에 안겨 춤을 추는 아이는 풀마음을 키웁니다. 풀바다에 뛰어들어 뛰노는 아이는 풀사랑을 보듬습니다.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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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 읽기

 


  오늘날 한국에서는 술을 곡식이나 물로 빚는다기보다, 화학조미료와 화학첨가물로 빚곤 한다. 이른바 소주란, 또 맥주란, 술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싶을 화학조미료덩어리요, 화학첨가물덩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어디에서 어떤 물을 길어올려 빚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한때 막걸리바람이 불었는데, 막걸리는 달달한 술이 아니다. 막걸리는 시큼한 술이요, 밥이 되는 술이다. 들일을 하며 몸이 쑤시고 결리는 일꾼들이 새로 힘을 북돋우라고 빚는 술이다. 곧, 막걸리는 집집마다 마을마다 손수 정갈히 심어 돌보고 거둔 나락으로 빚는 쌀술이지, 나라밖에서 사들인 쌀이라든지 밀로 빚는 단술이 아니다. 한국쌀 아닌 수입쌀을 써야 단맛이 더 난대서 막걸리조차 수입쌀을 쓰는데다가, 수입밀을 섞기까지 하는데, 이런 단술에 어찌 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게다가 단맛 내는 화학첨가물은 또 얼마나 많이 타는가.


  들에서 힘껏 일하고 나서 한숨 돌리는 참을 먹으며 마시는 술이 아닌,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기름 좔좔 흐르는 먹을거리를 차려서 배가 터지고 골이 핑 돌도록 마시는 술이라면, 이러한 술 또한 술이라는 이름이 알맞지 않다. 골이 핑 돌도록 퍼붓는 술은 술 아닌 알콜덩어리요, 스스로 죽음을 부르는 막짓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왜 이다지도 술을 많이 마시나. 한국사람은 왜 이렇게 술집 많은 마을에서 살아가는가. 삶이 너무 힘들어 술을 안 마실 수 없는 셈일까. 톱니바퀴 같은 도시요 쳇바퀴 같은 일자리라서 술로라도 몸과 마음을 달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노릇일까. 자동차와 공장과 아파트에서 내뿜는 매캐한 바람에 휩싸여 맑은 바람이란 하나도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니까, 술로라도 몸과 머리를 달래야 할까.


  술이면 그예 술일 뿐이라지만, 시나브로 ‘참술’과 ‘거짓술’로 나눌밖에 없다고 느낀다. 어느 모임자리에 가거나 잔치자리에 가면 어김없이 술잔을 받아야 하다 보니, 이래저래 받는 술잔에서 한 모금 두 모금 입술을 적시면서 술맛을 천천히 느낀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에서 빚는 막걸리는 무엇보다 물맛부터 맛이 없네.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처럼 커다란 도시에는 흙을 일구어 쌀을 거두는 시골숲이 없다 보니, 서울쌀도 부산쌀도 인천쌀도 아닌 어디에서 사들이는지 알 길 없는 쌀을 쓰느라, 곡식맛도 느낄 수 없네. 화학첨가물을 얼마나 넣었는지 환히 보이네. 탄산은 또 얼마나 섞는지 뻔히 보이네. 포천 막걸리라 한들 대수롭지 않네. 조그마한 시골 면에서 조그마한 시골마을 쌀과 물로 빚는 막걸리가 아니라면, 이제 어느 막걸리도 마실 만하지 않네. 고장마다 소주가 다르다 하지만, 이곳에 간들 저곳에 간들, 화학증류 소주란 내 몸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술이 못 되네. 이런 술을 마시면서 어떤 힘을 낼 만하려나. 이런 술을 마시는 동안 새 넋이나 새 사랑이 피어날 수 있으려나.


  들일 하던 들사람이 들밥 먹고 들술 마시면서 하루하루 아름다이 누린 한겨레인데, 이제 들일 하던 들사람 없고, 들밥 먹고 들술 마시던 삶이 사라졌대서, 막술과 거짓술만 나돌아도 되려나. 아니, 들판을 메꾸거나 밀어 없애 찻길을 닦고, 도시를 넓히며 아파트를 지으니까, 이렇게 막돼먹은 터전에서는 막돼먹은 밥과 술을 퍼부을밖에 없으려나.


  정갈한 시골마을에는 정갈한 술내음이 흐르고, 조용한 시골마을에는 조용한 밥내음이 흐른다. 왁자지껄 어수선하거나 시끄러운 도시에는 어수선한 술내음과 시끄러운 밥내음이 어지럽게 춤춘다.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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