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3.4.
 : 걸어야 비로소 아는 길

 


- 몇 해 앞서부터 걷기가 널리 퍼진다. 마치 ‘유행’이라 할 만하다. 왜 걷기가 바람 불듯 널리 퍼질까. 걷기란 더없이 마땅한 삶인데, 왜 걷기 바람이 불면서 이 길 저 길 새 이름이 붙을까. 나는 모른다. 사람들이 얼마나 안 걷는지, 참말 나는 모른다. 왜냐하면, 남들이야 안 걷든 걷든, 나는 우리 아이들하고 늘 걸으며 살아가니까. 나는 내 삶을 누릴 사람이지, 남들 삶을 기웃거릴 겨를은 없으니까. 이웃에서는 우리 아이들 아주 어릴 적에 업거나 안고 다니지 말라 했다. 아이들 아기수레에 태워 끌라 하면서, 유모차 선물해 주겠다던 사람 꽤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기수레 안 받았다. 왜냐하면, 아기는 업히거나 안기며 다녀야 마땅하다. 아기들은 제 어버이 품에서 따스한 사랑 받으면서 자라고, 이렇게 자라다가 스스로 두 다리를 땅에 디디고 걸을 수 있으니까. 조금 지켜보면 되고, 조금 안으면 된다.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돌을 지나고부터 천천히 걸었고, 이제 모두 나비처럼 훨훨 날듯 달리기 잘 한다. 그리고, 여섯 살 큰아이 세 살 작은아이 되어도 곧잘 안긴다. 안기기 좋아하고 걷기 좋아하며 달리기 좋아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커야 즐겁고 아름다이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낀다. 곧, 어른도 누구나 두 다리를 땅에 대고 걸을 때에 삶이 빛난다고 느낀다. 때때로 자전거를 몰 수 있지. 때로는 자동차를 얻어 탈 수 있지. 그러나, 으레 타는 자동차여서는 아니라고 느낀다. 으레 자동차를 몰며 어디를 다닐 때에는 삶이 아니라고 느낀다. 삶은 삶이니까. 자동차를 타 보아라. 겨울이 겨울다운 줄 느끼는가. 자동차에서 봄을 봄인 줄 느끼는가. 자동차를 몰면 여름과 가을이 맛 다르고 냄새 다르며 빛깔 다른 줄 못 느낀다. 자동차에서 내려야,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야 비로소 날씨와 철을 느낀다.

 

-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오늘은 제법 멀리 마실 가기로 생각한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자마자 곧 잠든다. 많이 졸렸구나. 새근새근 자는 작은아이 곁에서 큰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 힘 내라는 노래로구나. 아버지는 동백마을 지나 봉서마을에서 느티나무 곁을 스쳐 신촌마을 고갯길을 달린다. 고갯길 달리다가 더는 발판을 못 밟겠다 싶어 자전거에서 내린다. 가파른 고갯길을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끈다. 우와, 되게 가파르구나. 혼자 오면 이 고갯길 자전거로 넘을 만할까.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힘들어요? 아버지 왜 힘들어요?” 쳇, 네가 자전거를 몰아 보렴. 쳇, 네가 스스로 이 고갯길을 걸어 보렴. 아버지는 너희랑 자전거를 끌고 이 고갯길을 오르잖니.

 

- 드디어 고갯마루에 오른다. 뒤를 돌아본다. 우리 동백마을 멀리 보인다. 참 예쁘구나. 고갯마루에 오르니 시원스레 부는 바람 맛나구나. 이제 자전거에 오른다. 청룡마을에 닿는다. 청룡마을은 군내버스 들어오는 막바지 자리이다. 군내버스가 이리 들어와서 한 바퀴 돌고는 빙 돌아 나갈 테지. 멧기슭 언저리에 곱다시 앉은 청룡마을은 햇살 포근하게 들어오며 밝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숲과 들과 나무와 풀과 나비와 새와 벌레와 개구리와 멧짐승과 뛰놀며 놀았겠지. 이제 시골마을에는 할매 할배만 남고 아이와 젊은이와 푸름이 모두 도시로 나간다. 이제 시골마을은 어디나 한갓지고 조용하다. 할매와 할배만 남는 시골은 어르신들 힘이 모자라 두레나 울력 하기는 힘들고, 경운기 돌려 농약 뿌려야 이럭저럭 푸성귀 거둘 만하다. 사람들 먹는 모든 풀에 농약 기운 스밀밖에 없다. 사람들 모두 시골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며 돈으로 푸성귀를 사다 먹으니,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에 기대어 푸성귀 내다 팔밖에 없다.

 

- 미후마을 지나고 장촌마을 지난다. 도화면에도 신촌마을 있고, 포두면에도 신촌마을 있다. 그냥 ‘새마을’이란 뜻이겠지. ‘샛골’이었을 수 있고. 샛골이란 사잇골짜기일 수 있고, 새로운 고을일 수 있다.

 

- 마을길 벗어나 큰길로 접어들지만, 고흥 큰길에는 자동차 뜸하다. 이렇게 좋은 길은 자동차로 달리기보다 자전거로 달려야 제맛이요, 자전거 또한 내려놓고 두 다리로 걸어야 제맛이다. 참말, 옛날 사람들은 십 리이건 이십 리이건 걸어서 다녔다. 걸어서 다닌 흙길이요, 걸어서 다니기에 마을길이고, 걸어서 다니기에 아름다운 삶길이었으라 생각한다. 걸으며 멧새 노래를 듣는다. 걸으며 상큼한 바람을 마신다. 걸으며 숲자락 푸른 빛깔 바라본다. 걸으며 구름빛 느끼고 햇살 포근한 숨결 들이켠다.

 

- 외초마을 지나며 저 멀리 해창벌을 본다. 해창벌이 들판 아닌 갯벌이던 모습을 나는 모른다. 나는 해창이 들판이 된 뒤에 고흥으로 들어와서 살아가니까. 저 해창이 갯벌이면서 바닷물 찰랑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그려 본다. 해창 바닷가라면, 해창 갯벌이라면, 이곳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데였을까. 지구별에 이토록 아름다운 갯벌 있는 나라는 얼마나 있을까. 한국사람은 땅을 아쉽게 여기며 갯벌을 메꾸어 논으로 바꾸었지만, 조금 더 슬기롭게 살폈으면, 갯벌이 있기에 들과 숲이 더 푸르게 숨을 쉬고, 사람들 마음도 더 환하게 트일 수 있는 줄 깨달았으리라. 애써 메꾼 갯벌에 다시 바닷물 들여 갯벌로 돌아가도록 하는 독일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 한국 공무원과 정치꾼이 ‘갯벌 망가뜨려 만든 논’이 얼마나 바보짓이었는가를 알아차리기를 빈다. 참말 그렇잖은가. 한국에서 쌀이 남아돌지 않으나, 정치꾼은 쌀 남아돈다는 이야기 퍼뜨리면서 논에 나락 심지 말라고 한다. 직불제이니 보전금이니 하면서 논농사 짓지 말란다. 그런데 갯벌은 왜 메꾸었는가. 갯벌이 갯벌 그대로 있으면 바지락이든 꼬막이든 낙지이든 게이든 얼마나 많이 나왔겠는가. 그뿐인가. 이 갯벌을 보러 나라밖에서도 찾아오는데, 시골을 시골답게 그대로 두었으면, 고흥이라는 데는 얼마나 손꼽히는 아름다운 터전이 되었겠는가. 아이들하고 못물 청둥오리떼 바라보면서 한참 생각에 잠긴다.

 

-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이제 봉암마을에 닿는다. 봉암마을에서 살짝 숨을 돌린다. 등판은 온통 땀이다. 웃옷 한 벌 벗고 반소매 차림으로 달렸는데에도 땀투성이가 된다. 사십 분 남짓 쉬는데에도 땀은 마르지 않는다. 자전거수레에 오래 앉았던 아이들은 콩콩 뛰면서 다리를 푼다. 아이들은 걸음걸이마다 날갯짓 같다. 너희는 어디에서 와서 이렇게 예쁘게 노니? 그래,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는 너희와 똑같은 어여쁜 하늘사람이었지. 이제 어른 되어 너희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실을 다니지만, 아마 아직 내 가슴에는 하늘사람 자취가 있으리라 생각해. 나도 하늘사람이니 너희 하늘사람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 시골길 달리며 웃을 수 있겠지.

 

- 집에서 나서며 봉암마을까지 오는 동안 맞바람이더니, 봉암마을에서 다시 동백마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맞바람이다. 드세게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낑낑거리며 쳇쳇 하고 왼다. 바람아, 너 왜 이러니. 오는 길이든 가는 길이든, 한쪽은 등바람 불어 주어야 하지 않니.

 

- 다시 장촌마을에 닿을 무렵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가 자꾸 “아버지는 걷고, 나는 달리고 싶어.” 하고 말한다. 아이는 이제 자전거수레에 앉아 함께 달리기보다, 아이 스스로 달리고 싶단다. 그래, 너희도 두 다리를 써야지. 쉬자. 시골이라지만, 빈 들판이 없다. 참말 빈 들판 없이 모두 논이고 밭이다. 아무 땅에나 함부로 들어가서 앉거나 뒹굴 수 없다. 이 나라 한국에는 도시에도 나무와 풀이 있는 공원이 거의 없지만, 시골에도 나무와 풀 즐기는 한갓진 공원이 없다. 도시에도 숲이 없고 시골에도 숲이 없달까. 멧자락 높이높이 나무 밀어 계단밭을 만들고야 만다.

 

- 십오 분 남짓 쉬다가 일어선다. 바람이 자꾸 드세게 불어 안 되겠다. 아이들을 수레에 앉히고 자전거를 달린다. 맞바람을 맞으며 달린다. 청룡마을 어귀에 닿고, 오르막을 오르다가 자전거에서 내린다. 길가에 스스로 뿌리내리는 유채풀 몇 포기 뜯는다. 맛나게 먹는다. 목마름이 가신다. 좋다. 들풀 먹으며 자전거 달리니 좋다.

 

- 고갯마루에 닿는다. 숨을 고른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참말 스스로 잘 안 걷기에 걷기마실이 유행이 되는구나 싶다. 유행이라도 되어 걸어야 할 만큼, 이제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안 걷는다. 모두들 자가용을 몰거나 경운기를 몬다. 기름 먹는 기계를 몰며, 다리를 안 쓴다.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십 분이나 이십 분쯤 걸어서 다니는 사람 드물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쯤 걸어서 다니는 사람 만나기 어렵다. 사람들 스스로 들바람을 느끼지 않으니, 누군가 들바람을 이야기하더라도 못 알아듣는다. 사람들 스스로 꽃내음을 느끼지 않으니, 누군가 꽃내음을 속삭이더라도 못 알아챈다. 사진기 들이밀어 이쁘장하게 꽃 사진 찍을 줄은 알아도, 눈으로 바라보고 코로 맡으며 혀로 느끼는 들꽃과 들풀을 모르고야 만다. 걸어야 아는 길일 텐데, 걷지 않으니 길을 모른다. 걸으며 다리를 살리고 살찌울 텐데, 걷지 않으니 다리를 살리지 못하고 살찌우지 못한다.

 

- 아이들이 자전거수레에서 다시 노래를 부른다. 그래, 너희 노랫소리 참 듣기 좋아. 노래란 참 재미있고 신나는구나. 아버지도 노래를 부를게. 아버지도 자전거 몰며 노래를 부르마. 우리 이 길을 함께 누리면서 노래로 마을과 보금자리를 한껏 북돋우자.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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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3-06 19:40   좋아요 0 | URL
앗, 제 로망을 이미 실생활로 접하고 계시다닛, 부럽습니다.
(남편도 이렇게 육아일기 쓰면 참 좋겠는데 전혀 관심이 없네요 ㅜㅠ)

파란놀 2013-03-07 14:4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부터 쓰라고 하셔요~~~ ^^
 

고속도로 책읽기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고속도로는 반듯합니다. 멧골과 멧골 사이에는 높다란 다리를 놓습니다. 멧자락마다 구멍을 뻥뻥 뚫습니다. 멧구멍은 아주 깊어 1∼2분씩 120킬로미터로 달려도 그치지 않는데, 이런 멧구멍이 열 차례 스무 차례 이어집니다. 아마, 어디에서나 서울로 가는 길은 이처럼 곧고 시원하며 빠르겠지요. 그래요, 참말 곧고 시원하며 빠르기에 고속도로입니다. 구불구불 멧자락 덜 깎으며 가는 길이란 고속도로가 아닐 테지요.


  숲이 나날이 무너집니다. 바람이 나날이 매캐합니다. 햇살이 나날이 시듭니다. 풀꽃이 나날이 집니다.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나날이 걷히고, 사람들 얼굴에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라는 세 글자 더 굳게 나날이 드러납니다.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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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니까 책읽기

 


  사건과 사고로 넘치는 신문과 방송을 자꾸 읽거나 보면, 사람들은 그런 사건과 사고에 길들고 만다. 사건과 사고 다루는 신문과 방송 이야기에 한숨을 쉬며 이웃을 안타까이 여기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며 찾지 못한다.


  사건과 사고 이야기에 길들면, 밥상머리에서든 술자리에서든 이런 이야기를 자꾸 떠들고 만다. 곧, 스스로 아름다움하고 멀어진다.


  사건과 사고를 말하는 내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갑갑하고 답답한 이야기를 하니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내 입술은 사르르 웃는다. 즐겁고 기쁜 웃음꽃을 노래하니까.


  한 사람 태어나 몇 살까지 살아갈까. 나는 모른다. 이백 살 살고프면 참말 이백 살 살 테고, 오백 살 살고프면 참말 오백 살 살아갈 텐데, 오늘날 사람들은 백 살이니 여든 살이니 하는 숫자에 얽매인다. 그러니 다들 백 살이나 여든 살 언저리에 죽는다.


  아무튼, 죽든 살든 그리 대수롭지 않은데, 여든 살에 죽는다 치면, 여든 살까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쯤 될까. 여든 살까지 읽을 책을 헤아릴 때에 어떤 책을 읽어야 내 삶이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 여든 살까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마음을 쓰거나 사랑을 쏟을까.


  사건과 사고 이야기를 여든 살까지 줄기차게 담을 생각인가? 아니면,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여든 살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까지 활짝 웃으면서 나눌 생각인가?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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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3-06 19:41   좋아요 0 | URL
'곧, 스스로 아름다움하고 멀어진다' 밑줄 쭈욱.

파란놀 2013-03-07 14:46   좋아요 0 | URL
모두들 아름다움하고 즐거이 사귈 수 있기를 빌어요
 
사야와 함께 2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21

 


함께 웃기를 빌어요
― 사야와 함께 2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2.9.15./4200원

 


  집에서 닭을 잡아서 장작불 때고 삶아서 먹은 적 있는 사람은 ‘집닭’이 얼마나 맛있고 몸을 살찌우는 줄 압니다. 반가운 손님 찾아올 적에 집닭 한 마리 잡아 털 뽑고 삶아서 내놓는 일이 서로서로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인가를 몸소 겪은 사람은 뼛속 깊숙하게 압니다.


  집돼지를 잡거나 집소를 잡거나 집개를 잡아서 먹을 적에도, 참말 맛있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던 집짐승을 잡기에 가슴 한켠으로는 아쉽거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막상 수저를 들어 살점 하나 집어서 먹으면 그토록 맛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며 기른 짐승을 손수 잡아서 먹으니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사랑하며 돌본 풀과 곡식과 열매를 먹을 적에도 무척 맛있습니다. 손수 갈무리한 나락으로 밥을 지어 먹을 적하고, 누가 기른 줄 알 턱 없는 쌀밥을 밖에서 사다 먹을 적하고 똑같은 맛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능금밭에서 능금알 따서 먹을 때, 내 무밭에서 무를 뽑아서 먹을 때, 이 능금 한 알과 무 한 뿌리는 내 몸을 더할 나위 없이 살찌웁니다. 참말 마땅한데, 나는 내 밭뙈기 푸성귀를 알뜰한 사랑과 땀방울로 보살폈거든요. 내 사랑과 꿈과 슬기와 믿음과 마음이 골고루 담긴 밭에서 자란 열매이니, 이 열매는 내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웁니다.


- “그보다 너희 누나는 어떤 사람이니?” “어?” “정말로 놀러 가면 안 돼?” “어어어?” “틀림없이 다정하고 예쁜 누나일 거야. 그치?” (21쪽)
- “아, 그렇구나.” “응.” “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가족이라고. 형제라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 생활이 당연하게 느껴지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쭉 같은 집에서 살았어도, 여전히 늘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릴 수도 있어.” (22∼23쪽)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집돼지나 집닭을 기르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집개나 집고양이를 기를 수 있지만, 이 짐승을 잡아서 먹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사랑과 믿음과 땀방울로 보살핀 목숨이라 하더라도, 내 밥으로 삼지 못합니다. 아마, 처음부터 밥으로 삼으려고 기르는 집짐승이란 없겠지요. 서울에서는.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는 밥으로 삼으려고 풀을 기르는 일이 무척 드물어요. 몇몇 할매 할배 시골살이 떠올리며 텃밭 가꾸곤 하지만, 여느 서울사람은 가게에서 풀포기 조금 사다가 먹지, 스스로 씨앗 뿌려서 거두지는 않습니다. 곧, 오늘날 서울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랑 기울인 풀을 먹지 못해요. 닭을 사다 먹거나 돼지고기 소고기 사다 먹을 적에도 스스로 사랑 기울이며 돌보고 아낀 짐승을 잡은 고기가 아니라, 값싼 고기나 좋다 하는 고기를 사다 먹을 뿐이에요.


  영양소만 먹는다고 할까요. 사랑을 먹지 못하고 영양성분만 먹는다고 할까요.


  유기농 곡식을 먹기에 내 몸을 아끼거나 살찌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돌보고 기른 곡식이 아닐 때에는 유기농이든 친환경이든 화학농이든 모두 매한가지예요. 내 사랑이 깃들지 못했거든요. 그러나, 혀는 느끼지요. 혀는 유기농 곡식과 친환경 곡식과 화학농 곡식 맛이 서로 어떻게 다른 줄 느끼지요.


  다만, 혀로도 못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곡식이든 열매이든 고기이든, 모두 손수 거두어 먹던 삶하고 멀어진 지 고작 백 해조차 안 되었지만, 이제 혀로조차 맛과 밥과 삶을 못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 “하지만 한 명 한 명은 모두 무척이나 사랑스럽죠.” (40쪽)
- “좋아한다는 감정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쌓여 가거든. 나는 그랬어. 오늘 몇 마디 나눈 잡담이 즐거웠다든가, 지우개를 빌려줬다든가. 그런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들이 점점 쌓이고 쌓여서.” (74쪽)


  함께 웃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함께 노래하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길거리에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기보다, 길거리에 사람들 노랫소리 가득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들판에 경운기 소리보다, 시골 일꾼 두레 하면서 부르는 일노래 넘실거리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습니다. 사랑을 바라고 싶습니다. 이제는 시골사람도 조금은 살필 줄 알기는 하는데, 비료와 농약을 안 친 곡식으로 갈무리하면, 비료와 농약을 친 곡식보다 곱절 넘게 값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어 지은 곡식은 다른 곡식보다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시골 어르신들은 자꾸 비료와 농약을 치고 맙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치면 벌레 꼬이고 잡풀 돋아 곡식이 굵게 여물지 못한다고 여겨요.


  참 마땅한데, 유기농 곡식은 알이 덜 굵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알이 덜 굵어도 속이 단단하기에, 유기농 곡식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요. 들에서 스스로 씨앗 내려 자라는 풀을 뜯어서 먹으면, 풀잎 몇 뜯어서 먹어도 배가 찹니다. 비닐집에서 따로 심어 돌본 풀을 뜯어서 먹으면, 한 소쿠리 먹어도 배가 안 차요. 따로 유채밭에서 기른 밭유채잎 뜯어서 먹을 때하고, 유채 스스로 씨앗 날려 자란 들유채잎 뜯어서 먹을 때는 맛이 사뭇 다릅니다. 들유채잎 맛을 밭유채잎 맛이 따라가지 못해요.


- ‘나를 진심으로 믿어 주셨다.’ (86쪽)
- “아빠는 늘 무조건 반대만 하죠? 댄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99쪽)


  시골 읍내 저잣거리에서 냉이 한 소쿠리 사다가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내 뒷밭과 옆밭에서 냉이 캐서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맛나기로는 어떤 냉이로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그런데, 아무런 비료도 농약도 없이 겨울을 난 냉이를 내가 손수 내 밭뙈기에서 캐서 된장국 끓이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어요. 이야 참 좋구나. 아이들과 밥 함께 먹으며 아이들한테 빙그레 웃음짓고 말합니다. 얘들아, 맛있지? 응, 맛있어.


  가만히 보면, 냉이도 씀바귀도 질경이도 민들레도 꽃다지도 돗나물도 광대나물도 …… 오늘날 시골에서는 모두 잡풀로 여깁니다. 이런 풀은 상품 값어치가 없다 하니까요. 이런 풀은 그때그때 뜯어서 그때그때 먹지, 저잣거리나 가게에서 팔 만하지 않다 해요. 그렇지요. 시골 사는 사람이 시골자락에서 늘 얻는 풀이에요.


  그런데, 시골 사는 사람이 왜 가게에 내다 팔 풀만 살펴야 할까요. 시골 사는 우리가 왜 서울사람 살림살이 따르듯 논둑 밭둑 아름답고 어여쁘며 맛난 풀을 농약 쳐서 다 죽여야 하나요. 왜 시골마을 곱고 시원한 바람에 농약을 흩뿌리며 재채기 나게 해야 할까요.


- “미안해. 다들 시끄럽지? 그보다 방도 엄청 좁고. 으아, 미안해. 진짜 갑갑하지?” “아니야. 정말로 좋은 집인걸. 따뜻하고, 북적거리고. 사야가 그토록 착하고 예쁜 이유를 알 것 같아. 아버님도 전혀 편견이 없으시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빠도 이해를 해 줄까?” (111쪽)
- ‘어린 시절의 실없는 약속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나를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미래를 의심한 적이 없다.’ (140쪽)


  청소년들 풋풋한 사랑을 그리는 만화책을 읽습니다. 나는 두 아이 돌보는 서른아홉 살 아저씨인데, 일본사람 타니카와 후미코 님 애틋한 만화책 《사야와 함께》(대원씨아이,2012) 둘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 언제쯤 한국말로 나올까 손꼽으며 즐겁게 읽습니다.


  우리 아이들 찬찬히 자라면 머잖아 푸름이 되겠지요. 이 아이들 푸름이 되어 저마다 풋풋한 사랑 가슴에 안을 테지요.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찬찬히 자라 푸름이 되어, 저마다 가슴에 고운 사랑 안을 테지요.


  어여쁜 우리네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랑을 가슴에 안을 때에 아름답게 웃을까요. 어여쁜 우리 시골마을 고흥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꿈을 가슴으로 안고 아끼며 보듬을 때에 환하게 웃을까요.

  내 어린 날 돌아보고, 우리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 앞날 헤아리면서, 예쁜 만화책을 예쁜 넋으로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기쁘게 웃고 기쁘게 밥먹고 기쁘게 풀 뜯으며 시골살이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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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래를 듣는다

 


  서울로 사진강의를 오면서 긴밤 장례식장에서 샌다. 술잔 기울이며 밤을 잊고 자리를 지키려다가 어느새 나도 자리에 드러눕는다. 그러다 퍼뜩 깬다. 아차, 잠을 안 자고 버티려 했는데. 눈을 부비고 보니 맞은편에 서너 아저씨 드러누워 새근새근 잔다. 모두들 밤을 새우며 자리를 지키려 애쓰다가 쓰러졌구나 싶다. 몇 시간쯤 잤을까. 낯을 씻고 손을 씻는다. 고흥 시골집에서 담아 들고 온 물을 마신다. 도시로 나오면 시골집서 가져온 물만 마시면서 기운을 찾는다. 시계를 살피니 두 시간 즈음, 또는 한 시간 반 즈음 잔 듯하다. 그래도 이나마 잤으니 몸을 살핀 셈일까. 부시시한 몸이지만, 가방에서 시집 하나 꺼내어 읽는다. 100쪽쯤 읽으며 마음을 깬 뒤 짐을 꾸린다. 이제 장례식장 지킴이는 상조회사 일꾼한테 삯을 치르고 나가야 한다. 나도 가방을 멘다. 장례식장 지킴이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천천히 나온다. 아직 밖은 깜깜하다. 초승달 보인다. 이야, 인천에서도 초승달 보네. 훗.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잖아. 무엇이 새삼스럽다고. 초승달 바라보며 새벽길 거닐어 피시방 찾는다. 예전에 가 본 피시방은 문이 잠겼다. 문을 닫았나. 다른 피시방을 찾는다. 음식물쓰레기 거두는 청소차 지나간다. 문을 연 피시방으로 들어간다. 피시방에서 잠을 자는 젊은 아가씨 하나 보이고, 게임으로 밤새우며 시끄러운 젊은 사내 하나 보인다. 셈틀마다 귀에 꽂고 소리 홀로 즐기는 연장 있기에, 한 번 써 본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이래저래 찾으며 듣는다. 퍽 좋다. 아니, 꽤 좋다. 시골집에서는 늘 아이들 목소리 노랫소리 듣는데, 집 바깥으로 나와 볼일을 볼 적에는 자동차 소리로 귀가 따갑다가, 이렇게 피시방에서 나를 보드랍게 감싸는 노래를 고즈넉하게 들으니 좋다. 그래, 나는 내 노래를 부르면서 내 삶을 누릴 때에 즐겁구나. 내 둘레 이웃들도 저마다 이녁이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이녁 삶을 누린다면 다 함께 사랑스럽고 아름답겠지.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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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3-06 08:19   좋아요 0 | URL
http://www.youtube.com/watch?v=po09lcDxXIA

이 주소로 가면, 부에노비스타소셜클럽 '체 게바라' 노래 들을 수 있어요.
동영상 퍼서 올리기는 잘 못 해서, 이렇게 주소를 따로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