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6
마사 알렉산더 지음, 서남희 옮김 / 보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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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며 빛나는 말을 아이한테 들려주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7] 마사 알렉산더,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보림,2007)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 가운데 힘이 들지 않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집일을 퍽 적게 한다 하지만, 으레 어머니들이 온갖 집일을 도맡거나 많이 맡기 마련이면서, 바깥일까지 한다면, 사랑스러운 아이를 따사로이 보듬는 넋이라 하더라도 힘이 들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하나일 때보다 둘이 벅차고, 둘일 때보다 셋이 버겁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나일 때에 누리는 기쁨이랑 둘일 때에 누리는 기쁨하고 셋일 때에 누리는 기쁨은 사뭇 달라요.

 힘이 들기 때문에 더 기쁨을 누릴는지, 힘이 덜 들 때에 더 기쁘다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이가 하나이든 둘이든 셋이든, 또는 아이가 없이 살아간다 하든, 나와 한솥밥을 먹는 살붙이를 따사로이 바라보며 보듬는 넋이요 손길이라 한다면 늘 기쁜 나날이라고 느낍니다. 따사로이 바라보지 못하거나 따뜻하게 보듬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힘들게 안 한다든지 살림돈이 넉넉하다든지 하더라도 그닥 기쁠 수 없는 나날이라고 느껴요.


.. “엄마, 내가 쓰던 의자를 왜 새로 칠해?” “아기가 태어나면 주려고 그러지.” ..  (5쪽)


 갓난쟁이 둘째가 웁니다. 품에 안아 토닥토닥 타이릅니다. 노래를 불러 주다가는 젖을 물립니다. 어린 동생과 사랑을 나누며 자라는 첫째가 웁니다. 요모조모 말썽을 부리지만, 가만히 헤아리면 어리광일는지 모릅니다. 더 바라보며 따스히 어루만지기를 바라는 몸부림일는지 모릅니다.

 젖을 물리는 어머니이기에 아버지보다 한결 보드랍거나 따사로울 수 있을까요. 열 달에 걸쳐 몸속에서 아끼며 뼈와 피와 살을 나누었기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르게 살가우면서 너그러울 수 있는가요.

 집일을 하거나 살림을 돌본대서 아이들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삶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집일을 도맡거나 살림을 아기자기 일군대서 아이들을 더 챙기거나 보살피는 삶이 되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사랑하는 넋이 아니라면 아이한테 뼈와 피와 살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젖을 물리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손길이 아니라면 아이와 노래를 부르며 포근한 넋이 되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꿈결이 아니라면 아이 손을 맞잡거나 아이를 등에 업으며 마실을 다니지 못합니다.


.. “내가 내 맘대로 엄마 침대나 흔들의자를 남한테 주면 좋겠어?” “올리버야, 미안해. 아기 때 쓰던 물건이라서 이젠 안 쓰는 줄 알았지.” ..  (10∼11쪽)


 어머니가 힘들 때에 아이들도 힘듭니다. 어머니가 즐거울 때에 아이들도 즐겁습니다. 어머니가 포근한 품으로 두 팔을 벌릴 때에 아이들은 춤을 춥니다. 어머니가 맑고 밝은 목소리로 노래할 때에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입을 벌리며 신나게 노래합니다.

 마사 알렉산더 님 그림책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보림,2007)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곧 동생을 볼 아이는 어머니한테 ‘왜 나한테 안 물어 보고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머니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아이한테 미안하다 이야기합니다.

 어머니라서 아이보다 더 잘 알지 못해요. 어머니도 이제 막 어머니이지 예전부터 어머니이지 않아요. 어머니도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가 있어요. 아이는 앞으로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테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된 다음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겠지요.

 빛나는 사랑이 어머니 손길을 타며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빛나는 믿음이 아이 손길에서 자라나면서 아이가 어버이가 된 다음 새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이란 서로서로 북돋우면서 타이르는 길입니다. 함께 어우러지는 길이란 서로서로 쓰다듬고 토닥이면서 아끼는 길입니다. 어머니는 첫째 아이랑 둘째 아이를 모두 아끼고 싶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와 동생을 나란히 좋아하고 싶습니다. 서로서로 다른 자리에 서면서 서로서로 깊고 너르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 “엄마는 네가 나가지 않으면 좋겠어. 네가 없으면 엄마는 너무너무 슬프고 외로울 거야.” “정말? 정말로 날 보고 싶어 할 거야?” “그럼 그럼, 게다가 네가 없으면 엄마는 너무너무 불쌍해질 거야.” ..  (24∼25쪽)


 아이가 외치거나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듣는 어머니이기에, 아이는 어머니가 읊거나 속삭이는 말을 차분히 듣습니다. 아이가 토라지거나 활짝 웃거나 주눅들거나 졸음에 겨울 때에 넉넉히 안고 달래는 어머니이기에, 아이는 어머니가 즐겁거나 슬픈 빛을 금세 알아차립니다.

 좋아하는 사이인 터라,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좋아하는 사이인 까닭에, 마음을 빛내는 말마디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을 먹는 아이는 사랑을 새롭게 키웁니다. 사랑을 받은 아이는 사랑을 고스란히 베풉니다. 사랑을 먹는 아이로 살면서 어머니 자리에 서기에, 내 아이하고 사랑잔치를 엽니다. 사랑을 받은 아이로 지내며 어머니 노릇을 하니까, 내 아이하고 사랑씨앗 하나 예쁘게 건사합니다.

 말 안 들으며 골을 부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너 말야, 자꾸 말 안 들으면 내쫓을 테야.” 하고 꾸짖기에, 아이는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어머니를(아버지를) 내쫓을 테야.” 하는 말을 돌려줍니다.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이 앞에서 이제부터 예쁘며 빛나는 말을 예쁘며 빛나는 사랑을 담아서 들려주겠지요. (4344.11.17.나무.ㅎㄲㅅㄱ)


―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 (마사 알렉산더 글·그림,서남희 옮김,보림 펴냄,2007.1.10./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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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41) 충동적 3 : 충동적인 말

.. 충동적인 말이라 앞일은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코우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마키 우사미/서수진 옮김-사랑 소리 (1)》(대원씨아이,2009) 26쪽

 ‘앞일’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입니다. 말 그대로 앞날 일어날 일이기에 앞일이에요. 뒤에 일어나는 일은 ‘뒷일’입니다. ‘미래(未來)의 일’이나 ‘장래(將來)의 일’처럼 적지 않아도 돼요.

 ‘전(全)혀’는 ‘하나도’나 ‘조금도’나 ‘참말’이나 ‘아무’로 다듬습니다. “생각하고 있을까”는 “생각할까”나 “생각하며 지낼까”나 “생각하려나”로 손질합니다.

 충동적인 말이라
→ 불쑥 꺼낸 말이라
→ 불쑥 튀어나온 말이라
→ 갑작스러운 말이라
→ 갑작스레 한 말이라
→ 갑자기 꺼낸 말이라
 …

 나도 모르게 꺼내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고이 품다가 문득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들려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갑작스럽다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뜬금없다 여길는지 모릅니다. 참 뜻밖이라 할 만합니다. 생각하지 못하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마디가 오가면서 다 함께 마음을 엽니다. 갑자기 터져나온 말마디로 사랑을 맺습니다. 좀처럼 터뜨리지 못하던 말마디가 활짝 열리면서 새로운 넋과 꿈이 피어납니다.

 나도 모르게 한 말이라
 얼떨결에 나온 말이라


 얼결에 나오는 말이 있고, 오래도록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얼떨결에 새어나오는 말이 있으며, 그동안 하고프던 말이 있습니다.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늘 느꼈으니까요. 새롭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오갔거든요.

 누구 부추긴대서 사랑이 자라지 않습니다. 옆에서 쑤석거린대서 사랑이 샘솟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라는 사랑이고, 스스로 샘솟는 사랑입니다. 스스로 돌보는 따스한 말이요, 스스로 일구는 너그러운 글입니다. (4344.11.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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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3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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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일구는 삶, 사랑을 짓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77]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3)》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집으로 옮긴 뒤 너구리를 두 마리째 봅니다. 처음 본 너구리는 늦은 밤 짐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길에서 넙데데한 궁둥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부리나케 내빼는 너구리입니다. 사람 발길 없는 시골길에 모처럼 드물게 자동차 한 대 불을 밝히며 지나가니 깜짝 놀라며 내빼는데, 바로 옆 논으로 내빼지 못하고 찻길을 따라 한동안 달리더군요.

 다음으로 본 너구리는 해질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번에도 짐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큰길, 모로 누워 죽은 너구리입니다. 이 너구리는 차에 받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입니다. 맞은편 찻길에 모로 누웠고, 아직 떡주검까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해가 지고 길이 캄캄하면 큰길을 드문드문 오가는 자동차마다 이 너구리 주검을 알아채지 못하고는 자꾸자꾸 밟고 또 밟아 떡주검으로 만들겠지요.

 어느 시골이나 시멘트길이랑 아스팔트길이 잘 깔립니다. 시골집이래서 마당이 흙마당 그대로인 곳은 드뭅니다. 흙을 구운 기왓장이 고스란히 남은 집은 드뭅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 시멘트 아닌 흙을 구운 기왓장이 남은 집을 적잖이 보았으나, 낡고 오래되어 무너질까 걱정스럽대서 싸그리 밀어 없애는 모습까지 보기 일쑤였습니다.

 시멘트를 깐 논밭에서는 벼도 푸성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합니다. 어느 흙일꾼도 논밭에 시멘트를 깔지 않습니다. 잡풀이 자라지 말라며 밭에 시멘트를 까는 사람은 없습니다. 잡풀이 나더라도 흙땅에 풀약을 칠 뿐, 시멘트를 깔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흙이 있는 데에서 얻습니다. 풀과 나무는 흙이 있는 데에서 자랍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는 흙에 알을 낳습니다.

 흙이 있고 물과 바람이랑 햇볕이 있어야 합니다. 흙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물과 바람과 햇볕을 먹으며 튼튼해집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물에서 숨을 얻고 물속으로 비치는 햇살을 먹으며 씩씩해집니다.


- “뿌리 조금 끊기는 건 걱정 말아요. 모는 그 정도로는 끄떡없으니까.” (20쪽)
- “어쩌다 보니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논이 있어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야. 그래도, 가을이 되어 추수철이 오면 뭐랄까, 그게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러니까 마음이 들뜨는 게, 하루 종일 쳐다만 봐도 좋은 그런.” (34쪽)
- “쌀뿐만 아니라 모든 작물은 인간 생명의 양식이잖아요! 농업은 그 양식을 생산하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잖아요!” (58쪽)


 풀은 마음껏 돋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풀을 성가셔 하면서 시멘트랑 아스팔트를 흙땅에 덮지만, 풀은 시멘트와 아스팔트 깔린 데에서도 틈바구니를 찾아 고개를 내밉니다. 나 보란 듯이, 아니 나를 보라며 고개를 내밉니다. 온통 쇳가루와 고무바퀴와 플라스틱이 넘치는 도시에서, 이 도시사람들 숨통이 막힐까 걱정스러이 여기는 들풀이 힘차게 고개를 내밉니다.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들풀이 없다면, 도시사람은 벌써 숨막혀 죽거나 바보가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 풀약을 칩니다. 논이고 밭이고, 잔뜩 돋는 풀을 어찌하지 못하니까 풀약을 칩니다. 곡식과 푸성귀가 크게 자라야 하고 알이 굵어야 하니까, 다른 풀한테 흙기운을 내줄 수 없습니다. 내다 파는 푸성귀와 곡식이 더 매끈하게 빠지고 큼직해야 하니까 풀을 뽑고 풀을 베며 풀을 죽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 만한 일자리를 찾습니다. 곧, 더 값싸고 더 큼직하며 더 예뻐 보이는 푸성귀에 손이 갑니다. 더 알차고 더 참다우며 더 깨끗한 푸성귀에 손이 안 갑니다. 이리하여, 도시사람한테 곡식이랑 푸성귀를 내다 팔며 돈을 벌 시골 흙일꾼은 풀약을 칩니다. 도시사람 바라는 대로 더 값싸고 더 큼직하며 더 예뻐 보이는 곡식과 푸성귀를 ‘억지로 만들어야’ 하기에, 그만 흙을 괴롭히고 흙을 들볶으며 흙을 죽이는 길을 걸을밖에 없습니다.


- “알아요.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나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그럼!” “아니요,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역시 안 되겠다 싶어요.” “어, 어째서?” “나, 농사짓는 집엔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45쪽)
- “겨우 기계에 적응했다 했더니, 이번엔 쌀이 남아돌아 논을 줄이라는 거예요. 벼농사로 표창장까지 받은 사람에게 이번엔 농사를 짓지 말라는 거죠.” “시키는 대로 논 면적을 줄이면 또 보조금을 내주지. 농기계를 잔뜩 떠넘기던 녀석들이 말이야.” “결국 아버지는 대체 작물 농사에 실패했고 또다시 빚을 졌어요.” (50쪽)


 흙에 풀약을 치면 풀은 이내 죽습니다. 비바람과 햇살이 풀약을 씻어내면 풀은 다시금 기운을 차려 새싹을 틔웁니다. 흙일꾼은 다시 풀약을 칩니다. 새로 돋은 풀은 그만 다시 죽습니다. 이러다가 비바람과 햇살이 풀약을 또 씻으면 풀은 또 자랍니다.

 풀약을 먹은 풀이 죽듯, 풀약을 사람들 먹는 밥에 치면 사람이 죽습니다. 농약을 마신 흙일꾼은 곧장 숨이 끊어집니다. 목이 타는 괴로움에 시달리며 죽습니다.

 농약이 스멀스멀 밴 곡식이나 푸성귀를 먹는 여느 사람은 금세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몸속에 농약 기운이 천천히 쌓이면서 천천히 몸이 무너집니다. 내 몸 하나 천천히 무너지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내 몸에 쌓인 농약과 중금속 들은 내가 낳을 아이들 몸에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오늘날 아이들 누구나 아토피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 누구나 아토피에 걸릴 수밖에 없으니, 병원 장사는 언제까지나 돈벌이가 잘 됩니다. 화학공장은 ‘살리는 약’과 ‘죽이는 약’을 함께 만듭니다. 그런데, ‘살리는 약’이 얼마나 살리는지는 알쏭달쏭합니다.


- “하지만 코시히카리나 사사니시키도 유기농 재배를 하는 건 아니야. 그래도 매년 훌륭한 쌀을 수확하고 있다고. 농약이며 화학비료도 너무 많이 쓰지만 않으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그래, 사실 유기농은 무리야.” “나츠코, 우린 쌀뿐만 아니라 보리며 누에콩 같은 것도 농약을 써 가며 짓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작물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얘긴 들어 본 적이 없어. 우리 쌀이 위험하다면 지금쯤 일본 인구는 반으로 줄었을 거야.” “누가 아니래. 하하하.” “반으로 줄면 농약을 안 쓸 건가.” “응?” “죽는 사람이 나와야, 그때야 비로소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달을 텐가 말이야. 죽는 사람이 나오는 건 20∼30년 후일지도 몰라.” (123∼124쪽)
- “(농약이) 뿌려졌어. 타츠니시키에도.” “얼마 안 되는 양이야! 괜찮아! 독약도 아닌데 뭘 그래?” “독약이야.” “(공중 액체분사 농약을 맞은 나비가 죽은 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어.” “그, 그게 뭐 어때서! 벼를 지키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농약이.” (170∼171쪽)



 풀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얼마 안 되는 풀약을 먹고는 꼬르륵 숨을 거둡니다. 아니, 얼마 안 되는 풀약을 먹고는 금세 까맣거나 누렇게 타서 말라죽습니다.

 풀약 만드는 화학공장에서는 벼나 다른 곡식이나 푸성귀는 타서 말라죽지 않도록 애씁니다. 이른바 ‘곡식과 푸성귀를 지키는 풀약’이라 할 만합니다.

 오늘날 한국땅 어른들은 당신 아이들을 입시학원과 입시학교에 몰아넣습니다. 오늘날 한국땅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과 학교는 ‘삶을 배우는 터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당’이 아닙니다. ‘삶을 일구는 곳’이 아니에요.

 참 용한 일입니다만, 삶과 사랑과 사람이 없는 입시학원과 입시학교에 내몰리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바보가 된다든지 미친다든지 죽는다든지 하는 일이 드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머리가 돌고 마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거의 모든 웬만한 아이들은 용하게 살아남습니다. 입시학원과 입시학교라는 입시지옥에서 아슬아슬 숨통이 끊어지지 않아요.

 군대에 끌려가는 사내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얻어맞거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젊은 넋이 있습니다. 그러나 훨씬 많은 사내는 군대에서 잘 살아남습니다.

 다만, 궁금합니다.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았대서 이 아이들 넋이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지 궁금합니다.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으면서 총질과 칼질과 주먹질과 욕질을 배우는 군대에서 살아남았다는데, 이 젊은 사내들 얼이나 매무새가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지 궁금합니다.


-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진키치. 응, 난 그 사람 말에 화를 낼 수가 없구나. 우리 중에선 네가 제일 젊어. 앞으로 어떻게 벼농사를 지을지 어떻게 땅을 지킬지, 네가 제일 열심히 생각해야 해.” (131쪽)
- “아버지, 타츠니시키에도 일부지만 농약이 뿌려졌어요. 이곳에선, 이 땅에선 벼도 땅도 사람도 더럽혀지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있어요.” (182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3권을 읽습니다. 2권에 이어 3권 또한 ‘술 이야기’는 한 방울(?)조차 다루지 않습니다. 일본술 빚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이라면서, 2권과 3권은 온통 ‘흙을 일구는 사람들과 삶터와 사랑 이야기’만 보여줍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정작 흙을 만지는 일을 해 보지 않은 가냘픈 아가씨가 스물서넛 나이에 처음으로 흙을 만지고 처음으로 쟁기를 쥐며 처음으로 낫을 듭니다. 이동안 자전거를 타며 학교를 다녔다든지 들놀이를 다녔다든지 운동 삼아 탔다든지 했을 수 있지만, 이때에야 비로소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쟁기며 삽 같은 연장을 싣고 거름더미를 잔뜩 싣고는 시골길을 달려 논에 뿌립니다. 흙을 일구는 나날이니 땀이 비오듯 흐르고, 땀이 비오듯 흐르니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습니다. 어느 따뜻한 바닷가로 찾아가서 헤엄옷 얄팍하게 입어 살결을 태우지 않아도, 수건으로 목을 두르고 챙 넓은 모자를 썼어도, 얼굴이며 몸은 새까맣게 탑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참말 ‘술 만화’일까요. 술 만화라 할 만한가요. 술 만화가 맞나요.


- ‘오빠, 이삭이에요. 타츠니시키 이삭이에요.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아요. 볍씨가 발아해 모가 되고, 모가 이윽고 벼로 자라 이삭을 맺고.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보고 또 봐도 신기해요.’ (207쪽)


 요즈음 한국땅에서 태어나는 술은 ‘술’이라기보다 ‘화학조합물’입니다. 소주는 술이 아니라 알콜덩어리입니다. 화학방정식에 맞추어 알코올을 ‘걸러낸 물(정제수)’에 섞은 다음 화학첨가물을 넣습니다. 맥주 또한 보리술이라기보다 농약 잔뜩 친 보리를 화학처리를 해서 알콜 도수를 맞출 뿐입니다. 한국땅 어디에서 보리를 거두어 한국 맥주가 태어나겠습니까.

 그러니까,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흙을 일구는 가냘픈 아가씨 삶을 들려줄밖에 없습니다. 술이 술이 되자면, 술밑을 이루는 곡식부터 곡식다울 수 있어야 하거든요. 술쌀부터 쌀다울 때라야 술이 술답습니다. 쌀알 하나 쌀알다이 돌보며 거둘 수 있어야 술방울 하나 술방울다이 즐길 수 있어요.

 좋은 땀방울로 빚은 쌀로 좋은 술을 담급니다. 좋은 사랑으로 낳은 아이를 좋은 믿음으로 보살핍니다. 좋은 꿈으로 쓴 글을 좋은 책으로 엮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을을 이룹니다. 좋은 이야기가 좋은 웃음을 피어나게 이끕니다. 좋은 밥을 나누면서 좋은 몸을 가꿉니다. 좋은 삶은 좋은 보금자리에서 살찌웁니다. (4344.11.17.나무.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3 (오제 아키라 글·그림,박시우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8.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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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잡지 <함께살기> 1호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머리말입니다. 책방에는 배본 안 하는 300부 한정판인 이 책을 사고픈 분은 http://blog.aladin.co.kr/hbooks/5202219 으로~~ ^^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권정생 할배가 쓴 글을 엮은 《죽을 먹어도》에 실린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잡지 《녹색평론》에 먼저 실렸고, 적잖은 분이 이 글을 읽은 뒤 자가용하고 헤어졌다고 하나, 거의 모두 자가용하고 다시 사귀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는 자가용하고 헤어지기란 몹시 힘든 일인 듯합니다. 자가용 없이 천막과 냄비와 쌀과 고추장까지 잔뜩 짊어지고 아이들이랑 시외버스에서 찜통이 되며 여름마실을 다니던 삶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저는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에 집식구 넷이 이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낑낑대며 여름마실을 했던 일을 언제나 새삼스레 떠올리곤 합니다. 자가용이 없어 시외버스 타는 데까지 걸어가고, 또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시외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나 시골버스를 기다리다가, 다시금 이 버스에 짐짝처럼 찡겨 헉헉거리며 인천에서 동해까지 바닷가를 찾아가던 일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집에서 아버지가 자가용을 안 모니, 이렇게 다니는 동안 아버지랑 어머니랑 형이랑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서로 창밖을 바라보며 파랗고 깊은 바다는 어떻게 생겼을까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네 살과 한 살짜리 아이를 둘 건사하는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자가용 없고 종이기저귀 안 쓰며 아기수레를 안 씁니다. 어디 한번 마실하자면 제 가방에는 천기저귀며 아이들 옷가지이며 이것저것 가득 찹니다. 아이를 앞으로 안고 이끌며 돌아다니자면 더없이 고단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단한 나날은 몸에 또렷이 새겨지면서 오래오래 우리 삶이야기로 자리잡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른은 책을 읽지 못합니다. 자가용 손잡이를 쥐어야 하니까요. 자가용에 함께 탄 다른 사람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자가용 모는 이가 졸지 않도록 조잘조잘 말을 걸거나 창밖을 내다볼 뿐입니다. 그런데 자가용 창밖으로 무엇을 볼 수 있는가요. 너무도 빨리 내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네 살 첫째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마실을 할 때면, 언제나 길바닥에 떡이 된 들짐승 주검을 봅니다. 큰 짐승은 이삼십 미터 즈음 핏자국을 남깁니다. 작은 벌레는 납짝쿵이 되고, 나비와 잠자리는 찢긴 채 구르며, 뱀이나 개구리나 도룡뇽은 거의 알아볼 길이 없습니다.

  권정생 할배는 “승용차를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을 모는 동안 책하고 조용히 사귀는 길하고는 멀어지고, 자가용을 장만하는 돈이나 기름값이나 보험삯으로 나가는 돈 때문에 책을 장만하며 즐길 겨를이 없습니다. 사랑스러우면서 어여쁜 한겨레 해맑은 동무와 이웃이 천천히 자가용하고 헤어지거나 덜 사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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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가는 논둑길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1.15.



 논둑길을 타고 도서관으로 간다. 멧골집에 깃들던 때 책꽂이들이 잔뜩 먹어야 하던 곰팡이를 닦고 털어야 하기에 아침에 창문을 모조리 열고는 저녁에 닫는다. 책꽂이에 한 번 내려앉은 곰팡이는 닦고 털고 말리면 다시 안 피어날까. 애써 닦는달지라도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나려나. 바람 잘 들고 햇살 잘 비치는 옛 흥양초등학교 자리가 좋다고 느낀다. 이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놀며 배우던 지난날에는 한겨울에도 밝은 햇볕을 받으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겠지. 한겨울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살이 골고루 들어오니, 이곳 아이들은 고운 햇살을 고마이 받으면서 마음껏 뛰놀며 배울 수 있었겠지.

 도시 한복판에 도서관을 세우더라도 도서관 둘레로 흙을 밟으면서 걸을 길이랑, 흙을 손으로 만지며 일굴 밭을 함께 마련하면 참 좋겠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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