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굳은살 두껍게 박힌 손으로
흙을 갈고 풀을 뜯으며
햇볕에 땀흘리고 바람에 쉬던
살결 까만 두 사람 있어,

 

흙내음 솔솔 나고
풀잎마냥 보드라우며
해처럼 환하고
바람처럼 싱그러운,

 

아기를 낳아,

 

온 사랑 들이고
온갖 웃음 얻어
보금자리 푸르게 가꿉니다.

 


4346.10.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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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거기에 그들처럼 -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2000-2010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2

 


게바라는 사진기를 안 들었다
―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
 느린걸음 펴냄, 2010.10.1.

 


  체 게바라 님은 처음에는 총을 들고 혁명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면, 총을 들어 이룬 혁명을, 이 다음에는 어떻게 일구었을까요. 총을 내려놓고는 호미와 연필을 들었어요. 어쩌면, 호미와 연필이 아닌 망치와 연필을 들었달 수 있고, 스패너 또는 드라이버하고 연필을 들었달 수 있습니다.


..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었다 ..  (289쪽)


  총칼에 탱크와 미사일까지 거느린 독재권력자를 몰아내려면 총을 나란히 들어야 할 수 있습니다. 무시무시하게 총질을 해대는 독재권력자는 총맛을 보아야 비로소 눈을 번쩍 뜰는지 몰라요. 평화로운 손길이나 따스한 사랑을 모르니, 평화로운 손길을 내밀거나 따스한 사랑을 베풀어도 하나도 못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폭력을 폭력으로 맞설 적에는 폭력을 휘두르는 쪽에서 더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앙갚음하곤 합니다. 폭력을 다스리는 길은 폭력밖에 없다고 여겨, 스스로 폭력굴레에 갇히기까지 해요. 고문기술자라는 이름을 내걸며 독재정권 지키는 데에 한몫 단단히 한 바보스러운 사람들이 있어요. 이들이 사람들을 고문한 대로 이들을 고문하면, 이 고문기술자들은 잘못을 뉘우칠까요. 이녁이 이제까지 어떤 짓을 했는지 제대로 깨달아 크게 뉘우치면서 고개를 숙일까요.


  어떤 전쟁도 전쟁으로 몰아내지 못합니다. 전쟁으로 전쟁을 몰아내면 다시 전쟁이 찾아듭니다. 전쟁무기 내세워 땅을 넓히려 하면, 맞선 쪽에서도 똑같이 전쟁무기 앞세워 땅을 되찾으려 할 뿐이에요. 전쟁무기는 평화가 아닌 전쟁에만 이바지합니다. 군대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지킵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평화를 누리려 한다면, 삶과 넋과 말이 모두 평화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다. / 아니, 사랑이 없다면, /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  (289쪽)

 

 


  지구별에 평화를 불러들이는 몸짓은 언제나 따사롭습니다. 지구별에 사랑이 감돌도록 이끄는 손짓은 늘 보드랍습니다. 지구별에 꿈이 푸르게 우거지도록 북돋우는 마음짓은 노상 너그럽습니다. 전쟁을 하면서 즐겁게 웃지 못해요. 내가 남을 죽이면, 남도 나를 죽이기 마련이에요. 피로 얻은 열매는 피로 갚을 뿐입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면, 남도 나를 사랑할밖에 없어요. 사랑으로 얻은 열매는 사랑으로 돌려주기 마련이에요.


  전쟁은 전쟁 씨앗을 뿌려 새 전쟁 피어나게 합니다. 사랑은 사랑 씨앗을 드리워 새 사랑 자라나게 합니다. 우리 손에는 무엇을 쥐어야 할까요. 우리 손으로 무엇을 가꿔야 할까요. 우리 손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예부터 도시를 이루어 권력을 한손에 거머쥔 이들은 언제나 전쟁 미치광이 되었습니다. 어느 역사책을 보더라도 도시에서 권력을 누리는 이들은 노상 전쟁에 미쳐서 전쟁짓 하느라 날뛰었어요.


  예부터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고 풀을 먹던 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노래하고 평화롭게 살았어요. 어느 역사책을 보더라도 시골에서 조용히 흙과 풀을 누리며 사랑을 노래하고 평화롭게 살던 이들 모습은 하나도 안 담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전쟁을 벌이며 역사책을 써요. 사람들은 평화롭고 사랑스레 살 적에는 굳이 역사책을 안 써요. 사람들은 전쟁 미치광이가 되면서 학문을 하고 지식을 넓히며 권력을 굳힙니다. 사람들은 평화롭고 사랑스레 흙과 풀을 누리는 동안 학문도 지식도 권력도 부질없는 줄 슬기롭게 깨달아요.


  씨앗을 심어 알뜰히 돌보며 거두면 될 뿐이에요.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알면 돼요. 따로 책으로 써야 하지 않아요. 풀과 꽃과 나무마다 사랑스레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돼요. 굳이 학술이름이니 라틴말이름이니 욀 까닭이 없어요. 무슨 갈래로 나누고 어떤 갈래로 그러모아야 하지 않아요.

 


.. 세계의 진실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다. / 사랑은 곧바로 쏘아진다! / 자신의 가슴을 관통 당하지 않으면 / ‘불꽃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290쪽)


  이웃으로 지내면 서로를 살가이 깨달으면서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이웃으로 지내지 않으면 서로를 제대로 모를 뿐더러 얕게 훑을 뿐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이웃으로 여겨 살가이 지내면 나무살이를 아주 깊고 넓게 깨닫고 압니다. 나무 한 그루를 오직 학문으로 다루거나 파헤치려 한다면, 나무를 베어 나이테를 읽거나 나무 성분을 살핀다 하더라도 나무살이를 제대로 모를 뿐더러 나무를 죽이고 말아요.


  제비 한 마리를 잡아다가 배를 갈라야 제비를 잘 알까요? 제비 표본이나 박제를 만들어야 제비를 연구할 수 있을까요? 제비와 이웃이 되어 제비가 둥지를 지을 만한 처마가 있는 시골집에서 흙을 만지며 언제나 제비랑 인사를 하고 지내면, 대학교를 안 다니고 논문을 안 쓰더라도 어느 누구보다 제비를 잘 알고 제비하고 사랑스레 삶을 짓습니다.


  알자면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알려면 이웃이 되어야지요. 설문지 들고 캐묻는대서 알지 않아요. 보고서 쥐고 달달 외운대서 알 수 없어요. 인터뷰를 하면 알 수 있나요? 하나도 알 수 없습니다. 곁에서 이웃이나 동무로 지내야 알아요. 곁에서 한솥밥 먹으며 어깨동무를 해야 비로소 알아요.


  누군가를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누군가하고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이웃이 되어 살가이 사귀고 아낄 때에 비로소 차근차근 알 수 있어요. 서로 이웃이 되지 않으면, 서로 마음으로 아끼지 않으면, 그럴듯한 모습은 사진으로 찍더라도, 이야기가 될 사랑과 빛과 넋과 삶은 사진에 조금도 못 담습니다.


.. 시인이자 노동자이자 혁명가로 /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  (291쪽)

 

 


  노동자이자 혁명가로 살다가 노동도 혁명도 내려놓아야 한 채 시인이 되었던 박노해 님이 모든 굴레와 짐을 내려놓으며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이웃을 만나러 길을 떠나고, 이웃을 만나 웃고 울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떠난 길은 아니에요. 사진을 찍어 사진책 내놓으려는 길은 아니에요. 다큐사진을 이룬다거나, 고발이나 폭로를 하려는 길은 아닙니다. 그저 이웃을 만나러는 길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요. 예쁜 이웃을 만나면서 사진기를 손에 듭니다. 살갑게 이웃사랑을 하면서 저절로 사진기를 품에 안습니다.


.. 사진가와 지역은 운명적인 관계가 있다. /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 내 두 발은 왜 그리로 이끌려 갔던 걸까. / 그들은 왜 나를 그 자리로 불러세운 걸까 ..  (291쪽)


  사진책 《나 거기에 그들처럼》(느린걸음,2010)을 읽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곳에 그들하고 똑같이 있어요.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고, 그들은 우리한테 이웃으로 찾아와요. 우리는 그들, 아니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웃은 우리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른 사랑을 꽃피웁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돌보고 아끼며 보듬습니다. 멀리 떨어진 데에서 살아가는 듯하지만, 모두 똑같은 지구별에서 살아갑니다. 모두 똑같은 햇볕을 받고, 모두 똑같은 바람을 마셔요. 모두 똑같은 지구별 바다와 냇물이 베푸는 물을 마시고, 모두 똑같은 지구별 나무와 풀이 베푸는 푸른 숨결을 맞아들여요.


  체 게바라 님은 사진기를 안 들었습니다. 체 게바라 님은 낫과 연필을 들고 땀흘리느라 바빴습니다. 혁명이란 삶이고, 삶인 혁명을 이루려면 총으로는 안 될 뿐 아니라, 언제나 호미로 흙을 일구고 보듬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이야기를 차곡차곡 적어서 이웃들과 노래로 누려요. 호미로 삶을 짓고 연필로 삶을 노래합니다. 호미로 삶을 가꾸고 연필로 삶을 사랑하지요.


  박노해 님이 손에 쥔 사진기는 연필과 같은 구실을 할까요. 박노해 님이 손에 잡은 사진기는 연필과 같이 삶을 노래하거나 삶을 사랑하는 빛이 될까요. 4346.1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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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나날 지나도 읽는 책

 


  교과서나 자습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은 책이 아니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런 종이꾸러미는 몇 해 지나지 않아 목숨을 다하니까. 이런 종이꾸러미는 한두 해만 지나도 헌책방 책시렁에 못 꽂히니까. 이런 종이꾸러미는 한두 해쯤 들여다보고 모조리 종이쓰레기로 다루니까. 그런데, 교과서나 자습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을 번쩍번쩍 무지개빛으로 찍기 마련이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는 늘 가방에 집어넣고 다녀야 하며, 학교에서도 이 종이꾸러미만 펼쳐서 무언가 배우고 가르치도록 한다. 책이라 할 수 없는 종이꾸러미를 가르치고 배운다.


  마음을 밝히거나 살찌울 수 있는 ‘책’이라면, 첫째 도서관에서 건사한다. 둘째, 헌책방에서 알뜰히 보듬는다. 그러면, 교과서나 자습서나 참고서나 문제집 같은 종이꾸러미를 도서관에서 사들여서 갖추는가? 입시제도 바뀌는 틀을 아랑곳하지 않고 헌책방에서 이런 종이꾸러미를 책꽂이에 곱게 얹거나 꽂는가?


  이 나라에 책삶이 자리잡지 못하는 까닭은 책 아닌 종이꾸러미를 너무 끔찍하도록 많이 만들 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책 아닌 종이꾸러미를 달달 외우느라 막상 책을 읽지 못하도록 내몰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긴 나날이 지나도 읽을 책을 아이들이 곁에 두고 삶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긴 나날이 지나도 읽을 만한 책으로 삶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오로지 대학입시 하나 때문에 아이들한테 책을 멀리 하도록 내몬다. 어른들 또한 오로지 돈벌이 노릇 하겠다며 대학입시만 읊는 교사 되어 교과서붙이만 가르치려 한다. 이 나라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 아이도 어른도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라. 고등학교 마친 아이들이 다섯 해 뒤에 교과서를 다시 읽을 까닭 있을까. 고등학교 마친 아이들이 열 해 뒤에 자습서를 다시 배워야 할 까닭 있을까. 시험문제 때문에 외워야 하면 책이 아니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느끼며 꿈을 키우도록 이끌 때에 비로소 책이다. 톨스토이 책을 백 해가 넘어도 꾸준히 읽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정약용 책을 백 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읽히고 읽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책이기에 읽힐 수 있고, 책이기에 읽을 만하다. 책이 아닐 때에는 읽지 못하고 외워서 ‘내 이웃을 밟고 올라서는 더 높은 점수’를 따는 바보짓에 얽히고 만다.


  아이들한테 책 아닌 종이꾸러미 내밀며 닦달하면 닦달할수록 책하고 멀어지고 만다. 어른들 스스로 책 아닌 종이꾸러미 자꾸 만들면서 아이들을 들볶으면 들볶을수록 이 나라는 어둡고 슬픈 굴레에서 허덕이고 만다. 읽으려면 책을 읽어야지. 가르치고 배우려면 책을 손에 쥐어야지. 긴 나날 지나도 읽을 책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하고, 긴 나날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빛이 나며 아름다운 책을 학교에서 알리고 나누는 일을 해야 참교육이고 참배움 될 수 있다. 참삶 밝히는 참빛을 들려줄 때에 참길을 연다. 4346.1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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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013-12-09 14:28   좋아요 0 | URL
매년 일간지에 대학 순위가 발표되고, 출신 대학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이 땅에서는 책 읽기 또한 입시의 한 부분으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새벽에 학교 가서 밤중에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독서는 또 하나의 짐일 뿐입니다.

파란놀 2013-12-09 15:0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아름다운 책읽기'가 아닌 '짐스러운 입시지옥'에 얽매이는 동안에는
참말 아름다운 삶하고도 끝내 멀어지리라 느껴요...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064) 마실가다

 

늙은 어머니들이 밖에 나가 어슬렁거릴 수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또한 마실갈 만한 곳도 없다
《송건호-한나라 한겨레를 위하여》(풀빛,1989) 26쪽

 

가족들끼리 귤 따기 나들이를 와도 점심 먹을 곳이 없습니다
《고다 미노루/장윤 외 옮김-숲을 지켜낸 사람들》(이크,1999) 59쪽

 

  한국말사전에는 ‘마실가다’라는 낱말을 안 싣습니다. 학자나 지식인은 이런 말을 거의 안 쓰기에 한국어사전에 실리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이 말을 써요. 시골말을 한국말사전에 담으려 한다면, 이 낱말이 빠질 수 없고, 붙여서 쓰리라 생각해요.


  곰곰이 살피면, 한국말사전에는 ‘놀러가다’ 같은 낱말도 안 싣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흔히 쓰는 낱말이지만, 막상 이런 낱말을 한국말사전이 품지 않아요. 아이도 어른도 안 쓰는 뜬금없는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 버젓이 싣지만, 사람들이 익히 쓰거나 널리 쓰는 낱말을 제대로 못 품습니다.

 

마실 : ‘마을’을 뜻하는 사투리
마을
1. 여러 집이 (한동아리를 이루어) 모여 사는 곳
 - 우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착하다
 - 동백꽃이 곱게 피는 마을
2. 이웃에 놀러 가는 길
 - 집에만 있지 말고 마을 좀 다녀요
 - 마을 다녀올 테니 집 좀 보렴
나들이
1. 집을 떠나 가까운 곳에 살짝 다녀오는 일. 바람을 쐬거나 구경을 하거나 놀 생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려고 집을 나가는 일
 - 친정 나들이
 - 서울 나들이
 - 모처럼 할머니와 나들이를 나섰다
2. 나가고 들어오는 일
 - 새끼를 깐 뒤 어미 새는 나들이가 잦다

 

  저는 책방으로 나들이를 가거나 마실을 갑니다. ‘책방마실’이라는 낱말을 지어서 쓰고, ‘헌책방 나들이’ 같은 말도 곧잘 씁니다. 책방으로 마실을 다니듯, ‘골목마실’을 하고 ‘사진마실’도 해요. ‘자전거마실’이라든지 ‘걷기마실’도 합니다. 어디를 다닌다고 할 적에 ‘-마실’을 붙이면 잘 어울리는구나 싶어요. ‘나들이’라는 낱말을 붙여도 잘 어울려요. ‘사진 나들이’나 ‘자전거 나들이’라든지 ‘서울 나들이’처럼 쓸 수 있습니다.


  꼭 ‘여행(旅行)’이나 ‘외출(外出)’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먼 옛날부터 누구나 쓰던 쉬운 한국말이 있어요. 시골에서 누구나 쓰는 살가운 한국말이 있어요. 말뜻을 살리고 느낌을 살피면서 알맞게 말넋을 북돋웁니다. 좋은 이야기벗을 만나러 이야기마실 다니기도 해요. 밥집마실이나 밥마실 갈 수 있고, 놀이마실이나 소꿉마실 다닐 수 있어요. 숲마실이나 들마실이나 바다마실처럼,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운 마실 누릴 만하고, 꽃마실이나 나무마실 누리면서 즐겁습니다. 별마실 다니는 이들 있을 테고, 사랑하는 님을 만나러 사랑마실 다니기도 할 테지요. 4338.5.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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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들이 밖에 나가 어슬렁거릴 수도 없고 말도 나누지 못한다. 또한 마실갈 만한 곳도 없다
식구들끼리 굴 따기 나들이를 와도 낮밥 먹을 곳이 없습니다

 

..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71) 나들이 2

 

일 년이면 한두 차례씩 꼭 서울 나들이를 했고 …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구 등지로 여러 차례 나들이를 하곤 했다 … 옛날 어른들이 출타를 할 때
《김명수-이육사》(창작과비평사,1985) 22, 87, 96쪽

 

  회사를 다니는 이들은 으레 ‘출장(出張)’을 갑니다. 어른들은 ‘출타(出他)’를 한다고도 말해요. 그런데, 볼일을 보러 다니는 일도 ‘나들이’입니다. 큰 도시로든 가까운 이웃 다른 마을로든 나들이를 다녀요.

 

 서울 나들이
 서울마실

 

  ‘나들이’를 쓸 적에는 띄어서 쓸 때에 잘 어울리고, ‘마실’을 쓸 적에는 붙여서 쓸 적에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어떻게 말하든 같은 일을 가리킨다 할 만합니다. 회사에서는 회사대로, 공공기관에서는 공공기관대로, 저마다 쓰는 말이 있다고 할 텐데,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꼭 한자말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한국말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앞으로는 한국사람답게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틀을 슬기롭게 세워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요, 중국말이나 일본말 아닌 한국말을 아름답고 올바르게 세울 적에 즐겁습니다. 4346.1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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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면 한두 차례씩 꼭 서울 나들이를 했고 … 이 같은 일을 풀려고 대구를 비롯해 두루 여러 차례 나들이를 하곤 했다 … 옛날 어른들이 나들이를 할 때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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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96] 지하철 승차

 


  오랜만에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다가 문에 붙은 알림글을 하나 봅니다. 왼쪽에는 “무리하게 승차하지 않기”라 적고, 오른쪽에는 “먼저 내리고 나중에 타기”라 적어요. 지하철에서 지킬 예절이라 하는데, 이 예절을 지키는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여요. 그런데, “차를 탄다”를 뜻하는 ‘승차(乘車)’는 왜 써야 할까요. 이 알림글 붙인 이 스스로 ‘내리다’와 ‘타다’를 안다면, “무리하게 타지 말기”라 적어야 올바를 텐데요. 그리고, “억지로 타지 말기”로 한 번 더 손질하면 아름다울 테고요. 지하철에서 즐겁게 무언가 지키자고 하는 이야기라면, “지하철 10대 에티켓”보다는 “지하철 예쁘게 타기”나 “지하철 즐겁게 타기”로 이름부터 잘 다스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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