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7.4.
 : 밤길이 무섭니

 


- 아침부터 내린 비는 저녁이 되어 멎는다. 비오는 날 아이들은 비 맞고 놀기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벼락이 끝없이 치고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분다. 이런 비라면 아이들이 마당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큰아이는 우르릉릉 꽝 하고 치는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이런 소리에 그닥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싶은데, 큰아이는 좀 다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태어나서 갓난쟁이 적에 지낸 곳이 다르기 때문일까. 둘 다 많이 어린 아이들이지만, 큰아이는 세 살 때까지 도시에서 살았고, 작은아이는 멧골자락에서 태어나 세 살인 오늘까지 시골에서 살아가니 둘이 다를 수 있을까.

 

- 벼락이 치는 날이기에 셈틀 전원을 뽑고, 인터넷줄을 뽑는다. 마당에 내려가서 빗놀이 즐기지 못하니, 집에서 영화 보고 싶다 말하지만, 이런 날은 냉장고 빼고는 아무것도 전기를 먹이지 않는다. 날씨가 이러면 조용히 지내야지. 그림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면 되지.

 

- 저녁이 되어 빗줄기 멎고 벼락도 치지 않기에, 하늘을 멀리멀리 바라본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날씨 소식은 영 못 미덥다. 우리 마을 날씨는 하늘을 살피고 풀잎과 벌레와 개구리를 살펴야 잘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날씨 소식으로는 우리 마을에 비가 온다고 되었으나, 막상 비가 안 오기 일쑤요, 저녁까지 비가 온다고도 나오지만, 정작 해가 고개를 내밀면서 방긋 웃을 적이 많다. 비가 멎은 지 두어 시간 지났으나, 인터넷 날씨 소식과 내가 몸으로 느끼는 날씨는 사뭇 다르다. 곰곰이 생각한다. 삼십 분만 더 기다리자. 삼십 분쯤 더 기다리면 길바닥 물기 제법 마를 테고, 그러면 우리 아이들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쯤 천천히 다녀올 만겠지.

 

- 해가 기운다. 구름이 두껍게 낀 하늘이지만, 해가 기우는 줄 느낄 수 있다. 저녁을 차려 아이들을 먹인다. 막 낮잠(이라기보다는 이른저녁잠)에서 깬 작은아이는 허둥지둥 퍼먹는다. 보라야, 네가 잠에서 깰 때에는 배고파 하겠구나 싶어, 꼭 그때에 맞추어 밥도 국도 해 놓았지. 참말 작은아이는 밥그릇만 쳐다보면서 바지런히 입으로 밥을 퍼넣는다.

 

-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밥그릇 싹싹 비운다. 자, 이제 그럼 자전거마실을 가 볼까. 바깥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운다. 깜깜하다. 작은아이는 어둡든 밝든 자전거를 탄다 하면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냥 좋다. 큰아이는 자전거를 탄다니 좋아하면서도 ‘밤이라 무섭다’고 한다. 벼리야, 밤은 그저 밤일 뿐이야. 너희가 저녁 아홉 시 반인 이맘때까지 잠을 안 자니, 이렇게 가볍게 자전거마실을 다녀올 뿐이야. 저녁을 먹고 배가 부르면 아이 좋네 노래하면서 조금 놀다가 자면 되잖니. 그러나, 너희는 열 시 열한 시 되어도 안 잘 낌새라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나온단다.

 

- 밤길을 달린다. 밤길에 자동차도 사람도 없다. 개구리 노랫소리만 들판과 마을에 가득하다. 불을 끄고 달릴까 하다가, 큰아이가 밤길을 좀 많이 무서워 하는구나 싶어 그냥 켠 채 달린다. 큰아이는 여느 때에는 조잘조잘 신나게 떠들고 노래를 하는데, 밤길에는 무섭다며 아뭇소리 없다.

 

- 해 떨어진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마실을 잘 안 다녔기 때문일까. 큰아이가 불빛 없이 깜깜한 시골마을 밤을 훨씬 어릴 적에 제대로 누린 적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내는 이 마을에서 밤마실을 꾸준히 다닌다면 큰아이도 어둠을 익숙하게 받아들여, 밤이 무서울 까닭 없이 밤은 밤일 뿐인 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큰아이는 뒤에서 “아버지, 빨리 달려요.” 하고 말한다. 무서우니까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리이다. 그런데, 벼리야, 밤에는 밤 빛깔이 있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렴. 논에서 개구리들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렴. 자동차 하나 없이 호젓한 이 시골길을 우리들이 오롯하게 누린단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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