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다닌다. 나 혼자 다닐 적에도 자전거를 몬다. 자전거는 즐겁게 내 두 발이 되어 준다. 자전거로 달리며 멧새 노랫소리 듣고, 바람 맞으며, 들내음 솔솔 맡는다.


  등판에 땀이 돋고 이마에서 땀줄기 흘러내린다. 빙그레 웃으며 생각한다. 좋구나.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니, 아이들도 자전거놀이를 한다. 큰아이 여섯 살 넘어가며 두발자전거 한 대 장만한다. 꼬마바퀴 붙은 두발자전거를 마당 빙빙 돌면서 탄다. 좋네. 너도 아버지도 나란히 좋네.


  저녁나절, 면소재지 언저리에서 모임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옆지기가 말한다. 모임자리에서 술을 마시면 자전거를 택시에 싣든지 걸어서 돌아오든지 하고, 자전거 타지 말라고. 모임자리는 면소재지 어느 밥집. 밥집 아주머니가 자전거 잘 맡을 테니 걱정 말고 두고 가란다. 이듬날 와서 찾아가란다. 고맙게 인사한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내 몸이 자전거하고 하나된다. 자전거는 나와 만나며 골골샅샅 마음껏 누빈다. 내가 가는 곳에 자전거 있고 아이들 있다. 아이들 바라보는 곳에 아버지 있으며 자전거 있다. 서로서로 시골바람 쐬고 시골햇살 먹으며 시골물 즐긴다. 히뿌윰하게 동이 튼다. 구름 제법 끼었다. 동그랗고 노란 아침해 구름 사이로 언뜻 보인다. 하루가 밝는구나. 4346.3.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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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훈련 책읽기

 


  면사무소에서 마을방송으로 이듬날 아침 일곱 시에 마을회관에서 민방위훈련 한다고 알린다. 그런데 그저 이렇게만 알릴 뿐, 달리 알려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편지라든지 엽서라든지 손전화 쪽글로도 없다. 오직 마을회관 알림방송으로 얘기해 주고 끝이다.


  집일 하고 밥 차리고 이것저것 하느라 한바탕 움직이고 나서 살짝 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누워 끙끙거리다가 마을방송을 들으며 생각한다. 이것들, 면사무소 이것들, 내가 읍내에 볼일 보러 나갔으면 이 마을방송 못 들었을 텐데, 민방위훈련 안 나오면 벌금 물린다고? 미친 것들 아녀? 게다가 어느 마을회관으로 나오라는 말도 없이 이렇게 얘기해서 되나?


  전화번호부 뒤져서 면사무소 예비군동대에 전화해서 묻고, 다시 면사무소까지 전화해서 묻는다. 시골에 어린이도 젊은 어른도 몇 없는데, 한 사람씩 전화를 해서 알려주어도 10분조차 걸리지 않을 일을, 이렇게 엉터리로 마을방송으로 알리는 면사무소 공무원은 어떤 사람일까.


  이듬날 아침 일곱 시. 마을회관 앞에 있지만 이장님도 안 오고 아무도 안 온다. 일곱 시 이십 분쯤 되어 면사무소 일꾼 하나 자가용 몰고 와서 종이 내밀며 이름 적으라 한다. 지난해에는 동호덕 마을회관에 모여서 이름 적고 끝이었는데, 올해에는 사람들더러 이녁 마을회관으로 모이라 하면서 당신이 한 곳씩 돌아다닌다고 한다. 애써 어느 한 곳까지 오가느라 시간 버리지 말라는 뜻이 될 수 있지만, 이렇게 기다리느라 한참 멀뚱멀뚱 아침 일 못 보아야 하는데, 차라리 어느 한 곳에 오라고 해서 제때 맞추어 이름 적고 돌아가면 훨씬 시간을 아끼고 품도 줄이는 노릇 아닐까.


  이름 적고 끝인 민방위훈련이라면 아예 이름조차 적을 까닭이 없다. 나이 마흔 꽉 차는 나이 되면 민방위훈련 소집조차 끝이기는 하다만, 이런 허울뿐인 일을 맡는 공무원 따로 있고, 이런 허울뿐인 일을 하느라 서류를 꾸미고 움직여야 하는 한국 사회는 얼마나 문명과 문화와 교육과 복지와 정치가 아름답다 할 만할까. 뿌리를 캐면, 민방위훈련뿐 아니라 예비군훈련도 부질없다. 예비군훈련에 앞서 군대조차 덧없다. 평화를 부르거나 지키지 않는 군대이기도 하지만, 군대 속살을 들여다보면 갖가지 부정과 부패가 넘실거린다. 행정보급관·중대장·하사관·소대장을 비롯해, 대대장과 대대 간부나 사병, 또 연대나 사단이나 군단 간부나 사병 모두 한통속 되어 돈을 빼돌리고 물건을 빼돌린다. 맨 끄트머리 중대 사병(이른바 ‘땅개’라고 하는)만 언제나 뺑이치고 배를 곯는다. 군부대 들어가는 나라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 수십만 군 관계자 주머니에 들어간다. 군인들이 무얼 하는 줄 사람들이 제대로 알기나 알까? 포병 아이들은 포대에서 술 마신다. 특전사 아이들은 산속에서 술 마신다. 해병대 아이들은 바다에서 술 마시지. 관세 없는 값싼 술을 먹고 세금 안 붙는 값싼 담배를 태우며 젊은 나날 군대에서 폭력과 욕설을 배우며 길들여진다. 어찌 보면, 젊은이한테 술을 먹이고 담배를 가르치며 바보짓 시키는 ‘바이오 로봇’처럼 길들이려고 군대라는 제도를 만들어 ‘평화 지킴이’라도 되는 듯 ‘세뇌’를 시킨달 수 있는데, 젊은 사내들이 군대를 안 가고, 군대가 아예 없어지는 사회를 이루지 못하면, 우리 나라는 막다른 벼랑으로 가다가 굴러떨어지리라 느낀다. 마을 형님 한 분은 나이 마흔셋이라 하는데, 당신 아버지가 주민등록 잘못 해서 아직까지 민방위훈련 나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예비군훈련 일곱 해, 민방위훈련 일곱 해, 벌써 열네 해째 이런 쓸데없는 훈련에 휘둘리며 산다. 서른아홉 살 봄날 흐른다. 4346.3.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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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3-15 09:59   좋아요 0 | URL
그래설까요,요즘 서울은 민방위 훈련도 인터넷으로 대체하는 것 같더군요^^

파란놀 2013-03-15 18:44   좋아요 0 | URL
아아, 놀랍군요!
민방위든 예비군이든 얼른 없어져야 할 박정희 유물인데...
 

날씨

 


하늘 바라보면서 바라면
구름 곱게 하얗게 흐르고

 

하늘 안 바라보면서
신문과 방송 소식으로
날씨 이야기 들으면
구름도 하늘빛도 모르고

 

흙 만지면서 땀 쏟으면
풀과 나무 푸르게 자라고

 

흙 덮은
시멘트 아스팔트 대리석 쇠붙이
구둣발로 밟으면
흙도 풀도 나무도 몰라

 

해는 늘 따스한데
별은 늘 초롱한데
새는 늘 우짖는데
달은 늘 환한데.

 


4346.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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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 어린이문학과 교육 사상 살아있는 교육 27
이주영 지음 / 보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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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안 살리는 대한민국 학교
[사랑하는 배움책 13] 이주영,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보리,2011)

 


- 책이름 :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 글 : 이주영
- 펴낸곳 : 보리 (2011.12.1.)
- 책값 : 13000원

 


  《이오덕 교육일기》(한길사,1989)라는 책을 읽으면, 1960∼70년대 국민학교 모습을 환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도 1960∼70년대뿐 아니라 1980∼90년대에도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와 교장 일을 하셨고, 퍽 여러 사람들이 교육일기나 교단일기를 썼는데, 《이오덕 교육일기》에서만큼 지난날 국민학교 모습을 또렷하게 밝혀 적은 글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교사로서 지난날 국민학교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스스로 뉘우치거나 잘잘못 따지는 글을 아직 못 보았어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국민학교 여섯 해를 다니던 내 지난날을 되새깁니다. 그무렵 나는 학교에서 돈 내라 쌀 가져와라 신문과 빈병 모아라 걸레와 커튼 만들어서 내라 화분 사라 교실에 텔레비전 들여 화상교육 하도록 국화 사라 …… 하는 이야기를 날이면 날마다 들었습니다. 육성회비를 내고 무슨무슨 수업료를 내며 스승날에 돈봉투를 내는 한편, 소풍 때에는 교사들 먹을 술과 떡과 고기 장만할 돈을 걷습니다. 낱낱이 떠올리자면, 한 주에 두 가지 새로운 ‘돈 걷기’를 했어요. 반장과 부반장 맡은 아이는 동무들 다그치거나 자로 때리면서 ‘돈 안 낸 동무’한테 욕지꺼리 퍼붓습니다. 처음에는 얌전한 말로 타이르다가도, 담임교사가 반장과 부반장 불러 교단에 세우고는 뺨따귀를 올려붙이면, 담임교사가 교무실로 돌아간 뒤 우리들을 윽박지르며 자를 휘두르곤 해요.


  다달이 내야 하던 돈을 떠올립니다. 육성회비, 수업료, 기성회비, 방위성금, 우유값. 틈틈이 내라 하던 돈을 헤아립니다. 전투기를 산다느니 군함을 산다느니 할 때에 돈을 더 걷고, 평화댐 짓는다며 다시 돈을 걷습니다. 4월 5일에 나무 심는다며 나무값을 걷고, 성탄절 앞두고 크리스마스 씰을 사라며 돈을 걷습니다. 학기마다 환경미화를 한다며 돈을 걷고, 청소용품 산다며 돈을 걷습니다. 가을에는 가을국화 사라며 돈을 걷어요. 이러는 동안 3월부터 12월까지 방학을 빼고 다달이 폐품수집을 합니다. 방학이 끝나는 9월은 폐품수집을 곱배기로 하라 시킵니다. 1∼3학년은 신문종이 5킬로그램, 4∼6학년은 신문종이 10킬로그램, 여기에 빈병은 1∼3학년 한 병, 4∼6학년 두 병씩 가져오도록 시켜요. 중·고등학교에서는 국민학교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오라 시키지요. 폐품수집날 닥치면 집집마다 신문종이와 빈병 모으느라 바빠요. 빈병 안 가져와서 학교에서 교사와 교무주임과 교감한테 얻어터질라치면, 이듬날부터 어머님들이 구멍가게에서 빈병을 사서 아이들더러 들고 가라 합니다. 그리고, 새마을저축이라는 이름으로 주마다 500원 넘게 돈을 넣으라 했어요. 5학년쯤 되니 주마다 1000원 넘게 돈을 넣으라고 바뀝니다. 군대에 있는 사람들한테 위문편지를 쓸 뿐 아니라 위문품 보내기 행사를 하느라 돈을 걷습니다. 스승날에는 반마다 학년마다 돈을 걷어 교사한테 줄 선물을 산다 합니다. 체육대회를 할 적에도 반마다 마련해야 하는 음료수와 빵과 김밥이 있고, 학기에 한 차례 있는 소풍날에도 아이들마다 내야 하는 선물이나 먹을거리나 돈이 있어요.


.. 1964년에는 상주군 이안서부초등학교 교감으로 발령받는다. 그러나 두 해 만에 다시 교감 포기서를 낸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당시 학교장한테 여러 차례 부조리한 지시를 받으면서 갈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 1967년 3월 1일 경주시 경주초등학교 교사로 간다. 그러나 더욱 황폐하고 반교육 행태가 판을 치는 도시 학교 풍토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교육청에 간곡히 부탁해서 1968년 3월 1일 안동군 임동면 대곡분교로 옮긴다. 아주 산골학교를 찾아간 것이다 ..  (30쪽)


  나는 국민학교 다니며 돈 걷는 일에 질리고 질렸습니다. 하루 빨리 국민학교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담임교사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애써 하는 일이란 수업이 아닌 돈 걷기예요. 그 다음은 교육청에서 내라 하는 통계조사표에 따라 설문조사 하는 일이고, 이 설문조사를 글씨 예쁜 아이들 시켜 갈무리하도록 시킵니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면 시화전을 한다 해서 돈을 또 걷어요. 붓글씨로 시를 쓰고 바탕에 그림을 그린 다음 그림틀에 끼워야 하니까 틀값이 있어야 한다지요. 그런데 이 그림틀도 제 아이 것이라 해서 주지 않아요. 돈을 치러 사 가야 합니다.


  내 어머니는 당신 두 아이가 주마다 몇 차례씩 돈 가져오라 이야기할 적마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그나마 나는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였기에 육성회비를 깎아 주었어요. 그런데 내 국민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는 내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인 줄 알고 나를 마구 팼어요. 자꾸 패고 괴롭혔어요. 그러더니 내 어머니 앞으로 편지를 하나 건넸고, 어머니한테 편지를 건네니 이날 저녁 아버지가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흰봉투에 한자로 두 글자 적어 나한테 주더군요. 모두 잠든 밤에 몰래 옥편을 뒤져 아버지가 흰봉투에 한자로 적은 글이 무언가 하고 알아보니 ‘寸志’였습니다. 이무렵 아버지 한 달 일삯(기본급)이 20만 원이 채 안 되었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흰봉투에 자그마치 3만 원을 빳빳한 돈으로 넣었습니다.


.. 이오덕은 참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되려면 아이들에게 몸으로 하는 일을 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 일하는 것이 즐거운 놀이가 되고, 또 그것이 바로 공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아이들’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인간답게 자라기 위해 어린이들이 살아야 할 현실이라고 반론하였다 … 이오덕은 작품에 작가 자신의 독창성이 없으면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고까지 단언한다 … 이오덕은 ‘일’을 ‘즐거운 놀이’ ‘공부’ ‘창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65, 91, 143, 180쪽)


  국민학교 적에 시달린 돈 돈 돈 ……을 떠올리다 보니,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으던 일이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 반뿐 아니라 어느 반에나 몹시 가난한 동무가 있어요. 학교에서 거둔다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누구한테 주는지 참으로 알쏭달쏭했지만,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한테 똑같은 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라 했어요. 찬찬히 돌아보니,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다달이 내도록 시켰습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500원씩입니다. 방위성금도 500원씩이었어요. 이무렵 인천에서 국민학생 한 사람 버스삯은 60원이었고, 라면 한 봉지 값은 80원이었다가 100원으로 올랐습니다.


  육성회비가 6천 얼마, 수업료가 1천 얼마, 방위성금 500원, 불우이웃돕기성금 500원, 새마을저축 500원, 기성회비가 500원이었나 1천 원, 우유값이 2200원 안팎, 여기에 폐품을 모아야지, 때때로 위문품 돈을 내야지, 특별 방위성금을 내야지, 다달이 무슨무슨 행사 끊이지 않아 자꾸자꾸 돈을 내야지 …… 예순 아이쯤 되던 우리 반에서 이 모든 돈을 제때 빠짐없이 내던 아이는 몇 안 되었습니다. 으레 늦게 내거나 흔히 얼마씩 적게 냈어요. 늦게 내면 늦게 내는 만큼 다 낼 때까지 담임교사가 두들겨팹니다. 이레 지나도록 안 내고 미루면 교무주임이 따로 불러서 더 두들겨팹니다. 한 달 지나도록 안 내고 버티면 월요일과 토요일 아침에 하던 애국조회 자리에서 교감이 단상으로 불러서 뺨을 갈기거나 구둣발로 정강이나 배를 걷어찹니다. 전교생 모두 보는 앞에서 얻어맞아요. 그런데, 이렇게 맞는다고 끝나지 않아요. 체육 수업을 할 때에 체육교사가 또 얼차려를 시키며 괴롭혀요.


  나는 아버지가 교사였기에 숱한 주먹질과 발길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폐품 무게가 500그램이라도 못 미치면, 빈병 갯수를 채우지 못하면, 하루라도 늦게 가져오면, “넌 아버지가 교사이니까 잘 알 텐데 늦게 가져와!” 하고 윽박지르면서 참말 눈물 펑펑 쏟도록 때렸습니다.


  내 동무들은 어떻게 국민학교 여섯 해를 견디었을까요. 집안이 가난해서 돈 한 푼 학교에 바치기 어렵던 동무들은 국민학교 여섯 해를 어떻게 떠올릴까요. 이제 그때 일은 다 잊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갈까요. 지난날 일을 거울 삼아 ‘돈으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들볶는 짓’을 안 하며 참답고 슬기롭게 살아갈까요.


.. 이오덕이 어린이 시 지도에서 배척하려고 했던 것은 생활 감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생활을 외면하고 감동 없이 기교만으로 작품(감동)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그릇된 동시 제조 방법과 태도다. 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자라도록 돕기 위해 시 쓰기를 지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오덕은 이런 권위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생활을 몸과 마음으로 겪으면서, 아이들이 쓰는 글과 아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당시 유행하던 시 쓰기 방법은 참된 인간 교육이나 시 쓰기 교육의 길이 전혀 아님을 알게 되었다 ..  (121, 127쪽)


  이주영 님이 쓴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보리,2011)라고 하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주영 님이 쓴 이 책은 ‘이오덕 평전’은 아니고, ‘이오덕 사상 연구’입니다. 교사 이오덕 님이 국민학교 교사·교감·교장 노릇을 하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고, 이 아픈 가슴으로 ‘아이들 살리는 길’을 얼마나 눈물겹게 찾아헤맸으며, 애써 찾아헤맨 참길을 씩씩하게 지키려고 온힘을 다했는가 하는 대목을 곰곰이 짚습니다.


  다만, ‘사상 연구’라고 하지만, ‘어린이문학 비평을 둘러싸고 후배들이 벌인 논쟁’에 너무 길다 싶은 자리를 내주어, 이오덕 님 삶자락과 교육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합니다. 이오덕 님이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곰삭혔으며, 어떻게 ‘참교육 이론 밑틀’을 세우면서 문학창작과 문학비평과 글쓰기교육과 우리 글 바로쓰기로 나아갔는가 하는 실마리를 밝히지는 못해요. 앞으로 이 대목을 차근차근 되짚으면서 고침판이라든지 새판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몇몇 이론가나 비평가하고 주고받은 글은 이오덕 님 삶에서 그닥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거든요. ‘독재정권이 아이들을 죽이는 짓’과 ‘독재정권 손아귀 앞에서 굽실거리며 아이들을 안 지키고 외려 아이들을 더 옥죄는 교사들 끔찍한 짓’을 코앞에서 바라보아야 한 슬픈 눈물과 생채기를 씻으며 참교사로 거듭나려 애쓴 이오덕 님 발자취를 살포시 밝히면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요.


.. 이오덕 계열 문학을 현실주의 어린이문학이라고 말하기 시작하였지만 정작 이오덕은 이 말에 거부감을 갖는다. 어린이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라면 어떤 ‘주의’를 가졌든, 어떤 경향의 작품을 쓰든 모두 어린이 삶과 현실을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어떤 특정한 작가들, 곧 이오덕 자신의 문학론을 ‘현실주의’로 규정하고, 자기를 따르는 작가들을 묶어서 따로 ‘현실주의’ 작가나 작품으로 일컫다니 이상하다는 것이다 … 이오덕은 문학 이념이나 갈래나 형식이 아니라, 작품이 어린이가 현실을 살아가는 데 참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 이오덕은 아이들이 집안일이나 농사일을 돕는 자기 삶을 부끄럽게 여기고 글로 쓰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교육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런 이야기도 솔직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래야 자기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다운 마음을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  (173, 182∼183쪽)


  이오덕 님이 교사로 일하던 때뿐 아니라, 제가 국민학생이던 때, 그리고 내 다음으로 국민학교에 들어온 아이들 누구나 대한민국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며 자랐다고 느껴요. 독재정권과 제도권교육은 아이들을 살리지 않아요. 독재정권과 제도권교육은 아이들을 죽여요. 아이들을 죽이려 하는데 죽지 않으면 목을 옥죄어 노예로 부립니다. 시키는 일을 몽땅 하게 만들고, 두들겨패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노예로 만들어요.


  가만히 돌아보면, 오늘날 학교에서는 지난날 학교처럼 돈을 끔찍하게 걷지는 않아요. 이제 교사들 일삯은 제법 많고 수당 또한 퍽 많아요. 요즈음 교사들이 아이들 닦달하거나 다그치며 돈 걷기 할 까닭은 사라졌다 할 만해요. 그러나, 요즈음 교사들은 아이들을 대학입시지옥으로 밀어넣는 하수인 노릇을 해요. 학교에서도 학교 바깥에서도 오직 시험공부에만 마음을 팔도록 내몰아요. 아이들한테 삶을 말하거나 사랑을 밝히거나 꿈을 북돋우는 교사를 찾아보기 매우 힘들어요. 아이들 스스로 이 땅에서 씩씩하게 홀로서기 이루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 열어젖히는 이슬떨이 되는 교사는 자꾸 줄어들어요.


.. 이오덕은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진정성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그 뜻을 지키기를 촉구하였다. 어린이문학의 진정성이란 작가가 어린이문학이 사회에서 갖는 책임을 사무치게 느끼고, 어린이가 살아가는 현실을 올바르게 알며, 민족과 인류의 앞날을 살아갈 어린이가 문학을 통해 간접 체험을 즐기고 그 즐거움에 힘입어 어린이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 어린이문학가이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면 어린이문학 작품을 쓰지 말아야 한다 ..  (193, 194쪽)


  교사도 어버이도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교사도 어버이도 아이들 죽이는 짓 그만하기를 빌어요. 아이들은 대학교에 가야 하는 시험노예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시골 떠나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야 하는 월급노예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꿈을 키울 푸른 숨결이에요. 아이들은 사랑을 나눌 푸른 넋이에요.


  나라에서 아이들을 살리지 못하면, 우리가 살려야지 싶어요. 교육부에서 아이들 살리는 길 열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 살아가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아이들 살리는 길 마련해야지 싶어요.


  예쁜 아이들로 자라도록 북돋아야지요. 착한 아이들로 크도록 이끌어야지요. 참다운 아이들로 빛나도록 보살펴야지요.


  좋은 하루 누리는 어른 되어, 아이들도 나란히 좋은 하루 누릴 수 있도록 하기를 빕니다. 좋은 하루 즐기는 어른 되어, 아이들 누구나 좋은 하루 즐길 수 있게끔 돕기를 빕니다. 좋은 하루 빛내는 어른 되어, 아이들 스스로 좋은 하루 빛내는 슬기 일구도록 어깨동무하기를 빌어요. 4346.3.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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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빚기
― 놀며 즐기는 사진

 


  필름으로 찍든 디지털로 찍든 종이에 앉히지 않으면 이웃하고 사진을 한껏 신나게 즐기기 어렵습니다. 셈틀을 켜서 화면으로 볼 수 있고, 손전화를 쥐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만, 셈틀이나 손전화나 오래도록 쳐다보면 눈이 아프고 전기가 많이 듭니다. 이와 달리, 종이에 사진을 앉히면, 벽에 붙여 언제나 돌아볼 수 있고,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라도 꺼낼 수 있으며, 사진첩에 꽂고는 두고두고 되새길 수 있어요.


  두 아이와 지난 한 해 복닥이던 모습을 담은 사진 200장 추려서 종이로 뽑습니다. 종이로 뽑으면서 작은 사진첩 여럿 장만합니다. 사진을 80장씩 꽂을 수 있는 사진첩을 다섯 개 있으면 사진 200장 넣을 수 있어요. 두꺼운 사진첩을 장만해도 되지만, 작은 사진첩 여럿 두어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보도록 해 줍니다. 세 살 작은아이는 사진을 마룻바닥에 죽 펼치고 밟거나 던지면서 놀지만, 여섯 살 큰아이는 동생더러 사진 밟지 말라고 구기지 말라고 이르면서 사진첩에 착착 예쁘게 꽂습니다.


  여섯 살 큰아이는 세 살 동생한테 뭐라 뭐라 한소리 하지만, 큰아이도 동생 나이였을 적에 동생처럼 사진을 밟고 던지고 했어요. 때로는 입에 물고 침을 잔뜩 묻혔어요. 사진첩에 꽂은 사진을 끄집어서 아무 데나 팽개치기 일쑤였고, 사진첩까지 입으로 물고 놀며 망가뜨렸습니다. 이제 큰아이는 갓난쟁이 어릴 때처럼 사진이나 사진첩을 함부로 다루지 않습니다. 예쁘게 자라는 아이답게 예쁜 손길로 예쁜 사진이 되도록 건사해 줍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사진을 찍을 때부터 놀면서 즐깁니다. 놀이를 즐기며 사진기를 다룹니다.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할 수 있지만, 곰곰이 따지면 아이들하고 사진으로 함께 논다 할 수 있어요. 노는 틈틈이 사진기를 쥡니다. 놀다가 살짝 쉬며 사진기를 듭니다. 한손으로는 놀고 한손으로는 사진기를 잡습니다. 아이들더러 예쁜 얼굴짓 하라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든 모습이 예쁘고, 아이들과 노는 어른 또한 눈길이랑 손길이랑 말길이랑 마음길 모두 예쁘게 거듭납니다. 사진이랑 노는 사람은 누구나 예쁩니다. 4346.3.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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