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책읽기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 모두 예술입니다. 왜냐하면, 삶이 모두 예술이거든요. 예술이라는 이름은 따로 붙일 수 없어요. 삶이 있을 때에 예술이고, 삶이 없을 때에는 아무것 없어요.


  누구나 가장 하고픈 대로 하면 모두 문화예요. 왜냐하면, 삶이 고스란히 문화이거든요. 문화라는 이름은 남다르게 붙이지 못해요. 삶이기에 문화요, 삶이 아니라면 아무것 아니에요.


  사진예술이란 사진삶입니다. 스스로 참말 좋아하는 모습을 찍으면 사진삶이요, 사진예술이에요. 문학이 예술이 되자면 먼저 문학이 삶이어야 합니다. 곧, 글삶이 글예술이 돼요. 그림이 예술이 되려면 그림 또한 무엇보다 삶이어야 하고, 삶으로 녹여야 하며, 삶으로 즐겨야 해요. 삶이지 않다면 그림도 문화도 예술도 아니에요. 삶이 없이 손놀림이나 손재주 보여주는 그림이란 ‘그림’조차 아닌 손놀림이나 손재주나 손놀이가 될 뿐이에요. 때로는 손장난이라 할 만하겠지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이녁 삶 누리기를 빌어요. 예술쟁이나 문화쟁이라는 이름에 얽히지 말고, 삶짓기 누리는 삶꾼 되고, 삶사랑 빛내어 삶지기로 하루하루 기쁘게 웃을 수 있기를 빌어요. 그러면, 삶사랑이 예술사랑 문화사랑 되고, 삶지기는 예술지기 문화지기 구실 톡톡히 하겠지요.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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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택시 일꾼

 


  지난 3월 19일, 전라도 순천에서 남원을 거쳐 전주로 기차를 타고 간 뒤, 택시로 갈아타서 ‘홍지서림 책방골목’에 들러 실컷 책을 누린 다음, 다시 기차역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데, 내 차림새가 어딘가 남다르다며, 택시 일꾼이 말을 붙인다. 커다란 가방 등에 짊어지고 목에는 사진기 하나, 앞쪽에 또 가방 서넛 주렁주렁 매달고 어깨에도 사진기 하나 걸친데다가, 머리띠로 긴머리 질끈 동이고, 수염은 자라는 그대로 놓은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한국으로 나들이 온 외국사람으로 여기다가, 무언가 예술 하는 사람인 듯 생각한다. “전주에 관광 오셨나요?” 하는 물음에, “아니요. 저는 전주 홍지서림 책방골목에 헌책방 나들이 왔어요. 저는 전주에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전주에 와요.”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택시 일꾼이 길게 한숨을 쉬면서, “책방 많이 문 닫았지요. 민중서관 문 닫을 때에는 가슴이 짠하더라고요.” 하고 이야기한다.


  전주시 국회의원은, 전주시장은, 전주시 시의원은, 전주시 기자들은, 전주시 대학교수는, 전주시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전주시 어버이들은, 전주시 어른들은, 전주시 푸름이와 아이들은, 전주시에서 오랜 나날 삶빛 밝히던 〈민중서관〉 문닫을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문닫은 줄 알기는 알까. ‘홍지서림 책방골목’에서 그 많던 헌책방들 주르르 문을 닫고 이제 꼭 세 곳 남은 요즈음 어떤 마음일까. 알기는 알까. 건물 새로 짓거나 길바닥 아스팔트하고 거님돌 갈아치우는 데에는 돈을 아낌없이 쓰는 행정과 관청과 정치인데, 마을사람 삶과 꿈과 사랑 북돋우는 일에는 어떤 돈과 힘과 이름과 마음을 기울이는가.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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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8] 꽃동무

 


  책을 함께 즐기니 책동무입니다. 이야기를 함께 나누니 이야기동무입니다. 책동무는 책벗이기도 하고, 이야기동무는 이야기벗이기도 합니다. 같이 배우며 삶을 일구니 배움동무이자 배움벗이면서, 삶동무나 삶벗 됩니다. 먼길 나서며 도란도란 말을 섞기에 말동무이자 말벗이고, 길동무나 길벗 됩니다. 마실을 나란히 다니면서 마실동무나 마실벗 되고, 나들이동무나 나들이벗 되지요. 꽃을 바라보고, 풀을 들여다보며, 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우리는 서로 꽃동무나 꽃벗 되고, 풀동무나 풀벗 되며, 나무동무나 나무벗 됩니다. 영화를 함께 보면서 영화동무나 영화벗입니다. 만화책 함께 읽으면서 만화동무나 만화벗입니다.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노래동무나 노래벗 되고, 사진을 찍으러 같이 움직이니 사진동무나 사진벗 돼요. 글월 적어 띄우는 글월동무 또는 글동무 있어요. 글월벗이나 글벗도 되겠지요. 밥을 함께 먹어 밥동무이자 밥벗이요, 생각을 살뜰히 나누는 생각동무나 생각벗 있어요. 꿈을 함께 이루려는 꿈동무와 꿈벗 있으며, 사랑을 따스히 나누는 사랑동무와 사랑벗 있습니다. 마음으로 사귀는 마음동무와 마음벗입니다. 햇살처럼 환한 햇살동무와 햇살벗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동무를 사귈까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동무 되어 살아가나요. 어깨동무 일동무 놀이동무 소꿉동무에, 어떤 동무가 되는가요.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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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7) -의 : 집 앞의 눈

 

눈이 내렸습니다. 아저씨는 집 앞의 눈을 치웠습니다
《사노 요코/이선아 옮김-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시공주니어,2004) 16쪽

 

  집 앞에 눈이 내리니, 집 앞에 있는 눈을 치우겠지요. 집 뒤에 눈이 내리면, 집 뒤에 있는 눈을 치울 테고요. 눈이 쌓이기에 눈을 치웁니다. 눈이 쌓인 만큼, 눈을 치우기 앞서 눈을 굴려 눈사람을 빚고, 눈을 뭉쳐 눈놀이를 합니다.

 

 집 앞의 눈을
→ 집 앞에 있는 눈을
→ 집 앞에 쌓인 눈을
→ 집 앞에 내린 눈을
→ 집 앞에 소복한 눈을
→ 집 앞에 가득한 눈을
 …

 

 눈은 집 앞에 어떻게 있을까요. 눈은 그저 ‘있는’ 모습일까요, ‘쌓인’ 모습일까요, ‘내린’ 모습일까요. 또는, 눈은 ‘소복히’ 있을까요, ‘가득’ 있을까요.


  아마, 잔뜩 있을 수 있고, 한가득 쌓일 수 있으며, 조금 내렸을 수 있어요. 어떤 모습일는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얼마나 있거나 쌓이거나 내리는 눈일는지 생각해 봅니다. 4346.4.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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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렸습니다. 아저씨는 집 앞에 내린 눈을 치웠습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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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놀잇감

 


  경기도 일산에서 사시는 장모님이 택배 한 상자를 보내셨다. 무엇을 보내셨나 하고 상자를 여니, 아이들 놀잇감이 가득하다. 아마, 이웃 누군가 장모님한테 주신 듯하다. 우리 아이들 시골에서 잘 갖고 놀라는 뜻으로 고마운 이웃이 즐겁게 물려주셨겠지.


  그런데, 나는 상자를 열자마자 다시 닫는다. 이 놀잇감은 모두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집안에 ‘고마운 이웃한테서 물려받은 플라스틱 놀잇감’ 많아서 여러모로 골머리 앓는데, 또 ‘플라스틱 놀잇감’이기 때문이다.


  아마 장모님도 이 놀잇감 보내시기 앞서 생각하셨겠지. 우리 아이들한테 플라스틱 놀잇감이 하나도 안 좋으리라고 뻔히 알면서도, 보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생각하시다가, 보내셨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집안에서 이 놀잇감을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야 할까. 도서관에 갖다 놓고, 도서관에 갈 적만 갖고 놀게 해야 할까. 아니면, 슬그머니 도서관 한쪽에 놓고 ‘플라스틱 놀잇감 유물’처럼 모셔 놓을까.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놀잇감 하나 없이 마당에서고 논자락에서고 마음껏 뛰어논다. 작은아이는 졸음에 겨워 곯아떨어질 때까지 온몸이 흙투성이 되도록 뛰어놀다가 아버지 품에 안겨서 엉엉 운다. 졸립다는 아이 손과 발과 낯을 씻긴 다음 작은 이불로 돌돌 감싸서 품에 안는다. 품에 안기 무섭게 잠든다. 새근새근 토닥이다가 자리에 눕힌다. 큰아이도 무척 졸린 눈치이지만 좀처럼 잠들려 하지 않는다. 그래, 일곱 시까지 버텨라. 일곱 시 반이나 여덟 시까지 버텨도 돼. 너도 그때까지 버티고 나서 아버지가 살며시 안아 자리에 눕히면 이듬날 아침까지 깊이 곯아떨어지겠지.


  나도 옆지기도 ‘삐삐’를 참 좋아하는데, 우리 아이들 모두 삐삐처럼 실컷 놀고 개구지게 놀며 신나게 놀면서 하루하루 누리기를 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운다. 4346.4.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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