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앞 제비꽃
제비꽃은 참으로 작다. 제비꽃 잎사귀며 줄기도 참으로 작다. 제비꽃은 아직 먹어 보지 않았다. 어느 꽃이든 먹어야 비로소 냄새와 무늬와 빛깔을 깨닫는다. 그런데, 제비꽃은 다른 봄꽃처럼 숱하게 흐드러지지 않아, 선뜻 뜯어먹지 못한다. 제비꽃 잎사귀도 좀처럼 뜯어먹지 못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대문 앞에 돋는 풀 좀 뜯으라 한 말씀 하신다. 우리 몰래 풀을 뜯으시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대문 앞에 돋는 풀이 좋은걸. 사월이나 오월쯤 키 높이 자라면 그때에는 벨까 싶기도 하지만,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올라오는 풀내음이 즐겁다. 대문 드나들며 이 풀 바라보는 재미 쏠쏠하다.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제비꽃이 우리 집 대문 앞부터 피어난다.
지난봄 우리 집 여러 곳에서 제비꽃 피었다. 그야말로 조그마한 틈바구니라든지, 섬돌 밑 아주 가늘다 싶은 틈바구니라든지, 이런 데에 으레 제비꽃이 씨앗 퍼뜨리고 뿌리를 내리더라. 다른 풀은 그야말로 수북하게 씨앗을 퍼뜨리며 돋는데, 제비꽃은 올망졸망 서너 송이 모인 채 꽃을 피우니, ‘너를 참 맛난 풀로 여겨 먹고 싶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고 보면, 이원수 님은 일찍부터 제비꽃 노래하는 동시를 썼네. “나물 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나물 캐다 말고 꽃을 땁니다. 마른 잔디밭에 앉은뱅이꽃, 벌써 무슨 봄이라고 꽃을 피웠나. 봄 오면 간다는 내 동무 순이, 앉은뱅이꽃을 따며 몰래 웁니다.”
민들레며 꽃다지며 제비꽃이며, 이 앉은뱅이꽃 들아, 너희는 이 봄에 어떤 노래 부르고 싶니. 4346.3.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