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신 신고 흙 파는 어린이

 


  다른 아이들은 꽃신 신으며 어떻게 노는지 모른다. 우리 집 사름벼리는 꽃신을 신고 마구 달리기를 하고, 물놀이까지 하며, 흙밭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곤 한다. 예쁜 신이니까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늘 신으려 한다. 여섯 살 누나는 세 살 동생보다 땅을 깊이 팔 수 있다. 땅을 파다가 문득 말한다. “이거 누구 똥이야?” “동생 똥이야.” “왜 똥이 여기 있냐?” “밭 살리려고 거기에다 뿌렸지.”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산들보라 텃밭 흙 파기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집에 예전 살던 분들이 쓰레기 태우느라 거의 버려진 옆밭을 지난 한 해 그냥 내버려 두었다. 흙이 되살아나려면 앞으로 여러 해 더 묵혀야 한다고 느끼는데, 올해에는 한 번 크게 갈아엎고는 또 그대로 내버려 둔다. 틈틈이 삽과 괭이로 흙을 뒤집어 준다. 유채이며 갓이며 쑥이며 여러 풀씨 깃들어 자란다. 곧 모시풀도 싹을 틔우며 자라겠지. 밑흙이 햇볕 먹으며 조금씩 살아나도록, 또 속흙에 지렁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이들 똥오줌을 날마다 조금씩 뿌리고 며칠에 한 차례쯤 흙을 뒤집는다. 아버지 무얼 하는가 지켜보던 아이들, 저마다 한손에 꽃삽 하나 쥐고는 옆밭으로 따라와서 흙을 판다. 재미있지? 여기에서는 너희 마음대로 흙 파며 놀아도 돼. 다만, 지렁이 나오면 지렁이 안 다치게 잘 돌봐 주렴.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에 담긴 사람들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을 엮은 사람들 사랑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을 다루는 책방 일꾼 마음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책에 서린 꿈 한 자락 살피면서 내가 오늘 하루 일굴 삶을 읽는다. 내가 읽는 책에서는 내가 누리고 싶은 환한 빛살 골고루 퍼져나온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4. 빛을 받는 책꽂이 - 헌책방 책방진호 2013.3.21.

 


  저녁햇살 헌책방 유리문 타고 곱게 스밉니다. 마흔 해 남짓 숱한 책 꽂은 책꽂이는 햇살 받으며 나무빛 더 짙고, 갓 태어난 책이거나 조금 묵은 책이거나 마흔 살 넘은 책꽂이 나무받침에 기대어 포근히 쉽니다.


  누군가 이 책들 바라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아끼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쓰다듬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어루만지어 즐거이 읽겠지요.


  아침저녁으로 고운 빛살 받는 책입니다. 사뿐사뿐 나들이 할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새 빛을 누릴 책입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이야기 깃들고, 저 책에는 저러한 이야기 서립니다. 한두 달 지나면 철이 지난다는 잡지라 하든, 십만 권 이십만 권 후다닥 팔아치워 돈벌이 쏠쏠하게 이우려는 처세나 자기계발 책이라 하든, 두고두고 사랑받는 따사로운 문학이라 하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즐기는 어린이책이라 하든, 모든 책에 골고루 햇볕 스밉니다.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책을 엮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 책들 처음 장만해서 읽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고, 이 책을 맞아들여 책시렁마다 알뜰살뜰 꽂은 헌책방 일꾼은 어떤 마음일까요. 헌책방으로 다리품 팔아 살몃살몃 마실 다니는 책손은 어떤 마음 되어 책 하나 만나려 하나요.


  빛을 받아 나무가 자랍니다. 빛을 담아 나무를 종이로 빚습니다. 빛을 모두어 종이를 책으로 꾸립니다. 빛을 기울여 책장을 넘깁니다. 책마다 나무내음 물씬 납니다. 그리고, 책꽂이 된 나무와 책 된 나무에서는 빛을 먹고 자란 결과 무늬 찬찬히 배어납니다. 책방에서 책을 펼치면 숲속 푸른 숨결 새록새록 퍼집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숲 이야기가 하나둘 울려퍼집니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산받이

 


  비오는 어느 날, 뒷밭으로 가서 밥상에 올릴 나물 뜯고 국에 넣을 쑥을 뜯는데, 어느새 큰아이가 조로롱 아버지 곁에 달라붙는다. “아버지 뭐 해요?” “쑥 뜯어.” “비오잖아요.” “괜찮아.” “비 맞으면 안 돼요. 옷 젖어요.” “응, 젖어도 돼. 말리면 되니까.” “안 돼요. 젖으면 안 돼요.”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 머리에 우산을 받힌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