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1.8.
 : 논고양이 만나는 고흥살이

 


- 아침에 차린 밥을 낮이 되도록 먹을 생각 않는 큰아이는 집에 떼어놓고 작은아이만 수레에 태워 마실을 나온다. 마실을 나온다기보다 서재도서관에 책을 갖다 놓으려고 살짝 길을 나서는 셈인데, 큰아이더러 밥을 다 먹어야 함께 마실을 다니지, 밥을 다 안 먹으면 아무 데도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또 말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니리라. 곁에 달라붙어 밥 한 술 두 술 차근차근 먹도록 북돋울 노릇이리라. 집안일로 하루해 꼴딱 넘기는 나날을 보내면서 나 스스로 지친다고 여겨, 아이가 찬찬히 밥을 먹도록 못 이끌고는 괜히 나 스스로 골을 부리는 셈이 아닌가 싶다.

 

- 집과 서재도서관 사이는 아주 가깝다. 자전거를 몰면 1분쯤 걸릴까. 그런데, 작은아이는 이동안 수레에서 까무룩 잠든다. 덜컹거리는 흙길을 지나 서재도서관 앞에 닿으니 덜컹덜컹 하는 결에 살며시 눈을 뜨기는 하지만, 이내 무거운 눈꺼풀이 된다. 쿵쿵 흔들려도 다시 깨지 않는다.

 

- 작은아이가 잠들었으니 내려서 뛰어놀라 하지도 못하고, 도서관 청소도 못한다. 다시 집으로 간다. 가만히 안아 방으로 옮긴다. 겉옷 하나 벗기고 기저귀를 댄 다음 이불을 여민다. 그러고 나서 큰아이를 부른다. 자전거 타고 싶니? 그러면 밥 한 술 뜨고 와. 밥 한 술 떴니? 그러면 한 술 더 떠. 어머니한테 겉옷 내려 달라 해. 밥 한 술 더 뜨고 신 신어.

 

- 봉룡마을 길가에 있는 기름집으로 간다. 면소재지 수협주유소는 기름값이 너무 비싸 도무지 그곳에서 기름을 못 사겠다. 봉룡마을 작은 기름집은 1370원이라 한다. 이곳도 참 비싸지만 면소재지보다는 싸다. 300리터를 넣어 달라 하고 값을 미리 치른다. 면소재지로 달린다. 모레에 아버지가 인천으로 사진강의를 다녀와야 해서, 집에 몇 가지 먹을거리를 챙기려 한다. 오늘은 면에서 살 만한 먹을거리를 사고, 이듬날에는 읍에 가서 먹을거리 더 사 두어야지.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빈논에서 해바라기 즐기는 고양이를 여럿 만난다. 우리 마을에서도 이웃 마을에서도, 고양이들은 이렇게 논 한복판에서 해바라기를 하는구나. 논 한복판이라면 사람들이 해코지할 일도 없고, 해코지하려고 다가와도 곧 자리를 비킬 수 있으리라. 이 아이들은 논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논이나 밭은 모두 들이니까, 그냥 들고양이라고 할까.

 

- 우리 마을에 새 식구가 들어올 듯하다. 마을 안쪽 다른 빨래터 옆 빈집을 말끔히 고쳤다. 지붕과 대문과 마루 모두 퍽 돈을 들여 고쳤다. 누구일까. 누가 이 집에 들어올까. 귀촌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마을 누구네 아들이나 딸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셈일까. 며칠 지나면 곧 알 수 있겠지.

 

(최종규 . 2013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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