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11시

중앙대학교 영신관에서 사진강의를 하러

오늘 일찍 길을 나선다.

 

오늘은 남원 헌책방 한 곳 들를 생각이다.

사진강의에 쓸 책을 한 가득 들고 가느라

퍽 무거운데

잘 가야지.

 

이야기도 잘 하고

돈도 잘 벌고

몸도 잘 추스르며

시골집으로 기쁘게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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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삶과 사람과 (도서관일기 2013.3.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마음속에 꽃을 그리는 사람은 두 눈으로 꽃을 만납니다. 마음속에 구름을 빚는 사람은 파랗게 물든 하늘을 적시는 구름을 만납니다. 마음속에 나비 한 마리 낳는 사람은 푸른 들판 맴도는 나비를 만납니다.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대로 책을 만난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책을 바라는 사람한테는 이러한 책 찾아들고, 저러한 책 꿈꾸는 사람한테는 저러한 책 찾아가요. 좋거나 나쁜 책이 아닙니다. 누군가 스스로 바라는 책입니다.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갖출 수 있을 테지만, 도서관이기에 모든 책을 갖출 까닭이 없기도 합니다. 왜 도서관에 이러한 책이 없느냐고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훌륭하다 싶은 책이라 하더라도,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 스스로 그 책을 모르거나 바라지 않는다면, 그 아름답거나 훌륭한 책은 도서관에 깃들지 못해요. 막상 그 아름답거나 훌륭한 책이 도서관에 깃든다 하더라도, 도서관 일꾼 스스로 생각이 없으면 그 책을 알아채지 못해 이야기하지 못할 테며 널리 읽히도록 북돋우지도 못합니다.


  봄꽃 흐드러지는 봄날이지만, 봄꽃 피어나는 들판이나 숲이나 멧골 곁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봄꽃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은 봄꽃 누리는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봄꽃이고 봄들이고 봄숲이고 하나도 모를 뿐더러, 마음속에 아무런 그림을 그리지 못하거든요.


  텔레비전만 들여다보거나 손전화만 쳐다보거나 자동차물결 사이에서 떠도는 사람한테 시골마을 봄꽃 이야기란 얼마나 뜻있을까 궁금합니다. 곧,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돈벌이로 바쁜 사람들하고 봄나비나 봄새나 봄벌레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나게 나눌 만한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아름다운 사진책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너무 바쁜 서울사람하고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저런 훌륭한 시집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너무 고단한 도시사람하고 얼마나 나눌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으려면 삶이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도 하지만, 삶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아름다운 책을 알아채지 못해요. 좋은 책을 읽으면 좋은 마음 된다고도 하지만, 삶이 좋지 못하다면 좋은 책을 먼저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애써 소개받아 좋은 책을 펼치더라도 어느 대목에서 어느 좋은 줄거리를 깨달아 내 삶 좋은 씨앗 북돋울 만한가를 쉬 느끼지 못합니다.


  착한 마음으로 착한 이웃을 사귑니다. 착한 눈길로 착한 책을 장만합니다. 착한 손길로 착한 글을 씁니다. 착한 몸짓으로 착한 살림을 꾸립니다. 봄바람 한껏 누리는 시골마을 사진책도서관에서 책을 만지작거립니다. 스스로 바쁜 일거리 살포시 내려놓고 고즈넉한 시골자락 찾아들 수 있는 사람들한테 사랑스러운 사진책 이야기 하나 들려주거나 나눌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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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과 동백꽃

 


  전라남도에서도 고흥, 고흥에서도 두멧시골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으면, 나는 동백꽃을 제대로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붉은 잎사귀 소담스러운 꽃이라면 으레 장미나무 빼고는 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겨레 삶자락에 붉디붉은 커다란 송이 맺는 꽃이 있던가 하고만 생각했어요.


  동백나무는 전라남도 고흥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해남도 강진도 장흥도 동백나무 많습니다. 영암도 목포도 완도도 진도도 동백나무 많을 테지요. 순천과 여수와 남해와 통영과 거제에도 동백나무 많겠지요.


  드센 비바람에 동백꽃송이 여럿 떨군 모습 바라봅니다. 겨울이 물러가는 봄날 찾아온 드센 비바람 따라 마을 곳곳에 동백꽃송이 떨어져 데굴데굴 구릅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바람아, 네가 그렇게 드세게 불지 않아도 동백꽃은 소담스러운 송이를 떨구곤 하는데, 왜 어젯밤 그리도 몰아붙였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봄꽃들한테 너희가 이렇게 늑장 부리니 재촉하려고 한껏 몰아붙였니. 비도 바람도 멎은 아침나절 마당에 내려서니, 참말 너 드센 비바람 지나가고 나서 동백나무 꽃봉오리 더 붉더라.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직 발그스름하다 싶더니, 너 비바람 맞고는 한결 붉더라. 너 비바람 몰아치기 앞서까지 피어나지 않던 숱한 봄꽃이 오늘 아침 햇살 드리울 적에 한꺼번에 피어났더라. 바람아. 바람아. 바람 너는 꽃을 꺾지 못한단다. 꽃송이 여럿 떨굴 수 있을는지 모르나, 바람이 불면 불수록 들꽃은 더 힘을 낸다. 바람이 몰아치면 몰아칠수록 들꽃은 한껏 짙으며 푸르게 빛난단다. 어쩌면 너 바람은 봄꽃이 더 튼튼하게 피어나라고, 더 씩씩하게 크라고,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일는지 모르겠구나. 바람이 불며 꽃빛이 짙고, 빗물 함께 흩뿌리면서 풀뿌리 굵어질는지 모르겠네.’


  꽃학자나 풀학자는 어떤 이야기를 꽃도감이나 풀사전에 담을까 생각합니다. 꽃도감이나 풀사전에 바람결 한 자락 실리는가 헤아립니다. 꽃을 말하거나 풀을 그리는 사람, 또 꽃과 풀과 나무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이녁 글과 그림과 사진에 바람결을 얼마나 싣는가 돌아봅니다. 동백꽃 피고, 동백꽃 떨어지며, 동백꽃 붉은 봄날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이야기할는지 되뇝니다. 4346.3.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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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앞 제비꽃

 


  제비꽃은 참으로 작다. 제비꽃 잎사귀며 줄기도 참으로 작다. 제비꽃은 아직 먹어 보지 않았다. 어느 꽃이든 먹어야 비로소 냄새와 무늬와 빛깔을 깨닫는다. 그런데, 제비꽃은 다른 봄꽃처럼 숱하게 흐드러지지 않아, 선뜻 뜯어먹지 못한다. 제비꽃 잎사귀도 좀처럼 뜯어먹지 못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대문 앞에 돋는 풀 좀 뜯으라 한 말씀 하신다. 우리 몰래 풀을 뜯으시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대문 앞에 돋는 풀이 좋은걸. 사월이나 오월쯤 키 높이 자라면 그때에는 벨까 싶기도 하지만,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올라오는 풀내음이 즐겁다. 대문 드나들며 이 풀 바라보는 재미 쏠쏠하다.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제비꽃이 우리 집 대문 앞부터 피어난다.


  지난봄 우리 집 여러 곳에서 제비꽃 피었다. 그야말로 조그마한 틈바구니라든지, 섬돌 밑 아주 가늘다 싶은 틈바구니라든지, 이런 데에 으레 제비꽃이 씨앗 퍼뜨리고 뿌리를 내리더라. 다른 풀은 그야말로 수북하게 씨앗을 퍼뜨리며 돋는데, 제비꽃은 올망졸망 서너 송이 모인 채 꽃을 피우니, ‘너를 참 맛난 풀로 여겨 먹고 싶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고 보면, 이원수 님은 일찍부터 제비꽃 노래하는 동시를 썼네. “나물 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나물 캐다 말고 꽃을 땁니다. 마른 잔디밭에 앉은뱅이꽃, 벌써 무슨 봄이라고 꽃을 피웠나. 봄 오면 간다는 내 동무 순이, 앉은뱅이꽃을 따며 몰래 웁니다.”


  민들레며 꽃다지며 제비꽃이며, 이 앉은뱅이꽃 들아, 너희는 이 봄에 어떤 노래 부르고 싶니. 4346.3.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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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옮겨심다

 


  읍내에 마실 다녀오는데, 읍내 버스역 앞자락에서 할머니 한 분 할미꽃 멧골에서 캐서는 세 꾸러미 바구니에 담아 판다. 응, 할머니꽃이네? 할미꽃 파는 할머니는 우리가 군내버스 타고 읍내에 내릴 즈음 짐을 풀어서 장사판 벌인다. 이제 막 당신 집에서 이것저것 꾸려서 나오신 듯하다. 바구니 가득 뜯어 내놓은 쑥은 우리 집 뒷밭이나 꽃밭에서도 무럭무럭 잘 자라기에 날마다 신나게 뜯어먹으니 눈이 안 가고, 다른 푸성귀나 나물에도 눈이 가지 않는다. 오직 할미꽃한테 눈이 간다. “여기 할미꽃이요. 하나 가져가소.” 할미꽃을 처음 알아볼 때부터 할미꽃한테 눈길을 사로잡힌다. 그래, 할미꽃이로구나. 멧골 어디메쯤 할미꽃이 피었을까. 어느 멧자락에서 캐셨을까. “옮겨심어도 잘 크겠지요?” “하모. 오늘 안에 심으면 잘 크지.” 마침 어젯밤 큰 비바람 몰아친 뒤로 흙은 폭신하며 촉촉하다. 할미꽃 장만해서 옮겨심기에 좋다. 마을 이웃 지난해에 한 뿌리 주신 큰수선화도 지난겨울 잘 나고 올봄에 새잎 틔우며 올라오니, 이 할미꽃도 올 한 해 우리 꽃밭 한쪽에서 씩씩하게 새 뿌리 내리고 씨앗 내려 이듬해에는 새 할미꽃 퍼뜨릴 수 있겠지. 예쁜 할미꽃아, 우리 예쁜 아이들하고 예쁜 하루 누리며 함께 살자. 4346.3.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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