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4. 빛을 받는 책꽂이 - 헌책방 책방진호 2013.3.21.
저녁햇살 헌책방 유리문 타고 곱게 스밉니다. 마흔 해 남짓 숱한 책 꽂은 책꽂이는 햇살 받으며 나무빛 더 짙고, 갓 태어난 책이거나 조금 묵은 책이거나 마흔 살 넘은 책꽂이 나무받침에 기대어 포근히 쉽니다.
누군가 이 책들 바라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아끼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쓰다듬겠지요. 누군가 이 책들 어루만지어 즐거이 읽겠지요.
아침저녁으로 고운 빛살 받는 책입니다. 사뿐사뿐 나들이 할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새 빛을 누릴 책입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이야기 깃들고, 저 책에는 저러한 이야기 서립니다. 한두 달 지나면 철이 지난다는 잡지라 하든, 십만 권 이십만 권 후다닥 팔아치워 돈벌이 쏠쏠하게 이우려는 처세나 자기계발 책이라 하든, 두고두고 사랑받는 따사로운 문학이라 하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즐기는 어린이책이라 하든, 모든 책에 골고루 햇볕 스밉니다.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책을 엮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 책들 처음 장만해서 읽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고, 이 책을 맞아들여 책시렁마다 알뜰살뜰 꽂은 헌책방 일꾼은 어떤 마음일까요. 헌책방으로 다리품 팔아 살몃살몃 마실 다니는 책손은 어떤 마음 되어 책 하나 만나려 하나요.
빛을 받아 나무가 자랍니다. 빛을 담아 나무를 종이로 빚습니다. 빛을 모두어 종이를 책으로 꾸립니다. 빛을 기울여 책장을 넘깁니다. 책마다 나무내음 물씬 납니다. 그리고, 책꽂이 된 나무와 책 된 나무에서는 빛을 먹고 자란 결과 무늬 찬찬히 배어납니다. 책방에서 책을 펼치면 숲속 푸른 숨결 새록새록 퍼집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숲 이야기가 하나둘 울려퍼집니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