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중국집에서



  긴 바깥마실을 마치고 아이들과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큰아이가 시외버스를 몹시 고단하게 여기기에 이번에 인천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기차를 탄다. 그런데 영등포에서 탄 무궁화 기차는 고속기차를 먼저 보내야 한다면서 자그마치 이십 분이 늦는다. 순천 기차역에서 순천 버스역으로 걸어가고, 순천 버스역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서 고흥에 닿으니 저녁 일곱 시 반. 이번에는 큰아이가 멀미를 하지 않아 고마운데, 두 아이 모두 배가 고프겠다. 읍내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는지, 밥을 먹고 군내버스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갈는지 생각하다가, 밥을 먹기로 한다. 졸음을 털지 못한 아이들을 안고 얼른 뒤 중국집으로 간다. 밥과 국이 있는 곳으로 갈까 싶기도 했지만, 중국집에서 가락국수하고 달걀밥을 시켜도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식구가 으레 가던 중국집은 문을 닫고 순대국집으로 바뀌었다. 버스역 건너편 중국집에 갔더니 주방장 아저씨가 병문안 가셔야 한다며 밥은 못 시키고 짜장면만 두 그릇 시킨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한다. ‘그래, 다 괜찮아. 아이들이 짜장면 먹은 지 제법 되었지? 모처럼 짜장면만 먹으면 되지.’ 중국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미안하다면서 밥 한 그릇을 덤으로 준다. 짜장면 양념에 밥을 비벼서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먹인다. 차를 오래 탄 탓인지 아이들이 얼마 못 먹는다. 나도 얼마 못 먹는다. 웬만해서는 밥을 안 남기고 다 먹는데, 아니 밥을 남기는 일이 없는데, 차마 다 비우지 못한다.


  밥을 남긴 아이가 ‘칸쵸’ 과자를 찾는다. 시외버스를 내린 뒤 버스역 가게에서 이 과자를 보고는 먹고 싶단 말을 했는데, 밥을 남기고서 다시 과자를 얘기한다. 그래, 네 마음에서는 밥보다는 그 과자가 떠오르고, 밥은 넘어가지 않아도 과자는 넘어간다는 소리로구나. 아무튼 과자를 장만한다. 버스표를 끊고 저녁 여덟 시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 닿아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니 아이들도 몸과 마음이 많이 풀리면서 졸음이 확 쏟아졌지 싶다. 토닥토닥 재운다. 곧 잠든 아이들은 과자를 사 놓았어도 ‘과자 먹을 생각’을 못 한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과자 생각을 다시 해낸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아이들과 집까지 씩씩하게 돌아가는 일만 헤아리느라 힘을 아끼면서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다. 읍내 중국집에 닿아서야 비로소 ‘아이들과 움직이는 삶’을 두 장 사진으로 담았다. 집에 닿아서도, 이튿날이 되어서도 사진기를 손에 쥘 생각을 한참 못 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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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읽고 싶은 책



  우리 집 큰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읽는 책을 따라서 읽고 싶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누나가 읽는 책을 따라서 읽고 싶다. 우리 집 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책을 물려받는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누나한테서 책을 물려받는다.


  어버이인 사람은 어떤 책을 손에 쥐어 마음을 살찌울 때에 아름다울까. 어버이로 지내는 사람은 아이한테 어떤 책을 물려주면서 사랑을 빛내고 싶은가.


  오늘 내가 마시는 바람을 아이들도 곁에서 똑같이 마신다. 오늘 내가 들이켜는 냇물을 아이들도 곁에서 똑같이 들이켠다. 오늘 내가 바라보는 하늘과 숲을 아이들도 곁에서 똑같이 바라본다.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책을 고르지 않는다. 나부터 스스로 눈빛을 키우면서 삶빛을 밝히고 싶기에 책을 고른다. 생각을 가꾸려고 책을 고른다. 꿈을 일구려고 책을 고른다. 이야기를 엮으려고 책을 고른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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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57. 2014.6.16. 전철 책순이



  치과에서 이를 고치려고 먼 나들이를 나온다. 두 아이는 저마다 제 가방에 만화책을 한 권씩 챙긴다. 큰아이는 참말 보려고 챙긴 만화책이고, 작은아이는 누나가 챙기니까 저도 챙기고 싶을 뿐이다. 시외버스를 한참 달려 서울에 닿은 뒤, 일산까지 전철로 가는 길에 드디어 자리를 얻는다. 자리에 앉고 나서 한동안 놀다가 비로소 가방에서 만화책을 꺼낸 책순이는 모든 소리를 잊고 책에 빨려든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읽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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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공명
지율 스님 지음 / 삼인 / 200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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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는 <모래가 흐르는 강> 영화를 내려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데에서도 없고, 예스24 한 군데에서만 내려받기가 됩니다. 안타깝지만, 한 군데라도 있으니, 그곳에서 내려받기를 하셔서 '참과 거짓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시면 좋겠습니다. 지율 스님 책이 널리 읽히고, 제대로 읽히기를 바라면서 <초록의 공명>이라는 책에 이 영화비평을 걸칩니다.


..


모래가 흐르는 강

2013



  마음을 닦던 스님이 밥을 굶으면서 싸웠다. 밥을 끊고 물조차 마시지 않으면 스무 날이나 서른 날을 버티기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밥과 물을 모두 끊은 스님은 백 날이 넘도록 살았다. 스님은 어떻게 살았을까. 스님은 어떻게 안 죽었을까. 스님 한 분은 ‘죽을 마음’이 없었다고 느낀다. 스님 한 분은 우리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 있었다고 느낀다. 우리와 함께 오랜 나날 살아온 숲이 앓는 소리를 들으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고, 우리와 함께 서로 아끼고 사랑하던 냇물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으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느낀다.


  스님 한 분은 2004년에 《초록의 공명》이라는 글책을 선보인다. 2010년에는 《낙동강 before and after》라는 사진책을 작게 선보인다. 마음을 닦으며 살려고 하던 스님은 어느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된다. 스님한테 찾아오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냇물이 스님한테 말을 걸고 숲이 스님한테 말을 건다. 풀잎이, 벌레가, 작은 짐승이 스님한테 말을 건다. 스님은 이 모든 소리를 귀여겨들은 뒤 글과 사진으로 엮는다. 그리고 영화를 찍어 2013년에 〈모래가 흐르는 강〉을 선보인다.


  스님이 쓴 글을 담은 책은 아직 새책방에 있다. 스님이 찍은 사진을 담은 책은 조금만 찍어 새책방에서는 안 다루는 책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스님이 찍은 영화는 0원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려받아서 볼 수 있다(http://vod.yes24.com/MovieContents/MovieDetail.aspx?did=M000043941). 스님이 한 일을 놓고 ㅈ신문이 비틀린 거짓을 일삼았기에 ‘1원 소송’을 건 적이 있다. 이에 앞서 ‘10원 소송’을 건 적이 있고, 10원 소송에서는 이겨서 ‘10원을 ㅈ신문한테서 받았’으나, 뜻밖에 1원 소송에서는 졌다(이에 항소를 했다). 법원은 왜 이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ㅈ신문은 왜 이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닫을까.


  생각해 보면, ㅈ신문뿐 아니라 법원에다가 대통령과 온갖 정치인과 지식인은 귀를 닫고 눈을 감는다. 풀과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여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은 얼마나 되는가. 숲과 냇물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활짝 여는 ‘여느 회사원’이나 ‘여느 학생’이나 ‘여느 한국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냇물에는 모래가 흘러야 마땅하다. 냇물에 시멘트가 흐르면 모두 죽는다. 냇물은 모래밭에서 흘러야 깨끗하다. 냇물이 시멘트바닥에서 흐르면 모두 죽는다. 그런데, 남녘나라 모든 냇물과 가람과 시내는 시멘트로 덮이고 말았다. 이를 끔찍하다고 느끼는 한국사람이 참 드물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독재정권 군화발과 함께 휘몰아쳤을 적에, 모두들 풀지붕을 없애고 석면지붕을 올렸다. 이제 석면지붕은 나라에서 돈을 들여 거두어들이고 없앤다. 오늘날 온갖 곳에 퍼붓는 시멘트를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 어떻게 할는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살고,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뒷사람한테 어떤 바보짓을 했는지 땅을 쳐도 한참 늦다.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은 누구라도 0원이 있으면, 그리고 마음이 있으면, 언제나 볼 수 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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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5. 무지개가 흐르는 사진



  우리 삶에는 언제나 무지개가 흐릅니다. 누군가는 무지개를 잘 느끼고, 누군가는 무지개를 못 느낍니다. 무지개를 늘 생각하면서 살기에 어디에서나 무지개를 만나고, 무지개를 생각한 적이 없기에 우리 곁에 무지개가 돋아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잘 살펴보셔요. 봄에 봄꽃이 피었어도 못 알아차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월에 밤꽃이 피거나 아왜나무꽃이 피었어도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값비싸다는 자동차가 지나갈 적에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고 못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어요. 고무신을 신은 할매가 지나갈 적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요. 아리땁다는 아가씨가 지나갈 적에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고 못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어요.

  왜 어느 한 사람은 알아보지만, 왜 어느 한 사람은 못 알아볼까요? 왜 어느 한 사람은 바로 느끼지만, 왜 어느 한 사람은 하나도 안 느낄까요?

  사진을 찍는 실마리는 ‘알아차리는 눈빛’과 ‘알아보는 눈매’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자면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알아보자면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가난하건 가멸차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 삶을 무지개빛이라 여기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무지개를 봅니다. 스스로 내 삶을 잿빛이라 여기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잿빛을 봅니다.

  흑백필름으로 찍더라도 ‘해사한 빛이 눈부시구나’ 하고 느끼는 사진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칼라필름으로 찍더라도 ‘어두컴컴한 빛이 짙구나’ 하고 느끼는 사진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요?

  스스로 가꾸는 삶에 따라 사진이 바뀝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삶에 따라 사진이 거듭납니다. 사진기 다루는 재주를 익힌다고 해서 사진이 바뀌지 않습니다. 사진파일을 만지는 솜씨를 키운다고 해서 사진이 거듭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바뀔 때에 사진이 바뀝니다. 생각이 거듭나도록 가꿀 적에 비로소 사진이 거듭납니다.

  어떤 무지개를 어디에서 보고 싶은가 하고 마음에 담으셔요. 어떤 빛을 어디에서 누리면서 살고 싶은가 하고 마음에 씨앗을 심으셔요.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이 삶을 낳습니다. 삶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는 마음에 깃들면서 새로운 생각을 낳습니다. 곱게 흐르는 물결 사이에서 사진이 가만히 고개를 내밀면서 빙긋 웃습니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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