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떨구는 어린이

 


  읍내마실을 가려고 군내버스 기다리는데, 큰아이가 논둑에 서서 무언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바닥에서 돌 하나를 줍더니 도랑에 톡 떨군다. 뒤에서 이 모양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는다. 너는 네가 얼마나 귀엽게 노는지 아니. 너하고 살아가며 재미난 놀이를 언제나 구경할 수 있구나.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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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쓰는 어린이

 


  빨래널기를 거드는 큰아이가 바가지에 빨래집게를 담아 아버지한테 건네다가, 바가지가 텅 비니 머리에 뒤집어쓰며 논다. 무엇을 해도 너한테는 몽땅 놀이가 되는구나. 이 어여쁜 아이야.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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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수놓은 구름이야기 - 지리산 + 사진
임소혁 글.사진 / 대원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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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28

 


시를 쓰며 사진을 찍는다
― 하늘에 수놓은 구름 이야기
 임소혁 사진·글
 대원사 펴냄,2006.4.15./18000원

 


  시를 쓰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낍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낍니다.


  거꾸로, 시를 못 쓰는 사람은 사진을 못 찍고,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은 시를 못 쓰는구나 싶어요. 시를 못 쓰는 사람은 그림을 못 그리며,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시를 못 쓰는구나 싶습니다.


  누군가는 ‘난 말이야, 사진 찍는 솜씨 뛰어나다구. 그렇지만 난 시를 안 쓰는걸?’ 하고 물을는지 모릅니다. 또 누군가는 ‘나는 말예요, 시 쓰는 솜씨 빼어나요. 그러나 난 사진을 안 찍는걸?’ 하고 따질는지 모릅니다. 또 누군가는 ‘나는 말입니다, 그림 그리는 솜씨 훌륭해요. 그런데 난 사진을 안 하는걸?’ 하고 샐쭉거릴는지 몰라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시를 안 쓰고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사진을 안 찍으면서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시를 안 쓰는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그림을 안 그리는데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이오덕 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라고 느낍니다. 예수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모두 하늘(하느님)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나도 갓난쟁이로 태어나서 아기 적을 지나 어린이로 살아온 나날이 있었기에, 오늘처럼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곧, 나는 나부터 시인이었고, 나는 나부터 하늘(하느님)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굳이 꾸미면서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느끼는 가슴 그대로 말을 합니다. 즐겁다 느끼면 즐겁다 말하는 아이들이요, 슬프다 느끼면 슬프다 말하는 아이들입니다. 시란, 사진이란,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즐거움을 즐거움대로 빚을 때에 시요 사진이며 그림입니다. 즐거움을 억누르며 슬픔으로 그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슬픔을 감추며 즐거운 듯 그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즐거움을 억누르면 무슨 재미일까요. 슬픔을 감추면 서로 이웃이나 동무로 지낼 까닭은 무엇일까요.


  옛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빛을 느꼈습니다. 옛사람은 흙을 만지며 흙기운을 헤아렸습니다. 옛사람을 풀(나물과 곡식)을 뜯어서 먹으며 풀맛을 느꼈습니다. 옛사람은 일을 하거나 놀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느끼는 그대로 가슴을 스스로 적셨어요. 바라보는 그대로 눈빛을 스스로 밝혔어요.


  임소혁 님이 빚은 사진책 《하늘에 수놓은 구름 이야기》(대원사,2006)를 읽으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임소혁 님은 “새벽녘, 계절이 지나가는 지리산 왕시루봉 언덕에서 수천 겹 전설바다가 흘러가는 동녘을 바라본다. 매일같이 새롭게 자연을 담아내는 하늘에서 구름은 새벽바람을 따라 골짜기를 건너가며 아침을 알리는 대지의 언어로 피어난다. 때로는 조각달에 새기는 샛별의 언어로, 때로는 드높은 하늘을 황홀하게 물들이는 감미로운 노랫말로 말하려 한다(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임소혁 님이 사진과 함께 적바림한 글은 ‘시’이고 ‘노래’입니다. 이를테면 ‘시노래’입니다.


  구름을 찍은 임소혁 님은 구름을 바라보면서 ‘시’를 느끼기에, 사진을 시처럼 찍습니다. 임소혁 님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시’를 쓰듯 ‘그림’을 그리겠지요. 임소혁 님이 사진도 그림도 안 하는 여느 흙일꾼이라면, ‘시’를 쓰듯 흙을 일구거나 만지거나 돌보는 하루를 누릴 테고요.


  사진쟁이 아닌 여느 어버이로서 이녁 아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하루를 돌아봅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이녁 아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하느님 눈빛’이 되고 ‘하느님 마음’이 되어요. 어느 사진쟁이라 하더라도 까르르 웃고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쟁이 이름값’을 훌훌 벗어던지며 아이들하고 하나되어 놉니다.

 

 


  임소혁 님은 “태고의 어둠 같은 동녘에서 날이 밝아온다. 자연 그대로의 무성한 숲에서 내뿜는 생기가 하늘에 닿아 양떼구름도 찬란하게 피어났다. 태고의 산에서 해가 뜨고 질 때는 아마도 온 세상을 오색영롱한 빛으로 물들였으리라(56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지리산 깊은 골짝에 깃들어 사진을 찍는 동안 숲내음에 젖어듭니다. 하늘내음을 맡고 하늘빛으로 물듭니다. 하늘소리를 듣고 하늘결로 숨을 쉽니다.


  햇살은 구름으로도 드리우고 멧등성이 나무한테도 드리웁니다. 햇살은 들꽃과 들풀한테도 드리우며, 벼와 배추와 무한테도 드리웁니다. 햇살은 고속도로 자동차물결에도 드리우고, 도시 아파트숲에도 드리웁니다. 그리고, 햇살은 사진기 손에 쥔 아저씨 머리카락에도 드리우며, 햇살은 내 마음속으로도 드리웁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진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사진은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요. 사진은 누구하고 나누는 속삭임일까요. 사진은 왜 즐길 만한가요. 사람은 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다가는 사진을 찍고 춤을 추면서 흐드러지는 잔치마당을 열까요. 사람은 왜 말을 섞고 눈빛을 마주치다가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이 길을 걸어갈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들 가슴에는 어떤 싹이 틀 때에 아름다울까요. 사진을 읽는 사람들 마음에는 어떤 빛이 떠오를 때에 어여쁠까요.

 


  임소혁 님은 “이 땅의 사람들은 일부러 욀 것도 없이, 생긴 모양대로 부르기 쉬운 마을 이름이나 땅 이름을 짓고 살아왔다. 천수답은 별똥지기, 조그마한 논은 궁둥이배미, 징검돌이 놓인 곳은 노딧거리, 산나물 나는 곳은 취밭등, 들꽃이 많은 곳은 꽃밭등이라 했고, 가는 비 묻어오는 골짜기를 우골, 안개골이라고 불렀다(9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요. 노루귀라는 풀이름은 누가 어떻게 왜 지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즐겁게 노루귀라는 낱말을 혀끝에 올리며 빙그레 웃습니다. 솜다리라는 풀이름을 누가 언제 뭣 하러 지었는지 알 턱이 없지만, 오늘을 숨쉬는 우리들은 기쁘게 솜다리라는 낱말을 혓바닥에 올리며 상긋상긋 웃어요.


  벼라는 이름, 밀이라는 이름, 박이라는 이름, 삼태기라는 이름, 짚이라는 이름, 밥이라는 이름, 주걱이라는 이름, 솥이라는 이름, 나무라는 이름, 물이라는 이름, 이 모든 이름에 어떤 숨결이 깃들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고 또 또 어버이를 낳은 옛사람은 어떤 숨결로 이 같은 이름을 짓고 부르며 한삶을 누렸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을 즐기는 오늘 우리들은 어떤 이름을 사진마다 붙일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빚는 오늘 우리들은 어떤 시를 지어 사진 하나와 함께 누리는가 곱씹어 봅니다.


  내 목숨을 되돌아보며 시를 써요. 내 목숨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눠요. 내 목숨을 깨달으며 사진을 찍어요. 나이 서른이든 쉰이든 일흔이든 아흔이든,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고, 하늘빛으로 이 땅에 온 줄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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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1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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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16

 


곱게 빛나는 시골 삶
― 은수저 1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6.25./5500원

 


  전남 고흥군 고흥읍 한켠에 ‘천경자 전시실’이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가면서 이곳에 가 보아야지 생각하던 어느 날, 전시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이래저래 ‘내부 수리’를 한다더군요. 아직 문을 다시 못 열지 싶어, 둘러보로 갈 수 없습니다. 고흥군 금산면 한켠에 ‘김일 체육관’이 있습니다. 우리 식구는 체육관 앞까지만 가고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태풍에 날아간 지붕을 아직 고치지 않았거든요. 고흥군 도양읍 한켠에는 ‘김태영 축구장’이 있습니다. 2011년 여름에 축대가 무너졌다는데, 이곳은 알뜰히 손질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아름다운 사람이나 이름난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시골이나 도시에도, 그곳 내기인 아름답거나 이름나거나 훌륭한 사람이 많겠지요. 다른 지자체에서는 어떻게 할까요. 다른 지자체에서도 고흥군과 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다른 지자체에서 고흥군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잰 손놀림으로 생채기를 보듬거나 달래려 할까요.


- “우리 집은 소와 말을 기르는 농가거든. 가업을 이어받으려고 이 학교에 온 거야.” (17쪽)
- “젠장, 뭐야. 이 ‘꿈이 없으면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듯한 분위기는.” (34쪽)

 


  나라안 곳곳에 여러 가지 전시관이 있고 박물관이 있습니다. 제주에는 제주이기에 남다른 해녀박물관이 있어요. 함평에는 아마 나비박물관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공룡박물관이라든지 고인돌박물관도 어느 지자체엔가 있을 테고요.


  그런데, 농업박물관이나 어업박물관, 또는 숲박물관이나 바다박물관은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궁금해요. 농업박물관은 서울에 있다 하는데, 고흥이나 장흥이나 보성이나 강진이나 해남 같은 시골 군이야말로 저마다 다른 시골 터전을 이야기하는 농업박물관이 하나씩 있어야 하리라 느껴요. 고흥은 고흥대로 고흥 토종씨앗을 건사하면서, 고흥 옛 농사꾼 삶을 기리고, 고흥 오늘 농사꾼 꿈을 북돋우는, 아름다운 농업박물관이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고흥이라면, 여기에 어업박물관이라든지 바다박물관을 꾸릴 수 있겠지요. 숲박물관도 꾸릴 수 있고, 갯벌박물관도 꾸릴 수 있어요. 작은 면마다 다 다르고, 작은 면에 깃든 작은 마을마다 다 다른 말과 이야기와 삶을 찬찬히 아로새기는 조그마하면서 어여쁜 박물관이나 이야기터를 꾸릴 수 있습니다.


  어떤 관광이나 홍보 때문에 세우는 박물관이나 전시관은 아닙니다. 이 박물관과 전시관이 밑돌이 되어, 시골 아이들이 시골을 슬기롭게 배우고 사랑하는 길을 여는 구실을 합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만 배우는 아이들이 아니라, 마을에서 삶을 배우고,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옛사람 슬기를 물려받도록 돕습니다. 학교에서 시험공부만 할 아이들이 아니라, 집과 마을에서 두레와 품앗이로 시골일을 함께하는 즐거움과 웃음을 이어받도록 거들지요.


- “토키와.” “엉?” “달걀은 어디로 낳는 거야?” “어디긴. 항문으로 낳지.” “똥이랑 같이?” (44∼45쪽)
- “너무 맛있다아아아아아아! 똥구멍 주제에, 똥구멍 주제에!” “거 똥구멍 똥구멍 되게 그러네! 총배설공이라니까!” “토키와, 똥구멍으로 이렇게 맛있는 걸 싸 주는 닭이 위대해.” (54쪽)

 

 


  해마다 겨울이 되면, 읍내나 면내에 걸개천이 하나둘 붙어요. 시골 아이가 대학교에 붙었다든지, 대학교 마치는 아이가 학사나 석사를 땄다든지, 어느 대학교 교수가 되거나 사법고시에 붙었다든지, 하는 걸개천을 붙입니다. 아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기릴 만하니까 걸개천을 붙일 텐데, 정작 고흥 시골사람이 붙일 걸개천이라 한다면, 다른 이야기로 붙여야 하리라 느껴요. 어느 마을 아무개가 농사일을 물려받습니다, 어느 마을 저무개가 바닷일을 물려받습니다. 어느 마을 그무개가 숲일을 물려받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담아 걸개천을 붙여야지 싶어요.


  그러나,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굳이 걸개천으로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참 마땅하면서 아름다운 일이니까요. 시골 아이가 풀·나무·꽃·벌레·새·물고기·갯것 들을 하나하나 익히면서 이녁 삶을 스스로 건사하는 꿈을 키우는 삶이란, 더없이 마땅하면서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집집마다 닭을 키우면서 닭을 잡아 닭을 삶거나 튀기거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씨앗을 건사해서 이듬해에 새로 심어 돌본 다음 거두어 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나무를 돌보고 아끼는 매무새를 익힐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을 살리는 거름을 어떻게 얻고 꾸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스스로 삶을 꾸리지 못하니, 이곳저곳 견학을 다니고 체험활동 한다고 해요. 참말, 도시에서는 씨앗 한 알 심을 너른 땅이 없고, 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자랄 빈터가 없어요. 도시 어디에 갯벌이나 바다가 있나요. 인천 앞바다에서 조개를 캐거나 부산 앞바다에서 매생이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도시사람은 먹고 버리기만 합니다. 도시사람은 먹고 버리기만 하면서 삶을 모르거나 잊습니다. 삶을 모르는 도시사람은 발전소를 수없이 새로 짓는 일이 이 나라 삶터를 어떻게 뒤흔드는가를 못 깨닫습니다. 삶을 잊는 도시사람은 자동차공장이나 핸드폰공장이 나라살림 살리는 줄 잘못 압니다. 도시사람은 경제성장율이나 주식시세표에 휘둘려요. 도시사람들 들꽃 하나 누리지 못하고, 들풀 하나 즐기지 못하며, 들노래와 들일은 까맣게 잊습니다.


- “여전히 무첨가물 식품같이 비효율적인 연구를 하고 있어?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는 소비자의 필요에 맞춰서 첨가물도 요령 있게 사용해야 해!”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거야! 넌 참견하지 마!” (58쪽)
- “성적이 나쁘면 사정없이 은퇴시키거든.” “은퇴?” “이벤트장 같은 곳의 마차말로 취직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식육용으로 쓰이니까.” “뭐?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데 먹어버린다고?” “경마만이 아니라, 가축들 세계에서 노력 같은 건 의미 없어. 성적이 전부니까 …….” “노력해도 아무런 보답이 없다니. 어쩐지 너무하다.” “너무하고 자시고가 어딨냐? 너, 지난번에 이나다 선배가 만든 훈제 치킨 먹었지? 그건 산란 성적이 나빠서 도태된 닭이라고.” (119쪽)

 


  모든 풀은 밥이자 약입니다. 예부터 밥과 약은 들과 멧골과 바다에서 얻었습니다. 밥을 식품공장에서 만들지 않았고, 약을 제약회사에서 만들지 않았어요. 오늘 우리를 낳아 기른 어버이와 이들 어버이를 낳아 기른 어버이는 누구나 밥과 약을 들과 멧골과 바다에서 손수 얻었어요.


  들짐승과 멧짐승도 밥과 약을 들과 멧골에서 스스로 얻습니다. 바다와 냇물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밥과 약을 바다와 냇물에서 스스로 얻어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올바르며 아름다울까요. 집에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슬기로우며 사랑스러울까요.


  한국에서 다른 어느 지자체보다 아름답고 정갈한 시골을 건사하는 고흥은 참 멋지고 놀라우며 재미난 곳이라고 느낍니다. 비록 이제는 농업고등학교 하나 없어, 고흥에서 나고 자라더라도 ‘농사꾼 되는 길’을 배울 데가 없다 하지만, 굳이 학교에 가지 않고 마을에서 내 어버이와 이웃 어버이한테서 하나하나 물려받거나 배우면, 아주 씩씩하고 아름다운 농사꾼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고흥에서는 학교 없이 집과 마을에서 어른들한테 차근차근 배우면 ‘고기잡이 되는 길’도 훌륭히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 “그저 높은 곳에 올라가기만 해서는 이런 감각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말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죠.” (95쪽)
- “수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갔다가, 그 선택의 기로에서 ‘역시 못하겠다’며 포기하는 사람은 있어. 그렇다고 수의사가 되길 포기한 사람이 못났다는 건 결코 아니지. 세상에는 그런 ‘죽일 수 없다·죽이지 않게 하겠다’는 상냥한 사람들이 노력하는 덕분에 삶을 얻는 생명이 많이 있거든. 어떤 일이든 그걸 이루든 못 이루든, 꿈을 갖는다는 건 동시에 현실과 싸울 것을 각오하는 거라고 생각한단다.” (135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빚은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도시에 있는 입시중학교를 다니며 성적겨루기에만 마음을 쏟던 어느 아이가 시골에 있는 축산고등학교로 가서 ‘시골일’을 처음으로 겪고 느끼며 배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만화책 《은수저》에 나오는 축산고등학교는 일본에 참말 있는 학교라 하는데, 한국에는 어느 지자체 어느 시골에 농업고나 축산고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대학입시 아닌 ‘즐겁게 농사꾼 되기’를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농업고나 축산고가 한국에 한 군데나마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시골 아이를 시골 아이답게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시골 일꾼으로 듬직하게 키우는 시골 어른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곱게 빛나는 시골 삶입니다. 쓰러져 가는 시골 삶은 없습니다. 늙은 할매 할배만 남는 시골 삶은 없습니다. 푸른 들이 있고 싱그러운 숲이 있습니다. 파란 하늘이 있으며 너른 바다가 있습니다. 군청과 면사무소 일꾼을 비롯해, 흙과 바다를 끼며 숨을 쉬는 이웃들 모두, 곱게 빛나는 시골 삶을 즐거이 누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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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1) -의 소재 1 : 시의 소재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근한 것이기 때문에 시의 소재로 딱 좋으니까요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선생님, 내 부하 해》(양철북,2009) 178쪽

 

  “친근(親近)한 것이기”는 “가깝기”나 “살갑기”로 다듬고, ‘소재(素材)’는 ‘감’이나 ‘글감’으로 다듬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시의 소재로”처럼 나오는데, “시로 쓸 글감으로”로 손볼 수 있고, 간추리면서 “싯감으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시로 쓰기에”나 “시로 다루기에”라든지 “시로 옮기기에”나 “시로 적바림하기에”로 손볼 수 있으며, “시로 쓸 이야기로”라든지 “시로 들려주기에”처럼 손보아도 잘 어울려요.

 

 시의 소재로
→ 시로 쓰기에
→ 시를 쓰기에
→ 시를 쓸 때에
→ 싯감으로
→ 시 쓸 얘기로
 …

 

  일본사람은 글을 쓰면서 “詩の素材”처럼 적습니다. 일본사람은 “詩の作法”이라고도 적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은 “싯감”처럼 적거나 “시쓰기” 또는 “시 쓰는 법”처럼 적으면 됩니다. 시 아닌 소설에서도 “소설감”이라 적고 “소설쓰기” 또는 “소설 쓰는 법”처럼 적으면 돼요.


  한국말을 적을 때에는 한겨레 말투와 말결과 말씨를 살핍니다. 먼 옛날부터 흐르던 말차림을 곱씹고, 오늘을 가로질러 앞으로 흐를 말무늬를 생각합니다. 알맞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나눌 말빛을 헤아립니다. 4346.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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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한테 살갑기 때문에 시로 쓰기에 딱 좋으니까요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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