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놀이 1

 


  마을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한 아이들 옷을 모두 갈아입힌 뒤, 흠뻑 젖은 옷은 빨래터에서 헹군다. 그러고는 작은 통에 담아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옷가지를 담은 그릇을 큰아이한테 준다. 큰아이는 옷그릇을 받더니 머리에 얹는다. 응? 너, 그렇게 머리에 얹는 모습 어디에서 본 적 있니? 큰아이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다운 모습으로 씩씩하게 걷는다. 그래, 앞으로 너희 옷가지 이렇게 마을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는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네.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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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7.4.
 : 밤길이 무섭니

 


- 아침부터 내린 비는 저녁이 되어 멎는다. 비오는 날 아이들은 비 맞고 놀기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벼락이 끝없이 치고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분다. 이런 비라면 아이들이 마당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큰아이는 우르릉릉 꽝 하고 치는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이런 소리에 그닥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싶은데, 큰아이는 좀 다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태어나서 갓난쟁이 적에 지낸 곳이 다르기 때문일까. 둘 다 많이 어린 아이들이지만, 큰아이는 세 살 때까지 도시에서 살았고, 작은아이는 멧골자락에서 태어나 세 살인 오늘까지 시골에서 살아가니 둘이 다를 수 있을까.

 

- 벼락이 치는 날이기에 셈틀 전원을 뽑고, 인터넷줄을 뽑는다. 마당에 내려가서 빗놀이 즐기지 못하니, 집에서 영화 보고 싶다 말하지만, 이런 날은 냉장고 빼고는 아무것도 전기를 먹이지 않는다. 날씨가 이러면 조용히 지내야지. 그림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면 되지.

 

- 저녁이 되어 빗줄기 멎고 벼락도 치지 않기에, 하늘을 멀리멀리 바라본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날씨 소식은 영 못 미덥다. 우리 마을 날씨는 하늘을 살피고 풀잎과 벌레와 개구리를 살펴야 잘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날씨 소식으로는 우리 마을에 비가 온다고 되었으나, 막상 비가 안 오기 일쑤요, 저녁까지 비가 온다고도 나오지만, 정작 해가 고개를 내밀면서 방긋 웃을 적이 많다. 비가 멎은 지 두어 시간 지났으나, 인터넷 날씨 소식과 내가 몸으로 느끼는 날씨는 사뭇 다르다. 곰곰이 생각한다. 삼십 분만 더 기다리자. 삼십 분쯤 더 기다리면 길바닥 물기 제법 마를 테고, 그러면 우리 아이들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쯤 천천히 다녀올 만겠지.

 

- 해가 기운다. 구름이 두껍게 낀 하늘이지만, 해가 기우는 줄 느낄 수 있다. 저녁을 차려 아이들을 먹인다. 막 낮잠(이라기보다는 이른저녁잠)에서 깬 작은아이는 허둥지둥 퍼먹는다. 보라야, 네가 잠에서 깰 때에는 배고파 하겠구나 싶어, 꼭 그때에 맞추어 밥도 국도 해 놓았지. 참말 작은아이는 밥그릇만 쳐다보면서 바지런히 입으로 밥을 퍼넣는다.

 

-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밥그릇 싹싹 비운다. 자, 이제 그럼 자전거마실을 가 볼까. 바깥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운다. 깜깜하다. 작은아이는 어둡든 밝든 자전거를 탄다 하면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냥 좋다. 큰아이는 자전거를 탄다니 좋아하면서도 ‘밤이라 무섭다’고 한다. 벼리야, 밤은 그저 밤일 뿐이야. 너희가 저녁 아홉 시 반인 이맘때까지 잠을 안 자니, 이렇게 가볍게 자전거마실을 다녀올 뿐이야. 저녁을 먹고 배가 부르면 아이 좋네 노래하면서 조금 놀다가 자면 되잖니. 그러나, 너희는 열 시 열한 시 되어도 안 잘 낌새라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나온단다.

 

- 밤길을 달린다. 밤길에 자동차도 사람도 없다. 개구리 노랫소리만 들판과 마을에 가득하다. 불을 끄고 달릴까 하다가, 큰아이가 밤길을 좀 많이 무서워 하는구나 싶어 그냥 켠 채 달린다. 큰아이는 여느 때에는 조잘조잘 신나게 떠들고 노래를 하는데, 밤길에는 무섭다며 아뭇소리 없다.

 

- 해 떨어진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마실을 잘 안 다녔기 때문일까. 큰아이가 불빛 없이 깜깜한 시골마을 밤을 훨씬 어릴 적에 제대로 누린 적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내는 이 마을에서 밤마실을 꾸준히 다닌다면 큰아이도 어둠을 익숙하게 받아들여, 밤이 무서울 까닭 없이 밤은 밤일 뿐인 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큰아이는 뒤에서 “아버지, 빨리 달려요.” 하고 말한다. 무서우니까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리이다. 그런데, 벼리야, 밤에는 밤 빛깔이 있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렴. 논에서 개구리들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렴. 자동차 하나 없이 호젓한 이 시골길을 우리들이 오롯하게 누린단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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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 나는 밝은 햇빛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시골과 도시에 내리는 비는 다르다. 도시에서는 빗물을 모두 하수구로 흘러들도록 해서 재빨리 바다로 빠지도록 할 텐데, 시골에서는 이 빗물이 논과 밭과 숲에 골고루 떨어져 온 들판을 촉촉히 적시기를 바란다. 시골마을 모든 흙일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람들 따사로운 사랑이 어린 손길을 곁들여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거둔다.


  이 장마철에 사이사이 햇살이 빼꼼 비치곤 한다. 밤에는 틈틈이 별이 반짝반짝 빛나기도 한다. 비구름 걷히며 길바닥이 마르면 아이들 이끌고 자전거마실을 다닌다. 비가 그친 김에 마을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벗기며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장마철에 나는 밝은 햇빛은 축축한 집을 포근하게 감싼다. 축축한 기운을 가만히 털어 준다. 마룻바닥에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생각한다. 해가 없는 삶을 어떤 사람이 생각할 수 있을까. 바람이 없는 삶을 어떤 사람이 꿈꿀 수 있을까. 빗물과 눈송이가 없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바랄 수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자면 다른 무엇보다 해, 바람, 비, 여기에 흙과 풀과 나무, 또 벌레와 짐승과 새 모두 골고루 어우러져야 한다. 이렇게 모두 사이좋게 얼크러질 때에 사람은 사람답게 가장 맑으며 밝게 웃고 노래하면서 춤을 출 수 있다.


  해가 없거나 바람이 없거나 빗물이 없는데,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흙과 풀과 나무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떤 글을 쓸 만한가. 벌레와 짐승과 새를 알뜰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듣는다 할까.


  빗소리를 읽는다. 햇살을 읽는다. 바람결을 읽는다. 풀내음과 흙빛과 나무노래를 읽는다. 벌레와 짐승과 새가 마련하는 보금자리를 읽는다. 그리고,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읽는다.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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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을 걷다

 


  책방 앞을 지나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책방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책방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내가 책방 옆을 지나가는구나.’ 하고 느끼는 날 있을 테고, ‘오늘은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하는 날 찾아올 수 있어요.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르고, 내가 어떤 책을 고를는지 모르지만, 마냥 책방 문 열고 들어가서 책시렁을 가만히 돌아볼 날 찾아오리라 믿어요.


  빵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빵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찻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찻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곁에 늘 있는 조그마한 빵집과 찻집이 나를 부르듯, 마을에 깃들어 오래도록 제자리 지키는 책방 한 곳을 마음에 두면, 시나브로 책내음이 나를 부릅니다.


  마을에 숲이 있으면, 숲 앞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숲에 한 발자국 들일 수 있어요. 마을에 냇물이 흐르면, 냇물 앞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신을 벗고 냇물에 발을 담글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 어떤 집과 가게가 있는가를 느껴야지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 풀과 꽃과 나무가 어떻게 어우러졌는가를 느껴야지 싶어요. 이웃을 살피고 숲을 헤아립니다. 동무를 생각하고 수많은 숨결을 떠올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집과 학교 사이를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집과 학교 사이를 걸어서 다니는 거님길 둘레에는 자동차가 되도록 적게 다니거나 안 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조용한 바람을 느끼고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걸어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걷는 이 길에 예쁜 책방 몇 군데 있어, 마음을 쉬거나 살찌우거나 다스릴 만한 이야기 즐겁게 찾을 수 있기를 빌어요.


  책방이 있기에 책을 만나요. 책방이 있어 마을이 환하게 웃어요. 책방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새록새록 감돌아요. 책방과 함께 삶을 노래해요.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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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31) -의 계절 3 : 수유의 계절

 

매년 수유의 계절이 되면 열매의 무게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다
《이가라시 다이스케/김희정 옮김-리틀 포레스트 (1)》(세미콜론,2008) 5쪽

 

  ‘매년(每年)’은 ‘해마다’로 다듬고, ‘계절(季節)’은 ‘철’로 다듬어 줍니다. “휘어질 정도(程度)다”는 “휘어지곤 한다”나 “휘어질 만큼 가득하다”나 “휘어지도록 가득하다”로 손봅니다. “열매의 무게로”는 “열매 무게로”나 “열매들 무게로”로 손질합니다.

 

 수유의 계절이 되면
→ 수유가 익는 철이 되면
→ 수유를 따는 철이 되면
→ 수유철이 되면
 …

 

  감이 익을 무렵이면 “감이 익을 무렵”이면서 “감이 익는 철”이요 “감철”입니다. 능금이 익을 때라면 “능금이 익을 때”이면서 “능금이 익는 철”이요 “능금철”입니다.


  우리는 ‘수박철’과 ‘딸기철’과 ‘참외철’과 ‘호박철’과 ‘살구철’과 ‘대추철’ 들을 이야기하면서 요즈음 날씨가 어떠한지를 헤아리곤 합니다. 입맛에 따라 철을 생각하고, 산과 들에서 무르익는 열매를 떠올리며 철을 생각합니다.

 

 (열매나 푸성귀나 온갖 먹을거리 이름) + 철
 수유철 / 능금철 / 배추철 / 감자철 / 바지락철 / 전어철

 

  이제는 웬만한 가게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로 없이 온갖 열매가 널리고 갖은 푸성귀가 펼쳐집니다. 굳이 철을 살피지 않더라도 언제나 딸기를 먹고 수박을 먹고 바나나를 먹습니다. 집이나 일터 또한 요즈음 철이나 날씨가 어떠한가를 몰라도 한결같이 따뜻하거나 시원합니다. 자가용으로 움직이든 전철이나 버스로 움직이든, 우리는 바깥 날씨를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꼭 바깥 날씨를 알뜰히 느끼거나 깨달아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몸이 바깥 날씨를 잊거나 잃는 동안, 저마다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잊거나 잃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잊거나 잃는 무엇인가는 삶에서 또다른 무엇을 잊거나 잃도록 줄줄이 이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삶다운 삶을 잊거나 잃으면, 삶을 밝히는 생각을 함께 잊거나 잃는다고 느껴요. 다른 누가 괴롭히거나 들볶지 않았어도 우리 스스로 우리 터전을 일구는 생각을 잊거나 잃는다면, 아름다운 뜻과 맑은 넋을 담아낼 말과 글 또한 우리 손으로 내버리거나 내치는 셈이 되리라 느껴요. 4342.8.2.해/4346.7.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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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유철이 되면 열매 무게로 가지가 휘어지곤 한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87) -의 계절 4 : 안개의 계절

 

안개의 계절이 돌아왔다
《강제윤-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2013) 87쪽

 

  “-의 계절” 같은 말투가 나타나는 까닭은 아무래도 ‘계절’이라는 한자말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말 ‘철’을 쓰더라도 “안개의 철”처럼 엉뚱하게 쓰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때에는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토씨 ‘-의’를 사이에 넣는 말투가 알맞거나 올바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름날 장마가 찾아오면 모두 ‘장마철’이라 말합니다. “장마의 철”처럼 말하지 않아요. 여름이 다가오면 ‘여름철’이라 하지, “여름의 철”처럼 말하지 않아요.


  안개가 잔뜩 끼는 철이 돌아오면 ‘안개철’입니다. “안개의 철”이 아닙니다.

 

 안개의 계절
→ 안개철
→ 안개 피는 철
→ 안개가 피어나는 철
 …

 

  꽃이 피기에 ‘꽃철’입니다. 열매가 익는 가을은 ‘열매철’이라 할 만합니다. 대학입시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입시철’을 말해요. 아마 누군가는 “입시의 계절”이라 말하면서 일본 말투가 슬프게 끼어드는 모습을 못 깨달을 수 있을 테지만, 퍽 많은 한국사람들 입에는 “입시의 계절”보다 ‘입시철’이 익숙해요.


  시골에서는 ‘농사철’입니다. “농사의 철”이 아닙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 나라에서 살아온 여느 사람들 수수한 말을 떠올리면서, 오늘 우리가 쓸 가장 사랑스럽고 빛나는 말을 생각합니다. 4346.7.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안개철이 돌아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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