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5) 제일착

 

하지만 따끈따끈한 새책을 제일착으로 볼 수 있는 사서의 특권은 육체적 고통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사서가 말하는 사서》(부키,2012) 77쪽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다듬고, “사서의 특권(特權)은”은 “사서가 누리는 권리는”이나 “사서만 누리는 권리는”이나 “사서한테만 있는 권리는”으로 다듬습니다. “육체적(肉體的) 고통(苦痛)을 버틸”은 “몸이 힘들어도 버틸”이나 “고된 일을 버틸”이나 “힘겨운 몸을 버틸”로 손봅니다.


  한자말 ‘제일착(第一着)’은 “가장 먼저 도착하거나 착수함”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가장 먼저 닿다”나 “가장 먼저 하다”로 적으면 됩니다.

 

 새책을 제일착으로 볼 수 있는
→ 새책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 새책을 맨 먼저 볼 수 있는
→ 새책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는
 …

 

  ‘제일착’ 같은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제이착’이나 ‘제삼착’ 같은 한자말을 쓰겠지요. 쉽게 생각하면서 쉽게 쓰는 길을 찾아보셔요. 첫째로 닿다, 둘째로 닿다, 셋째로 닿다, 이렇게 쓰면 돼요. 바르게 헤아리면서 바르게 쓰는 결을 살펴보셔요. 첫째로 하다, 둘째로 하다, 셋째로 하다, 이처럼 쓰면 됩니다. 한국사람 한국말을 슬기롭게 씁니다. 4346.3.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렇지만 따끈따끈한 새책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는 남다른 즐거움은 고된 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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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김미화

 


  나는 김혜수 님이 대학교를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른다. 아니, 대학교를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생각해 본 적 없다.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김혜수 님한테 대학교 졸업장이 무슨 뜻이나 보람이 있겠는가. 즐겁게 연기하고 아름답게 연기하면 넉넉할 뿐이다.


  연기를 하다가 시사방송을 이끄는 김미화 님이 대학교를 다녔는지 안 다녔는지 나로서는 모른다. 아니, 김미화 님이 대학교를 다녔든 안 다녔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 웃음보따리는 대학교를 다녀야 열지 않는다. 사회와 삶과 지구별 읽는 눈썰미는 대학교를 다녀야 키우지 않는다. 이웃을 사랑하고 내 몸을 스스로 아낄 줄 안다면, 사회와 삶과 지구별을 깊고 넓게 읽거나 헤아릴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김혜수 님과 김미화 님이 ‘논문 표절 말밥’에 오른다. 참 뜻밖이로구나 싶으면서, 뭣 하러 두 사람한테 이런 트집을 잡으려 할까 궁금하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영화를 찍든 연속극을 찍든, 또 코미디를 찍건 시사방송을 찍건, 그이 마음그릇과 생각밭이 어떠한가를 살필 노릇이다. 그이 졸업장을 뒤적이거나 논문을 훑을 까닭이 없다. 시인 한 사람이 시를 쓸 때에는 시를 읽을 노릇이다. 시인이 어느 대학교 무슨 학과를 나오거나 어떤 사람한테서 시를 배웠다든지 어느 문학잡지에 시를 실었는가 따위를 알아야 할 까닭이 없다. 소설가 한 사람이 소설을 쓸 때에는 소설을 읽을 노릇이다. 소설가가 무슨 밥을 먹고 어떤 옷을 입으며 자가용을 모는지 마는지 따위를 살필 까닭이 없다.


  쌀밥 먹는 사람들이 ‘나락 키운 흙일꾼’이 할매인지 할배인지 따지지 않는다. ‘나락 키운 흙일꾼’이 젊은내기이건 늙은이이건 가릴 까닭이 없다. 아이들이 낫질을 해서 나락베기를 거들었거나 안 거들었거나 굳이 살펴야 하지 않는다. 살피거나 따져야 한다면, 농약이나 비료를 쳤느냐 안 쳤느냐 쳤다면 얼마나 쳤느냐를 따져야겠지. 곧, 연기하는 사람한테는 연기를 따질 노릇이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글그릇을 살필 노릇이다.


  봄햇살 묻어나는 바람이 분다. 봄꽃내음 물씬 밴 바람이 분다. 꽃가루 날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어떤 풀과 나무가 이렇게 어여쁜 꽃가루 날리며 봄기운 듬뿍 나누려 할까. 매화나무 곁 십 미터 거리에 서도 매화꽃내음 가득하다. 모과나무는 이제 새잎 트려 하는데에도 모과나무 곁에 서면 모과내음 솔솔 난다. 좋은 봄날, 사람들 가슴속에 좋은 이야기 깃들면서 좋은 생각 피어날 수 있기를 빈다. 4346.3.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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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7월 어느 날 이야기입니다. 예전 사진 갈무리하다가, 참 재미나고 어여쁜 모습 담은 사진이 보여, 이제서야 글을 붙여 띄웁니다.

 

..

 


 청소 돕는 아이들 (도서관일기 2012.7.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우리 집 두 아이가 맨발로도 뛰놀 수 있도록 골마루 바닥을 걸레로 신나게 닦는데, 두 아이는 아버지 흉내를 낸다며 작은 물휴지 복복 뜯어서 골마루 바닥에 엎드린다. 엎드려서 논다. 아버지 일 거드는 두 아이 옷은 쉬 더러워진다. 야, 야, 야, 너희가 아버지 돕는다지만, 아버지 빨래 일거리 더 늘리지 않니.


  그러거나 말거나, 큰아이는 물걸레까지 들고 바닥을 닦는다며 애쓴다. 무겁지 않니. 밀고 다닐 만하니.


  너희들 옷 버리지 않고 손 더러워지지 않도록 골마루 바닥을 닦으려 하는데, 오히려 너희한테 도움을 받네. 씩씩하게 잘 크는구나. 그래, 너희 조그마한 손길이 있어 네 아버지는 새삼스레 기운을 차리면서 쓸고 닦고 치우고 갈무리하고 하면서 이 시골도서관 지킬 수 있구나.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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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예전 사진 갈무리하다가, 지난 2012년 4월 모습을 보고는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때에는 책꽂이 들이고 자리잡느라 너무 바빠, 사진만 찍고 글을 못 붙였는데, 이제 와서 늦게나마 글을 붙여 지난날 한 자락 올립니다.

 

..

 


 나무와 책 (도서관일기 2012.4.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크고 무거운 책꽂이하고 여러 날 씨름한다. 혼자서 들거나 나르기란 몹시 빠듯하지만, 시골마을에서 누구 부를 사람 없으며, 옆지기더러 거들라 할 수 없다. 요즈막에는 이 크고 무거운 책꽂이하고 씨름하기 때문에 먼지가 어마어마하게 날려, 아이들하고 도서관마실을 하지도 못한다. 아이들은 집에서 놀라 하고 나 혼자 도서관에 나와서 씨름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먼지 날리는 도서관으로 함께 와서 놀겠단다. 어쩌면, 아이들로서는 책꽂이 새로 들이며 어수선하고 비좁은 곳에서 더 재미나게 놀는지 모른다.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온통 땀투성이가 된다. 낡은 못을 모조리 뽑는다. 못을 뺀 널판을 한쪽에 기댄다. 하나씩 자리를 잡는다. 한꺼번에 들여놓은 오래된 나무책꽂이가 골마루 가득 채우니, 아이들이 넉넉하게 뛰어놀 자리가 없다지만, 어른인 내가 요리조리 드나들 틈마저 없다. 이 큰 책꽂이 들어설 데가 너끈히 나올까. 모르리라. 막 들여놓은 때라 얼핏 보면 갯수가 많은 듯하지만, 막상 하나둘 자리를 잡고 보면, 좀 모자라다 싶을 수 있겠지.


  먼지가 어마어마하게 날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묵은 나무냄새가 난다. 묵은 책꽂이에 앉은 더께를 걸레로 바지런히 닦고 나면, 천천히 나무냄새 올라온다. 참말 책꽂이를 나무로 짜야 하는 까닭을 느낀다. 책부터 나무로 만들지 않는가. 나무로 빚은 책은, 나무로 짠 책꽂이에 건사할 때에 오래도록 아름답고 정갈하게 이어갈 수 있다고 느낀다. 사람도 나무로 지은 집에서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잖은가.


  숲이 있어야 한다. 숲에 나무가 우거져야 한다. 나무가 늘 푸른 숨결 내쁨을 수 있어야 한다. 푸른 숨결 내뿜는 나무를 얻어 불을 지피고, 종이를 얻으며, 책꽂이나 옷장이나 책상이나 걸상을 짜야 한다. 아이들 놀잇감도 나무로 깎고, 수저도 나무로 깎으며, 밥그릇과 밥상 또한 나무로 빚을 때에 참으로 좋겠지.


  나무는 열매도 주고 꽃도 베푼다. 나무는 가지를 주고 줄기를 준다. 좋은 그늘을 주는 나무요, 푸른 숨결 나누는 나무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나무를 읽는 셈이다. 그리고, 나무를 읽는 사람 또한 책을 읽는 셈이다.

 

  유채꽃과 제비꽃 흐드러지는 냄새를 맡으며 기운을 낸다. 아이들과 논둑길 거닐며 질경이를 뜯고, 봄나물 잔뜩 얻는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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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 - 피아졸라, 에런 코플런드 등 수백 명의 음악가를 길러낸 20세기 음악의 여제
브뤼노 몽생종 지음, 임희근 옮김 / 포노(PHONO)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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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부르는 사랑노래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8] 브뤼노 몽생종,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

 


- 책이름 :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
- 이야기 나눈 이 : 브뤼노 몽생종
- 옮긴이 : 임희근
- 펴낸곳 : 포노 (2013.3.15.)
- 책값 : 16000원

 


  노래꾼이 노래를 부릅니다. 마을 할매가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패가 노래를 부릅니다. 마을 할매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불러도 노래입니다. 누가 들어도 노래입니다.


  길거리에서 노래가 흐릅니다. 사람들 손전화에서 노래가 흐릅니다. 가게마다 노래가 흐르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노래가 흐릅니다. 사람들 삶터와 일터에서 노래가 끊이는 법 없습니다. 뽕짝이든 대중노래이든, 가곡이든 오페라이든, 어느 노래이든 흐르고 또 흐릅니다.


  어른도 노래를 듣고 아이도 노래를 듣습니다. 어른도 뽕짝을 부르고, 아이도 뽕짝을 부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뽕짝이나 대중노래 빼고, 어린이노래조차 불러 주지 못합니다. 시디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아이들한테 어린이노래를 가끔 들려주기는 하되, 어른 스스로 늘 듣거나 부르는 노래는 뽕짝이나 대중노래입니다.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굳이 어린이노래를 부를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들하고 똑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노래를 부르며 똑같은 생각을 할밖에 없습니다.


.. 우리 어머니는 결코 그런 칭찬에 현혹되지 않으셨어요. 딸이 일등을 하든 안 하든, 그건 어머니에겐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어요. 일등한 그날, 어머니가 이렇게 얘기하시더군요. “그래, 이 모든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어디 말해 봐라. 네가 스스로 평가할 때, 최선을 다한 것 같니?” … 가르친다는 일이 갖는 커다란 특권은,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진정 똑바로 바라보게 해 주고, 원하는 바를 진정으로 말하게 해 주고,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 저는 기본 토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야 했어요. 즉 듣기, 응시하기, 경청하기, 보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존중하여, 교만하지 않고 존재에 중요성을 부여하기. 누구나 존재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잘 연주할 수 없고, 잘 생각할 수 없고, 잘 살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  (17∼18, 25∼27, 39쪽)


  시골마을에서 자전거를 달려 자동차 거의 없는 한갓진 들길에 섭니다. 문득 자전거를 멈춥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햇살이 드리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풀잎과 나뭇잎이 바람결 따라 춤추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들판에서 새싹 돋는 소리를 듣습니다. 멧새와 들새가 먹이 찾고 짝꿍 찾으며 새로 낳은 새끼한테 먹이 주러 부산하게 날갯짓하는 소리 듣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겨울 지나 봄이 오면서 막 깨어난 숲벌레와 풀벌레 움직임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개미가 겨울잠 끝내고 밖으로 나옵니다. 나비가 팔랑거립니다. 곧 깨어나려고 하는 나비들이 풀잎이나 나뭇잎에 붙어 천천히 몸부림을 칩니다. 귀를 기울이는 사람한테는 이 모든 소리가 고스란히 들립니다.


  봄들꽃에 이어 매화꽃이 핍니다. 동백꽃이 맨 먼저 피고, 닥꽃(닥나무꽃)이 뒤를 잇습니다. 아가씨꽃(아가씨나무꽃, 또는 명자나무꽃)이 망울망울 발갛고, 모과나무는 이제 새잎 움트려 합니다.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면, 이 모든 꽃내음뿐 아니라 꽃소리를 듣습니다.


  꽃가루 날립니다. 꽃가루 퍼집니다. 봄내는 짐승과 새와 벌레뿐 아니라 사람들 코와 살갗을 간질입니다. 즐겁고 가벼우며 맑은 기운 찬찬히 베풉니다.


.. 음악이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은 때는 한 번도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귀엔 그냥 음이 들려요. 항상 음이 들리고, 항상 음을 생각해요 … 신을 인정하듯이, 저는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감동을 인정하고, 걸작도 인정합니다 … 제가 당신을 제대로만 바라볼 줄 안다면, 볼 때마다 제 눈에 당신은 놀라움이에요 … 제대로 듣는 법을 알게 된 사람이면 누구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연주를 합니다 … 사람은 남들과 같을 수 없기에 독특한 것이니까요. 우리가 독특해지겠다고 선택해서 독특한 것이 아니니까요 ..  (24, 45, 56∼57, 85, 98쪽)


  시골도 도시도 온통 소리입니다. 시골이 조용하거나 고요하거나 한갓지다고 여기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며 누릴 소리를 모르는 셈입니다. 시골은 조용한 적도 고요한 적도 한갓진 적도 없습니다. 언제나 숱한 소리 가득합니다.


  천 살 먹은 나무가 새롭게 자라면서 소리를 냅니다. 천 살 먹은 나무가 바람을 맞으며 쏴아아 내는 나뭇잎 춤소리는 물결소리를 닮습니다.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에 따라 바람소리가 다릅니다. 햇볕 흐르는 낮과 달빛 흐르는 밤에 부는 바람소리는 다릅니다.


  느끼려 하는 가슴일 때에 비로소 시골소리 듣습니다. 느끼고 싶은 마음일 때에 바야흐로 시골소리 즐겁습니다.


  이와 달리, 도시소리는 억지로 와닿습니다. 도시소리는 사람들이 다른 숱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전철이나 지하철 달리는 소리, 버스와 택시 지나가는 소리, 가게마다 장사하는 소리, 기계가 움직이고 건물이 내는 소리, 갖가지 소리와 소리는 시끄럽게 울려퍼집니다. 도시소리는 저마다 이웃을 윽박지르거나 들볶는 소리입니다. 장사를 하고, 돈을 벌며, 이름을 알리고, 권력을 뽐내려 하는 소리가 도시소리 밑바탕입니다. 도시에서는 어른이든 아이이든 마음을 기울여 ‘내 소리’를 추스르기 어렵습니다. 나날이 소리를 잊고, 날마다 소리와 동떨어집니다. 이러는 동안 ‘새로운 시끄러운 소리’를 스스로 빚습니다.


.. 누군가를 격려하기에 앞서, 그 사람이 과연 자기 안에 사랑을 지니고 있는지, 그가 자기가 하는 일에,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흥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왜냐하면 어떤 일에 몰두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관심을 지니는 일이니까요 … 잠자는 사람들을 굳이 흔들어 깨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깨워 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으니까요 … 슈베르트는 “난 러시아어를 하고 싶어.” 같은 말을 안 하죠. 그런 말을 하는 대신 실제로 합니다. 우리는 하지는 않으면서 말만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거창한 변명을 앞세우지요. 하지만 슈베르트도, 바흐도, 포레도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 시간을 찾아낸 것이고 ..  (48, 58쪽)


  아이들은 어른들 말씨를 따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고스란히 배웁니다. 어른들이 맑으며 사랑스러운 말마디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아이들은 이 맑으며 사랑스러운 말마디를 늘 들으면서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이 거칠거나 시끄러운 소리로 이야기를 섞으면, 아이들 또한 거칠거나 시끄러운 말을 물려받습니다.


  청소년범죄란 없이 어른범죄가 있을 뿐입니다. 청소년사랑이란 따로 없이 어른사랑이 있어요. 아이들은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꿈꾸고 싶습니다.


  꿈을 꾸는 어른과 함께 꿈을 꾸는 아이입니다. 사랑하는 어른과 나란히 사랑을 꽃피우는 아이입니다. 삶을 일구는 어른과 어깨동무하며 동무랑 살가이 어깨동무하며 삶을 일구는 아이입니다.


  사랑을 물려받은 아이는, 동생이나 동무나 이웃하고 사랑을 나눕니다. 어릴 적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에 등떠밀리며 사랑 아닌 지식과 훈육과 학습에 길들인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새 어른이 되면, 이녁 아이들을 다시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낼밖에 없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이런 것만 배웠으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청소년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어른범죄’ 말고는 본 적 없어요. 어른들이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삶을 바라보며 물려받은 아이들은 ‘범죄’라는 이름조차 몰라요. 어른들 스스로 서로 사랑하지 않고 아끼지 않는데, 아이들이 ‘사랑’을 알 턱 없어요.


.. 난 음악 악보를 읽을 때 비평하는 마음으로 읽지 않아요. 음악과 만나는 기쁨을 누리죠 … 많은 것들을 기억 속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체로 훌륭한 벗들을 곁에 두는 셈이 되지요. 기억에 담은 것은 모두 우리를 풍부하게 해 주고, 우리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보평성이란 뿌리뽑힘이 아니에요. 브람스는 나폴리 사람이 아니고 몬베테르디는 스웨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의 음악을 들어 보면 아주 잘 느낄 수가 있어요 ..  (71, 73, 103쪽)


  도시소리가 시끄럽다 했지만, 이제 시골소리도 그리 살갑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시골소리도 꽤 시끄럽습니다.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 시끄럽습니다. 기계 쓰는 소리 시끄럽습니다. 마을방송 시끄럽습니다. 마을 돌며 장사하는 짐차 확성기 소리 시끄럽습니다. 발동기 돌려 농약 뿌리는 소리 시끄럽습니다.


  호미와 낫과 쟁기를 쓰며 노래하는 소리가 거의 사라집니다. 두레를 하거나 품앗이를 하며 노래를 즐기는 소리가 자꾸 사라집니다. 등짐을 지거나 지게를 짊어지며 부르던 노래가 까맣게 사라집니다. 마당에서 흙 파며 노는 아이들이 몽땅 사라집니다. 절구를 빻고 키를 까부르는 아주머니 노래가 아스라이 사라집니다.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짚을 엮는 할아버지 노래가 아득히 사라집니다.


  오늘날 시골에 무슨 소리가 있을까요.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돈을 벌어 시골 늙은 어버이한테 텔레비전을 사다 줍니다.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서로 일노래 놀이노래 즐기던 삶을 버리고는, 집집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연속극에 넋이 나갑니다. 스스로 노래를 즐기며 부르던 삶인데,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시골 어버이 삶을 한껏 망가뜨립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가끔 시골로 찾아와 어버이 품에 안기더라도 함께 일하지 않고 함께 놀지 않아요. 함께 일할 줄 모르고 함께 놀 줄 모르겠지요.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돈 벌 줄’은 알 테지만, ‘일할 줄’은 모를 테고, 무엇보다 ‘놀 줄’ 몰라요. 시골에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놀이를 누릴 때에 삶이 아름다운가를 하나도 몰라요.


..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제자가 여러 도구를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거예요. 제자가 그 도구로 무엇을 하건, 선생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 자녀가 변덕을 부려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에요. 자녀를 사랑한다는 건 그에게서 최선을 끌어내는 일, 어려운 일을 좋아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죠 …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꽉 닫아버릴 수 있습니다. 한편 어떤 식으로 한 말이 상대방을 활짝 피어나게 하고 믿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뢰를 불러일으키고 마음속 자아를 해방시키자는 생각을 갖고 말해야 합니다 ..  (84, 86, 95∼96쪽)


  브뤼노 몽생종이라는 분이 나디아 불랑제 님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갈무리하면서 엮은 책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를 읽습니다. 나디아 불랑제 님은 젊은이와 어린이한테 노래를 가르치며 한삶을 누린 분이라고 합니다. 삶을 밝히는 노래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삶을 밝혔겠지요. 삶을 사랑하는 노래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삶을 사랑했겠지요.


  모든 목소리는 노래입니다. 밥을 짓고 아이들 부르는 목소리도 노래요, 졸린 아이들 잠자리에 누여 토닥토닥 자장노래 부르는 목소리도 노래입니다. 삽질 소리도 호미질 소리도 모두 노래입니다.


.. 저는 학생들이 바흐 이후의 음악은 바흐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걸 원치 않아요. 바흐 이후의 음악은 단지 바흐와 다를 뿐이니까요 … 한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만, 예술가의 삶이란 다름 아닌 그의 작품이에요 … 연주자가 우위를 차지하는 순간부터 연주는 잘못됩니다. 연주자는 승리하지만 곡은 망쳐지는 것이죠. 결국 지고한 연주란, 듣는 이가 작곡가도 잊고 연주자도 잊고 나 자신조차 잊게 만드는 그런 연주예요. 오직 그 빼어난 곡뿐, 그것 말고 다른 것은 모두 잊게 되는 경지 … 연주자를 잊을 정도라면 연주자는 아주 높은 곳에 자리매김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빛은 아무것도 밝혀 주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  (111, 144, 161, 163쪽)


  미나리를 뜯을 적이랑 유채잎을 뜯을 적에 소리가 다릅니다. 쑥을 뜯을 때랑 별꽃나물 뜯을 때에 소리가 다릅니다. 꽃다지 잎이랑 꽃마리 잎을 뜯어서 씹을 때에 냠냠 소리 다르고, 맛이랑 내음이 모두 다릅니다. 배추잎하고 양배추잎을 칼로 썰 때에도 소리가 달라요. 미역국 끓일 때랑 감자국 끓일 때에도 소리가 다릅니다. 냄새도 맛도 다르지만, 소리부터 달라요. 무를 썰 때하고 고구마를 썰 때에도 소리가 다르지요.


  도랑물 흐를 적에도 언제나 소리가 다릅니다. 같은 논둑 없고 같은 논뙈기란 없어요. 같은 소나무라 하지만 솔잎 건드리며 지나가는 바람이 일으키는 소리는 노상 달라요.


  온누리에는 늘 다른 소리가 감돕니다. 온누리는 사뭇 다른 소리가 곱게 어우러지는 기쁨입니다.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이 모든 소리를 살포시 잇고 맺으면서 노랫가락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쓰고 귀를 열며 가슴으로 껴안을 줄 안다면, 이 온갖 소리를 아름답게 엮는 길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 습관이 전통은 아니에요 … 과거에 기대어 미래를 구축할 수는 있어도, 지난날 이미 이뤄진 것을 되풀이함으로써 미래를 구축할 수는 없습니다 … 음악을 몸으로 산다는 건 제게 너무도 큰 기쁨의 원천이라,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 방법을 통해 그것을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 마치 아이처럼 표현하는 것이죠 ..  (184, 186, 194쪽)


  하늘을 울리는 듯한 노래는 참말 하늘을 울리려고 지은 노래입니다. 별빛이나 햇빛이 흐르는 듯한 노래는 참말 별빛이나 햇빛이 흐르는 기운을 받아서 지은 노래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구나 싶은 노래는 참말 사랑을 속삭이려고 지은 노래이지요.


  마음이 있고, 꿈이 있기에, 노래 한 가락 짓습니다. 생각이 있으며, 사랑이 있으니, 노래길 걸어가고픈 이들한테 이야기 한 자락 가르칩니다.


  어버이 되어 아이들 가르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천재로 만들려고 아이를 가르치나요? 돈 잘 버는 일꾼 되라며 아이를 가르치나요? 학자나 지식인이나 전문가 되라며 아이를 가르치나요? 온통 사랑 되며 삶을 곱게 누리라는 뜻으로 아이를 가르치나요? 이웃을 아끼고 아이 스스로 아이 몸과 마음을 아끼라는 뜻으로 아이를 가르치나요?


  삶으로 부르는 사랑노래입니다. 사랑으로 부르는 삶노래입니다. 꿈으로 부르는 웃음노래입니다. 웃음으로 부르는 꿈노래입니다.


  개나 고양이는 스무 해 살면 죽음 문턱 넘나든다지만, 사람은 스무 해쯤 자라면서 몸과 마음이 무르익습니다. ‘아이로 살아가는 나날’이 더할 나위 없이 긴 사람입니다. 왜 사람은 ‘아이로 살아가는 나날’이 이렇게 길까요. 그리고, 오늘날 물질문명 도시사회에서는 왜 아이들이 스무 살 될 때까지 즐겁게 놀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갖가지 시험지옥과 입시지옥과 학원지옥과 영어지옥 따위를 만들어 괴롭힐까요.


  프랑스에서 1980년에 나온 이야기책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가 201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말로 나옵니다만, 오늘날 우리 한국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넋을 받아먹거나 어떤 얼을 받아들일 만할까 궁금합니다. 오로지 지옥살이 꾀하는 문질문명 도시사회에서 톱니바퀴 되어 흐르는 사람들이 개구리노래 풀잎노래 바람노래 햇살노래 무지개노래 별빛노래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6.3.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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