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창고

 


  요즈음에는 ‘창고’라는 낱말을 쓰지만, 지난날에는 모두 ‘헛간’이라는 낱말을 썼다. 아마 요즈음은 헛간이라 할 수 없는지 모르나, 짐이나 허드렛것을 놓아 헛간이었다.


  지난날 집은 모두 흙집이요 나무기둥이요 돌을 주춧돌 삼았다. 흙과 나무와 돌, 여기에 짚을 들여 지은 집이었다. 헛간도 집하고 똑같이 지었다. 헛간이래서 다른 것을 끌어들여 짓지 않았다.


  오늘날 집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몽땅 시멘트와 쇠붙이로 올린다. 오늘날 창고 또한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으레 시멘트와 쇠붙이로 올린다. 지난날 집과 헛간은 숲이랑 멧골이랑 들하고 살가이 어울렸다면, 오늘날 집과 헛간은 숲하고도 멧골하고도 들하고도 하나도 안 어울린다. 생뚱맞은 것이 멀뚱하니 놓인다. 뜬금없는 것이 뜨내기처럼 선다.


  옛날 사람들은 집을 짓건 헛간을 짓건 무엇을 짓건, 서로 어우러지는 흐름과 결과 무늬와 빛을 살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살필까.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문득 책이 떠오른다. 오늘날 책을 짓는 사람들은 책에 깃드는 이야기가 이 지구별에 얼마나 어울린다고 생각할까. 오늘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녁 넋뿐 아니라 이웃 넋에 얼마나 곱게 스며들려고 책을 펼칠까. 생뚱맞은 책이 멀뚱하게 태어나지 않는가. 뜬금없는 책을 뜨내기처럼 쥐어들고는 내 밥그릇 테두리에서 맴도는 책읽기에 갇히지 않는가. 434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실 배웅

 


  큰아이와 아버지는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나가고, 작은아이와 어머니는 집에 남는다. 큰아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따라 마실길 나서고 싶지만 어머니 품에 안겨서 입술 내밀고 바라본다.


  괜찮아, 다 괜찮아. 좋아, 다 좋아. 마실을 가도 괜찮고 집에 있어도 괜찮아. 군내버스 타고 다녀와도 좋고, 시골집에서 하늘과 들과 바람과 햇살 누리면서 놀아도 좋아. 우리 함께 오늘을 실컷 누리자. 434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시 봄까지꽃 책읽기

 


  2011년 가을에 전남 고흥 두멧시골에 깃들면서 2012년 봄에 ‘봄까지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에도 이 꽃을 보았을 테고, 예전에도 이 꽃을 보았을 테지만, 지난날에는 이 꽃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름을 들어도 이내 잊고, 모습을 보아도 고개를 돌리면 곧장 잊었어요.


  ‘봄까지꽃’이라는 풀이름은 강운구 님이 쓴 《시간의 빛》이라는 사진책에 잘 나옵니다. 이 풀이름을 놓고 일본 학자는 ‘개불알풀’이라 일컬었고, 한국 학자는 처음에 이 이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어요. 시골사람은 일본 학자가 일컫는 이름이나 한국 학자가 어설피 받아들인 이름을 안 쓰고 살았을 텐데, 아니 모르고 살았을 텐데, 한국 학자들은 나중에 시골사람 스스로 붙여서 쓰는 이름을 듣고는 천천히 바로잡았다고 해요.


  시골사람은 학자가 아닙니다. 시골사람은 전문가 또한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풀이름과 꽃이름과 나무이름은 시골사람이 지었습니다. 시골사람은 대학교를 다닌 적 없고, 시골사람은 규장각이라는 데를 모르며, 시골사람은 팔만대장경 또한 몰라요. 그렇지만, 모든 벌레이름과 새이름과 짐승이름은 시골사람이 붙였어요. 벼, 보리, 수수, 서숙, 콩, 팥, 밀 같은 이름도, 겨, 방아, 베틀, 쭉정이, 피, 절구 같은 이름도, 몽땅 시골사람이 빚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시골사람은 이름을 짓는 사람입니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사람은 스스로 먹을거리를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시골사람은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곧, 삶을 바탕으로 사랑을 스스로 짓고, 믿음을 스스로 짓습니다. 어떤 임금이나 학자나 신관 같은 사람이 없어도, 시골사람은 시골사랑과 시골믿음을 스스로 지어요.


  시골사람은 꿈을 스스로 짓지요. 시골사람은 아이한테 붙이는 이름도 스스로 짓지요. 시골사람은 구름, 하늘, 해, 별, 달, 흙 같은 이름도 스스로 지어요. ‘봄까지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름을 헤아립니다. 한 송이 살며시 똑 따서 입에 넣고 봄내음을 맛봅니다. 꽃송이도 먹고 잎도 먹으며 줄기도 먹습니다. 봄까지꽃 곁에서 자라는 광대나물도 먹고, 광대나물 곁에서 자라는 봄까지꽃도 먹습니다. 두 꽃 곁에서 자라는 별꽃도 먹으며, 별꽃 곁에서 자라는 두 꽃도 먹습니다. 어느새 봄이 코앞입니다. 434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삶의 마지막 축제 - 2013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용서해 지음 / 샨티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125

 


삶은 날마다 잔치
― 삶의 마지막 축제
 용서해 글
 샨티 펴냄,2012.12.24./14000원

 


  삶은 날마다 잔치입니다. 새 하루를 웃으며 즐겁게 맞이하면 웃음잔치이고, 새 하루를 울면서 슬프게 맞이하면 눈물잔치입니다.


  삶은 언제나 잔치입니다. 언제나 노래를 부르는 삶이면 노래잔치요, 언제나 투정만 부리면 투정잔치입니다. 언제나 소곤소곤 속닥속닥 도란도란 이야기를 즐기면 이야기잔치일 테고, 언제나 꿍한 채 말다툼을 일삼는다면 말다툼잔치예요.


  내 삶이 웃음잔치가 되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내 삶이 눈물잔치가 되게 하는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남들이 내 삶을 웃음잔치로 이끌지 않습니다. 남들이 내 삶을 눈물잔치로 내몰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슴에 품는 넋에 따라 하루가 달라집니다. 스스로 마음으로 빚는 꿈에 따라 하루가 거듭납니다.


..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꽉 짜인 일정에 맞추어 마치 기계를 다루듯 악기를 연주했고 공연을 하러 다녔으며, 집에 돌아오면 또 주어진 역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호스피스 센터에 드나드는 세월이 제법 쌓여 가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아닌지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결국 죽음 이후보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18, 43쪽)


  용서해 님이 빚은 이야기책 《삶의 마지막 축제》(샨티,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용서해 님이든 다른 분이든, 오늘 하루를 누릴 사람들입니다. 모레를 누리거나 글피를 누릴 사람이 아니에요. 바로 오늘을 누릴 사람입니다.


  오늘 뜨는 해를 바라봅니다. 오늘 지는 해를 바라봅니다. 오늘 부는 바람을 쐽니다. 오늘 찾아드는 추위를 느끼고, 오늘 풀리는 날씨를 느껴요. 오늘 피어나는 꽃을 마주합니다. 오늘 돋는 봄나물을 뜯어서 먹습니다.


  어제 웃었으니 오늘 안 웃어도 되지 않습니다. 엊저녁에 밥을 먹었으니 아침에 밥을 굶어도 되지 않습니다. 그제에 노래를 불렀으니 오늘은 노래 없이 지내도 되지 않습니다. 그끄제에 햇살 한 줌 쬐었으니 오늘 햇살 안 쬐어도 되지 않아요.


  하고 싶은 놀이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먹고 싶은 밥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나누고 싶은 사랑을 나눕니다.


  벌써 제법 된 일인데, 도시에서는 스모그가 생깁니다. 여느 먼지가 아닌 먼지덩어리요, 푸른 바람이나 맑은 바람이 아닌 매캐한 바람이나 뿌연 바람입니다. 흙땅 없이 시멘트땅에 아스팔트땅이고, 나무 없이 아파트에 건물인 도시입니다. 들과 내와 바다 아닌 자동차와 가게와 전철과 갖가지 물질문명이 춤추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더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깃들어 회사를 다니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장사를 합니다. 맑은 바람보다는 돈을 바라고 맙니다. 푸른 바람보다는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고 맙니다. 싱그러운 햇살보다는 공무원 이름표를 바라고 맙니다. 따순 햇살보다는 자가용을 바라고 말아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즐거운 내 하루가 될까 헤아릴 겨를 없이, 도시는 너무 바쁘고 너무 빠르며 너무 어지럽습니다.


.. 몸과 함께 사라질 헛된 명성이나 부귀, 권력 같은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이 몸을 가지고 살면서 내 영혼이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나 할까 …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쩌면 이리도 쉽게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고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  (51, 232쪽)


  옆지기가 그림책을 읽어 줍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그림책 읽어 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도 곁에서 몸을 쉬면서 그림책 읽는 소리를 듣습니다. 즐겁습니다. 졸린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다독 재우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자장노래 열 가락쯤 뽑으니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잠듭니다. 잠자리에 살며시 눕히고 자장노래 두 가락 더 부릅니다. 그동안 더 놀던 큰아이는 조금 더 논 다음 잠자리에 눕습니다. 잠자리에 누운 큰아이 이마를 쓸면서 자장노래를 새로 부릅니다. 자장노래 다섯 가락 뽑을 무렵 큰아이도 스르르 잠듭니다. 그런데, 큰아이가 잠들기 앞서 내가 먼저 곯아떨어질듯합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똑 끊어집니다. 조금 뒤 더 이어서 부르다가 그만둡니다. 큰아이도 잠들었겠거니 생각하며 나도 스르르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깊은 밤, 작은아이가 끙끙거립니다. 왜 그런가 하고 잠에서 깨어 살피니, 흥건하게 쉬를 누었습니다. 다른 때라면 쉬 마렵다고 꽁꽁거리며 일어났을 텐데, 엊저녁에는 하도 늦게까지 노느라 깊이 잠들며 그만 바지에 쉬를 누었군요. 기저귀며 바지며 모두 갈아입히고, 잠자리 바닥에 새 기저귀 한 장 펼칩니다. 기저귀 펼친 자리에는 내가 눕고 작은아이는 내가 눕던 자리로 옮깁니다.


  다시 잠들었다 싶은 깊은 밤, 이제 큰아이가 끙끙거립니다. 쉬 하러 같이 가자며 부릅니다. 아이야, 집에서 무엇이 무섭다고 그러니. 혼자 가도 될 텐데. 여섯 살 큰아이더러 일어나라 하고 대청마루로 함께 나옵니다. 큰아이는 오줌그릇에 쉬를 합니다. 쉬를 다 눈 아이를 눕힙니다. 오줌그릇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마당 귀퉁이 밭자락에 아이 오줌을 뿌리고 나도 쉬를 눕니다.


  밤하늘 올려다봅니다. 저녁에 잠들 무렵에는 구름 없이 별이 쏟아지더니, 어느새 구름이 제법 끼고 달빛도 어슴프레합니다. 바람이 살살 불며 후박나무 잎사귀를 건드립니다. 겨울바람입니다. 쏴르르 쏴르르, 쏴아 쏴아, 낮이든 밤이든 바람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보면, 바닷가에서 물결치는 소리하고 닮습니다. 맑은 물결이 모래밭 간질이는 소리랑 맑은 바람이 나뭇잎 간질이는 소리는 그윽합니다. 시냇물 구르는 소리랑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는 고즈넉합니다.


  아이들은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때에 얼굴이 환합니다. 아이들은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며 새근새근 잘 잡니다. 어른도 똑같을 테지요. 어른도 자동차 소리 시끄러운 도시에서보다 숲바람 숲노래 그윽한 시골에서 새근새근 잠들기 좋겠지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 누구나 기계 소리 가득하고 전깃불 훤한 도시에서보다 멧새와 풀벌레와 별빛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시골에서 코코 잠들며 쉬기 좋겠지요.


.. 숲으로 들어와 살면서 나의 감각들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주변의 나무나 돌, 작은 동물이나 벌레들은 물론 소리, 기온이나 습기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훨씬 또렷이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보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 보는 행위들 하나하나에서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감사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자연 속에서 보내면서 풀잎 하나 나뭇잎 하나도 의미 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  (148, 235쪽)


  삶은 날마다 잔치입니다. 그러면, 날마다 잔치인 삶을 어떻게 누리면서 나눌 때에 한껏 아름다울 만할까요. 삶은 언제나 잔치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잔치인 삶을 누구와 어디에서 누리면서 나눌 때에 한결 빛날 만할까요.


  어제 낮, 고흥읍 장날에 맞추어 읍내에 먹을거리 장만하러 마실을 갔습니다. 게와 오징어와 조개와 튀김닭 들을 장만합니다. 감 여러 꾸러미를 장만해서 장모님 댁하고 형님 집에 부칩니다. 큰아이를 데리고 읍내를 걷는데, 조그마한 고흥읍이지만 자동차 소리 꽤 시끄럽고, 배기가스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아저씨들은 길을 걷는 아이가 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태웁니다. 저잣거리 길바닥에 쪼그려앉아 장사하는 할머니한테서 이것저것 사는데, 이 옆으로 자동차가 꾸준히 지나갑니다. 할머니 앞에 쪼그려앉아 물건을 사며 자동차 배기가스를 흠씬 들이마십니다. 저잣거리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얼마나 많이 마시는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자가용 몰며 좁다란 저잣거리 골목을 굳이 지나가려 하는 이들은 이런 대목을 생각하지 못하겠지요. 왜 저잣거리에까지 자동차를 밀고 지나가려 할까요. 왜 조금이나마 걸을 생각을 못할까요. 왜 내 이웃을 살피지 못할까요.


  동짓날 지난 뒤로 낮해가 차츰 길어집니다. 햇살 좋으면 이불을 빨아 널 만합니다. 어제 낮에는 새로 돋은 광대나물 살짝 뜯어 맛을 보았습니다. 곧 피어날 광대나물꽃을 기다릴까 하다가, 줄기와 잎 똑똑 끊어서 먹으면 다시 새 줄기와 잎 돋겠거니 생각하며 먹습니다.


  천천히 동이 틉니다. 아침이 밝으면 아이들이랑 밭자락과 이웃 논둑을 슬슬 돌면서 봄풀 몇 가지 뜯을까 싶습니다. 겨울 딛고 새봄 부르는 어여쁘고 작은 풀포기에 담긴 햇살을 온식구 다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434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사람 시골사람

 


  서울에 있는 어느 사진잡지에서 ‘사진대담’을 한다며 나더러 서울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고 전화를 건다. 그러마 하고 얘기하면서, 다만 나는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기에, 적어도 버스삯은 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잠은 아는 분들 댁에서 자더라도 찻삯은 칠만 원 돈이 되니 잡지사에서 댈 수 있겠느냐고 여쭌다. 다른 돈은 몰라도 찻삯은 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뒤, 나하고 함께 사진 이야기를 나눌 분을 찾다가 잘 안 되어 이달에는 취소하고 다음에 새로 자리를 잡아 마련한다고 전화를 건다. 내가 함께 사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는 분들이 전북 진안에 계신 분하고 부산에 계신 분인데, “다들 지방 분들이라 섭외가 …….” 하면서 너그러이 헤아려 달라 이야기한다.


  문화도 예술도 서울이 한복판이라 할 테지. 문화쟁이도 예술쟁이도 거의 다 서울에서 살아가며 일한다 할 테지. 그러니까, 사진잡지이든 그림잡지이든 문학잡지이든, 으레 서울에서 모임을 꾸릴 테고, 서울에서 책을 낼 테며, 서울에서 이야기잔치를 열 테지.


  서울사람끼리 하는구나 생각하다가, 서울까지 오가느라 내 몸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되니 고맙다고 생각하다가, 시골사람 목소리는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듣기 어렵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시골에서 숲을 바라보고 숲내음 맡으며 숲소리 즐기며 조용히 살자 하고 생각한다.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