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달맞이꽃

 


  한여름으로 접어들면 들판 곳곳에 노란 꽃망울 넘실거리는 키 큰 풀포기 솟는다.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봄꽃과 봄풀이 수그러들 뿐 아니라, 장마와 잦은 비에 풀포기가 시들시들하곤 하는데, 바야흐로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한여름 들풀로 자리바꿈을 하는구나 싶다. 이때에 들판을 가득 누비는 여름풀이자 여름꽃으로 달맞이꽃이 퍽 많다. 도시에서는 어떠할까. 도시에서는 달맞이꽃이 얼마나 골목골목 깃들 만할까. 도시에서도 달맞이꽃을 곧잘 만나곤 하지만, 논둑이나 밭둑에서 한꺼번에 올라와 바람 따라 찰랑찰랑 나부끼는 노란 물결을 이루지는 못하리라.


  애기똥풀에 이어 노란 꽃송이로 꽃물결 빛내는 달맞이꽃이 한여름을 불러 더 파란 하늘과 더 하얀 구름과 함께 얼크러진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쟤는 왜 꽃이 안 피어?” “달맞이꽃은 달과 함께 꽃송이가 벌어져. 그래서 달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이름이 붙지.” “엥?” 4346.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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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8 09:26   좋아요 0 | URL
달맞이꽃 보러,
달님 나오신 밤에.. 꽃 보러 가시겠네요~^^

파란놀 2013-06-28 15:54   좋아요 0 | URL
저녁에는 아이들 재우느라 꽃마실은...
거의 못 나옵니다 ㅠ.ㅜ
 

아이 그림 읽기
2013.6.26. 아이들―평상에서 함께

 


  내가 평상에 앉아서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를 그리니, 작은아이가 따라나와 곁에서 거들고, 큰아이도 그림종이를 가져와서 평상에 엎드린다. 세 사람이 평상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해거름에 모기 소리 들으면서 부지런히 그림을 마무리짓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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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10] 바다에서 책을 읽는
― 마음을 쉬면서 다스리는 하루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운 뒤 면소재지에 갑니다. 우체국에 들러 책을 부칩니다. 면에 있는 빵집에 들러 빵 두 꾸러미를 장만합니다. 집에서 나올 적에 물을 넉넉히 챙겼습니다. 작은아이는 어느덧 새근새근 잠들었어요.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씩씩하게 함께 갑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시골길 달리는 내내 이런 얘기 저런 노래 들려줍니다.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쉬잖고 조잘조절 떠들기 때문에, 고단하게 오르막을 오르더라도 새삼스레 힘을 내어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집에서 나와 이십오 분쯤 지나니 발포 바닷가에 닿습니다. 이 바다는 저 멀리 태평양 보이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입니다. 물결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모래밭으로 내려갑니다. 큰아이는 낮잠을 건너뛰며 샛밥을 먹었지만,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 앉아 자느라 샛밥을 안 먹었습니다. 두 아이를 부릅니다. “벼리야, 네 동생은 안 먹어서 배가 고파. 좀 무얼 먹고서 놀자.” 모래밭에서 흙 파고 뒹굴던 아이들이 올라옵니다. 빵과 과자를 풀어 놓습니다. 밥을 든든히 먹고 나온 마실길이지만 두 아이 모두 바지런히 집어먹습니다. 아이들이 빵과 과자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책을 꺼냅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다문 한 쪽이라도 읽고 싶어 책 한 권 가방에 넣었어요.


  아이들은 먹느라 모래밭에 내려갈 생각을 안 합니다. 스무 쪽 즈음 읽고서 자전거수레에 책을 올려놓습니다. 함께 모래밭으로 내려갑니다. 나뭇가지를 셋 줍습니다. 아이들한테 하나씩 건네고, 나도 하나를 쥐어 모래밭에 그림과 글씨를 그립니다. 한참 그림놀이 글놀이 하다가 서로 손을 잡고 바닷물에 발을 담급니다. 물결이 밀려들어 발가락을 간질입니다. 물결은 내 무릎 언저리를 맴돌지만, 이 물결은 아이들 옷자락을 모두 적십니다. 아이들은 옷자락 젖으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천천히 걷고, 다시 이쪽으로 천천히 걷습니다. 한참 거닐며 물결하고 놉니다.


  바닷가를 스치는 자동차 더러 있고, 두어 대쯤 발포 바닷가에 서지만, 물결소리만 귀로 들어옵니다. 두 눈은 물결만 바라보고 온몸은 물결을 느낍니다. 크게 기지개를 켭니다.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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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옛날 사람들은
돌과 나무와 흙으로
다리를 놓아
사람과 짐승과 벌레와
꽃가루와 풀씨 모두
천천히 건넜고,

 

요즘 사람들은
시멘트와 쇠붙이로
다리 지어서
자동차만 자동차만
싱싱 쌩쌩
달리게 하는.

 


4346.5.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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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헌책방

 


  신문사나 잡지사나 방송사에서 곧잘 ‘헌책방’을 취재하곤 한다. 기자와 방송작가와 피디는 으레 나한테 연락을 한다. 오래도록 헌책방을 다녔으니 ‘좋은’ 헌책방을 잘 알지 않겠느냐며, 몇 곳을 추천해 달라 하고, 짬이 되면 길잡이를 해 달라 한다. 나는 이들한테 ‘좋고 나쁜’ 헌책방이란 없다고 말한다. 어느 헌책방이든 집과 일터하고 가까운 곳을 꾸준하게 즐거이 찾아다니면 마음을 사로잡거나 살찌우거나 북돋우는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굳이 ‘좋은’ 헌책방 몇 군데 추려서 멋들어진 그림 보여주려고는 하지 말라 주십사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헌책방만 취재하지 말고, 서울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적어도 인천이나 수원으로는 가든지, 의정부나 천안이나 청주쯤 가 보기를 바란다. 요새는 춘천까지도 쉬 오갈 수 있고, 부산까지 고속철도 타면 훌쩍 다녀올 수 있다. 그렇지만, 서울에 있는 기자도 방송작가도 피디도, 서울에서만 맴돈다. 적어도 인천까지 갈 생각을 못한다.


  서울을 벗어나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여길까. 서울을 벗어난 데에 있는 책방은 갈 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여길까.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은 서울사람만 본다고 여길까. 서울사람은 서울에 있는 책방 이야기만 보아야 한다고 여길까.


  나더러 서울에 볼일 있으면 함께 다닐 수 있느냐고 묻지만, 내 찻삯과 일삯을 대주지 않으면 어떻게 다니겠는가.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왜 시골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니지 못할까. 왜 시골로 나들이를 오면서 시골에 깃든 푸근하고 따사로운 책넋을 만나려고 하지 못할까. 서울 아닌 다른 도시에서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맑은 책숨을 마시면서 이 나라 책삶 골고루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찾기란 아직 너무도 먼 길이요 힘든 노릇일까.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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