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꽃 책읽기
식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집에서는 즐거운 웃음으로 삶을 읽습니다. 식구들이 여럿 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지 못하는 집에서는 서늘한 기운만 흘러 삶을 물려주지도 삶을 물려받지도 못합니다.
식구들이 나눌 이야기란 주식시세나 방송편성표가 아닙니다. 식구들이 나눌 이야기란 아주 잘디잔 삶자락입니다. 새싹이 돋았다거나 바람내음 맡았다거나 햇살조각 먹었다거나 별빛을 누렸다거나 같은 잘디잔 삶자락이 이야기꽃 밑감입니다. 마을길 거닐며 이웃 할머니한테 인사한 삶이 이야기꽃 밑거리입니다. 들새와 멧새 날갯짓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고운 노래 들은 삶이 이야기꽃 밑거름입니다. 하얗게 흐르고 마알갛게 지나가는 구름을 즐긴 한때가 이야기꽃 밑바탕입니다.
누가 다치거나 죽거나 해야 이야기를 나눌 만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어쩌고 정치꾼이 저쩌고 하는 수다를 떨어야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즐긴 하루가 재미난 이야기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복복 비벼 보송보송 해바라기를 시킨 빨래를 차곡차곡 개서 옷시렁에 둔 하루가 살가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이야기꽃이 책입니다. 책은 이야기꽃입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은 늘 책을 숱하게 읽는 사람들입니다. 책을 읽었다 할 적에는 이야기꽃 피울 삶을 누렸다는 뜻입니다. 이야기꽃이 깃들지 못하면 책이 아닙니다. 이야기꽃이 흐드러질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