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미룬 빨래

 


  아이들 옷가지 빨래를 사흘쯤 미뤄도 갈아입힐 옷이 넉넉하다고 느낀 어느 날부터, 가끔 빨래를 사흘쯤 미루곤 한다. 아마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차례쯤? 큰아이 낳은 때부터 날마다 빨래를 서너 차례씩 했고, 작은아이 태어나고는 참말 날마다 빨래를 서너 차례씩 안 하고는 갈아입힐 옷 댈 수 없었다. 이런 나날 여섯 해를 보내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싶어, 그러니까 손빨래를 한 옷가지 말려서 입히기가 하도 벅차, 여러 이웃한테서 아이들 옷가지를 여러 상자 잔뜩 얻고부터는, 며칠쯤 손빨래를 쉬어도 될 만큼 조금은 느긋하다. 다만, 여러 날 빨래를 미루고 보면, 이동안 쌓인 빨래를 손으로 빨자니 뻑적지근하다. 그래서 지난 2012년 봄에 드디어 처음으로 장만한 빨래기계를 가끔 쓴다.


  다른 사람들은 집일 하면서 으레 빨래기계를 쓰니까 너무 마땅한 집일이라 여길 수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 빨래가 마음 다스리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더구나, 나는 기계빨래 아닌 손빨래를 하면서 고단한 몸을 쉬고 지친 마음을 달랜다. 나로서는 하루에 서너 차례 손빨래를 한대서 하나도 안 힘들 뿐 아니라, 손빨래를 해야 비로소 몸이랑 마음을 쉬는 셈이기에, 손빨래를 제대로 못한 날은 골이 아프고 온몸이 욱씬욱씬 쑤신다.


  요 사흘 사이 손빨래를 안 하고 미루었다. 옆지기가 공부하러 집을 비운 지 열이틀째 되는 오늘이니 여러모로 힘들다 할는지 모르지만, 옆지기가 집을 비웠대서 힘들지 않다. 옆지기가 집에 없는 동안 나한테 닥친 여러 가지 글쓰기와 책만들기를 하려고 힘을 많이 썼더니, 그만 손빨래를 누릴 겨를을 잃고 말았다. 오늘 아침에 기계빨래를 하고, 마당에 빨래를 널며, 또 이 빨래를 걷고 천천히 하나하나 개면서, 아아 내 손으로 빨지 못하고 기계한테 맡긴 빨래를 만지자니 영 신이 안 난다. 내 손으로 뜯은 풀을 내 손으로 정갈하게 손질해서 밥상에 올리고는 내 입으로 조물조물 씹어서 작은아이 먹일 적에 얼마나 기쁘며 뿌듯하던가.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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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손에 쥔 꽃은

 


  봉래산 숲길 살짝 거닐다가 큰아이가 여러 풀잎과 꽃송이를 딴다. 천남성 풀잎을 따고 남산제비꽃 송이를 따며, 피나물 꽃송이를 딴다. 손에 쥐며 아이 예쁘다 하고 놀기에, 벼리야 꽃 좀 보여줘, 하고 부른다. 아이는 예쁜 꽃과 잎을 보여준다. 아이 손은 예쁜 물이 들고, 아이 눈에는 예쁜 빛이 서린다. 예쁜 숲을 만나니 예쁜 넋이 샘솟을 테지.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다가 내 어릴 적을 떠올린다. 다른 사내아이들은 공놀이로 바쁠 적에 나는 공놀이도 함께 했지만, 꽃놀이도 따로 하곤 했다. 어머니는 형과 나를 불러, 아파트마을 한켠 꽃밭으로 데려가서는 꽃잎과 풀잎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몇 가지 가르쳐 주었다. 토끼풀줄기로 가락지 엮는 법이라든지, 토끼풀꽃 누리는 법이라든지, 어머니로서도 당신 어릴 적 당신 어머니나 언니 오빠들한테서 배웠을 풀놀이를 물려주었다.


  아이가 손에 쥔 꽃은 무엇일까. 아이가 손으로 만지는 꽃은 언제 피어난 꽃일까. 이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 새로 낳으면, 이 아이는 어른 되어 저희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와 노래와 웃음을 물려줄 수 있을까.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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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9 10:20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다운 사진이네요. *^^*

파란놀 2013-04-09 12:04   좋아요 0 | URL
저 스스로 이 사진 찍을 때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요!

이 사진 하나 찍을 수 있어
어제 낮에 숲마실 하며
얼마나 기쁘던지요!
 

숲길에서 작은아이

 


  큰아이는 숲속에서 태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작은아이도 숲속에서 태어나지는 못했는데, 큰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 살아간 곳은 도시요, 도시에서도 전철길 바로 옆에 붙은 골목집 옥탑이었다. 작은아이는 숲속에서 갓난쟁이 적과 어린 나날을 누릴 수 있었지만, 아무튼 병원에서 태어났고, 병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은 뒤부터 늘 멧골과 시골에서 지낸다. 큰아이는 세 살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멧골과 시골에서 지낸다.


  두 아이 자는 버릇을 살피면, 큰아이는 더 개구지게 몸을 움직이며 놀고 싶기에 낮잠을 건너뛰기는 하더라도, 바다와 숲속에서 좀처럼 낮잠에 빠져들지 않는다. 작은아이는 조금이라도 졸린 기운 있으면, 바다와 숲속에서 아주 잘 잔다. 밤에 잠들 적에 두 아이 모두 바람소리 빗소리 물소리 개구리소리 풀벌레소리 새소리처럼 들과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받아들이며 좋은 기운 나누어 받으며 잘 잔다고 느낀다.


  어른도 똑같겠지. 그러나 모르리라. 오늘날 어른들은 도시살이에 아주 길든 나머지, 외려 시끄러운 도시에서 잘 잠들는지 모르리라. 조용하고 호젓한 시골에서야말로 더 잠들지 못하고 더 못 쉴는지 모르리라.


  고흥 나로섬 편백나무숲을 큰아이는 걸리고 작은아이는 품에 안아 재우면서 걷는다. 숲길 거닐면 바람맛 다르다. 푸른빛으로 그늘 감도는 숲길은 빛깔과 소리 또한 다르다. 숲길 거닐 적에 왜 사람이 숲사람인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숲바람 마시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결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고 찬찬히 느낀다.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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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흙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봄흙은
봄나물 봄나무 봄꽃
불러,

 

고즈넉한 시골마을
고운 사람 얼굴
짙누런 봄내음으로
씻어 줍니다.

 


4346.2.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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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41] 하나부터 일까지

 


  큰아이와 숫자를 익히며 ‘하나 둘 셋 …… 여덟 아홉 열’을 이야기했지만, 큰아이랑 함께 보는 만화영화를 비롯해, 둘레 다른 어른들, 여기에 어른들 누구나 쓰는 손전화 숫자판을 누를 때에 터져나오는 소리는 몽땅 ‘일 이 삼 …… 팔 구 십’입니다. 시간을 셀 때에 “열 시 삼십 분”이라 말하니까, 한자로 가리키는 ‘삼십’도 알아야 할 테고, 날을 셀 적에 “사월 십오일”이라 말하니까, 한자로 일컫는 ‘사’라든지 ‘십오’도 알아야겠지요. 그렇지만, 책을 ‘한 권 두 권’으로 셉니다. 사람은 ‘네 사람 다섯 사람’으로 셉니다. 열매는 ‘넉 알 닷 알’로 셉니다. 이야기는 ‘일곱 가지 여덟 가지’로 들려줍니다. 숫자놀이 즐기다가 문득 큰 걸림돌 만납니다. 사회가 다 그러하니 사회를 따라야 하는 셈일 수 있지만, 똑같은 숨결을 두고 한편으로는 ‘사람’이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人間’이라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human’이라 하는 이 나라 말글살이를 우리 아이들한테도 엉터리로 가르치거나 보여주어야 할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나아가야 할 말이고 넋이며 삶이지만, 하나에서 일까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회 얼거리입니다.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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