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1

 


버스 일꾼과 택시 일꾼 함께
공장 일꾼과 청소 일꾼 함께
서로 어깨동무하며 나란히
사흘
말미를 내어
서울 떠나
시골에서
느긋하게
식구들이랑 아이들이랑
오순도순
풀밭에 드러누워 도시락 먹고
들일을 하면서
나무를 껴안고
해바라기를 하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온 나라에
평화와 평등이
곱게 드리우겠지요.

 


4345.1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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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여행법 - 딸과 함께 떠난 유럽 사진기행
진동선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길동무로 삼는 사진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1] 진동선, 《사진가의 여행법》(북스코프,2008)

 


- 책이름 : 사진가의 여행법
- 글·사진 : 진동선
- 펴낸곳 : 북스코프 (2008.4.22.)
- 책값 : 18000원

 


  낮 두 시에 고흥 두원면에서 모임이 있습니다. ‘한겨레 씨앗’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나는 ‘한겨레 씨앗’이나 ‘우리 씨앗’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분들은 으레 ‘토종 종자’라고 말합니다. ‘토종(土種)’도 ‘종자(種子)’도 한국말이 아닐 뿐더러, ‘토종 종자’라고 하면 같은 한자가 되풀이되는데, 이런 얄딱구리한 말을 얄딱구리한 줄 느끼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해마다 가을 지나고 겨울이 찾아오면,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시골 흙일꾼한테 큼지막한 종이 하나 나누어 줍니다. 큼지막한 종이에는 시골에서 심고 거두는 ‘씨앗’을 어떻게 간수해야 좋은가 하는 이야기가 적힙니다. 이 종이를 만드는 기관 이름은 ‘국립종자원’입니다.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씨앗’이라는 한국말을 안 쓰고, 시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씨앗’이라는 한국말을 잊습니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하루하루 ‘씨앗’이라는 낱말을 잊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에서 말글을 다스린다 하는 기관 이름은 ‘국립국어원’입니다. ‘국어(國語)’라 하는 한자말은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 전쟁미치광이들이 ‘일본 천황을 섬기는 나라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중국사람은 ‘중국어’라 하지 ‘국어’라 하지 않아요. 지난날 한겨레는 ‘조선어’라 했어요. 일본이라면 ‘일본어’일 텐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앞세우며 대동아공영권을 외친 이들 천황나라에서는 ‘국어’라는 낱말을 뚱딴지처럼 썼지요. 곧, 이 낱말을 누구보다 한겨레가 떨칠 수 있어야 할 테지만, 정작 이 나라 공공기관부터 이런 낱말을 버젓이 써요.


  공공기관이라면 한자말을 써야 하는지 모르지요. 공무원이 되어 공식 서류를 쓰자면 한국말보다는 한자말이 어울릴는지 모르지요. 씨앗은 멀리하고 종자를 가까이할 노릇이요, 한글이나 한말이나 우리말 모두 가까이할 까닭이 없다 여길는지 몰라요.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며 날마다 ‘아이 이야기’를 씁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요. 다른 이들은 제 글을 읽으며 ‘육아일기’라고 생각합니다. 나로서는 ‘아이 돌보기’나 ‘아이와 함께 살기’이지만, 오늘날 여느 눈길은 ‘육아(育兒)’입니다.


  나는 ‘사진찍기’를 하지만, 다른 분들은 ‘촬영(撮影)’을 합니다. 나는 ‘사진마실’을 하지만, 다른 분들은 ‘출사(出寫)’를 하지요. 나는 필름‘사진기’와 디지털‘사진기’를 쓰는데, 다른 분들은 모두 필‘카’와 디‘카’를 써요.


.. 자기만의 세상 바라보기가 곧 자기 사진이고 자기다운 사진이다. 나는 여행 내내 딸애가 그런 마음을 갖기를 바랐다 … 카셀이라는 도시를 만나는 것은 딸애의 몫이다. 이 낯선 곳, 낯선 환경에서 마주칠 모든 이미지들은 딸애가 느끼고 간직하고, 마음과 카메라에 담을 그 애만의 것이 될 터였다 ..  (16, 37쪽)


  나는 아이들과 시골마을에서 삽니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촌(村)’에서 살아가는 모양새입니다. 나는 시골스러운 삶을 누리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촌스러운’ 모양새입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인데, 어느 한쪽에서는 ‘촌’이라 일컫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원(田園)’이라 말합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로 들어왔을 뿐이지만, 누군가는 ‘귀촌(歸村)’이라 하고, 누군가는 ‘귀농(歸農)’이라 말합니다.


  얼핏 생각하기로는, 말만 다를 뿐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다른 까닭은 넋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넋이 다른 까닭이라면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삶이 다르면 넋이 다르고, 넋이 다르기에 말이 달라요.


  아이들 말과 어른들 말이 다른 까닭은, 아이들과 어른들은 넋이 다르고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시내와 사내 사이에 말이 다른 까닭도, 가시내와 사내 사이에 넋과 삶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누구라도 쉽게 잘 깨달을 수 있어요. 내 삶에 따라 내 넋이 바뀌고, 내 넋에 따라 내 말이 달라진다면, 내 삶을 아름답게 다스릴 때에 내 넋이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내 말이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내 삶을 착하게 보살필 적에 내 넋이 착하게 거듭나고, 내 말이 착하게 다시 태어나요.


  흙을 일구는 분들은 삶을 곱게 다스리면서 넋과 말과 흙 모두 곱게 다스립니다. 글을 쓰는 분들은 삶을 알뜰히 다스리면서 넋과 말과 글 모두 알뜰히 다스립니다. 사진을 찍는 분들은 삶을 즐거이 다스리면서 넋과 말과 사진 모두 즐거이 다스려요.


.. 도시 사진을 찍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그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 단지 이 길이 로맨틱 가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풍요로운 자연과 넘치는 햇살, 아름다운 전원이 품은 기운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카메라 렌즈 속에서 더없이 꿈같은 풍경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  (37, 87쪽)


  귀농학교를 다닌대서 흙을 더 잘 알거나 더 잘 사랑하거나 더 잘 누리지 않아요.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내 곁 흙 한 줌 따사로이 아낄 수 있으면, 흙이든 마을이든 집이든 살림이든 무엇이든 따사로이 알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론을 살피거나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찾아서 듣기에, 사진을 더 잘 알거나 더 잘 누리거나 더 잘 찍지 않습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내 살붙이와 동무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시나브로 사진을 슬기롭게 깨닫고 깨우치며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아요. 아이들은 눈빛 환하게 밝히면서 놀이를 즐깁니다. 아이들은 말빛 곱게 여미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들은 맛나게 이것저것 배불리 먹으면서 몸과 마음을 알차게 북돋웁니다. 아이들은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마시고 푸르게 빛나는 풀에서 뒹굽니다. 아이들은 맑게 흐르는 냇물에 발과 손을 담그고, 싱그러이 부는 바람에 두 팔 벌려 온몸을 맡깁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할 때에는, 교사 자리에 서는 어른부터 이녁 스스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교과서에 적힌 지식을 줄줄 읊거나 외는 수업일 때에는 교사도 학생도 따분해요. 교과서에 갇히는 지식이 아닌, 삶으로 빛나고 사람들 사이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길어올릴 때에 교사도 학생도 재미납니다. 곧, 교사 된 어른 스스로 하루를 밝히는 이야기를 ‘교과서에 담긴 지식’에 빗대어 찬찬히 풀어놓을 때에 서로 기쁩니다. 교사가 이녁 스스로를 가르친다는 말은, 교사가 이녁 스스로 어떠한 숨결인가를 깨달으면서 아이들마다 어떠한 빛줄기인가를 느낀다는 뜻입니다.


.. 도심의 뒷골목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빛의 향연’이다. 사진의 생명도 존재도 그곳에 있으며, 오로지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도드라지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그곳의 빛과 어둠 속에 있다 … 여행사진은 오랫동안 찍는다고 해서 더 잘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익숙한 풍경을 낯선 풍경보다 더 멋지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109, 143쪽)


  아이들이 아침을 맞이해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저희한테 즐거울 놀이를 찾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 일어나는 낌새를 느끼며 조금 더 자도 된다고 다독이다가는 아침밥을 짓습니다. 지난 저녁 미리 씻어서 불린 쌀을 냄비에 옮겨 물을 맞춘 다음 불을 올립니다. 밥물이 보글보글 끓을 즈음 다른 찬거리와 국을 헤아립니다. 밥이 다 될 무렵 밥상을 닦고 수저를 놓습니다. 이동안 방바닥과 부엌을 쓸고 닦습니다. 오늘 할 빨래를 헤아립니다.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마실을 나가자면 이래저래 옷가지를 챙겨야 할 테고, 마실을 가기 앞서 작은아이가 집에서 똥을 시원하게 누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푸지게 똥을 누면, 아이도 어른도 홀가분하게 다닙니다.


  마실을 다니는 내내 사진기는 내 목걸이가 됩니다. 나는 사진기를 목에 걸고 두 아이를 건사합니다. 아이들이 이리 뛰면 이리 쳐다보다가 빙긋 웃으며 사진기를 쥡니다. 아이들이 저리 구르면 저리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며 사진기를 듭니다. 두 아이를 손 하나씩 내밀어 잡아야 하니, 사진기는 늘 목걸이입니다. 아이 하나가 졸립다 하면 품에 안아야 하니, 사진기는 언제나 목걸이입니다. 읍내마실을 하며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장만하면 등에 멘 가방에 담습니다. 사진기는 노상 목걸이입니다.


  찍든 안 찍든, 커다랗고 무거운 목걸이를 걸며 지냅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찍히는 줄 느끼기도 하고 안 느끼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사진기로 쳐다보든 말든 저희 놀이를 잇습니다.


  나한테 사진기는 으레 길동무입니다. 마실길에서 동무입니다. 그런데, 길동무에 앞서 삶동무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인 나이듯, 사진기하고도 함께 살아가는 사진쟁이인 나입니다. 아이들 또한 나하고 삶동무요 놀이동무에 일동무입니다. 사진기는 아이들한테도 삶동무로 스며들고 길동무로 함께 거닐다가는 놀이동무로 같이 어울립니다.


.. 세상의 모든 길은 아름답다. 길은 그 길을 마음에 담은 사람, 그 길 위에서 사색하는 사람에게 진정 아름답게 보인다 ..  (257쪽)


  사진비평을 꾸준히 잇는 진동선 님이 당신 딸아이와 유럽마실을 하면서 《사진가의 여행법》(북스코프,2008)이라는 책 하나 내놓습니다. 두 사람이 먼먼 마실을 다녀왔구나 싶지만, 요즈음 같은 때에 유럽마실은 그리 먼먼 마실은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딸아이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 ‘앞으로 이 아이하고 유럽마실 해야지’ 하는 꿈을 꾸었기에, 사진길 새롭게 걷는 푸른 딸아이를 이끌고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는 걸음걸이로 유럽 곳곳을 누빌 수 있겠지요.


  꿈을 꾸는 대로 살아가거든요. 꿈을 꾸는 만큼 살아가거든요.


  아름다이 꿈을 꾸기에 아름다이 생각을 짓고, 아름다이 말을 나누며, 아름다이 삶을 누립니다. 즐겁게 꿈을 꾸면서 즐겁게 생각을 빚고, 즐거이 말을 섞으며, 즐거이 삶을 빛냅니다.


  사진마실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살아가면 언제나 사진마실입니다. 콩나물 한 줌 사러 가게에 찾아가도 사진마실입니다. 어깨에 사진기를 걸치면 사진마실이에요. 사진기 안 들고 나서도 사진마실입니다. 누구나 사진기로도 사진을 찍지만, 눈으로도 사진을 찍고, 마음으로도 사진을 찍어요. 가슴으로도 사진을 찍으며, 꿈과 사랑으로도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꽃 흐드러지게 피울 적에도 사진을 찍어요.


  사진은 필름에도 담기고, 마음밭에도 담깁니다. 사진은 디지털파일에도 담기며, 머릿속에도 담깁니다. 유럽마실을 할 적에도 사진마실이요, 이웃마을 나들이를 할 적에도 사진마실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남녘땅 한 바퀴를 돌 적에도 사진마실이고, 서울 골목동네나 제주 구비구비 거닐 적에도 사진마실입니다.


.. 그 옛날 외젠 앗제는 이 샹젤리제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명품 매장들은 찍지 않았다. 그는 개선문도 찍지 않았고 엘리제 궁도 찍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에펠탑도 찍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찍지 않았고 곧 사라질 것들만 찍었다. 앗제처럼 길가의 가판대를 카메라에 담는다. 앗제의 시선으로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본다 ..  (309쪽)


  그런데, 《사진가의 여행법》 309쪽에 나오는 ‘외젠 앗제’ 님 이야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외젠 앗제라는 분이 ‘사라질 것’을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글쎄요. 에펠탑은 안 사라지는 것일까요? 명품은 안 사라지나요? 뒷골목 집이든 여느 가난하거나 수수한 사람이기에 사라지나요?


  사진으로 담기에 ‘안 사라질’ 수 있겠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으로도 그리고 사진으로 찍는다 하지만, 사랑과 꿈을 담아 그리지 못하고 찍지 못할 때에는 ‘사라지는’ 것 가운데 하나 아니랴 싶어요.


  한국 시골마을 논자락 벼포기 하나를 사진으로 즐거이 꾸준히 찍는 분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논자락 벼포기는 ‘사라지는’ 숨결일까요, ‘안 사라지는’ 숨결일까요.


  생각해 보면, 논자락 벼포기가 되든, 들풀 한 송이가 되든, 사라지지도 않지만 안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숨결을 고이 잇습니다. 즐겁게 살아내는 하루요, 기쁘게 마무리짓는 하루입니다. 천 해를 살면 ‘오래 가는’ 것이거나 ‘안 사라지는’ 것일까요. 쉰 해를 살면 ‘짧게 가는’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일까요.


  마음속에 담으면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안 담고 사진으로만 찍으면 어느 것도 사라집니다. 마음속으로 아끼면서 보듬을 때에는 모두 오래도록 이어지며 향긋한 풀내음 나누어 줍니다. 가슴속으로 돌보면서 사랑할 때에는 서로서로 한결같이 마주하며 따사로운 손길 주고받습니다.


  길동무로 삼는 이야기입니다. 길동무가 되는 사진입니다. 길동무처럼 활짝 웃으며 어깨를 겯는 사진입니다. 길동무로서 씩씩하게 삶꽃 피우는 이야기입니다.


  사진마실은 ‘사진’마실이기에 앞서 마실입니다. 사진찍기는 ‘사진’찍기에 앞서 찍기입니다. 사진읽기도 ‘사진’읽기에 앞서 읽기예요. 사진길을 걷는 이들 또한 ‘사진’길을 걷기 앞서 길을 걷습니다.


  마실을 생각하고 찍고 읽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길과 삶을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빛내면서 내 이야기(말과 글)가 빛나고, 내 이야기를 빛내는 동안 시나브로 내 삶이 싱그러이 빛납니다. 사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이쁜 동무입니다.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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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10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속에 담으면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 정말 그렇더군요. 마음속에 담긴 것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선명하고 확실할 때가 있어요.

파란놀 2013-01-12 09:29   좋아요 0 | URL
언제나 고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거이 누리시겠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예요
 

이제 시골에 '농고'는 충남 홍성 풀무농고를 빼고는 다 사라졌지 싶다. '농고'라는 이름이 시골스럽다(촌스럽다)고 해서 다들 바꾸는데, 따지고 보면, 농고라 해서 농사짓도록 가르쳐서 농사꾼으로 시골에 남도록 하지는 않는다. 이 만화를 그린 이는 농고를 나왔다고 하니, 여러모로 눈길이 간다. 만화를 그리는 오늘날도 시골에서 살아가려나?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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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1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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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를 그릴 때에 왜 자꾸 '불편'을 들먹일까. 이런 말을 들먹여야 책이 팔릴는지 모르지만, 도시살이가 '불편'하지, 시골살이가 불편할 일이란 없다. 어쨌든, 모두 도시에서 살고 책도 도시에서 소비되니 이런 말이 자꾸 퍼지는구나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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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1.8.
 : 논고양이 만나는 고흥살이

 


- 아침에 차린 밥을 낮이 되도록 먹을 생각 않는 큰아이는 집에 떼어놓고 작은아이만 수레에 태워 마실을 나온다. 마실을 나온다기보다 서재도서관에 책을 갖다 놓으려고 살짝 길을 나서는 셈인데, 큰아이더러 밥을 다 먹어야 함께 마실을 다니지, 밥을 다 안 먹으면 아무 데도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또 말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니리라. 곁에 달라붙어 밥 한 술 두 술 차근차근 먹도록 북돋울 노릇이리라. 집안일로 하루해 꼴딱 넘기는 나날을 보내면서 나 스스로 지친다고 여겨, 아이가 찬찬히 밥을 먹도록 못 이끌고는 괜히 나 스스로 골을 부리는 셈이 아닌가 싶다.

 

- 집과 서재도서관 사이는 아주 가깝다. 자전거를 몰면 1분쯤 걸릴까. 그런데, 작은아이는 이동안 수레에서 까무룩 잠든다. 덜컹거리는 흙길을 지나 서재도서관 앞에 닿으니 덜컹덜컹 하는 결에 살며시 눈을 뜨기는 하지만, 이내 무거운 눈꺼풀이 된다. 쿵쿵 흔들려도 다시 깨지 않는다.

 

- 작은아이가 잠들었으니 내려서 뛰어놀라 하지도 못하고, 도서관 청소도 못한다. 다시 집으로 간다. 가만히 안아 방으로 옮긴다. 겉옷 하나 벗기고 기저귀를 댄 다음 이불을 여민다. 그러고 나서 큰아이를 부른다. 자전거 타고 싶니? 그러면 밥 한 술 뜨고 와. 밥 한 술 떴니? 그러면 한 술 더 떠. 어머니한테 겉옷 내려 달라 해. 밥 한 술 더 뜨고 신 신어.

 

- 봉룡마을 길가에 있는 기름집으로 간다. 면소재지 수협주유소는 기름값이 너무 비싸 도무지 그곳에서 기름을 못 사겠다. 봉룡마을 작은 기름집은 1370원이라 한다. 이곳도 참 비싸지만 면소재지보다는 싸다. 300리터를 넣어 달라 하고 값을 미리 치른다. 면소재지로 달린다. 모레에 아버지가 인천으로 사진강의를 다녀와야 해서, 집에 몇 가지 먹을거리를 챙기려 한다. 오늘은 면에서 살 만한 먹을거리를 사고, 이듬날에는 읍에 가서 먹을거리 더 사 두어야지.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빈논에서 해바라기 즐기는 고양이를 여럿 만난다. 우리 마을에서도 이웃 마을에서도, 고양이들은 이렇게 논 한복판에서 해바라기를 하는구나. 논 한복판이라면 사람들이 해코지할 일도 없고, 해코지하려고 다가와도 곧 자리를 비킬 수 있으리라. 이 아이들은 논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논이나 밭은 모두 들이니까, 그냥 들고양이라고 할까.

 

- 우리 마을에 새 식구가 들어올 듯하다. 마을 안쪽 다른 빨래터 옆 빈집을 말끔히 고쳤다. 지붕과 대문과 마루 모두 퍽 돈을 들여 고쳤다. 누구일까. 누가 이 집에 들어올까. 귀촌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마을 누구네 아들이나 딸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셈일까. 며칠 지나면 곧 알 수 있겠지.

 

(최종규 . 2013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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