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잡지 <함께살기> 1호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머리말입니다. 책방에는 배본 안 하는 300부 한정판인 이 책을 사고픈 분은 http://blog.aladin.co.kr/hbooks/5202219 으로~~ ^^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권정생 할배가 쓴 글을 엮은 《죽을 먹어도》에 실린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잡지 《녹색평론》에 먼저 실렸고, 적잖은 분이 이 글을 읽은 뒤 자가용하고 헤어졌다고 하나, 거의 모두 자가용하고 다시 사귀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는 자가용하고 헤어지기란 몹시 힘든 일인 듯합니다. 자가용 없이 천막과 냄비와 쌀과 고추장까지 잔뜩 짊어지고 아이들이랑 시외버스에서 찜통이 되며 여름마실을 다니던 삶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저는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에 집식구 넷이 이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낑낑대며 여름마실을 했던 일을 언제나 새삼스레 떠올리곤 합니다. 자가용이 없어 시외버스 타는 데까지 걸어가고, 또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시외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나 시골버스를 기다리다가, 다시금 이 버스에 짐짝처럼 찡겨 헉헉거리며 인천에서 동해까지 바닷가를 찾아가던 일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집에서 아버지가 자가용을 안 모니, 이렇게 다니는 동안 아버지랑 어머니랑 형이랑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서로 창밖을 바라보며 파랗고 깊은 바다는 어떻게 생겼을까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네 살과 한 살짜리 아이를 둘 건사하는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자가용 없고 종이기저귀 안 쓰며 아기수레를 안 씁니다. 어디 한번 마실하자면 제 가방에는 천기저귀며 아이들 옷가지이며 이것저것 가득 찹니다. 아이를 앞으로 안고 이끌며 돌아다니자면 더없이 고단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단한 나날은 몸에 또렷이 새겨지면서 오래오래 우리 삶이야기로 자리잡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른은 책을 읽지 못합니다. 자가용 손잡이를 쥐어야 하니까요. 자가용에 함께 탄 다른 사람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자가용 모는 이가 졸지 않도록 조잘조잘 말을 걸거나 창밖을 내다볼 뿐입니다. 그런데 자가용 창밖으로 무엇을 볼 수 있는가요. 너무도 빨리 내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네 살 첫째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마실을 할 때면, 언제나 길바닥에 떡이 된 들짐승 주검을 봅니다. 큰 짐승은 이삼십 미터 즈음 핏자국을 남깁니다. 작은 벌레는 납짝쿵이 되고, 나비와 잠자리는 찢긴 채 구르며, 뱀이나 개구리나 도룡뇽은 거의 알아볼 길이 없습니다.

  권정생 할배는 “승용차를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을 모는 동안 책하고 조용히 사귀는 길하고는 멀어지고, 자가용을 장만하는 돈이나 기름값이나 보험삯으로 나가는 돈 때문에 책을 장만하며 즐길 겨를이 없습니다. 사랑스러우면서 어여쁜 한겨레 해맑은 동무와 이웃이 천천히 자가용하고 헤어지거나 덜 사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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