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 나는 밝은 햇빛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시골과 도시에 내리는 비는 다르다. 도시에서는 빗물을 모두 하수구로 흘러들도록 해서 재빨리 바다로 빠지도록 할 텐데, 시골에서는 이 빗물이 논과 밭과 숲에 골고루 떨어져 온 들판을 촉촉히 적시기를 바란다. 시골마을 모든 흙일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람들 따사로운 사랑이 어린 손길을 곁들여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거둔다.
이 장마철에 사이사이 햇살이 빼꼼 비치곤 한다. 밤에는 틈틈이 별이 반짝반짝 빛나기도 한다. 비구름 걷히며 길바닥이 마르면 아이들 이끌고 자전거마실을 다닌다. 비가 그친 김에 마을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벗기며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장마철에 나는 밝은 햇빛은 축축한 집을 포근하게 감싼다. 축축한 기운을 가만히 털어 준다. 마룻바닥에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생각한다. 해가 없는 삶을 어떤 사람이 생각할 수 있을까. 바람이 없는 삶을 어떤 사람이 꿈꿀 수 있을까. 빗물과 눈송이가 없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바랄 수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자면 다른 무엇보다 해, 바람, 비, 여기에 흙과 풀과 나무, 또 벌레와 짐승과 새 모두 골고루 어우러져야 한다. 이렇게 모두 사이좋게 얼크러질 때에 사람은 사람답게 가장 맑으며 밝게 웃고 노래하면서 춤을 출 수 있다.
해가 없거나 바람이 없거나 빗물이 없는데,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흙과 풀과 나무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떤 글을 쓸 만한가. 벌레와 짐승과 새를 알뜰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듣는다 할까.
빗소리를 읽는다. 햇살을 읽는다. 바람결을 읽는다. 풀내음과 흙빛과 나무노래를 읽는다. 벌레와 짐승과 새가 마련하는 보금자리를 읽는다. 그리고,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읽는다.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