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람 서울마실

 


  해는 언제나 뜬다. 달은 언제나 진다. 꽃은 언제나 핀다. 풀은 언제나 푸르다. 시골에서는 아주 마땅해서 딱히 생각해 보지 않던 일인데, 서울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너무 멀거나 동떨어지는구나 싶다. 해가 뜨는 줄 헤아리는 사람이 적다. 달이 지는 줄 살피는 사람이 드물다. 꽃이 피는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 없다. 풀이 푸른 빛깔인 줄 알아차리는 사람 만나기 힘들다.


  서울에서는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그러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온갖 곳에서 재미를 찾겠지. 맛난 밥집을 찾고, 예쁜 찻집을 찾으며, 멋진 옷집을 찾다가는, 놀라운 놀이공원이나 문화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재미를 누리리라.


  숲이 없으니 밥집을 찾는다. 들이 없으니 찻집을 찾는다. 멧자락 없으니 옷집을 찾는다. 바다가 없으니 놀이공원을 찾는다. 하늘이 없으니 문화거리를 찾는다.


  그렇지만, 귀를 기울이면, 서울에서도 바람내음을 맡고 구름조각을 만지며 별빛으로 몸을 씻을 수 있겠지. 마음을 열고 눈을 뜨면, 서울에 있을 적에도 빗소리를 듣고 눈빛을 헤아리며 이야기꽃 흐드러지는 삶을 깨달을 수 있겠지.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서울(도시)로 마실을 나오니,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리로 뛰어도 안 되고 저기에서 소리를 질러도 안 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달리거나 저렇게 노래해도 안 된다. 안 되는 것투성이, 만져서는 안 되는 것 잔뜩, 나긋나긋 즐거이 얼크러질 만한 자리 없고, 아이도 어른도 느긋이 앉거나 눕거나 서며 까르르 웃기가 수월하지 않다. 4346.2.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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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길 걸어온 최민식 님이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여러 매체에 소식이 나오니

조용하지 않다고 할 만하지만,

기나긴 나날 사진 한삶 사랑한

작은 이야기와 손길은

조용히 쉰다.

 

사진 하나로 삶꽃과 이야기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숨결 담은

꿈은

젊은 사람들이

찬찬히 받아먹으면서

새록새록 북돋우겠지요.

 

즐겁게 쉬셔요.

오늘을 살아가는 뒷사람들 모두

즐겁게 새 사진삶 이룰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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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2-12 22:44   좋아요 0 | URL
정말이요? 정말이요???
아.....

파란놀 2013-02-13 07:44   좋아요 0 | URL
올해 첫머리에 병원에 들어가셨다고 들었어요.
오래도록 몸을 많이 움직이셔서
한 번 드러누운 뒤로는
다시 일어나기 힘드셨나 봐요.
사진기 들고 즐거이 마실 다니던 삶이기에,
꿈을 품에 안고 다른 세계를 즐거이 다니시리라 믿어요.
고이 쉬실 테지요...
 

이야기꽃 책읽기

 


  식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집에서는 즐거운 웃음으로 삶을 읽습니다. 식구들이 여럿 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지 못하는 집에서는 서늘한 기운만 흘러 삶을 물려주지도 삶을 물려받지도 못합니다.


  식구들이 나눌 이야기란 주식시세나 방송편성표가 아닙니다. 식구들이 나눌 이야기란 아주 잘디잔 삶자락입니다. 새싹이 돋았다거나 바람내음 맡았다거나 햇살조각 먹었다거나 별빛을 누렸다거나 같은 잘디잔 삶자락이 이야기꽃 밑감입니다. 마을길 거닐며 이웃 할머니한테 인사한 삶이 이야기꽃 밑거리입니다. 들새와 멧새 날갯짓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고운 노래 들은 삶이 이야기꽃 밑거름입니다. 하얗게 흐르고 마알갛게 지나가는 구름을 즐긴 한때가 이야기꽃 밑바탕입니다.


  누가 다치거나 죽거나 해야 이야기를 나눌 만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어쩌고 정치꾼이 저쩌고 하는 수다를 떨어야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즐긴 하루가 재미난 이야기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복복 비벼 보송보송 해바라기를 시킨 빨래를 차곡차곡 개서 옷시렁에 둔 하루가 살가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이야기꽃이 책입니다. 책은 이야기꽃입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은 늘 책을 숱하게 읽는 사람들입니다. 책을 읽었다 할 적에는 이야기꽃 피울 삶을 누렸다는 뜻입니다. 이야기꽃이 깃들지 못하면 책이 아닙니다. 이야기꽃이 흐드러질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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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손발

 


  남녘 고흥에서 한밤에 글을 쓰며 손이 시리다고 느끼지 못한다. 음성서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글을 쓰며 손이나 발이 춥다고 느끼지 못한다. 경기 일산 끝자락 밭뙈기 한켠 비닐을 쳐서 지내는 옆지기네 어머니 아버지 댁에서 글을 쓰며 새삼스레 손이랑 발이 차갑구나 하고 느낀다.


  고흥에서는 구경하지 못하는 눈밭을 음성이랑 일산에서 흐드러지게 본다. 아이들은 눈을 쥐고 뭉치며 던진다. 까르르 웃으며 논다. 따스한 남녘에서는 따스한 손길 되어 따스한 눈망울 밝히며 놀고, 추운 곳에서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가도 개구지게 뛰놀고 뒹굴면서 작은 옷을 작은 땀으로 촉촉히 적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날 시린 손발 호호 녹이며 지낼까. 얼마나 많은 북녘 이웃들이 추운 겨울날 추위에 꽁꽁 얼어붙으며 봄을 기다릴까. 왜 남녘땅에 새 찻길 더 내고 새 공사와 개발을 끝없이 해야 할까.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길에 돈을 나누기는 어려울까. 석유와 전기를 때야 하는 흐름 아닌, 지구별 살리고 지구이웃 사랑하는 맑은 빛과 볕으로 겨울을 따사로이 누리는 흐름을 빚을 수는 없는가. 자동차를 굴리더라도 배기가스 안 나오는 자동차를 짓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람하게 커다란 발전소 아닌, 무시무시하게 세워 끝없이 잇는 송전탑 아닌, 농약 듬뿍 뿌리고 땅밑물 함부로 퍼올리는 골프장 아닌,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살가운 보금자리를 일구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왜 늘어나지 못할까.


  사람들 누구나 텃밭을 일굴 수 있기를 빈다. 사람들 누구나 이녁 먹을거리 얻을 무논 몇 뼘 있기를 빈다. 사람들 누구나 집숲을 즐길 만한 멧자락 한 뙈기 있기를 빈다. 땅문서도 은행계좌도 무덤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이든, 꼭 한 권 책이든, 무덤으로 가져갈 수 없다. 무덤으로 가져갈 한 가지는 오직 사랑이다.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요, 사랑을 안고 하늘나라에서 훨훨 날갯짓하며 춤추고 노래할 사람이다.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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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랑 별이랑

 


달은
꽃내음 먹으며 살아요.
꽃빛 닮고
꽃무늬 아로새기며
까맣고 까만
깊은 밤하늘에서
맑게 빛나지요.

 

별은
풀내음 마시며 자라요.
풀빛 물려받고
풀무늬 콕콕 새기며
캄캄하고 캄캄한
너른 밤하늘에서
밝게 웃지요.

 


4345.12.2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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