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코의 술 애장판 3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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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흙을 일구는 삶, 사랑을 짓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77]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3)》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집으로 옮긴 뒤 너구리를 두 마리째 봅니다. 처음 본 너구리는 늦은 밤 짐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길에서 넙데데한 궁둥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부리나케 내빼는 너구리입니다. 사람 발길 없는 시골길에 모처럼 드물게 자동차 한 대 불을 밝히며 지나가니 깜짝 놀라며 내빼는데, 바로 옆 논으로 내빼지 못하고 찻길을 따라 한동안 달리더군요.

 다음으로 본 너구리는 해질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번에도 짐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큰길, 모로 누워 죽은 너구리입니다. 이 너구리는 차에 받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입니다. 맞은편 찻길에 모로 누웠고, 아직 떡주검까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해가 지고 길이 캄캄하면 큰길을 드문드문 오가는 자동차마다 이 너구리 주검을 알아채지 못하고는 자꾸자꾸 밟고 또 밟아 떡주검으로 만들겠지요.

 어느 시골이나 시멘트길이랑 아스팔트길이 잘 깔립니다. 시골집이래서 마당이 흙마당 그대로인 곳은 드뭅니다. 흙을 구운 기왓장이 고스란히 남은 집은 드뭅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 시멘트 아닌 흙을 구운 기왓장이 남은 집을 적잖이 보았으나, 낡고 오래되어 무너질까 걱정스럽대서 싸그리 밀어 없애는 모습까지 보기 일쑤였습니다.

 시멘트를 깐 논밭에서는 벼도 푸성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합니다. 어느 흙일꾼도 논밭에 시멘트를 깔지 않습니다. 잡풀이 자라지 말라며 밭에 시멘트를 까는 사람은 없습니다. 잡풀이 나더라도 흙땅에 풀약을 칠 뿐, 시멘트를 깔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흙이 있는 데에서 얻습니다. 풀과 나무는 흙이 있는 데에서 자랍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는 흙에 알을 낳습니다.

 흙이 있고 물과 바람이랑 햇볕이 있어야 합니다. 흙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물과 바람과 햇볕을 먹으며 튼튼해집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물에서 숨을 얻고 물속으로 비치는 햇살을 먹으며 씩씩해집니다.


- “뿌리 조금 끊기는 건 걱정 말아요. 모는 그 정도로는 끄떡없으니까.” (20쪽)
- “어쩌다 보니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논이 있어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야. 그래도, 가을이 되어 추수철이 오면 뭐랄까, 그게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러니까 마음이 들뜨는 게, 하루 종일 쳐다만 봐도 좋은 그런.” (34쪽)
- “쌀뿐만 아니라 모든 작물은 인간 생명의 양식이잖아요! 농업은 그 양식을 생산하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잖아요!” (58쪽)


 풀은 마음껏 돋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풀을 성가셔 하면서 시멘트랑 아스팔트를 흙땅에 덮지만, 풀은 시멘트와 아스팔트 깔린 데에서도 틈바구니를 찾아 고개를 내밉니다. 나 보란 듯이, 아니 나를 보라며 고개를 내밉니다. 온통 쇳가루와 고무바퀴와 플라스틱이 넘치는 도시에서, 이 도시사람들 숨통이 막힐까 걱정스러이 여기는 들풀이 힘차게 고개를 내밉니다.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들풀이 없다면, 도시사람은 벌써 숨막혀 죽거나 바보가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 풀약을 칩니다. 논이고 밭이고, 잔뜩 돋는 풀을 어찌하지 못하니까 풀약을 칩니다. 곡식과 푸성귀가 크게 자라야 하고 알이 굵어야 하니까, 다른 풀한테 흙기운을 내줄 수 없습니다. 내다 파는 푸성귀와 곡식이 더 매끈하게 빠지고 큼직해야 하니까 풀을 뽑고 풀을 베며 풀을 죽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 만한 일자리를 찾습니다. 곧, 더 값싸고 더 큼직하며 더 예뻐 보이는 푸성귀에 손이 갑니다. 더 알차고 더 참다우며 더 깨끗한 푸성귀에 손이 안 갑니다. 이리하여, 도시사람한테 곡식이랑 푸성귀를 내다 팔며 돈을 벌 시골 흙일꾼은 풀약을 칩니다. 도시사람 바라는 대로 더 값싸고 더 큼직하며 더 예뻐 보이는 곡식과 푸성귀를 ‘억지로 만들어야’ 하기에, 그만 흙을 괴롭히고 흙을 들볶으며 흙을 죽이는 길을 걸을밖에 없습니다.


- “알아요.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나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그럼!” “아니요,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역시 안 되겠다 싶어요.” “어, 어째서?” “나, 농사짓는 집엔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45쪽)
- “겨우 기계에 적응했다 했더니, 이번엔 쌀이 남아돌아 논을 줄이라는 거예요. 벼농사로 표창장까지 받은 사람에게 이번엔 농사를 짓지 말라는 거죠.” “시키는 대로 논 면적을 줄이면 또 보조금을 내주지. 농기계를 잔뜩 떠넘기던 녀석들이 말이야.” “결국 아버지는 대체 작물 농사에 실패했고 또다시 빚을 졌어요.” (50쪽)


 흙에 풀약을 치면 풀은 이내 죽습니다. 비바람과 햇살이 풀약을 씻어내면 풀은 다시금 기운을 차려 새싹을 틔웁니다. 흙일꾼은 다시 풀약을 칩니다. 새로 돋은 풀은 그만 다시 죽습니다. 이러다가 비바람과 햇살이 풀약을 또 씻으면 풀은 또 자랍니다.

 풀약을 먹은 풀이 죽듯, 풀약을 사람들 먹는 밥에 치면 사람이 죽습니다. 농약을 마신 흙일꾼은 곧장 숨이 끊어집니다. 목이 타는 괴로움에 시달리며 죽습니다.

 농약이 스멀스멀 밴 곡식이나 푸성귀를 먹는 여느 사람은 금세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몸속에 농약 기운이 천천히 쌓이면서 천천히 몸이 무너집니다. 내 몸 하나 천천히 무너지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내 몸에 쌓인 농약과 중금속 들은 내가 낳을 아이들 몸에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오늘날 아이들 누구나 아토피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 누구나 아토피에 걸릴 수밖에 없으니, 병원 장사는 언제까지나 돈벌이가 잘 됩니다. 화학공장은 ‘살리는 약’과 ‘죽이는 약’을 함께 만듭니다. 그런데, ‘살리는 약’이 얼마나 살리는지는 알쏭달쏭합니다.


- “하지만 코시히카리나 사사니시키도 유기농 재배를 하는 건 아니야. 그래도 매년 훌륭한 쌀을 수확하고 있다고. 농약이며 화학비료도 너무 많이 쓰지만 않으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그래, 사실 유기농은 무리야.” “나츠코, 우린 쌀뿐만 아니라 보리며 누에콩 같은 것도 농약을 써 가며 짓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작물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얘긴 들어 본 적이 없어. 우리 쌀이 위험하다면 지금쯤 일본 인구는 반으로 줄었을 거야.” “누가 아니래. 하하하.” “반으로 줄면 농약을 안 쓸 건가.” “응?” “죽는 사람이 나와야, 그때야 비로소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달을 텐가 말이야. 죽는 사람이 나오는 건 20∼30년 후일지도 몰라.” (123∼124쪽)
- “(농약이) 뿌려졌어. 타츠니시키에도.” “얼마 안 되는 양이야! 괜찮아! 독약도 아닌데 뭘 그래?” “독약이야.” “(공중 액체분사 농약을 맞은 나비가 죽은 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어.” “그, 그게 뭐 어때서! 벼를 지키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농약이.” (170∼171쪽)



 풀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얼마 안 되는 풀약을 먹고는 꼬르륵 숨을 거둡니다. 아니, 얼마 안 되는 풀약을 먹고는 금세 까맣거나 누렇게 타서 말라죽습니다.

 풀약 만드는 화학공장에서는 벼나 다른 곡식이나 푸성귀는 타서 말라죽지 않도록 애씁니다. 이른바 ‘곡식과 푸성귀를 지키는 풀약’이라 할 만합니다.

 오늘날 한국땅 어른들은 당신 아이들을 입시학원과 입시학교에 몰아넣습니다. 오늘날 한국땅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과 학교는 ‘삶을 배우는 터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당’이 아닙니다. ‘삶을 일구는 곳’이 아니에요.

 참 용한 일입니다만, 삶과 사랑과 사람이 없는 입시학원과 입시학교에 내몰리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바보가 된다든지 미친다든지 죽는다든지 하는 일이 드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머리가 돌고 마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거의 모든 웬만한 아이들은 용하게 살아남습니다. 입시학원과 입시학교라는 입시지옥에서 아슬아슬 숨통이 끊어지지 않아요.

 군대에 끌려가는 사내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얻어맞거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젊은 넋이 있습니다. 그러나 훨씬 많은 사내는 군대에서 잘 살아남습니다.

 다만, 궁금합니다.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았대서 이 아이들 넋이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지 궁금합니다.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으면서 총질과 칼질과 주먹질과 욕질을 배우는 군대에서 살아남았다는데, 이 젊은 사내들 얼이나 매무새가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지 궁금합니다.


-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진키치. 응, 난 그 사람 말에 화를 낼 수가 없구나. 우리 중에선 네가 제일 젊어. 앞으로 어떻게 벼농사를 지을지 어떻게 땅을 지킬지, 네가 제일 열심히 생각해야 해.” (131쪽)
- “아버지, 타츠니시키에도 일부지만 농약이 뿌려졌어요. 이곳에선, 이 땅에선 벼도 땅도 사람도 더럽혀지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있어요.” (182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3권을 읽습니다. 2권에 이어 3권 또한 ‘술 이야기’는 한 방울(?)조차 다루지 않습니다. 일본술 빚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이라면서, 2권과 3권은 온통 ‘흙을 일구는 사람들과 삶터와 사랑 이야기’만 보여줍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정작 흙을 만지는 일을 해 보지 않은 가냘픈 아가씨가 스물서넛 나이에 처음으로 흙을 만지고 처음으로 쟁기를 쥐며 처음으로 낫을 듭니다. 이동안 자전거를 타며 학교를 다녔다든지 들놀이를 다녔다든지 운동 삼아 탔다든지 했을 수 있지만, 이때에야 비로소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쟁기며 삽 같은 연장을 싣고 거름더미를 잔뜩 싣고는 시골길을 달려 논에 뿌립니다. 흙을 일구는 나날이니 땀이 비오듯 흐르고, 땀이 비오듯 흐르니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습니다. 어느 따뜻한 바닷가로 찾아가서 헤엄옷 얄팍하게 입어 살결을 태우지 않아도, 수건으로 목을 두르고 챙 넓은 모자를 썼어도, 얼굴이며 몸은 새까맣게 탑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참말 ‘술 만화’일까요. 술 만화라 할 만한가요. 술 만화가 맞나요.


- ‘오빠, 이삭이에요. 타츠니시키 이삭이에요.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아요. 볍씨가 발아해 모가 되고, 모가 이윽고 벼로 자라 이삭을 맺고.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보고 또 봐도 신기해요.’ (207쪽)


 요즈음 한국땅에서 태어나는 술은 ‘술’이라기보다 ‘화학조합물’입니다. 소주는 술이 아니라 알콜덩어리입니다. 화학방정식에 맞추어 알코올을 ‘걸러낸 물(정제수)’에 섞은 다음 화학첨가물을 넣습니다. 맥주 또한 보리술이라기보다 농약 잔뜩 친 보리를 화학처리를 해서 알콜 도수를 맞출 뿐입니다. 한국땅 어디에서 보리를 거두어 한국 맥주가 태어나겠습니까.

 그러니까,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흙을 일구는 가냘픈 아가씨 삶을 들려줄밖에 없습니다. 술이 술이 되자면, 술밑을 이루는 곡식부터 곡식다울 수 있어야 하거든요. 술쌀부터 쌀다울 때라야 술이 술답습니다. 쌀알 하나 쌀알다이 돌보며 거둘 수 있어야 술방울 하나 술방울다이 즐길 수 있어요.

 좋은 땀방울로 빚은 쌀로 좋은 술을 담급니다. 좋은 사랑으로 낳은 아이를 좋은 믿음으로 보살핍니다. 좋은 꿈으로 쓴 글을 좋은 책으로 엮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을을 이룹니다. 좋은 이야기가 좋은 웃음을 피어나게 이끕니다. 좋은 밥을 나누면서 좋은 몸을 가꿉니다. 좋은 삶은 좋은 보금자리에서 살찌웁니다. (4344.11.17.나무.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3 (오제 아키라 글·그림,박시우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8.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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