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와 함께 2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21

 


함께 웃기를 빌어요
― 사야와 함께 2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2.9.15./4200원

 


  집에서 닭을 잡아서 장작불 때고 삶아서 먹은 적 있는 사람은 ‘집닭’이 얼마나 맛있고 몸을 살찌우는 줄 압니다. 반가운 손님 찾아올 적에 집닭 한 마리 잡아 털 뽑고 삶아서 내놓는 일이 서로서로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인가를 몸소 겪은 사람은 뼛속 깊숙하게 압니다.


  집돼지를 잡거나 집소를 잡거나 집개를 잡아서 먹을 적에도, 참말 맛있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던 집짐승을 잡기에 가슴 한켠으로는 아쉽거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막상 수저를 들어 살점 하나 집어서 먹으면 그토록 맛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며 기른 짐승을 손수 잡아서 먹으니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사랑하며 돌본 풀과 곡식과 열매를 먹을 적에도 무척 맛있습니다. 손수 갈무리한 나락으로 밥을 지어 먹을 적하고, 누가 기른 줄 알 턱 없는 쌀밥을 밖에서 사다 먹을 적하고 똑같은 맛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능금밭에서 능금알 따서 먹을 때, 내 무밭에서 무를 뽑아서 먹을 때, 이 능금 한 알과 무 한 뿌리는 내 몸을 더할 나위 없이 살찌웁니다. 참말 마땅한데, 나는 내 밭뙈기 푸성귀를 알뜰한 사랑과 땀방울로 보살폈거든요. 내 사랑과 꿈과 슬기와 믿음과 마음이 골고루 담긴 밭에서 자란 열매이니, 이 열매는 내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웁니다.


- “그보다 너희 누나는 어떤 사람이니?” “어?” “정말로 놀러 가면 안 돼?” “어어어?” “틀림없이 다정하고 예쁜 누나일 거야. 그치?” (21쪽)
- “아, 그렇구나.” “응.” “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가족이라고. 형제라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 생활이 당연하게 느껴지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쭉 같은 집에서 살았어도, 여전히 늘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릴 수도 있어.” (22∼23쪽)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집돼지나 집닭을 기르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집개나 집고양이를 기를 수 있지만, 이 짐승을 잡아서 먹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사랑과 믿음과 땀방울로 보살핀 목숨이라 하더라도, 내 밥으로 삼지 못합니다. 아마, 처음부터 밥으로 삼으려고 기르는 집짐승이란 없겠지요. 서울에서는.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는 밥으로 삼으려고 풀을 기르는 일이 무척 드물어요. 몇몇 할매 할배 시골살이 떠올리며 텃밭 가꾸곤 하지만, 여느 서울사람은 가게에서 풀포기 조금 사다가 먹지, 스스로 씨앗 뿌려서 거두지는 않습니다. 곧, 오늘날 서울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랑 기울인 풀을 먹지 못해요. 닭을 사다 먹거나 돼지고기 소고기 사다 먹을 적에도 스스로 사랑 기울이며 돌보고 아낀 짐승을 잡은 고기가 아니라, 값싼 고기나 좋다 하는 고기를 사다 먹을 뿐이에요.


  영양소만 먹는다고 할까요. 사랑을 먹지 못하고 영양성분만 먹는다고 할까요.


  유기농 곡식을 먹기에 내 몸을 아끼거나 살찌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돌보고 기른 곡식이 아닐 때에는 유기농이든 친환경이든 화학농이든 모두 매한가지예요. 내 사랑이 깃들지 못했거든요. 그러나, 혀는 느끼지요. 혀는 유기농 곡식과 친환경 곡식과 화학농 곡식 맛이 서로 어떻게 다른 줄 느끼지요.


  다만, 혀로도 못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곡식이든 열매이든 고기이든, 모두 손수 거두어 먹던 삶하고 멀어진 지 고작 백 해조차 안 되었지만, 이제 혀로조차 맛과 밥과 삶을 못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 “하지만 한 명 한 명은 모두 무척이나 사랑스럽죠.” (40쪽)
- “좋아한다는 감정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쌓여 가거든. 나는 그랬어. 오늘 몇 마디 나눈 잡담이 즐거웠다든가, 지우개를 빌려줬다든가. 그런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들이 점점 쌓이고 쌓여서.” (74쪽)


  함께 웃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함께 노래하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길거리에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기보다, 길거리에 사람들 노랫소리 가득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들판에 경운기 소리보다, 시골 일꾼 두레 하면서 부르는 일노래 넘실거리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습니다. 사랑을 바라고 싶습니다. 이제는 시골사람도 조금은 살필 줄 알기는 하는데, 비료와 농약을 안 친 곡식으로 갈무리하면, 비료와 농약을 친 곡식보다 곱절 넘게 값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어 지은 곡식은 다른 곡식보다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시골 어르신들은 자꾸 비료와 농약을 치고 맙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치면 벌레 꼬이고 잡풀 돋아 곡식이 굵게 여물지 못한다고 여겨요.


  참 마땅한데, 유기농 곡식은 알이 덜 굵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알이 덜 굵어도 속이 단단하기에, 유기농 곡식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요. 들에서 스스로 씨앗 내려 자라는 풀을 뜯어서 먹으면, 풀잎 몇 뜯어서 먹어도 배가 찹니다. 비닐집에서 따로 심어 돌본 풀을 뜯어서 먹으면, 한 소쿠리 먹어도 배가 안 차요. 따로 유채밭에서 기른 밭유채잎 뜯어서 먹을 때하고, 유채 스스로 씨앗 날려 자란 들유채잎 뜯어서 먹을 때는 맛이 사뭇 다릅니다. 들유채잎 맛을 밭유채잎 맛이 따라가지 못해요.


- ‘나를 진심으로 믿어 주셨다.’ (86쪽)
- “아빠는 늘 무조건 반대만 하죠? 댄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99쪽)


  시골 읍내 저잣거리에서 냉이 한 소쿠리 사다가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내 뒷밭과 옆밭에서 냉이 캐서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맛나기로는 어떤 냉이로 된장국 끓여서 먹어도 맛납니다. 그런데, 아무런 비료도 농약도 없이 겨울을 난 냉이를 내가 손수 내 밭뙈기에서 캐서 된장국 끓이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어요. 이야 참 좋구나. 아이들과 밥 함께 먹으며 아이들한테 빙그레 웃음짓고 말합니다. 얘들아, 맛있지? 응, 맛있어.


  가만히 보면, 냉이도 씀바귀도 질경이도 민들레도 꽃다지도 돗나물도 광대나물도 …… 오늘날 시골에서는 모두 잡풀로 여깁니다. 이런 풀은 상품 값어치가 없다 하니까요. 이런 풀은 그때그때 뜯어서 그때그때 먹지, 저잣거리나 가게에서 팔 만하지 않다 해요. 그렇지요. 시골 사는 사람이 시골자락에서 늘 얻는 풀이에요.


  그런데, 시골 사는 사람이 왜 가게에 내다 팔 풀만 살펴야 할까요. 시골 사는 우리가 왜 서울사람 살림살이 따르듯 논둑 밭둑 아름답고 어여쁘며 맛난 풀을 농약 쳐서 다 죽여야 하나요. 왜 시골마을 곱고 시원한 바람에 농약을 흩뿌리며 재채기 나게 해야 할까요.


- “미안해. 다들 시끄럽지? 그보다 방도 엄청 좁고. 으아, 미안해. 진짜 갑갑하지?” “아니야. 정말로 좋은 집인걸. 따뜻하고, 북적거리고. 사야가 그토록 착하고 예쁜 이유를 알 것 같아. 아버님도 전혀 편견이 없으시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빠도 이해를 해 줄까?” (111쪽)
- ‘어린 시절의 실없는 약속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나를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미래를 의심한 적이 없다.’ (140쪽)


  청소년들 풋풋한 사랑을 그리는 만화책을 읽습니다. 나는 두 아이 돌보는 서른아홉 살 아저씨인데, 일본사람 타니카와 후미코 님 애틋한 만화책 《사야와 함께》(대원씨아이,2012) 둘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 언제쯤 한국말로 나올까 손꼽으며 즐겁게 읽습니다.


  우리 아이들 찬찬히 자라면 머잖아 푸름이 되겠지요. 이 아이들 푸름이 되어 저마다 풋풋한 사랑 가슴에 안을 테지요.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찬찬히 자라 푸름이 되어, 저마다 가슴에 고운 사랑 안을 테지요.


  어여쁜 우리네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랑을 가슴에 안을 때에 아름답게 웃을까요. 어여쁜 우리 시골마을 고흥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꿈을 가슴으로 안고 아끼며 보듬을 때에 환하게 웃을까요.

  내 어린 날 돌아보고, 우리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 앞날 헤아리면서, 예쁜 만화책을 예쁜 넋으로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기쁘게 웃고 기쁘게 밥먹고 기쁘게 풀 뜯으며 시골살이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4346.3.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