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 Silver Spoon 1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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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16

 


곱게 빛나는 시골 삶
― 은수저 1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6.25./5500원

 


  전남 고흥군 고흥읍 한켠에 ‘천경자 전시실’이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가면서 이곳에 가 보아야지 생각하던 어느 날, 전시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이래저래 ‘내부 수리’를 한다더군요. 아직 문을 다시 못 열지 싶어, 둘러보로 갈 수 없습니다. 고흥군 금산면 한켠에 ‘김일 체육관’이 있습니다. 우리 식구는 체육관 앞까지만 가고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태풍에 날아간 지붕을 아직 고치지 않았거든요. 고흥군 도양읍 한켠에는 ‘김태영 축구장’이 있습니다. 2011년 여름에 축대가 무너졌다는데, 이곳은 알뜰히 손질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아름다운 사람이나 이름난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시골이나 도시에도, 그곳 내기인 아름답거나 이름나거나 훌륭한 사람이 많겠지요. 다른 지자체에서는 어떻게 할까요. 다른 지자체에서도 고흥군과 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다른 지자체에서 고흥군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잰 손놀림으로 생채기를 보듬거나 달래려 할까요.


- “우리 집은 소와 말을 기르는 농가거든. 가업을 이어받으려고 이 학교에 온 거야.” (17쪽)
- “젠장, 뭐야. 이 ‘꿈이 없으면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듯한 분위기는.” (34쪽)

 


  나라안 곳곳에 여러 가지 전시관이 있고 박물관이 있습니다. 제주에는 제주이기에 남다른 해녀박물관이 있어요. 함평에는 아마 나비박물관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공룡박물관이라든지 고인돌박물관도 어느 지자체엔가 있을 테고요.


  그런데, 농업박물관이나 어업박물관, 또는 숲박물관이나 바다박물관은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궁금해요. 농업박물관은 서울에 있다 하는데, 고흥이나 장흥이나 보성이나 강진이나 해남 같은 시골 군이야말로 저마다 다른 시골 터전을 이야기하는 농업박물관이 하나씩 있어야 하리라 느껴요. 고흥은 고흥대로 고흥 토종씨앗을 건사하면서, 고흥 옛 농사꾼 삶을 기리고, 고흥 오늘 농사꾼 꿈을 북돋우는, 아름다운 농업박물관이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고흥이라면, 여기에 어업박물관이라든지 바다박물관을 꾸릴 수 있겠지요. 숲박물관도 꾸릴 수 있고, 갯벌박물관도 꾸릴 수 있어요. 작은 면마다 다 다르고, 작은 면에 깃든 작은 마을마다 다 다른 말과 이야기와 삶을 찬찬히 아로새기는 조그마하면서 어여쁜 박물관이나 이야기터를 꾸릴 수 있습니다.


  어떤 관광이나 홍보 때문에 세우는 박물관이나 전시관은 아닙니다. 이 박물관과 전시관이 밑돌이 되어, 시골 아이들이 시골을 슬기롭게 배우고 사랑하는 길을 여는 구실을 합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만 배우는 아이들이 아니라, 마을에서 삶을 배우고,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옛사람 슬기를 물려받도록 돕습니다. 학교에서 시험공부만 할 아이들이 아니라, 집과 마을에서 두레와 품앗이로 시골일을 함께하는 즐거움과 웃음을 이어받도록 거들지요.


- “토키와.” “엉?” “달걀은 어디로 낳는 거야?” “어디긴. 항문으로 낳지.” “똥이랑 같이?” (44∼45쪽)
- “너무 맛있다아아아아아아! 똥구멍 주제에, 똥구멍 주제에!” “거 똥구멍 똥구멍 되게 그러네! 총배설공이라니까!” “토키와, 똥구멍으로 이렇게 맛있는 걸 싸 주는 닭이 위대해.” (54쪽)

 

 


  해마다 겨울이 되면, 읍내나 면내에 걸개천이 하나둘 붙어요. 시골 아이가 대학교에 붙었다든지, 대학교 마치는 아이가 학사나 석사를 땄다든지, 어느 대학교 교수가 되거나 사법고시에 붙었다든지, 하는 걸개천을 붙입니다. 아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기릴 만하니까 걸개천을 붙일 텐데, 정작 고흥 시골사람이 붙일 걸개천이라 한다면, 다른 이야기로 붙여야 하리라 느껴요. 어느 마을 아무개가 농사일을 물려받습니다, 어느 마을 저무개가 바닷일을 물려받습니다. 어느 마을 그무개가 숲일을 물려받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담아 걸개천을 붙여야지 싶어요.


  그러나,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굳이 걸개천으로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참 마땅하면서 아름다운 일이니까요. 시골 아이가 풀·나무·꽃·벌레·새·물고기·갯것 들을 하나하나 익히면서 이녁 삶을 스스로 건사하는 꿈을 키우는 삶이란, 더없이 마땅하면서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집집마다 닭을 키우면서 닭을 잡아 닭을 삶거나 튀기거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씨앗을 건사해서 이듬해에 새로 심어 돌본 다음 거두어 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나무를 돌보고 아끼는 매무새를 익힐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을 살리는 거름을 어떻게 얻고 꾸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스스로 삶을 꾸리지 못하니, 이곳저곳 견학을 다니고 체험활동 한다고 해요. 참말, 도시에서는 씨앗 한 알 심을 너른 땅이 없고, 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자랄 빈터가 없어요. 도시 어디에 갯벌이나 바다가 있나요. 인천 앞바다에서 조개를 캐거나 부산 앞바다에서 매생이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도시사람은 먹고 버리기만 합니다. 도시사람은 먹고 버리기만 하면서 삶을 모르거나 잊습니다. 삶을 모르는 도시사람은 발전소를 수없이 새로 짓는 일이 이 나라 삶터를 어떻게 뒤흔드는가를 못 깨닫습니다. 삶을 잊는 도시사람은 자동차공장이나 핸드폰공장이 나라살림 살리는 줄 잘못 압니다. 도시사람은 경제성장율이나 주식시세표에 휘둘려요. 도시사람들 들꽃 하나 누리지 못하고, 들풀 하나 즐기지 못하며, 들노래와 들일은 까맣게 잊습니다.


- “여전히 무첨가물 식품같이 비효율적인 연구를 하고 있어?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는 소비자의 필요에 맞춰서 첨가물도 요령 있게 사용해야 해!”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거야! 넌 참견하지 마!” (58쪽)
- “성적이 나쁘면 사정없이 은퇴시키거든.” “은퇴?” “이벤트장 같은 곳의 마차말로 취직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식육용으로 쓰이니까.” “뭐?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데 먹어버린다고?” “경마만이 아니라, 가축들 세계에서 노력 같은 건 의미 없어. 성적이 전부니까 …….” “노력해도 아무런 보답이 없다니. 어쩐지 너무하다.” “너무하고 자시고가 어딨냐? 너, 지난번에 이나다 선배가 만든 훈제 치킨 먹었지? 그건 산란 성적이 나빠서 도태된 닭이라고.” (119쪽)

 


  모든 풀은 밥이자 약입니다. 예부터 밥과 약은 들과 멧골과 바다에서 얻었습니다. 밥을 식품공장에서 만들지 않았고, 약을 제약회사에서 만들지 않았어요. 오늘 우리를 낳아 기른 어버이와 이들 어버이를 낳아 기른 어버이는 누구나 밥과 약을 들과 멧골과 바다에서 손수 얻었어요.


  들짐승과 멧짐승도 밥과 약을 들과 멧골에서 스스로 얻습니다. 바다와 냇물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밥과 약을 바다와 냇물에서 스스로 얻어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올바르며 아름다울까요. 집에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슬기로우며 사랑스러울까요.


  한국에서 다른 어느 지자체보다 아름답고 정갈한 시골을 건사하는 고흥은 참 멋지고 놀라우며 재미난 곳이라고 느낍니다. 비록 이제는 농업고등학교 하나 없어, 고흥에서 나고 자라더라도 ‘농사꾼 되는 길’을 배울 데가 없다 하지만, 굳이 학교에 가지 않고 마을에서 내 어버이와 이웃 어버이한테서 하나하나 물려받거나 배우면, 아주 씩씩하고 아름다운 농사꾼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고흥에서는 학교 없이 집과 마을에서 어른들한테 차근차근 배우면 ‘고기잡이 되는 길’도 훌륭히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 “그저 높은 곳에 올라가기만 해서는 이런 감각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말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죠.” (95쪽)
- “수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갔다가, 그 선택의 기로에서 ‘역시 못하겠다’며 포기하는 사람은 있어. 그렇다고 수의사가 되길 포기한 사람이 못났다는 건 결코 아니지. 세상에는 그런 ‘죽일 수 없다·죽이지 않게 하겠다’는 상냥한 사람들이 노력하는 덕분에 삶을 얻는 생명이 많이 있거든. 어떤 일이든 그걸 이루든 못 이루든, 꿈을 갖는다는 건 동시에 현실과 싸울 것을 각오하는 거라고 생각한단다.” (135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빚은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도시에 있는 입시중학교를 다니며 성적겨루기에만 마음을 쏟던 어느 아이가 시골에 있는 축산고등학교로 가서 ‘시골일’을 처음으로 겪고 느끼며 배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만화책 《은수저》에 나오는 축산고등학교는 일본에 참말 있는 학교라 하는데, 한국에는 어느 지자체 어느 시골에 농업고나 축산고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대학입시 아닌 ‘즐겁게 농사꾼 되기’를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농업고나 축산고가 한국에 한 군데나마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시골 아이를 시골 아이답게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시골 일꾼으로 듬직하게 키우는 시골 어른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곱게 빛나는 시골 삶입니다. 쓰러져 가는 시골 삶은 없습니다. 늙은 할매 할배만 남는 시골 삶은 없습니다. 푸른 들이 있고 싱그러운 숲이 있습니다. 파란 하늘이 있으며 너른 바다가 있습니다. 군청과 면사무소 일꾼을 비롯해, 흙과 바다를 끼며 숨을 쉬는 이웃들 모두, 곱게 빛나는 시골 삶을 즐거이 누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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