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바람과 동백꽃
전라남도에서도 고흥, 고흥에서도 두멧시골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으면, 나는 동백꽃을 제대로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붉은 잎사귀 소담스러운 꽃이라면 으레 장미나무 빼고는 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겨레 삶자락에 붉디붉은 커다란 송이 맺는 꽃이 있던가 하고만 생각했어요.
동백나무는 전라남도 고흥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해남도 강진도 장흥도 동백나무 많습니다. 영암도 목포도 완도도 진도도 동백나무 많을 테지요. 순천과 여수와 남해와 통영과 거제에도 동백나무 많겠지요.
드센 비바람에 동백꽃송이 여럿 떨군 모습 바라봅니다. 겨울이 물러가는 봄날 찾아온 드센 비바람 따라 마을 곳곳에 동백꽃송이 떨어져 데굴데굴 구릅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바람아, 네가 그렇게 드세게 불지 않아도 동백꽃은 소담스러운 송이를 떨구곤 하는데, 왜 어젯밤 그리도 몰아붙였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봄꽃들한테 너희가 이렇게 늑장 부리니 재촉하려고 한껏 몰아붙였니. 비도 바람도 멎은 아침나절 마당에 내려서니, 참말 너 드센 비바람 지나가고 나서 동백나무 꽃봉오리 더 붉더라.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직 발그스름하다 싶더니, 너 비바람 맞고는 한결 붉더라. 너 비바람 몰아치기 앞서까지 피어나지 않던 숱한 봄꽃이 오늘 아침 햇살 드리울 적에 한꺼번에 피어났더라. 바람아. 바람아. 바람 너는 꽃을 꺾지 못한단다. 꽃송이 여럿 떨굴 수 있을는지 모르나, 바람이 불면 불수록 들꽃은 더 힘을 낸다. 바람이 몰아치면 몰아칠수록 들꽃은 한껏 짙으며 푸르게 빛난단다. 어쩌면 너 바람은 봄꽃이 더 튼튼하게 피어나라고, 더 씩씩하게 크라고,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일는지 모르겠구나. 바람이 불며 꽃빛이 짙고, 빗물 함께 흩뿌리면서 풀뿌리 굵어질는지 모르겠네.’
꽃학자나 풀학자는 어떤 이야기를 꽃도감이나 풀사전에 담을까 생각합니다. 꽃도감이나 풀사전에 바람결 한 자락 실리는가 헤아립니다. 꽃을 말하거나 풀을 그리는 사람, 또 꽃과 풀과 나무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이녁 글과 그림과 사진에 바람결을 얼마나 싣는가 돌아봅니다. 동백꽃 피고, 동백꽃 떨어지며, 동백꽃 붉은 봄날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이야기할는지 되뇝니다. 4346.3.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